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와, 우와와. 야, 나 아직도 살 떨려.”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직후.
이민아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소감을 내게 말했다.
“나 저렇게 빠르게 떨어진 적은 처음이야. 헌터 일들을 하면서도 저렇게 빨리 떨어진 적이 없었는데.”
“잘됐네. 앞으로 높은 곳에서 떨어질 일 많을 텐데, 예방 주사 맞은 셈이 됐구먼.”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에게 대꾸했다.
“아무튼, 재밌었냐?”
“응, 재밌었어.”
이민아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탔어도 재밌을 거 같은데, 너랑 같이 타니까 더 재밌었어.”
“그래? 나랑 탄다고 더 재밌었을 이유가 있나? 내가 비명 지른 것도 아니고, 반응이 그냥저냥이었을…….”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이민아는 나를 올려다보며 더 크게 미소를 지었다.
“너랑, 그러니까 친구와 함께해서 재밌었어. 내가 하고 싶던 일들 중 하나가 친구와 놀이공원에서 노는 거였는데, 덕분에 그 소원 이루었네.”
“참 소박한 소원이네. 근데 나 같은 친구로도 괜찮은 거냐? 내 성격은 꽤 X랄 맞아서 좋은 친구라고 하기에는 영…….”
“너 정도면 충분해, 새끼야.”
이민아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좋은 친구니까.”
“…뭐, 좋게 봐줘서 고맙다.”
“오호, 야. 너 방금 대답 한 박자 늦은 거, 혹시 그거 쑥스러워한 거야? 크큭, 네가? 안 어울리게?”
“시끄러워, 인마.”
“아악! 야, 내 머리 왜 때려?!”
“네가 하도 나대서 때린 거다, 왜?”
“야, 이 새끼야. 사람 머리를 함부로…….”
그렇게 나는 이민아와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며 롤러코스터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나오자마자, 이민아가 바로 입을 열었다.
“박유진, 괜찮다면 다음에 뭘 탈지도 내가 정해도 될까? 나 오늘 여기서 해 보고 싶은 것들이…….”
“뭘 하기 전에.”
“으, 으응?”
“머리부터 깔끔히 해라.”
이민아의 헝클어진 머리에 양손을 가져가자, 이민아는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민아의 갈색 머리카락을 빠르게 정리해 줬다.
“어차피 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엉망이 되겠지만, 그래도 정리할 수 있을 때는 정리하자.”
“으, 으읏. 이, 이런 건 나 혼자서도 할 수 있거든? 내가 애냐?”
“하는 짓만 보면 애 맞지.”
“뭐? 야, 그리고 어차피 놀이 기구 타면 또 머리가 엉망이 될 텐데, 굳이 다시 정리를…….”
“정리된 편이 훨씬 예쁘거든.”
나는 이민아의 머리를 마저 정리하며 말했다.
“너도 오늘 기껏 꾸미고 나온 거잖아. 그럼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오래 예쁘게 있어야 하지 않겠냐?”
“따, 딱히 상관없거든?”
이민아는 고개를 홱 돌린 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그녀의 머리를 마저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리하면서 나는 문득 장난기가 발동해, 능글스럽게 웃으며 이민아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 아까 저거 탈 때 내 손 왜 잡았냐?”
“어어? 어어, 아, 안 잡았거든? 내가 네 손을 왜 잡아? 내가 애도 아니고?”
“진짜 안 잡았냐?”
“처, 처음 떨어질 때 잠깐 잡기는 했는데, 그, 그건 그냥 내가…….”
“쫄아서?”
“처, 처음 타는 거라 쫄릴 수밖에 없잖아!”
“나도 처음 탔는데?”
“그건 네, 네가, 어어…….”
“크큭. 됐고,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머리 정리 다 됐다.”
나는 갈색 단발머리를 손으로 적당히 빗겨 준 뒤, 이민아에게서 손을 뗐다.
“아, 고, 고마워.”
“고마운 거 알면 됐다.”
“그, 그렇기는… 치잇. 아, 아무튼! 박유진, 나 또 타고 싶은 놀이 기구 있는데, 그쪽으로 먼저 가도 괜찮지?”
“흐음, 잠시만.”
나는 손목시계를 슬쩍 확인했다.
약 10시 20분이 다 되어 가는 중이었다.
‘다음 늑대 테이밍 체험은… 내 기억이 맞는다면 10시 25분에 있었지.’
지금 동물원 쪽으로 가 봤자 시간 내에 못 갔다.
그리고 다음 체험은 11시 10분에 있었으니…….
“알겠다. 뭐 타러 가고 싶은데?”
