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64화 (64/240)

64화

“이민아. 잘 생각해.”

이민아는 여전히 내 쇄골 부근을 물고 있었고, 덕분에 꽤 큰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걸 참은 채, 최대한 침착하고 부드럽게 이민아에게 말했다.

“만약 네가 날 죽이면, 너는 그거 뒷감당할 자신 있냐?”

“…….”

“내가 네 첫 친구라며? 그 친구를 죽이면, 너는 앞으로 남은 인생 잘 살아갈 자신 있냐?”

회귀하기 전의 이민아도, 지금의 이민아같이 이성을 잃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그녀를 진정시켰고, 진정시키는 방법은 매번 비슷했다.

‘바로 키워드 몇 개를 말하는 거지.’

이성을 되찾기 위한 일종의 방아쇠.

그 키워드를 말하면 이민아는 천천히 이성을 되찾았다.

회귀하기 전의 만났던 이민아의 키워드는 내가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이민아의 그 키워드가 뭔지 확실치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민아를 진정시키는 데 애를 먹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친구. 내, 내 첫? 친구?”

이민아는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친구’라는 단어를 특히 더 많이 중얼거렸다.

‘일단 이번 이민아의 키워드는 친구인가 보네.’

회귀하기 전에 만났던 이민아는 키워드가 완전히 달랐, 으음.

아니,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다르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거나 그거나, 둘 다 나와 관련이 있던 거니 말이다.

뭐, 아무튼.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래. 그럼 나 네 친구 아니냐?”

“으, 으읏?”

“내 팔부터 놔 줘.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이민아는 내 쇄골에서 입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피가 하얀 상의에 튀었지만, 옷이야 나중에 다시 구하면 됐다.

“나, 나는 대체, 으, 너, 너는…….”

“괜찮아, 이민아. 전부 다 괜찮아.”

그러니까 나를 놔줘, 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내 팔 놓고, 내 위에서 내려와. 그럼 내가 전부 다 해결해 줄게.”

“으윽? 바, 박유진? 나, 나 왜…….”

이민아의 눈빛.

아까까지만 해도 본능에 완전히 집어삼켜진, 야생의 늑대인간과 똑같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민아의 눈빛이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 왜, 네 목을 물고…….”

“일단 내 팔 좀 놓고, 내 위에서 내려와.”

돌아왔다.

이민아의 이성이 돌아왔다.

완벽히 돌아온 건 아니었지만, 말이 통할 정도면 충분…….

크르르르!

크워워!

아, 맞다.

이민아에게만 집중하고 있던 탓에, 주변의 늑대들을 잠시 잊고 있었다.

크으으으.

이민아가 서서히 이성을 되찾자, 근처에 있던 늑대들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중 우두머리 늑대가 내 목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어, 이민아? 정신 차렸으면 좀 떨어져 줄래? 일단 저 늑대들부터…….”

여전히 내 위에 올라탄 채 내 양팔을 붙들고 있던 이민아.

뭔가 이대로라면 내 목이 저 늑대에게 한 번 물어뜯길 것만 같았다.

크와와와!

아니, 물어뜯길 것만 같은 게 아니라 그럴 예정이었다.

늑대는 내 목을 노리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양팔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급한 대로 전류라도 날려 보내는 편이…….

끼에에엥?!

…날릴 필요가 없었다.

이민아가 주먹을 휘둘러 늑대를 멀리 날려 보냈기 때문이다.

“다, 다 떨어져! 뒤지기 싫으면 꺼져!”

이민아는 내 팔을 놓고는, 이내 내 위에서 내려왔다.

“비켜! 꺼지라고!”

이민아는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며 늑대들을 위협했다.

이에 나머지 늑대들은 잠시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크르르르.

아까 이민아의 주먹을 맞고 날아간 우두머리 늑대.

그 늑대가 비틀거리며 이민아 앞에 다가왔다.

아우우우!

우두머리는 이민아를 향해 크게 울음소리를 내었다.

이에 이민아는 잠시 그 늑대를 바라보더니.

“크르. 아르르.”

그녀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뭐,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눈빛이 또 바뀌었어.’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왔던 이민아의 눈빛이 어째서인지 다시 본능에 집어삼켜져 있었다.

