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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67화 (67/240)

67화

* * *

‘뭐지?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인데?’

이민아는 박유진을, 아니.

정확히는 그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누구지?’

이민아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스스로도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불편했다.

박유진이 자기 앞에서 다른 여자와 통화하는 거 자체가 말이다.

“야, 박유진. 뭐냐?”

이민아는 최대한 태연히 말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목소리는 어느새 날이 서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박유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자 목소리 같은데, 누구냐?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인데?”

마음이 불편한 것뿐만 아니었다.

이민아는 이유 모를 짜증까지 느꼈다.

자신의 유일한 친구가, 자기 외의 사람과 어울려 다닌다는 걸 상상하니…….

‘…기분 나빠.’

박유진은 이러한 이민아의 반응에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민아는 박유진을 계속 바라봤다.

“누구냐고?”

“그냥 전에 알게 된 힐러 분이야.”

박유진은 이민아를 의문스럽게 보며 대꾸했다.

“근데 그보다, 내가 뭐 실수한 거 있어? 너 표정이 갑자기 살벌해진 거…….”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이민아는 고개를 홱 돌리며 대꾸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박유진을 슬쩍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

“그, 그 힐러분과, 혹시 많이 친하냐?”

“많이 친한 거는 모르겠지만, 안 친한 거는 아니지.”

“나, 나보다 더 친한 거 아, 아니지? 혹시 나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낸 사람…….”

“너보다 늦게 알게 된 분이야, 인마. 그보다 너 아까부터 왜 이런 걸 묻는 거냐?”

“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민아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 그리고 그,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그분 나보다 예쁘다거나, 네 취향이라거나 하는…….”

“아니, 이민아. 너 대체 왜 그런 걸 갑자기 묻는 거냐고?”

“그냥 궁금해서! 저, 절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하아아. 기다리고 있어. 통화 마저 하고 이야기하자.”

“어, 어어? 하, 하지만…….”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으, 응.”

단호한 박유진의 말에, 이민아는 소심하게 대답했다.

‘전에 알게 된 힐러. 그것도 여자.’

박유진은 그저 여자인 지인과 통화하는 것이었고, 이민아는 그걸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래, 머리로는 완벽히 이해했다.

‘X발, 나랑 있으면서 왜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는 거냐고? 내가 아무리 편해도 그래도 되는 거야?’

박유진이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거야,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민아의 감정들은 그걸 용납 못 했다.

‘친구라며. 친구면 나랑 있는 동안은 나에게만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놔두고, 내 앞에서 다른 여자와 통화하는 건 대체…….’

이민아는 박유진이 자신을 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기를 소중히 안 여기는 것만 같은…….

‘아니야. 아니야. 솔직히 이건 억지야. 내가 억지 부리는 건데.’

이민아는 머리를 흔들며 최대한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그냥 지인과 통화하는 거잖아. 그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이민아는 속으로 생각하며 박유진을 바라봤다.

박유진은 밝은 표정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통화하면서, 옅게 미소를, 거기다 피식피식 웃기까지 했다.

보통 자기에게만 보여 주던 그런 웃음들을 말이다.

‘X발, X같네.’

처음 느끼게 된 알 수 없는 감정.

그 때문에 이민아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웠고, 무엇보다 기분이 많이 언짢았다.

* * *

‘저 녀석은 또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이민아를 슬쩍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녀석이 기분 나빠할 만한 짓은 안 했다.

그냥 주하나에게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은 것뿐인데, 이민아는 갑자기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진짜 뭐지?’

나는 나름 이민아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이니 많이 당황스러웠다.

대체 뭐가 어떻게…….

- 박유진 씨? 무슨 일 있나요?

“아,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 혹시 바쁘신 거면, 제가 이따 다시 전화 드려도…….

“괜찮아요. 무슨 일이시죠?”

내 옆의 이민아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봐서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일단 통화를 계속했다.

- 그냥 별것 아니고요, 박유진 씨가 이번에 헌터 대전, 거기에 나가시는지 묻고 싶었거든요.

“네, 이번에 나가기는 하는데,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시는 거죠?”

