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좋아! 8번 팀까지 종료! 의료팀! 8번 팀 부상자들 데리고 나가고. 자, 다음! 9번 팀 들어와라! 9번 팀은…….”
“네, 이희나 교수님. 저희 여깄어요.”
“응? 아, 이번에 너희들 차례구나.”
체육관 중앙에서 예선 현장을 통제하던 이희나 교수.
그녀는 나와 이민아를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네, 저희 차례네요. 그리고 교수님께서 예선을 감독하시는 건가요?”
“몬스터와 관련된 건 전부 내가 통제하거든.”
이희나는 바로 뒤에 묶여 있는 알파 드레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애초에 이런 일은 나 말고 할 사람이 없겠지만 말이야.”
“하긴, 교수님의 능력을 생각하면 당연하기는 한데, 솔직히 알파 드레이크까지 통제하실 거라고는 생각 못 했네요.”
“야, 박유진. 나 네 생각보다 훨씬 능력 있는 사람이거든?”
“네, 그런 거 같네요.”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고, 이에 이희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등을 두들겼다.
“아무튼, 드디어 너와 민아 차례네. 이번 헌터 대전 화제의 팀인 너희를 이제야 볼 수 있겠구먼.”
“네? 화제의 팀이라니요?”
“응? 몰랐어? 너와 민아, 단둘이서만 팀 짜서 헌터 대전 나가는 거 다 소문났거든. 그래서 SNS와 학교 커뮤니티에서 말 좀 나오던데, 아예 못 들은 거야?”
“네, 저는 그런 거 확인 안 해서…….”
나는 말끝은 흐리며 내 옆의 이민아를 슬쩍 바라봤다.
이에 이민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무언가 빠르게 검색했다.
“우리 둘이서 팀 짰다는 게 어쩌다 보니 소문이 났더라고.”
이민아는 자기의 스마트폰을 내게 보이며 말했다.
“그래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둘에 대한 글들이 많았고, 지금도 많이 올라오는 중이야.”
“…우리의 예선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건가?”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이민아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는 이민아의 스마트폰에 비친 내용들을 조금 더 자세히 확인했다.
‘뭐, 딱히 특별한 건 없네.’
그냥 둘이서 뭘 하겠냐, 이민아가 B급이어도 이건 불가능하다, 예선에서 바로 떨어질 거다, 라는 내용들의 글이 대부분.
게다가 나와 이민아가 예선을 시작하려고 하자, 우리의 예선과 관련된 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이거 우리 학교 커뮤니티 맞지?”
“응. 너도 하고 싶으면 그냥 앱 깔아서…….”
“됐어. 나 이런 거 안 하거든.”
나는 이민아의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아무튼 대충 알겠다. 그냥 우리 둘이서…….”
“너희 둘이서만 팀을 짜서 다들 놀랐지.”
이희나는 피식 웃은 채 입을 열었다.
“헌터 대전 역사상 두 명에서 팀을 짜는 건 처음이거든.”
“뭐, 그럴 만하죠.”
남들 다 여섯 명 이상으로 팀을 짜는데, 두 명에서 하는 건 여러모로 멍청한 짓이었으니까.
“그래서 말들이 많았어. 아무리 그래도 둘이서 헌터 대전을 나가는 건 미친 짓이다, 둘이서는 절대 예선을 통과 못 한다, 예선 통과해도 팀전에서 무조건 망한다.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었지.”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 법하죠.”
하지만, 이라고 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계획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저희 나름대로 준비했으니까요.”
“후훗,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뭐, 아무튼. 예선 시작해도 괜찮지?”
“전혀 문제없죠.”
나는 옅게 미소 지은 채 대꾸한 뒤, 이민아 쪽을 바라봤다.
“준비됐지?”
“각자 피지컬로?”
“응, 각자 피지컬로.”
나는 미소와 함께 대답해 준 뒤, 허리의 자바니아에 손을 가져갔다.
“바로 시작하는 건가요?”
“아니, 5분 정도 기다려야 할 거야. 알파 드레이크를 준비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하거든.”
이희나는 근처의 우리에서 날뛰는 드레이크를 슬쩍 바라본 뒤, 이내 나와 이민아를 다시금 바라봤다.
“그리고 참고로 말하는 거지만, 아직까지 저 알파 드레이크를 쓰러뜨린 팀은 없어. 만약 너희가 쓰러뜨린다면, 너희가 처음으로 예선을 확정 통과하는 거지.”
“교수님은 저희가 한 번에 예선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너희 하기 나름이겠지만, 솔직히 힘들 거다.”
