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주말에 이민아와 갔다 온 놀이공원.
그 놀이공원에서 이민아는 자기 안의 본능, 그러니까 늑대인간으로서의 본능을 인지했다.
그리고 그게 이민아에게 크게 다가온 듯했다.
‘나 혼자 한 번 싸워 볼래.’
훈련장에 들어서자마자 이민아가 내게 말했다.
‘나 주말 동안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들어. 그러니까 나 싸우는 거 한 번 봐주고 평가해 줘.’
이민아는 내게 자신 있게 말했고, 이에 나는 그러기로 했다.
그래서 이민아가 혼자 훈련용 골렘들을 박살 내는 과정을 지켜봤는데.
“으으음.”
그런 이민아의 자신감이 무색하게, 그녀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신체 능력부터 시작해 싸우는 방식까지 전부.
적어도 내 눈에는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바, 박유진? 나 어땠어? 이번에는 괜찮았어?”
“어어어…….”
이민아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살짝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이에 나는 턱을 매만지며 천천히 대답했다.
“그, 솔직히 말하자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은데?”
“…아. 그, 그렇구나.”
내 대답에 이민아는 바로 의기소침해졌다.
이에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너무 실망하지 마, 인마. 애초에 주말 사이에 네가 갑자기 강해질 리가 없잖아.”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고.”
이민아는 한숨을 쉬며, 근처의 의자 쪽으로 가 앉았다.
“뭔가 분명 괜찮은 느낌이었는데, 왜 달라진 게 없는 거지?”
“그 느낌이라는 게 정확히 뭐였는데?”
“그러니까 있잖아, 그, 그러니까 내가 주말에…….”
이민아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그런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옆으로 가 앉았다.
“이성 잃었을 때 강해졌던 거 말하는 거지?”
“어, 어떻게 알았어?”
“뻔하지, 뭐.”
‘달라졌다는 느낌.’
주말 동안 이민아가 스스로 달라졌다고 느낄 타이밍은 그때 말고 없었다.
‘사실상 나를 처음으로 제압했던 거라, 제대로 기억하진 못해도 느낌이 어렴풋이 남아 있겠지.’
압도적인 힘과 속도를 보였던 이민아.
그때 느낀 신체 능력 때문에, 이민아는 자신이 무언가 변했다고 느꼈을 터였다.
‘근데 그때만큼은 엄청나기는 했어.’
그때 느낀 엄청난 신체 능력이라면, 이민아가 스스로 강해졌다고 착각할 법도 했다.
“나를 나무에서 붙잡았을 때 어땠는지 기억나지?”
“응. 힘보다 평소보다 더 세진 거 같았고, 무엇보다 속도. 원래는 너보다 반응 속도가 느렸는데, 그때만큼은…….”
“나보다 확실히 빨랐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네가 뭔가 달라진 거라 생각한 거야?”
“그럴 수밖에 없잖아. 주말 동안 그런 일이 있었고, 나는 더 강해지는 경험을 했어. 그래서 당연히 뭔가 달라진 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달라진 점 있잖아.”
나는 이민아를 심장 쪽을 가리켰다.
“네 안에 또 다른 본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 않았냐?”
“그렇기는 한데…….”
“이민아, 주말에 느꼈던 그 힘은 네가 언젠가 갖게 될 거야.”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갈색 단발머리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천천히 해. 너는 나보다 강해질 거고, 이 나라에서도 정점을 찍을 거니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어, 너는 강해질 거야. 그러니까 당장 달라진 점 없다고 낙담하지 마, 알겠냐?”
“…….”
이민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그리 많지 않아.”
하지만, 이라고 이민아는 내 쪽으로 살짝 상체를 숙이며 말했다.
“너는 믿도록 할게. 그러니까 나를 믿는 너를 믿어 본다고.”
“뭐, 그래 주면 고맙지.”
나 또한 미소를 지은 채 이민아에게 대꾸했다.
이민아는 자존감이 낮고, 멘탈이 상당히 약한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전보다 자주 웃는 걸 보니, 그래도 멘탈이 많이 좋아졌다는 게 보였다.
“아무튼 기운 차려, 인마. 넌 내가 어떻게든 성장시켜 줄 테니까.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이쯤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훈련용 골렘들을 몇 마리 더 소환했다.
“지난주에 했던 거나 마저 하자.”
“응? 지난주에 했던 거라면…….”