놀이 기구를 하나 타고 와도 될 정도로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리고 나의 이런 대답에 이민아는 눈을 반짝였다.
“이거! 이거 타 보고 싶어.”
“자이로드롭? 이걸 타고 싶다고?”
“응. 안 될까?”
“뭐, 상관은 없지. 네가 타고 싶다면 가서…….”
“그럼 어서 가자!”
“윽? 야, 알겠으니까 끌고 가지는 마라.”
하지만 이민아는 내 말을 들은 채도 안 한 채 나를 더 빠르게 끌고 갔다.
이번에도 내 손을 꽉 잡은 채.
그것도 아플 정도로 꽉 잡은 채 말이다.
‘에휴, 그래도 뭐. 즐거워 보이니까 됐다.’
불행하기만 하던 이민아가 저렇게 웃어 주니 여러모로 보기 좋았다.
개인적으로 앞으로도 저 미소를 계속 봤으면 했다.
‘그리고 늑대들 만나러 가는 거야, 오늘 중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오늘 하루가 끝나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민아랑 아무리 신나게 놀이공원을 돌아다녀도, 분명 남는 시간이 있을 터였다.
* * *
남는 시간이 있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으음, 자이로드롭. 저것도 재밌었는데, 그래도 아까 탔던 롤러코스터가 더 재밌던 거 같아.”
“그러냐?”
이민아와 같이 자이로드롭을 타고 나온 후, 나는 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15분.’
자이로드롭의 줄이 생각보다 길었던 탓에,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나 있었다.
덕분에 11시 10분부터 시작하는 늑대 테이밍 체험을 또 놓치게 되었다.
‘다음 체험은 점심시간 이후에, 그러니까 1시 30분부터 있었지.’
결과적으로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약 두 시간 동안은 뭘 하면 시간을 때워야 할지 생각을…….
“야, 우리 이제 이거 타러 가자.”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이민아는 이미 계획이 다 있었으니 말이다.
“바이킹? 이거 타자는 거냐?”
“놀이공원 왔으면 당연히 타야지.”
“알았다. 그거 타고 점심이나 먹자.”
“응, 그러자. 그리고 점심 먹고, 우리 유령의 집 가자. 나 거기도 너랑 가 보고 싶었어.”
“으음, 그건 시간을 봐서…….”
이민아가 늑대들을 한 번쯤은 직접 만지게 하는 게 내 목적이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시간 배분을 잘 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야, X발. 나 유령의 집 다시는 안 가. X나 무서웠다고.’
‘그래, 덕분에 고막 터지는 줄 알았다. 아무튼 시간… 아, 또 놓쳤네.’
‘뭘 놓쳐? 그보다 여기 정원에 포토존 있다는데 거기 가 볼래?’
‘그래, 알았다.’
‘그리고 거기 갔다가 우리 아마존 드리프트라는 걸…….’
이후로 패턴이 한결같았다.
놀이 기구를 탄 후에 동물원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그때는 이미 체험이 끝난 후였다.
그래서 다음 체험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른 놀이 기구를 탔는데, 그러다 또 시간을 놓쳤다.
이러한 패턴이 계속 반복되었고, 덕분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새, 해가 지고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X 됐네.’
나는 벤치에 앉은 채,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간 조절을 완벽히 실패했어.’
뭐, 시간 조절 실패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세상일이 무조건 내 마음대로 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 그것보다 내 마음에 걸리는 게 따로 있었다.
‘내가 살다 살다 놀이공원 와서 즐길 줄은 몰랐네.’
말했듯, 내 원래 목적은 이민아의 각성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민아와 같이 이곳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진심으로 즐겼다.
기존의 목적을 잊을 정도로 말이다.
‘나 원래 이런 거에 큰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인데, 어쩌다가…….’
다른 설명 다 필요 없이, 나는 그냥 즐긴 게 맞았다.
이민아와 놀이 기구를 타는 것도 즐겼고, 같이 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즐겼다.
‘예전의 나는 이런 거에 전혀 즐거움을 못 느꼈을 텐데, 대체 왜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회귀하기 전의 나는 잘 웃지도 않던 사람이었다.
인생의 즐거움 자체가 없던 놈이 바로 나였는데, 내가 이런 단순한 놀이공원에서 어쩌다가 즐기는 지경이…….
“…아니. 생각해 보니까, 이제 인생의 즐거움이 있구나.”
나는 회귀했다.
그리고 유나를 다시 만났다.
그거 자체만으로 나라는 사람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야, 미안. 오래 기다렸지?”
먹을거리 사 오겠다는 이민아가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든 채 내 곁으로 돌아왔다.
