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늑대들? 늑대들은 갑자기 왜?”
“그러고 보니 내가 너랑 왜 놀이공원을 같이 오자고 했는지, 아직 말 안 했지?”
“내가 저번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같이 온 거 아니었냐?”
“뭐, 그 이유도 있었지.”
나는 커피를 마저 마시며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하나 더 있었어.”
사실 이 이유가 진짜 목적이었지만 말이다.
“오늘 여기 온 거 있지? 사실 노는 거 말고도, 너의 능력을 각성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어.”
“내 능력을 각성시킨다니?”
“늑대인간들이 강해지는 방법에 대해 들은 적 있어?”
“어어, 아니? 늑대인간에 대한 건 많이 알고 있는데, 늑대인간이 강해지는 방법은 들은 적이 없어.”
“그렇겠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이 시기는 늑대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은 많을 때였다.
지난 몇십 년 동안 과학자들이 늑대인간을 잡아다가 별 짓거리를 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더욱 강해지는 방법 같은 건, 이 당시에는 아직 연구가 안 됐지.’
그렇기에 이민아가 모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마 그동안 그냥 주변의 말대로 무식하게 훈련만 했을 테지만, 그건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다.
“늑대인간들이 강해지는 방법은 간단해. 그냥 자기 안에 내재된 늑대로서의 본능을 한 층씩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그게 무슨 뜻이야?”
“다른 뜻 없어. 그냥 말 그대로야.”
나는 이민아의 가슴을 가리켰다.
“지금 네 안에 어딘가에 늑대로서의 본능이 있어. 조금 풀어서 설명하자면, 그 늑대로서의 본능 있지? 그거 아마 다섯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을 거야.”
“다섯 개의 층?”
“그 층을 하나씩 받아들일 때마다 넌 더 강해질 거야.”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는, 이건 회귀하기 전에 이민아에게 직접 들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박유진. 내 안에는 무슨 짐승으로서의 본능이 있는 거 같아. 총 다섯 개의 층으로 두껍게 이루어져 있는 본능인데. 그걸 한 층씩 깰 때마다 내 능력이 조금씩 더 강해지더라.’
‘아, 그렇다면… 혹시 몇 달 전에 전투 중에 갑자기 송곳니가 자라나신 게…….’
‘맞아. 그때 처음으로 본능의 첫 번째 층을 깬 거지. 그리고 깨자마자 바로 신체적인 변화가 나타난 거고.’
‘그럼 오늘 이 꼬리가 나타난 건…….’
‘그렇지. 나는 오늘 그 두 번째 층까지 드디어… 끼엑?! 야, 박유진! 내 꼬리를 갑자기 왜 만지는 거야?!’
‘아, 그냥 신기해서 한 번 손댔는데, 느낌이 많이 이상했나요?’
‘깨애앵?! 야! 너 함부로 만지지 마.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 좀, 조금 그래!’
다섯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본능.
회귀하기 전, 이민아는 내게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녀는 네 번째 층까지 도달했었다.
‘다섯 번째 층은, 그때 이후로 무너지면서 못 도달했었지.’
과연 이번에는 이민아가 그 마지막 층에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사실 굳이 마지막 층까지 도달 안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 사실 마지막은커녕, 그냥 세 번째 층의 본능까지만 받아들여도 충분했다.
‘세 번째 층까지의 본능만 받아들여도 바로 A급이, 아니. 그냥 A급이 아니라 S급에 가까운 최강의 A급 헌터가 되겠지.’
실제로 회귀하기 전에 만났던 이민아가 그랬다.
본능의 세 번째 층까지 뚫자마자 A급 헌터들 중에서 최강이 되었고, 네 번째 층에 도달하자 거의 준 S급 헌터 취급을 받게 되었다.
‘X나게 세기는 했지.’
한국 최강의 탱커이자, 세계 최강의 늑대인간.
세 번째 층의 본능을 받아들인 이민아가 얻은 칭호들이었다.
그러니 이민아를 강하게 하려면 이 방법이 맞기는 한데.
‘문제는 시작이 어렵다는 거지.’
회귀하기 전의 이민아는 자기 안의 본능을 눈치채는 데 몇 년이 걸렸다.
거기다 첫 번째 층의 본능을 받아들이는 데 몇 달이나 더 걸렸고.
그래서 일단 오늘의 내 목표는 이민아가 자기 안의 본능을 알아차리게 하는 거였다.
그랬었는데.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솔직히 몇 년이나 걸려 알아차린 걸, 오늘 안에 할 수 있을지 마냥 확신이 안 섰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이런 건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나는 다시금 이민아에게 말했다.