“너 탱커 훈련시키는 거 말이야. 그거 지난주에 하다 말았잖아.”
“아아아, 그, 그거.”
탱커라는 말이 나오자, 이민아의 표정이 아주 약간이지만 어두워졌다.
“그, 그치. 나, 나 탱커니까, 그거 해, 해야지.”
“어째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솔직히 나 원래 딜러 쪽 지망생이었거든.”
이민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맞는 것보다는 공격하는 성향인데, 내 몸이 워낙 튼튼해서 어렸을 때부터 탱커라고…….”
“알아.”
“아, 안다고? 내가 이걸 너에게 말했었나?”
“…말했다 치자.”
사실 회귀하기 전에 만났던 이민아와 술 마실 당시.
그녀가 한 수많은 푸념 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튼. 네가 그런 성향인 줄 알고 너에게 맞춤 전략을 만들어 줬잖아.”
“그렇기는 한데, 그것도 결국에 내가 어그로 다 끌어야 하는…….”
“어그로 끄는 건 맞지. 하지만 일방적으로 맞아 가면서 어그로 끄는 형식이 아니야.”
나는 이민아에게 나름 진지하게 설명했다.
“네가 지난주에 잘못 이해한 거 같은데, 우리 팀에 힐러가 없는 시점에서 너나 나나 대미지를 입어선 안 돼. 애초에 우리 전략은 속전속결. 상대가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우리가 상대를 일방적으로 찍어 누르는 전략이야.”
“하지만 공격받지 않고 어그로를 끄는 방법은…….”
“적의 시선을 끄는 방법은 많아.”
나는 이민아의 손을 잡아, 그녀를 자리에서 일으켰다.
“다시 말하는 거지만, 우리는 전선이 없어. 우리의 필승법은 닥치고 돌진이야. 알겠지?”
“근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탱커면, 내가 배로 고생하는 거 아니야?”
“불만이면 지금이라도 팀원들 더 구해 오든가.”
“아아아, X나 너무하네.”
“그렇다고 내가 탱커를 할 수는 없잖아.”
나는 피식 웃으며 말한 후, 골렘들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우리와 키가 비슷한 일곱 마리의 골렘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튼, 지난주에 했던 거 기억하지? 그거 그대로 하는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선을 더 끌도록 노력해 봐. 쉽게 말하자면, 그냥 X나 위협적으로 보이도록 해 봐. 내 존재감이 아예 지워질 정도로.”
* * *
“헤엑, 헥. 아, X발, X나 힘드네. 야, 박유진. 이거 맞냐?”
“일단 지난주보다는 훨씬 좋아졌어.”
나는 박살 낸 골렘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탱커다운 모습이 보이네.”
“X발, 이게 탱커면 나 그냥 탱커 안 할래. 나 지금부터라도 딜러로 취직할래. 나 근접딜 잘 넣을 자신 있으니까.”
“그냥 탱커해, 인마. 딜러로 먹고살기 얼마나 힘든데. 게다가 너같이 튼튼한 애들은 탱커를 해야 국가에 이득이라고.”
“근데 X발, 이건 아니잖아.”
이민아는 근처의 벤치로 가, 그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냥 공격만 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공격하면서 어그로 끌고, 상대의 공격을 맞되 최대한 안 아프게 맞고. X발,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
“탱커들은 그 힘든 걸 다 해낸다. 게이트 토벌 때 탱커들이 괜히 귀족 취급받는 게 아니야.”
나는 이민아 쪽으로 다가가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 지금이야, 우리 둘이서 막장 팀을 짜서 그런 거지, 제대로 된 팀에서의 탱커는 이렇게 힘들지 않아.”
“그, 그렇겠지? 거기는 힐러들도 있고, 어그로 분담해줄 다른 탱커들도 있고…….”
“무엇보다 전선이 있지. 우리처럼 적의 품으로 냅다 뛰어드는 게 아니라고.”
“그럼 나 너랑 둘이서 팀 하다가 다른 팀으로 가면, 나 탱커계의 에이스 취급받으려나? 뭐, 그런 거 있잖아. 하드 난이도로 하다가 갑자기 노멀 난이도를 하면…….”
“몇 년 후면 모르겠지만, 당장은 아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네 탱킹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거든. 하지만 나랑 단둘이서 몇 년 동안 함께, 극한의 상황에서 탱커를 계속한다면. 그렇다면 진지하게 너는 대한민국 최상위 탱커가 될 법도 하지.”