만약 이렇게 되면 내가 또 이민아를…….

“내 주인.”

“음?”

“건들지 마.”

뭐지?

이민아의 눈빛은 확실히 야생의 늑대인간과 똑같았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민아는 방금 인간의 언어로 늑대에게 말했다.

“내 주인 건들지 마. 이해했으면 꺼져.”

크르르르. 아우우우!

우두머리 늑대는 크게 울음소리를 내더니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 다른 늑대들과 함께 늑대 우리의 반대쪽으로 향했다.

“이민아. 괜찮냐?”

늑대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자, 나는 이민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만약 이민아가 또다시 본능에 먹힌 상태면…….

“그, 그게 네가 할 소리냐?!”

이민아는 대뜸 내게 소리쳤다.

짐승의 소리를 내는 게 아닌, 인간의 언어로 말이다.

‘음? 눈빛이?’

1초 전까지만 해도 야생 늑대인간의 눈빛이었는데, 지금은 평소 이민아의 눈빛이었다.

‘뭐지?’

이런 일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뭐가 어찌 됐든, 당장의 이민아는 이성을 되찾은 거 같았고, 그게 가장 중요했다.

“네 목! 이거 피 나고 있잖아! 그것도 엄청! 괜찮은 거지? 주, 죽는 거 아니지?”

“목이 아니라 쇄골이다, 인마. 그리고 걱정 마. 이 정도로는 안 죽어.”

나는 대충 대꾸하며 이민아의 상태를 살폈다.

일단 이성을 완전히 되찾은 건 확실했다.

그건 다행이었지만,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몇 개 있었다.

‘아까 내 주인을 건들지 말라고 한 거. 그리고 나를 나무에서 끌어 내렸을 때의 그 힘과 속도.’

특히 아까 이민아가 보인 힘과 속도는, 회귀하기 전에 봤던 전성기의 이민아와 비슷한 급이었다.

만약 이민아가 그 힘을 손에 넣은 거면, 앞으로 여러모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어떡해?! 이, 이거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야? 그보다 미안! 이거 내가 물어뜯은 거잖아. 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짜로 미안해! 내, 내가 병원비 같은 건 다 내 줄…….”

“알겠어, 인마. 그리고 그렇게까지 사과하지 마. 이건 어떻게 보면 내 잘못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어서 여기를 나가자. 여기 계속 있기도 애매하니까.”

나는 늑대 우리를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크게 파손된 시설은 없었지만, 그래도 난리를 친 덕에 조금 많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 관리자분을 찾아가서 상황 설명도 드리자. 우리가 이 X랄 하는 거 카메라에 다 찍혔을 텐데, 대충 미리 입 맞추고 설명하는 거다. 알겠지?”

“뭐라 설명하려고?”

“우리 헌터잖아. 그냥 뭐, 늑대 우리 안에 몬스터가 보였는데 우리의 착각이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되겠지.”

* * *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이 정도면 잘 마무리한 거겠지?”

“그렇지 않을까?”

“그치. 게다가 돈까지 쥐여 줬는데, 이쪽 직원들이 잘 마무리해 주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놀이공원의 동물원 담당 직원들을 만나고 오는 길.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에게 적절히 잘 설명했고, 이민아의 재력을 이용해 그들의 입막음까지 잘 했다.

그래서 뭐, 이제 어디 가서 우리가 동물원의 늑대 우리에서 이상한 짓을 했다는 소문은 안 퍼질 듯했다.

“하아아. 이제야 한숨 좀 돌리겠네.”

나는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으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잘 가다가 막판에 이렇게 될 줄이야.”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내 오른쪽 어깨.

그러니까 이민아에게 물렸던 곳을 아까 놀이공원 직원들에게서 받은 붕대로 마저 지혈했다.

“미안. 진짜로.”

내 곁에 와 앉은 이민아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목소리였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됐어.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내 잘못이 더 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민아가 이런 돌발 행동을 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측했어야 했는데, 그걸 내가 안 했으니 말이다.

‘아니, 못 한 것에 가깝지.’

사실 이민아가 이성을 잃는 거야,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이성을 잃고, 그대로 늑대 우리 안으로 뛰어들 것은 전혀 예상 못 했다.

