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 * *
박유진은 이민아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 후, 둘은 여섯 마리의 골렘을 향해 뛰어들었고, 그 골렘들을 순식간에 전부 박살 냈다.
“어때? 내가 말한 거 이해됐지?”
“직접 해 보니까 이해가 됐어.”
박유진의 물음에 이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유진이 팀전을 대비해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
그걸 처음 들었을 때, 이민아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실행에 옮기자, 이민아는 박유진이 무얼 말하고자 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와. 근데 박유진. 너 이거 방금 생각해 낸 거야?”
“‘전선 같은 거 없으면 좋겠다’라고 네가 말한 거 듣고 떠올린 거지.”
박유진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이런 팀전은 보통 전선 유지를 하는, 사실상 땅따먹기 게임이야. 그래서 보통 탱커들이 전선을 만든 채 전진하고, 탱커들 뒤에 있는 딜러들이 상대의 전선을 어떻게든 무너뜨리려 하지.”
“하지만 우리는 전선 없이 싸운다?”
“‘팀전은 사실상 땅따먹기 게임이다’라는 이 전제가 무너지는 거지. 그래서 이런 우리의 전략을 전혀 예상 못 했을 상대 팀들은 제대로 대처를 못 할 거야.”
“근데 이 전략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나야 어떻게든 한다 쳐도, 너는 한 대라도 잘못 맞았다가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형 전략이자, 뒤가 없는 전략. 게다가 팀플레이보다는 아까 몬스터를 잡던 것처럼, 그냥 각자의 피지컬로 찍어 누르겠다는 전략이지.”
박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일 거야.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든.”
“이게 최선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민아는 대꾸하며 박유진을 바라봤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그냥 평범하게 대화하는 것이었지만.
‘대단하네. X발, 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는 거지?’
이민아는 속으로 박유진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천재인가? 하는 것만 봐서는 천재가 맞기는 한데. 애초에 E급인데 이 정도면…….’
이민아의 박유진에 대한 첫인상은 그저 흔하디흔한, 헌터가 돼 보겠다고 설치는 E급 나부랭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박유진을 직접 상대해서 그에게 패배도 해 보고, 그와 함께 힘을 합쳐 싸워 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박유진에 대한 이민아의 평가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박유진이 제안한 전략을 들은 순간.
이민아는 말 그대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전선 없이 싸우고 싶다는 건 그냥 해 본 말이었는데,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고?’
이민아는 바닥에 흩어진, 방금 박유진과 같이 박살 낸 골렘 조각들을 바라봤다.
헌터들끼리 팀을 만들어서 하는 팀전.
‘헌터 대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나름대로의 마니아층이 있는 일종의 스포츠였다.
그리고 이민아 또한 이 ‘스포츠 경기’를 어렸을 때부터 자주 봤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팀전의 기본은 전선을 유지하면서 전진하고 땅따먹기를 진행하는 건데. 전선 없이 싸운다니.’
이런 상식 밖의 아이디어를 낸 박유진.
이에 이민아는 감탄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저렇게 대담하게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박유진에 대한 동경심도 슬슬 들기 시작했다.
‘박유진은 E급인데도 저렇게 강하고, 저렇게 머리가 좋은데. 나는 B급까지 됐으면서 왜 이렇게 발전이 없는…….’
동경, 그리고 약간의 질투심.
이민아는 박유진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그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겼다.
하지만 이민아는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야, 너 표정 왜 이렇게 죽상이냐?”
“으, 응?”
“어디 다쳤어? 혹시 속이라도 안 좋은 거냐?”
이민아가 말없이 속으로 생각하던 중, 박유진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러고 몸을 낮추어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어디 신경 쓰이는 거 있으면 말해. 괜히 너답지 않게 속으로 끙끙 앓지 말고.”
“무, 뭐, 이 새끼야. 그리고 나답지 않다는 건 또 뭔…….”
“이민아. 너는 그냥 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화내는 게 가장 잘 어울려. 이렇게 생각 많은 척, 고심하는 척은 너랑 전혀 안 어울리는…….”
“야, 이 개새끼야!”
“왜? 내가 틀린 말 했냐?”
이민아는 능글스럽게 웃는 남자의 면상을 때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녀는 약간 기뻤다.
자신의 속마음을 이렇게 바로 알아봐 주는 친구는 그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만든 친구.’
이민아는 그녀의 첫 친구와 많은 것을 해 보고 싶었다.
예를 들어 주말에 어디 같이 놀러 간다든가 하는…….
“아, 그리고 이민아.”
“응?”
“혹시 주말에 시간 있냐?”
“주말에?”
“응, 주말에 너랑 어디 가고 싶거든.”
“…어?”
이민아는 놀란 눈을 깜박이며 박유진을 바라봤다.
* * *
‘일단 이 전략을 쓰면 어찌어찌 할 만은 하겠어.’
사실 이 전략은 온전히 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회귀하기 전, 나는 해외에서 온 한 헌터 팀을 만났다.
그리고 그 헌터들이 싸우는 방식은 꽤 특이했다.
전선이고 뭐고 없이, 그냥 무작정 적 진영에 달려드는 인간들이었다.
보통 헌터들이 그런 식으로 싸우면 손쉽게 나가떨어졌겠지만, 그 헌터들은 그냥 실력으로 그걸 극복했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그 헌터들의 그 전략이 내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썼던 전략을 이번에 쓰기로 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그 팀의 탱커들도 정상은 아니었지. 아군도 안 지키고, 자리 선점도 안 하고.’