이희나는 멋쩍게 웃으며 알파 드레이크를 다시 바라봤다.
“저 드레이크는 내가 길들인 녀석들 중에서도 최고라서 말이야.”
* * *
이희나와의 짧은 대화 이후, 나와 이민아는 체육관 중앙으로 가 전투를 준비했다.
‘그나저나 사람들이 참 많이도 왔네.’
나는 체육관 2층의 관객석을 둘러봤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헌터학과 학생들부터 시작해, 그냥 구경하러 온 일반 학생들까지.
의외로 많은 수였다.
‘최대한 관심 안 받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겠네.’
저 드레이크를 이기기 위해서는, 아마 나는 전력을 내야 할 터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 실력이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되고, 내 실력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더 등장할 수 있었다.
원래는 조금 더 실력을 키운 뒤에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나는…….
“박유진.”
“음? 어, 왜 그래? 뭔 일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시작하기 전에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갑자기?”
“이 대회 둘이서만 나오는 건 내 억지였는데, 들어줘서 고마워.”
“알면 열심히 싸우도록 해, 인마.”
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이민아 바로 앞에 다가가, 몸을 낮췄다.
“어? 어어?! 바, 박유진. 어, 얼굴이 가까운…….”
“그리고 나도 고마워, 이민아.”
“으, 응?”
“내 옆에서 웃으며 지내 줘서 고맙다고.”
내 기억 속의 이민아는 우울한 모습, 바닥에 처박힌 모습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민아는 행복한 모습들을 내게 많이 보여 줬다.
내가 전부터 바라던 대로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내 옆에서 웃어 줘, 알겠지?”
“으, 으응? 뭐, 웃는 거야 어렵지는 않은데, 이런 건 갑자기 왜…….”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이 예선도 웃으면서 한 번에 통과해 보자고.”
나는 허리의 자바니아를 꺼내 들며 말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해 줄게. 우리는 각자 피지컬로 몬스터를 때려잡을 거야. 특히 너는…….”
“나는 마음대로, 있는 힘껏 날뛰라고?”
“보이는 대로 박살 내면서 날뛰도록 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근데 그거 괜찮을까? 훈련장에서야 괜찮았는데, 실전에서 이러는 건…….”
“나 믿지?”
“너야 당연히 믿는데…….”
“그럼 나를 믿고 날뛰도록 해.”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이민아를 바라봤다.
이에 이민아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녀 또한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새끼야. 너 믿고, 나 앞뒤 안 가린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인마. 넌 내가 책임질 테니까.”
“으, 음? 나를 책임진다니?”
“아니, 또 왜?”
이민아가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하자, 나 또한 당황했다.
이 녀석이 또 왜 이러나 싶었지만.
“9번 팀! 대기하도록! 이제 시작한다!”
근처에서 들려온 이희나의 우렁찬 목소리 때문에 질문을 마저 못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알파 드레이크가 우리에서 풀려나 우리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크와와와!
“…야, 이민아.”
“응?”
“파이팅하자.”
이 말과 함께, 나는 먼저 알파 드레이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이번 헌터 대전에서 가장 화제인 팀으로 뽑으라면 열에 열은 박유진과 이민아.
단 두 명에서 이루어진 그 팀을 뽑을 것이었다.
‘확실히 말이 많이 나올 만했어.’
이희나는 체육관에 자리 잡은 채, 박유진과 이민아를 바라봤다.
헌터 대전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된, 나름의 역사가 있는 대회였다.
그리고 그 긴 역사 동안 단 두 명에서 팀을 구성해 참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이민아와 박유진. 저 둘이라면 예선은 어찌어찌 통과하겠다.’
B급 헌터 이민아, 그리고 E급 헌터지만 그 이민아를 이긴 박유진.
그 둘이면 예선쯤은 통과할 터였다.
‘하지만 한 번에 통과는 못 하겠지.’
이희나는 박유진과 이민아에게 다가가는 알파 드레이크를 바라봤다.
저 알파 드레이크는 이희나가 길들인 가장 강한 몬스터들 중 하나였다.
적어도 학생들 수준에서 잡을만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희나가 알파 드레이크를 준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 알파 드레이크를 때려잡는, 내가 미처 발견 못 한 학생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숨겨진 원석을 발견하는 게 그 이희나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희나는 아직까지 그 원석을 발견 못 했다.
‘올해도 특별한 학생은 딱히 없는 건가.’
이희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학생들 중에서 알파 드레이크를 이길 학생은 없으니, 그냥 2차 예선이나 준비를…….’
