56화
탱커란 무엇인가?
탱커의 기본적인 역할은 바로 전선 유지에 있다.
그 외에도 적의 포화를 막아 주고 아군을 보호하는 역할 등, 탱커에게 주어진 역할들은 많다.
그만큼 탱커는 전투에 있어 필수이자 중요한 존재였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이민아는 이 모든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었다.
‘적들의 포화를 전부 받아 내면서, 전선까지 유지하는 완벽한 탱커.’
내가 회귀하기 전에 만났던 이민아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의 이민아는 내 기억과 많이 달랐다.
“크억.”
“바, 박유진! 괜찮아?”
“아으으. 야, 아까도 말했지만, 너는 공격을 우선순위에 두지 마. 탱커의 우선순위는 어그로를 끌면서 아군을 보호하는 거니까. 오케이?”
“…알았어. 다시 할까?”
“으으, 어. 바로 해 보자.”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이민아와 같이 다시 한번 훈련용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으억.”
“아악!”
“아야야야.”
하지만 결과는 다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골렘의 주먹에 맞고 계속 나가떨어졌다.
“괘, 괜찮아?”
“…좀만 쉬었다 하자. 저 골렘 정지시키고 와.”
“알았어.”
내 말에 이민아는 근처의 기계 장치 쪽으로 가 무엇을 건드렸다.
그러자 커다란 골렘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이내 먼지처럼 사라졌다.
‘편리한 마법이네.’
나는 골렘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저 골렘이 4급 위험도의 몬스터와 비슷한 수준이랬지?’
지금의 내가 홀로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는 잘해 봤자 6급이었다.
그것도 죽이는 게 아닌, 어느 정도 상대만 가능한 수준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원래는 4급 위험도의 몬스터는 나 혼자서 절대 상대할 수 없었다.
‘이민아와 함께하면 다를 줄 알았지.’
이민아는 B급 헌터였고, 그녀의 수준이면 4급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만했다.
그래서 나는 난이도가 적당할 줄 알고 골렘의 강함을 4급 위험도의 몬스터와 똑같이 설정해 소환했다.
하지만 그건 내 실수였다.
‘이민아를 너무 고평가했어.’
나는 살짝 금이 간 듯한 내 왼팔을 매만졌다.
‘설마 탱커와 관련된 경험이 거의 없을 줄이야.’
말했듯, 지금의 나는 4급 몬스터를 절대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민아 같은 B급 탱커가 같이하면 이야기가 달랐다.
탱커가 시선을 끌어 주면,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공격하면 됐었다.
나는 당연히 상황이 그런 식으로 흘러갈 줄 알았다.
“왼팔 부었는데, 많이 아파?”
“못 참을 수준은 아니야. 그냥 이따 교내 병원에 들러서 치료받으면 될 거다.”
나는 내 곁에 돌아온 이민아를 잠시 바라봤다.
‘하긴, 아직 전선에서 직접 뛰기엔 어리지.’
나는 회귀하기 전에 만났던 이민아를 생각하며, 방금의 골렘과 싸웠다.
그러니까 이민아가 당연히 골렘의 시선을 전부 끌고, 나 대신 치명적인 공격들을 맞아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민아는 시선을 끌지도, 나 대신 공격을 맞아 주지도 않았다.
아니, 못 한 것에 가까웠다.
애초에 이민아는 그것들을 어떻게 하는지 아직 몰랐으니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나는 바닥에 앉은 채 등을 벽에 기댔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이민아를 바라봤다.
“후우우. 이민아?”
“으, 응?”
“아까도 물었던 거지만, 네가 직접 탱커 역할을 해 본 적이 없다고?”
“응, 게이트 토벌은 자주 나갔지만, 내가 직접 선두에 선 적은 없거든.”
“하기야, 너는 아직 너무 어리기는 하다.”
탱커는 팀의 기둥이다.
탱커가 무너지면 팀 자체가 무너지다 보니, 보통은 베테랑들이 최전선에 섰다.
이민아가 B급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어리다 보니 1선이 아닌 2선 정도가 최대였을 터였다.
“…이민아. 아무리 생각해도 팀원들을 더 구하는 게 맞을 거 같다.”
“하지만…….”