- 다름이 아니라, 저희 길드에서 이번에 고연대학교에서 몇 명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주하나가 내게 한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그냥 카시아 길드에서 신입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다.

그리고…….

“주하나 씨가 고연대 의료팀에 지원하셨다고요?”

- 이번 헌터 대전 동안만 도와주기로 했어요. 그냥 단기 알바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그럼 방학 때 고연대에 오시겠네요?”

- 네, 헌터 대전 하는 일주일 동안만 있는 거지만요.

“그렇군요. 근데 갑자기 왜 이런 일을 하는…….”

- 아아, 그냥, 으음. 7월에는 길드에서 게이트 토벌을 안 하기로 했거든요.

“아, 그래요?”

- 네. 7월에는 신입들 영입에 집중하기로 해서, 토벌은 잠시 안 하기로 해서 제 시간이 널널해졌거든요.

하기야.

아마 카시아 길드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도 사정이 비슷할 거다.

그도 그럴 게, 고연대학교의 헌터학과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학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헌터 대전에서는 스카우트할 수 있는 수많은 원석들을 발굴해 낼 수 있을 터였다.

아마 대부분의 길드들이 좋은 신입을 얻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것이었다.

“그럼 헌터 대전 할 동안 주하나 씨를 학교에서 뵐 수 있겠네요.”

- 그렇죠. 아마 저는 의료실에 있을 테니까, 심심하면 저 보러 오셔도 괜찮아요.

“시간 되면 얼굴 뵈러 갈게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에 주하나도 작게 웃으며 말했다.

- 네, 오세요. 물론 다쳐서 오시지는 말고요, 알겠죠?

“노력해 볼게요. 그건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요.”

- 에이, 박유진 씨라면 그럴 일 없죠. 솔직히 박유진 씨, 헌터 대전의 우승 후보 중 한 분 아니에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저보다 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이민아부터 시작해,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닌 학생들이 많았다.

물론 내 오랜 연륜 덕에 그들과 어느 정도 비등한 싸움이 가능했지만 말이다.

- 그래도 박유진 씨 정도면 순위권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노력해 볼게요.”

- 네. 후훗. 그럼 저는 응원해 드릴게요. 제가 시간 되면 박유진 씨 싸우는 걸 직접 보면서 응원을…….

이후로는 진짜 별 이야기를 안 했다.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웃다가, 이내 간단히 인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스마트폰은 내리며 이민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언짢아 보이는 이민아를 향해 말이다.

“그래서, 왜 그러는 건데?”

“…몰라.”

“아니, 너 지금 기분 왜 나빠 보이는 거냐고? 혹시 내가 잘못한 거면 말을…….”

“모른다고.”

이민아는 내게서 고개를 홱 돌린 채,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누가 봐도 ‘나 삐졌어’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야, 이민아. 내가 너 놔두고 갑자기 전화해서 그런 거야? 근데 그런 거면 네가 어떤…….”

“됐어. 모른다고.”

이민아는 이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훈련장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훈련용 골렘들을 왕창 소환해 내더니.

쾅!

콰쾅!

쾅!

그녀는 냅다 그 골렘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뭔가 훈련을 한다거나 그런 느낌이 아니라, 화풀이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진짜 왜 저러는 거지?’

이민아가 저 정도로 화나거나 삐지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 그 이유가 뭔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

그래도 저 상태로 계속 놔두면, 이번 주 금요일에 있을 예선 준비를 제대로 못 할 터였다.

그러니 이민아의 기분을 풀어 줄 필요가 있었고,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야, 이민아. 잠깐만 와 봐.”

“…왜?”

이민아는 여전히 삐진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골렘 박살 내는 걸 멈추고, 내게 쪼르르 다가왔다.

“뭔데?”

“우리 이따 저녁에 어디 놀러 갈래?”

“…놀러 가자고?”

이민아는 내 시선을 피한 채,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꼬리가 움직이는 걸 나는 확실히 봤다.

“가고 싶은 곳 있어? 지난번에 너 근처 고깃집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근에 눈치챈 사실이지만, 이민아는 나와 단둘이 어디를 놀러 가는 걸 좋아했다.