이희나는 알파 드레이크보다 약한 몬스터를 이번 예선을 위해 많이 준비해 뒀다.
이제 곧 그 몬스터로 2차 예선을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케에에엑!?
“음?”
알파 드레이크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것도 그냥 비명이 아닌, 고통이 담긴 비명이었다.
“와, 저거 뭐냐?”
“와이어 아니야? 저걸 저렇게 쓰네?”
“이야, 박유진이었지? 쟤 그냥 날아다니는데?”
관객석에서 수많은 감탄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희나 또한 눈앞의 광경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박유진이 와이어를 썼었나?’
박유진은 와이어를 이용해 현란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알파 드레이크에게 잡힐 듯하면서 안 잡히면서, 동시에 딱 필요한 공격들만 하고 뒤로 빠졌다.
전형적인 암살자 계열 헌터의 모습이었다.
키에에엑?!
그리고 박유진뿐만이 아니었다.
“야, 이 도마뱀 새끼야!”
늑대인간 폼으로 변한 이민아는 알파 드레이크를 끊임없이 공격했다.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며, 마치 짐승처럼 싸웠다.
케엑?!
정면에서 알파 드레이크를 몰아붙이는 이민아.
어딘가에서 자꾸 튀어나와, 급소에 조금씩 상처를 입히고 튀는 박유진.
그 두 헌터로 인해, 알파 드레이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평범한 전략이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민아를 정면에서 싸우게 해 어그로를 끌고, 박유진은 사각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어? 방금 뭐야?’
평범한 전략을 준비해 왔다고, 이희나는 방금까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이희나의 눈에 문득 들어온 게 하나 있었다.
‘이민아, 쟤 지금 그냥 막 싸우는 거 아니야? 파트너를 아예 고려 안 하는데?’
말 그대로였다.
이민아는 짐승처럼, 앞뒤 안 가리고 싸웠다.
그래서 박유진이 공격하려는 타이밍을 방해하거나, 박유진이 가려는 길을 막아서는 광경이 자주 보였다.
하지만 박유진은 태연했다.
이민아가 자신의 타이밍을 방해하면, 그는 자연스럽게 뒤로 빠져 다른 때를 노렸다.
그리고 길이 막히면,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반대쪽으로 가 공격했다.
“저거 뭐 하는 새끼야?”
이희나는 자기도 모르게 욕을 중얼거렸다.
연차가 쌓인 헌터들도 저렇게 못 싸운다는 걸, 이희나는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20살 맞는 건가?”
이희나는 이민아를 다시 바라봤다.
이민아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말 그대로 짐승처럼 싸웠다.
계획이고 뭐고 없이 말이다.
원래 같았으면 이런 팀원 때문에 몬스터 사냥이 망하기 일쑤였지만.
켁?!
이 팀은 그러지 않았다.
박유진이 이민아의 큰 실수부터 작은 실수까지 모두 받아 준 덕이었다.
쉽게 말해, 박유진의 존재 덕에 이민아는 자신의 전력을 100% 발휘할 수 있었다.
“아니, 이민아는 그렇다 쳐도 박유진. 쟤는 대체. 아니, E급 맞는 건가?”
단순히 박유진에게 보이는 연륜 때문이 아니었다.
박유진이 지금 보이는 힘과 속도, 그리고 틈틈이 날리는 전류의 강함까지.
그걸 전부 고려했을 때, 이희나의 눈에는 박유진이 더 이상 E급으로 안 보였다.
‘저건 최소 D급 아닌가? 나중에 다시 등급 검사나 받게 해야겠다.’
알파 드레이크를 일방적으로 유린하는 박유진과 이민아를 바라보며, 이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좋았어.’
나는 알파 드레이크의 목에 자바니아를 찔러 넣은 뒤, 바로 옆으로 빠졌다.
그러면서 전류를 날렸는데, 그 전압과 양이 전보다 확실히 늘었다.
회귀 후 약 한 달간 철저히 구르고, 최근 예선을 준비한다고 훈련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어제까지는 몰랐는데, 실전에서 이렇게 싸우니 체감이 되었다.
‘나 강해졌구나.’
파지지직―!
나는 잠시 숨을 돌리며 손에 전류를 불러냈다.
남들 눈에는 큰 차이가 없겠지만, 나는 확실히 느꼈다.
“D급이 됐나 보네.”
회귀하기 전에 겪어 봐서 잘 알았다.
이 힘과 이 강함.
나는 E급에서 한 단계 상승해, D급 헌터가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