해 봤자 조금 혼란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과격한 행동을 보일 줄은 몰랐다.

보름달의 영향이었을까?

“이, 이게 어떻게 네 잘못인데?”

그러나 이민아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 아니.

정확히는 살짝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혼자 늑대 우리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그 X랄 한 거잖아. 그리고 너는 나 때문에 다친 거고. 이게 전부 내 탓인데, 왜 네 잘못이 더 크다는…….”

“그걸 하자고 한 게 나였잖아.”

“음?”

“네 잘못은 없어, 이민아.”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걸 처음부터 하자고 한 사람은 나고, 너는 그 피해자야. 그러니까 사과해야 할 건 오히려 나지.”

“…하지만 다친 건 너잖아.”

이민아는 붕대로 지혈 중인 내 쇄골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나도,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갑자기 늑대들에게 손을 뻗다가, 내 몸이 나도 모르게, 그리고 나는 생각을, 아니. 그냥 내 몸이 이끌리는 대로. 그러다가 네가 보였고, 나, 나는 너를 죽이려고 했는…….”

“진정해, 인마. 결과적으로 나는 안 죽었고,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라고 나는 이민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 자주 있을 테니까, 익숙해져야 할 거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까 그 늑대 우리 안으로 뛰어들었을 때, 어떤 기분, 아니. 어떤 느낌이었냐?”

“…동물이 된 듯한 느낌이었어.”

이민아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입을 열었다.

“나도 이유는 모르겠어. 근데 그때는 진짜, 말 그대로 짐승이 된 느낌이었어. 늑대들의 언어가 이해가 되는 거 같았고, 너는, 너는 해치워야 할 사냥감으로 보였어. 생각이라는 게 안 들었고, 그냥 본능으로만 몸이…….”

“그게 늑대인간의 본능이야.”

“늑대인간의, 본능?”

“내가 몇 시간 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냐?”

“…응. 그 다섯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본능 말하는 거지?”

“맞아, 그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까는 네 안의 그 본능을 못 느꼈다면서? 지금은 어때? 느껴져?”

“으, 으응. 이제는 확실히 느껴져.”

이민아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가져가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는 못 느꼈는데, 지금은 확실해. 내 안에 무언가가, 두꺼운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어.”

“그게 네가 가진 늑대인간으로서의 본능이고, 그걸 한 층 깰 때마다 너는 더 강해질 거야.”

“그, 그래? 아니, 그보다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자주 있을 거라고 했잖아. 그럼 내가 또 이성을 잃고 이렇게 날뛰게 되는 거야?”

“본능을 더 받아들일수록, 이성을 잃는 경우가 더 많아지겠지.”

자주 봤기에 잘 알았다.

회귀하기 전의 이민아 또한 강해질수록 이성을 잃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 말이다.

“그럼 안 되는 거 아니야?! 내가 강해진다 해도,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다치면…….”

“그럴 일이 없도록 네 본능을 잘 컨트롤해야지. 그리고 이건 어쩔 수 없어. 강해지는 대가라 생각해야 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강해지는 거면…….”

“그리고 걱정 마.”

나는 이민아의 머리 위에 손을 가져갔고, 이에 이민아는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으, 응?”

“네가 또 날뛰어도 내가 오늘처럼 막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마음 편히 강해지는 것에만 집중해.”

이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이민아가 이성을 되찾는 키워드가 ‘친구’라는 걸 오늘 알아냈다.

게다가 나는 이성을 잃은 이민아를 전에 여러 번 진정시킨 적이 있다.

그렇기에 뭐, 이민아가 앞으로 더 날뛰어도 내가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을 듯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강해지는 게 맞을까?”

“이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지.”

“그런 거 같기는 한데. 그렇지만 네가 만약 나를 못 막으면? 내 주변에 네가 없다면? 아니, 나를 막는 과정에서 네가 죽으면…….”

“나는 그렇게 쉽게 안 죽어, 인마. 그리고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엉망이 된 이민아의 갈색 단발머리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

“네가 강해지는 과정에서 이성을 잃는 거 있지? 그렇게 자주 있지는 않을 거야. 해 봤자 한 달에 한 번? 아니, 네가 잘 컨트롤만 한다면 반년에 한 번밖에 안 이럴 거다.”