근데 사실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됐다.
이민아의 잠재력만 다 끌어내도, 그녀는 대한민국 최고의 탱커가 될 터였으니 말이다.
“…박유진. 너 여기 와서 앉아 봐.”
이민아는 자신의 머리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별생각 없이, 이민아의 머리 곁으로 가 앉았다.
그러자 이민아는 살짝 몸을 일으키더니, 머리를 내 허벅지에 위에 올렸다.
“으음. 좋아. 편하네.”
“뭐하냐?”
“베개가 필요했거든. 그리고 좀 봐줘라. 나 방금 개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뭐, 상관없어. 근데 너 어째 얼굴이 좀 많이 빨간 거 같다. 괜찮냐?”
“바, 방금까지 막 싸워서 그런 거야! 다른 의미 없어!”
“하긴, 적어도 너는 그럴 만하겠다.”
나는 대충 대꾸하며, 엉망이 된 이민아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줬다.
이에 이민아는 살짝 몸을 떨었지만, 그녀는 딱히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있다가, 이내 이민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박유진. 아까 네가 우리 단둘이 몇 년 동안 같이 팀으로 한다는 거 말이야.”
“어, 그게 왜?”
“그, 진짜로 한번 해 볼래? 우리 둘이서 듀오로 토벌하고 다니는…….”
“당장은 좋은 선택이 아닐 거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E급과 B급 두 명에서 뭘 할 수 있겠냐?”
“여, 역시 그렇지?”
“하지만 우리 둘 다 A급이나 S급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응?”
“둘만으로 게이트 토벌할 실력이 되면, 우리 둘이서만 다녀도 큰 문제가 없을 테니까.”
실제로 회귀하기 전의 나와 이민아는 자주 그러고 다녔다.
“으음, 하기야. 그렇게 된다면, 우리 둘이서 다녀도 되겠네?”
“그렇지. 근데 너, 내가 그렇게 좋냐? 너 혹시 강해지는 목표를 나를 독차지하기 위해서라거나 그런…….”
“다, 닥쳐! 그런 거 저, 저, 절대 아니거든!”
“그냥 해 본 소리야, 인마. 뭐 이리 과격하게 반응하냐?”
“이, 이, 으으…….”
“크큭.”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이민아는 내 허벅지 위에 누운 채 내 시선을 피했다.
“뭐, 아무튼. 오늘이 월요일이고, 헌터 대전의 예선이 금요일이라고 했지?”
“응, 맞아.”
“예선이 그냥 몬스터 대충 잡는 거였고?”
“매년 그랬다고 하니까, 아마 맞을 거야.”
“흐으음, 그렇단 말이지.”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민아. 지난주에 말한 거 기억나지? 몬스터들과 싸우는 건 각자 피지컬로 찍어 누르는 거다.”
“응, 알고 있어. 팀전 때만 내가 탱커 역할 하면 되는 거지?”
“그치. 물론 몬스터 상대할 때도 네가 탱커 역할을 해 주면 좋겠지만, 금요일까지 너에게 그걸 바라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
위잉!
이민아와 이야기하던 중, 근처에 따로 놔뒀던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미안. 잠시만.”
나는 말을 끊으며 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누구에게 연락이 온 건가 싶었는데.
[박유진 씨. 요즘 잘 지내시죠?]
주하나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나는 주하나가 보낸 문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바로 주하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 안 가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 네, 여보세요? 박유진 씨?
“네, 주하나 씨. 저예요. 문자 보고 전화 드린 건데, 혹시 무슨 일 있나요?”
- 아, 별일 아니에요. 다른 게 아니라, 이번 여름에 고연대학교에서 헌터 대전이 열리는 거 아시죠?
“네, 알고 있죠.”
- 혹시 박유진 씨도 거기에 참가하시나요?
“네, 일단 졸업하려면 참가하는 게 필수라서요.”
- 아, 그럼 잘됐네요. 저도 그렇고, 제 길드도 그렇고 이번에…….
헌터 대전과 관련해 주하나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별생각 없이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그 순간.
“야, 박유진. 뭐냐?”
이민아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나를 바라, 아니.
그녀는 갑자기 나를 노려봤다.
“여자 목소리 같은데, 누구냐?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인데?”
이민아는 갑자기 차가워진 눈빛을 내게 보였다.
진짜 말 그대로 갑자기 말이다.
‘이 녀석은 또 왜 이래?’
갑작스러운 이민아의 반응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