“내 말 이해했냐?”
“그러니까 내 안에 늑대인간의 본능 같은 게 있다고?”
“응. 그것도 다섯 개 층으로 이루어진 본능 같은 거라 생각하면 편할 거다.”
“다섯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늑대인간으로서의 본능.”
이민아는 내가 한 말을 곱씹으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다.
“본능. 내 안의 또 다른 본능.”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이민아의 신체가 변했다.
그녀의 양손의 손톱들은 면도날처럼 길고 날카로워졌고, 그녀의 팔과 다리는 짐승의 것처럼 변했다.
거기다 그녀의 갈색 단발머리는 조금 더 길고 풍성해졌다.
‘뭐, 평소의 이민아네.’
늑대인간의 힘을 발휘했을 때의 평범한 이민아였다.
그것도 아직 전혀 각성하지 않은 상태인.
“으음, 으으으음. 음. 아으, 미안. 잘 모르겠다.”
눈을 감은 채 골똘히 생각하던 이민아는 결국 눈을 뜨며 한숨을 쉬었다.
“변신한 채로도 한 번 생각해 봤는데, 그런 게 뭔지 전혀 감이 안 잡히네.”
“애초에 그건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인마.”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했잖아. 이건 본능이라고. 생각하는 걸로 본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 그런 건가?”
“뭐, 사실 나도 몰라. 나는 늑대인간의 본능에 대해 듣기만 했지, 직접 겪은 적은 없거든.”
“…근데 너 이거 어디서 들은 거야? 늑대인간인 나도 이 본능인가 뭔가에 대해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늑대인간인 지인이 있었어. 그 사람에게 들은 거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회귀하기 전에 만났던 이민아도, 내 친한 지인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아아, 그래? 어어, 잠깐? 늑대인간이 지인이라고? 늑대인간이?”
“몇 년 전에 만났던 사람이야. 지금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것 또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로가 어떻게 됐는지, 나 또한 진짜 몰랐으니까.
뭐,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됐고, 이민아. 우리 동물원 쪽으로 가 볼, 아니. 가 보기 전에, 너 일단 그 변신부터 풀어라.”
나는 늑대인간의 것으로 변한 이민아의 팔다리를 가리켰다.
나야 이민아의 이런 모습이 익숙했지만, 주변의 시민들이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게, 아까 한 커플이 이민아의 변신한 모습을 보고 도망쳤었다.
“아아, 알겠어.”
이민아는 대답과 함께 바로 변신을 풀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미안. 보기 좀 그랬지?”
“갑자기 뭔 소리 하는 거냐?”
“그, 그렇잖아! 나 이거 변신한 건, 솔직히 보기 흉하고 조금 못생긴…….”
“특이하네. 네가 그런 걸 언제부터 신경 썼냐?”
“아니, 그냥 적어도 너에게는, 그, 그러니까 적어도 내 치, 친구에게는 겁을 주거나 불쾌감? 그런 거 주기 싫은…….”
“하나도 안 불쾌해, 이 녀석아.”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오히려 그 모습은 멋있다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 그래?”
“적어도 이런 걸로는 거짓말 안 해. 그러니까 자신감 가져.”
근데 참 이상하네.
이민아는 자신의 외형 때문에 이런 말을 할 녀석이 아니었다.
최근에 뭔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얘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감이 안 잡혔다.
“그, 멋있기만 한 거야? 호, 혹시 예쁘다거나 하는…….”
“음?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이 녀석이 어딘가 이상해진 건 확실했다.
하지만 이상해진 이유를 도저히 몰라 답답할 뿐이었다.
그래도 이건 당장 급해 보이는 문제가 아니었으니, 나는 이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아무튼 변신도 풀었으니, 슬슬 동물원 쪽으로 가 볼까?”
“응, 알겠어. 하지만 내가 늑대들을 본다고, 네가 말한 그 본능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까?”
“뭐, 밑져야 본전이지.”
회귀하기 전에 만났던 이민아.
그녀는 늑대인간과의 전투에서 자신 안에 내재된 본능을 처음 눈치챘다.
그리고 그 본능의 첫 번째 층을 뚫는 데 크게 공헌을 한 건 야생의 늑대였다.
‘잠깐. 생각해 보니까 그건 야생의 늑대였잖아. 그럼 동물원의 늑대들은 효과가…….’
…이건 내 실수였다.
늑대만 생각했지, 야생의 늑대라는 특징은 잊고 있었다.
그렇다면 동물원의 늑대를 만나는 건 헛된 일이 될 수도…….