“힐러가 없는 것만 해도 힘든데, 탱커 역할을 해야 하는 네가 이러면 더 힘들어.”
대회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그렇다 쳐, 라고 나는 말을 계속했다.
“몬스터를 잡는 거야, 그냥 우리가 실력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이거든. 근데 팀전은 그렇게 쉽지가 않을 거야.”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것과 달리, 팀전은 같은 인간들을 상대하는 거였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인간들을 말이다.
“네가 탱커 역할을 못 하면, 나는 순식간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어.”
물론 나는 20년 가까운 경험 덕에 학생 한두 명쯤은 혼자서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팀전에서 만나게 될 학생 수는 최소 여섯 명 이상.
아무리 나라도 여섯 명 이상의 총공격은 버틸 수 없었다.
“그렇기는 한데, 박유진. 근데 아까 말한 거지만, 우리가 사람을 더 구하고 싶어도…….”
“알아. 우리 둘 다 학교에 아는 사람이 없잖아.”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민아는 원래 친구를 잘 못 만드는 성격이었고, 나는 학교생활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의 아싸 생활이 이런 식으로 내게 돌아올 거라 상상치도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예선은 어찌어찌 통과해도,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절대 못 낼 거야.”
“근데 어떻게 하라고? 우리 둘 다 아는 사람이 없는데, 사람을 어떻게 더 구해?”
“면식이 있는 사람 하나둘 정도는 있을 거 아니야?”
당장 나만 해도 있었다.
최근 학교 수업에 자주 나오다 보니, 내 얼굴을 외운 듯한 사람들이 몇 명 보였다.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은 해 주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내일 하루 동안 어떻게든 사람들을 구해 보자. 그러고서도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고.”
“…알겠어. 근데 내게 기대는 하지 마.”
“야, 그래도 이참에 그 찐따스러움을 조금 극복해 봐라. 언제까지 친구 없이 살…….”
“개새끼야, 뒤질래?”
“세상에 뒤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냐, 인마.”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대꾸했다.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더 했다가는 내 몸이 안 남아나겠다.”
“으, 응. 그러자. 근데 너 몸은 괜찮아?”
“안 괜찮아서 지금 바로 병원 좀 가 보려고.”
나는 살짝 금이 간 듯한 내 왼팔을 보며 말했다.
“크게 아픈 건 아니지만, 놔뒀다가는 몸이 제대로 상하겠다.”
“혹시 많이 아파? 원한다면 내가 병원까지 너를 업어갈 수…….”
“다리를 다친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 없어, 인마. 그리고 내 걱정할 바에 내일 사람들을 어떻게 영입할지나 생각해.”
그나저나 새로운 팀원들을 구하는 거, 솔직히 구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그래도 내일 나와 이민아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 한두 명쯤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 * *
다음 날 오후.
“그래서 이민아. 사람, 구했냐?”
“구했겠냐? 너는?”
“나도 못 구했다.”
그날 수업을 다 마친 나와 이민아는 훈련장에서 다시 만났고, 서로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했다.
“이미 다 팀을 구했다더라.”
“너도냐? 나도 그 대답 들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우리가 너무 늦게 팀을 짠 게 아닐까 싶다.”
뭐,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와 이민아는 늦게 준비를 시작한 건 맞았다.
당장 다음 주가 예선인데, 보통은 이미 몇 주 전부터 준비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럼 박유진. 우리 이제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어떡하기는 뭘 어떻게 해.”
나는 훈련장 구석에 설치된 기계 장치 쪽으로 갔다.
“우리 둘이서 어떻게든 해 봐야지.”
나는 기계 장치를 조작해, 어제 봤던 커다란 골렘을 불러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 훈련장. 몇 시간 쓸 수 있는 거냐?”
고연대학교의 훈련장.
학교 내에 꽤 많은 수의 훈련장들이 있었고, 이런 식으로 대여하면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오늘은 두 시간 대여했어. 원한다면 몇 시간 더 추가할까?”
“으음, 아니다. 일단 두 시간이면 될 거다.”
나는 이민아에게 대꾸한 후, 기계로 골렘의 전투력을 조절했다.
‘어제는 4급으로 하다가 그 꼴 났으니까, 오늘은 5급으로 해 보자.’