“츄러스랑 커피랑 샌드위치랑 나초. 일단 가게에 남는 거 다 사 왔는데, 와. 이거 다 들고 오는 게 힘들더라.”
“그러게 같이 가 준다고 했잖아.”
“됐어, 새끼야. 너 오늘 하루 종일 나한테 맞춰 주느라 고생했는데, 이쯤은 해 줘야지.”
“뭐, 딱히 맞춰 주지는 않았는데?”
아까 말했듯, 나도 오늘 하루를 꽤 즐긴 편이었다.
‘나도 이 녀석 만나면서 많이 달라졌어.’
유나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컸다.
하지만 이민아 또한 회귀한 후의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보다 너 이 음식들 먹을 수는 있지? 네 식성으로 이런 과자나 빵들은…….”
“나도 먹을 수는 있어, 새끼야. 내가 날고기만 먹는 것도 아니고.”
“대체로 날고기 먹는 편 아니냐?”
“늑대인간 유전자 때문에 어쩔 수 없거든.”
이민아는 츄러스를 크게 한 입 베어 먹으며 말했다.
그런 후, 츄러스의 반대 부분을 내게 건넸다.
“먹을래?”
“됐어. 그건 너 혼자 먹어라.”
나는 커피 한 모금, 그리고 샌드위치 한 입을 먹었다.
그렇게 나와 이민아 사이에 잠시 동안의 침묵이 있었고.
“야, 이민아.”
“야, 박유진.”
나와 이민아는 동시에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이에 나는 피식 웃은 후, 빠르게 말을 이었다.
“너부터 말해. 나한테 할 말 있었냐?”
“별 것 아니고, 너 오늘 하루 재밌게 보냈는지 묻고 싶었거든.”
“그래? 나도 너에게 똑같은 거 물으려 했는데.”
“진짜?”
“응. 근데 뭐, 넌 딱 봐도 오늘 잘 즐긴 거 같더라.”
“헤헷. 그치. 나 오늘 제대로 즐기기는 했지.”
이민아는 웃으며 마를 바라봤다.
“친구와 같이 놀이공원 와서 놀고 싶었는데, 네 덕에 그 소원을 알차게 이뤘네.”
“즐겼으면 됐다.”
나는 피식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고, 이민아는 그런 나를 올려다봤다.
“그래서 너는? 너는 오늘 재밌게 놀았냐?”
“엄청 재밌게 놀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하루가 아니었을까 싶다.”
“에이. 그건 너무 과장 아니냐?”
“뭐, 그건 알아서 생각해라.”
나는 대충 대꾸했지만, 방금 한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회귀 전이나 회귀 후나.
지금까지의 인생 통틀어서 이렇게 재밌게 놀았던 날은 없었다.
회귀 전에는 부모를 일찍 잃고, 나는 유나를 위해 계속 일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유나를 잃고, 내 인생에서 그 후로 행복과 즐거움은 사라졌다.
그리고 회귀 후, 유나를 다시 만났던 그 순간의 행복은 결코 잊지 못했다.
그래, 행복 면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즐거움으로만 따졌을 때, 오늘 이민아와 보낸 이 하루가 제일 즐거웠다.
‘사람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원래 이민아의 각성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오늘 하루,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날들 중 하나가 되었다.
‘에휴, 뭐. 일단 충분히 즐길 만큼 즐겼으니, 해야 할 일을 조금이나마 해 보자.’
나는 샌드위치를 빠르게 먹어 치운 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민아. 놀이공원이 10시쯤 닫는다 했지?”
“그랬을걸?”
“그리고 지금이 8시니까, 응. 충분하네.”
“음? 뭐가?”
“나 너랑 가 보고 싶은 곳이 있거든. 그래서 그런데, 따라와 줄 거지?”
“당연한 걸 물어, 새끼야. 너 오늘 내가 가고 싶은 곳 다 가 줬는데, 내가 설마 같이 안 가겠냐?”
이민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어디 가려는 건데? 우리 어지간한 놀이 기구들은 다 타지 않았냐? 뭐, 회전목마는 안 탔는데, 네가 그런 쪽 감성이 있을 거라고는…….”
“회전목마 아니야, 인마. 그리고 애초에 놀이 기구 타러 가려는 게 아니야.”
“그래? 그럼 뭔데?”
“동물원 쪽에 가려고.”
“동물원? 갑자기?”
“정확히는, 거기에 있는 늑대들을 좀 보고 싶거든.”
늑대 테이밍 체험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대로 가기는 아쉬우니,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만 딱 해 보고 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