그것도 엄청 좋아했다.

그래서 이 점을 이용하면 이민아의 삐짐을 풀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으, 으음. 무, 뭐. 네가 그렇게 나와 가고 싶다면, 조, 좋아. 이따 가자.”

정답이었다.

이민아 숨기려고 애쓰는 듯했지만, 그녀는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참 단순한 녀석이라니까.’

그래도 이민아의 이 점은 딱히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점이 이 녀석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나는 저녁에 이민아와 약속을 잡았고, 이후 우리는 예선을 대비한 훈련을 재개했다.

* * *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금요일.

헌터대전의 예선이 있는 날이었고.

“으아아아악!”

“야! 피해! 다들 왼쪽으로 빠져!”

“크억?!”

그 예선은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구나.”

나는 거대한 체육관의 구석에 자리 잡아, 예선의 진행을 지켜봤다.

헌터 대전에 참가할 수많은 팀들이 모인 체육관 안.

대기하는 팀들은 체육관의 관객석에 앉아 있었고, 예선을 치르는 팀은 체육관 중앙에 불려 갔다.

그리고 그 팀이 상대하는 올해의 몬스터는 다름 아닌.

크아아아아!

“으음, 드레이크. 저걸 상대해야 된다는 거지?”

키가 약 3m가 되는 드래곤.

다만 특징이라면 날개가 없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드레이크는 위협적인 외형과 달리 7급 위험도로, 약한 몬스터에 속했지만, 저놈은 아닌 듯했다.

“야, 박유진. 저 드레이크 말이야.”

내 옆에 앉아 있던 이민아가 입을 열었다.

“저거 평범한 드레이크 아니지? 뭔가 덩치나 힘으로 봤을 때…….”

“네 생각이 맞을 거다. 저놈, 알파 드레이크야.”

드레이크는 집단생활을 했고, 그중 우두머리가 알파 드레이크였다.

그리고 알파 드레이크는 5급 위험도로, 강한 축에 속하는 몬스터였다.

“근데 저걸 대체 어떻게 길들여서 여기에 데려온 거지? 아니, 그보다 알파 드레이크는 이 학교 학생들이 잡을만한 몬스터가 아닐 텐데?”

“아마 일단 학생들을 전부 한 번씩 떨어뜨릴 목적인 거 같아.”

이민아는 다른 팀들의 예선을 지켜보며 말했다.

“전에 들은 적 있거든. 일단 처음에는 떨어뜨리고, 더 약한 몬스터로 다시 예선을 진행한다더라.”

“왜 굳이 그런 번거로운 짓을…….”

“쉽게 말하자면, 한 번에 바로 통과한 팀에게는 아마 어드밴티지를 줄 거야.”

“어드밴티지?”

“아마 나중에 팀전에서 뭔가 유리한 걸 제공할걸? 상대 팀을 선택할 기회라든가, 부전승이라든가…….”

“아, 이해했다.”

그러니까 저 알파 드레이크를 못 잡아도, 이후에 예선을 통과할 기회가 또 있을 거다.

하지만 저 알파 드레이크를 첫 트라이에 바로 잡으면, 헌터 대전에서 무언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할 일은 명확했다.

“이민아.”

“응?”

“우리 팀전, 그거 많이 불리한 거 알지?”

“네가 뭔 말 하려는 지 알아. 조금이라도 유리해지기 위해, 저 알파 드레이크를 잡자는 거지?”

“잘 아네.”

나는 피식 웃으며, 체육관의 중앙을, 정확히는 한창 날뛰는 드레이크를 바라봤다.

그러나 여유로운 나와는 달리, 이민아는 살짝 긴장된 표정이었다.

“근데 우리 저거 잡을 수 있는 거 맞지? 솔직히 드레이크는 나도 조금 빡센…….”

“이민아. 몬스터를 상대할 때의 우리 계획, 뭐였지?”

“어어, 팀합이고 뭐고, 그냥 각자 피지컬로 찍어 누르자는…….”

“응, 그것만 기억해.”

나는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마음껏 날뛰도록 해. 넌 그것만 해도 1인분 이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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