‘아니야. 부정적인 생각은 말자. 이건 밑져야 본전이야. 내가 잃을 건 없어.’
그래, 밑져야 본전.
그리고 애초에 오늘 잃은 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얻기만 한 하루였다.
“음? 박유진? 왜 갑자기 날 보는 거야?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어. 너 여기에 치즈 소스 묻었다.”
나는 이민아의 볼에 묻은 치즈 소스를 손으로 닦으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민아.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 즐거웠다. 네 덕에 인생 최고로 즐거웠던 날을 보낼 수 있었어.”
“어, 어어? 뭐, 뭐야? 그 말은 갑자기 왜…….”
“그냥, 해 보고 싶었거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늑대의 본능 】
잠시 뒤.
나와 이민아는 놀이공원 내의 동물원으로 향했고, 거기서 어렵지 않게 늑대들을 찾을 수 있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네.”
“그러게 말이다.”
나는 대꾸를 하며 밤하늘을 슬쩍 올려다봤다.
그래도 오늘 보름달이 떠 준 덕에 밤하늘이 엄청 어둡지는 않았다.
“여기 늑대 있는 거 맞지?”
“뭐, 일단은 그렇다는데?”
나는 철 펜스 앞에 있는 안내문을 보며 말했다.
안내문, 그러니까 늑대들에 대한 긴 설명이 쓰인 안내문을 말이다.
‘흠, 저 안에 늑대들이 있는 건 확실하네.’
놀이공원의 조명들은 켜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펜스 뒤에 있는 늑대들의 모습은 잘 안 보였다.
안 보였지만, 그들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미약한 숨소리, 그리고 냄새 등으로 알 수 있었다.
‘근데 이민아가 늑대들과 직접 상호 작용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려나?’
역시 아까 낮에 늑대 테이밍 체험을 갔었어야…….
크르르르.
“음?”
“어, 박유진. 저거…….”
속으로 생각하던 도중, 낮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서 확인해 보니, 펜스 뒤에 늑대들이 우리 바로 앞까지 온 것이었다.
크르릉. 크르.
얇은 철제 펜스 하나 사이로, 우리는 늑대들과 마주했다.
아니, 우리가 마주한 게 아니었다.
“어어, 박유진? 얘네들, 나만 바라보는 거 같은데?”
“그러게.”
늑대들은 이민아 쪽에만 몰려 있었다.
펜스 안에 있던 일곱 마리의 늑대들 전부가 말이다.
“왜지? 박유진, 혹시 이것도 아까 말한 본능과 관련된…….”
크르르르.
“으, 으응?”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늑대.
그 늑대는 이민아를 올려다보며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어? 어어어?”
그걸 본 이민아는 몸을 낮춘 채, 펜스 안으로 손을 뻗었다.
마치 자기도 모르게 한 것처럼.
마치 본능적으로 한 것처럼 말이다.
“이민아, 괜찮은…….”
“본능. 아까 분명 늑대인간으로서의, 아니. 늑대로서의 본능을…….”
이민아는 무언가에 홀린 듯, 우두머리 늑대에게 손을 계속 뻗었다.
하지만 이민아의 손이 닿으려는 순간, 그 늑대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아.”
이에 이민아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변신을, 그러니까 양팔을 늑대인간의 것으로 바꾸었다.
크르르.
그러자 늑대는 다시 이민아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크르르르.
우두머리 늑대는 잠자코 이민아의 손길을 느꼈고, 뒤에 있던 다른 늑대들은 몸을 낮추었다.
이민아가 우두머리인 것처럼.
“어? 이건, 으읏, 아아아. 대체, 뭔…….”
“이민아. 무리하지는 마. 못 버티겠다 싶으면 바로 물러서.”
이민아의 눈빛은 지금 정상이 아니었다.
마치 본능에 집어삼켜진 자의 눈빛.
정확히 말하자면, 야생의 늑대인간들의 눈빛과 비슷했다.
이성을 완전히 잃은, 몬스터로 분류된 늑대인간들 말이다.
“으, 으윽.”
“…안 되겠다. 이민아, 너 일단 물러나고 머리를 식히는 편이…….”
“아, 알았어.”
아직 이성이 남아 있었는지, 이민아는 펜스 밖으로 손을 뺐다.
그리고 그녀는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는…….
아우우우우!
갑자기 우두머리 늑대가 크게 울음소리를 내었다.
갑자기 왜 저러는가 싶었는데, 그 순간.
“…크으으.”
이민아가 우두머리 늑대에게 반응했다.
늑대인간 모습으로 유지한 채, 이민아는 다시 한번 늑대 무리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