다른 팀원을 구했으면 모르겠으나, 이제 사실상 헌터 대전은 이민아와 단둘이 나가게 될 예정이었다.
그러니 나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는 게 맞았다.
“이민아, 어제처럼 다시 해 보자.”
“응? 하지만 나 아직 탱커의 역할을 못 하는데, 어제처럼 했다가 네가 다치면…….”
“어제 같은 꼴은 안 날 거니까, 걱정 마.”
어제 내가 나가떨어진 건, 이민아가 탱커의 역할을 못 할 거라고 예상을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으니, 그에 맞게 싸우면 내가 다칠 일은 없을 터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었다.
* * *
“후우우. 뭐, 5급까지는 할 만하네, 그치?”
“응, 그러네.”
이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어제보다는 훨씬 할 만했어.”
“그렇겠지.”
나는 산산조각 난 골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 10분 안에, 나와 이민아는 5급 위험도의 골렘을 박살 낸 것이었다.
‘역시, 몬스터는 이런 식으로 상대하는 게 맞겠다.’
탱커인 이민아가 당연히 시선을 끌고 공격을 대신 맞아 줄 거라는 그 안일한 생각.
어제의 내가 손쉽게 나가떨어진 이유는 그런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마인드를 바꾼 채 싸웠다.
‘내가 이민아에게 맞춰 준 거지.’
전투력만 따졌을 때, 이민아가 나보다 훨씬 우위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이민아의 전투를 보조해 주는 쪽으로 전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어제보다 훨씬 수월하게 골렘을 잡을 수 있었다.
“이민아. 예선과 본선 첫째 날에 몬스터를 잡는 건, 그냥 오늘처럼만 하자.”
“내가 개인플레이에 집중하는 거?”
“적어도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이게 가장 효율적일 거 같다.”
나랑 이민아, 개인의 수준으로만 봤을 때는 꽤 상위권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각자의 역량으로 찍어 누르면 될 듯했다.
그래, 몬스터를 상대하는 거면 그랬다.
“근데 팀전은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할 거야.”
“…그렇겠지?”
이민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팀전을 개인 역량으로만 이기기는 힘들 테니까.”
“그치. 네가 아무리 B급이어도, 다굴 앞에서 힘들 거다.”
팀전에서는 최소한의 팀워크는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지금 나랑 이민아가 팀워크를 맞추기 전에 해결해야 할 큰 문제가 있었다.
“이민아, 너 전선 유지 진짜 해 본 적 없어?”
“나중에 하게 될 거기는 한데, 지금까지는 해 본 적 없지.”
“이게 제일 큰 문제네.”
팀전에서는 탱커가 전선을 유지해, 자리를 어느 정도 먹어 줘야 전투를 수월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민아는 전선 유지와 자리 먹기는커녕, 탱커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너무나도 부족한 상태였다.
“예선이야 어떻게든 한다 치고. 흠, 그럼 너, 본선 전까지 최전선에서 전투를 한 번 하고 올 수 있겠냐?”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새끼야. 너도 알잖아. 최전선에서 싸우는 건 나 같은 초보에게 웬만해서는 안 시켜. 내가 아무리 B급 헌터라도 말이야.”
“그렇기는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가에만 의의를 두는 것이면 모르겠으나, 이민아는 우승을 노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승을 노리기 위해서는 팀전에서 잘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민아가 탱커의 기본 소양을 속성으로라도 배워야 했다.
근데 이게 참 쉽지 않은…….
“아아, 그놈의 전선, 전선. 그냥 전선 없이 싸우면 어디 덧나나.”
이민아는 옆에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냥 이민아가 평범하게 불만을 중얼거린 것이었는데.
“음? 전선 없이 싸운다?”
내 머릿속에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귀하기 전의 기억 하나가 떠오른 것이었다.
당시에 꽤 화제를 모았던 팀전 게임이 말이다.
“야, 이민아. 너 방금 말 잘했다.”
“으, 응?”
“나 방금 아이디어 하나 떠올랐어.”
나는 기계 장치로 가, 골렘을 다시 불러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크기를 평범한 인간, 수는 여섯 마리로 설정했다.
“박유진? 아이디어라고?”
“응, 팀전을 위한 아이디어. 그리고 이거 잘만 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대회에서 우승할지도 몰라.”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이민아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