적어도 회귀하기 전의 이민아는 그랬다.

이성을 잃고 나를 크게 해친 뒤, 그녀는 늑대인간의 본능을 컨트롤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 결과, 그녀가 이성을 잃는 경우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회귀하기 전의 이민아가 그랬다면, 지금 내 눈앞의 이민아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내가 과연… 그걸 컨트롤할 수 있을까?”

“왜? 스스로를 못 믿겠어.”

“…응. 아까 본능에 먹혔던 그 느낌. 그거, 내가 다룰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아니었어. 내 힘에 내가 먹히던 느낌이었는데, 내가 그걸 과연 내 의지대로 다룰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그리고 해야만 네가 더 강해질 수 있을 거야.”

만약 그 본능을 전부 컨트롤만 한다면, 이민아는 A급, 아니.

S급도 충분히 노려 볼 만한 인재였다.

“강해지는 거, 그치. 나도 강해지고는 싶어. 근데 내가 과연 이 힘을 내 의지대로 제어할 수 있을지는…….”

“스스로를 못 믿겠으면, 나를 믿어 봐.”

“응?”

“나를 믿어 보라고, 인마. 너를 믿는 나를, 알겠어?”

이민아의 머리를 마저 정리한 후, 나는 그녀에게서 손을 뗐다.

그리고 이민아는 살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그녀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항상 믿고 있어, 새끼야. 너 아니면 내가 누구를 믿냐?”

“그렇게 말해 주니 참 고맙구먼.”

나 또한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고는 이내 장난스럽게 한 마디 덧붙였다.

“근데 요즘은 우정의 의미로 이빨 자국을 남기나 봐? 내 쇄골 쪽에 이거 자국이 분명 남을…….”

“미, 미, 미안! 워, 원한다면 내가 흉터를 없애 줄 힐러 분을…….”

“농담이야. 그리고 굳이 안 없애도 괜찮아.”

우정의 의미로 남긴 이빨 자국.

뭐, 이렇게 생각하니 굳이 안 없애도 될 듯싶었다.

“근데 그보다, 늑대인간에게 물린 건데 감염되지는 않겠지? 나도 늑대인간이 된다거나…….”

“나, 나는 그런 경우가 아니야! 나는 늑대인간이 된 순간부터 감염 바이러스를 제거한 채로…….”

“나도 알아, 인마. 그냥 해 본 소리야.”

나는 능글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민아에게 자주 물려 봐서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뭐, 됐고. 지금이… 9시 반쯤 됐네. 10시에 닫으니까 놀이공원 좀만 둘러보다가 천천히 나가자. 괜찮지?”

“뭘 물어, 새끼야.”

이민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올려다봤다.

“너랑 있는 거면 다 괜찮은데.”

“그럼 천천히 가 보자. 근데 가기 전에 말이야.”

나는 조금 진지한 투로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제대로 다시 할게. 너 오늘 하루 즐겁게 보냈는데, 내가 막판에 이런 걸 시켜서 마무리를…….”

“박유진, 그런 말 하지 마.”

이민아는 내 말을 끊으며, 그녀 또한 진지하게 말했다.

“나 오늘 즐거웠어. 너랑 같이 여기서 놀아서 진심으로, 그리고 엄청 즐거웠어.”

“그럼 다행이네.”

솔직히 아까부터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이민아는 친구와 놀이공원 오는 게 소원이었다는데, 그녀의 즐거운 날을 내가 망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저렇게 대답해 주니, 내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너는?”

“음?”

“너는 오늘 하루 어땠냐고, 새끼야? 즐거웠냐?”

이민아는 여유로운 척 미소를 지었지만, 그녀가 살짝 긴장하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치 내게 엄청난 걸 물어봤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에 미소 지으며, 나름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까 말했잖아, 인마. 오늘 하루,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최고 즐거웠던 날이라고.”

“지, 진짜?”

“어, 진짜로.”

회귀하기 전과 회귀한 이후.

그 두 인생 통틀어서, 오늘처럼 마음 편히 재밌게 즐긴 날은 없었다.

그래서 이런 하루를 내게 선물해 준 이민아가 조금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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