근데 어떻게 보면, 지금의 이민아도 그랬다.
탱커로서의 지식이 전혀 없던 탓에 이민아는 나를 전혀 보호 못 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해 낸 이 아이디어가 가장 효율적이었다.
전선 유지할 것 없이, 그녀 상대 팀을 향해 닥치고 뛰어들기만 하면 됐으니 말이다.
간단한 전략이었고, 방금 해 본 결과 이게 가장 우리 둘에게 맞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점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니었다.
‘탱커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하는 방법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민아가 탱커 역할을 아예 안 해도 된다는 건 또 아니야.’
내가 참고한 그 팀의 탱커들도 자신의 역할을 최소한은 수행했다.
적들의 시선을 끈다거나, 먼저 진입한다거나 하는 등의 역할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이민아는 그런 최소한의 역할에 대한 개념이나 지식이 부족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이민아는 당장 최전선에 뛰기에 스펙이 부족한 건 사실이야.’
지금의 이민아는 내가 기억하던 이민아와 달랐다.
이민아는 아직 성장을 덜 마쳤고, 그 때문에 신체적인 능력 자체도 내 기억보다 많이 약했다.
‘일단 이민아의 전반적인 능력을 먼저 올려야 되나?’
보통은 최전선에 탱커를 한 명만 기용하지 않고, 최소 두 명을 쓰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민아는 혼자서 역할을 모두 수행해야 했으니, 신체 능력을 올리는 편이 더 안정적이었다.
‘게다가 이 녀석 아버지와 약속한 것도 있으니까.’
나는 얼마 전, 이민아의 아버지, 그러니까 이진성에게 당당히 말했다.
이민아를 A급으로 올려, 그녀가 이진성보다 강해질 거라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이다.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민아를 성장시키는 게 맞았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 이민아에게 각성할 기회를…….
‘…음?’
속으로 생각하며 이민아 쪽을 바라봤는데, 이민아의 표정이 어째 많이 어두웠다.
“야, 너 표정 왜 이렇게 죽상이냐?”
“으, 응?”
“어디 다쳤어? 혹시 속이라도 안 좋은 거냐?”
나는 이민아에게 다가가,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자 이민아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이 녀석이 왜 이러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그래서 분위기를 바꾸고자, 나는 장난을 조금 쳤고.
“야, 이 개새끼야!”
효과가 좋았다.
“왜? 내가 틀린 말 했냐?”
나는 능글스럽게 웃으며 말했고, 이에 이민아는 나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전반적인 반응을 보니, 이민아는 괜찮은 듯했다.
진짜 안 괜찮았으면, 이민아는 이런 반응조차 안 보였을 거다.
회귀하기 전에 이민아를 여러 번 만나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뭐, 아무튼 괜찮아 보이니까 한 번 이야기나 꺼내 보자.’
나는 다시금 이민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이민아.”
“응?”
“혹시 주말에 시간 있냐?”
“주말에?”
“응, 주말에 너랑 어디 가고 싶거든.”
“…어?”
이민아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주말에 나랑? 그, 왜?”
“아, 별 것 아니고, 용인에 같이 갈까 해서.”
“용인? 용인이라면, 아아! 설마, 혹시 놀이공원에 가자고? 설마?”
“어어, 뭐. 그렇기는 하지.”
정확히는 그 놀이공원 내의 동물원.
그리고 그 동물원에 늑대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나는 이민아를 데리고 거기에 갈 생각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이민아가 상당히 신난 얼굴이었다.
“놀이공원. 혹시 내가 지난번에 놀이공원 가고 싶다고 한 거 기억하던 거야?”
“어? 어어. 어, 뭐, 그렇지?”
사실 모르고 있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지난번에 이민아가 친구 데리고 놀이공원 가고 싶다고 얼핏 말했던 거 같기도 하다.
“뭐, 어쨌든 토요일 오전, 시간 괜찮지?”
“응,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어어, 알겠어. 그리고 미리 말하는 건데, 우리 놀이공원에 놀러 가는 거 아니다. 너의 늑대인간 특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나는 나름 진지하게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와, 놀이공원. 나도 드디어 친구와 가 보는 건가? 혼자서 안 돌아다니고, 누구와 같이 놀이 기구를…….”
하지만 이민아는 내 말을 안 듣고 있었다.
마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그저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하루 정도는 상관없으려나.”
나는 옅게 미소를 지은 채, 이민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원래는 순수히 이민아의 각성을 위해 놀이공원에 갈 생각이었다.
근데 이민아가 저렇게 행복한 모습을 보이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동시에 옛날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박유진. 내 인생은 대체 뭐였을까? 나는 내가 원하는 거 하나도 못 했는데, 대체 왜 지금껏 살아온 걸까?’
‘이민아 씨, 진정해요. 그 칼 내리고, 일단 진정하죠.’
‘모르겠어. 지금까지, 뭘 위해 이렇게까지…….’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던 이민아.
회귀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녀의 모습.
지금 내 앞에서 행복하게 미소 짓는 이민아와 여러모로 대조되었다.
‘그래, 하루 정도는 상관없겠지.’
이민아가 불행한 모습은 이미 질리도록 많이 봤었다.
그러니 이번 인생 2회차에서는,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좀 많이 봤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