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발판 】
박유진과 이민아가 한창 헌터대전 예선을 치르던 그 시각.
“길드장님. 이민아 양의 예선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예선? 아, 오늘이 예선이었지?”
‘용혈’ 길드 본사의 최상층.
그곳 길드장실에 있던 이진성은 방금 들어온 비서의 보고를 들었다.
“방금 시작한 건가?”
“예, 지금 막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거 실시간으로 볼 수 있지?”
“예. 제 지인에게 부탁해, 현장을 실시간을 송출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말과 함께, 이진성의 비서는 태블릿을 건넸다.
그 태블릿 화면에는 박유진과 이민아의 예선이 송출되고 있었다.
“고맙네. 그리고 혼자서 보고 싶으니, 잠시 나가 있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이진성의 비서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길드장실 밖으로 나갔다.
“크게 달라진 점은 없군.”
길드장실에 혼자 남게 된 이진성은, 딸의 전투를 보며 중얼거렸다.
‘작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그동안 훈련을 많이 시켰는데 성장이 없다니.’
송출되는 영상에 비친 이민아의 모습은, 분명 잘 싸우는 건 맞았다.
또래의 헌터들에 비해 잘 싸웠고, 같은 B급 헌터들과 비교해도 강했다.
하지만 이진성은 이런 이민아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B급 따위에 머무른다면 내 가족에서, 내 길드에서 힘을 전혀 못 쓸 거야.’
이진성은 이민아가 그녀의 언니와 오빠처럼 빠르게 A급이 되기를 원했으나, 이민아의 성장은 어느 순간부터 지체가 되었다.
그녀를 몰아붙였음에도 성과가 없었다.
‘후천적으로 능력을 부여한 거로는 이게 한계인가? 하긴, 무능력자에서 B급만 된 것도 대단한 거기는 하지.’
대단한 건 맞았다.
하지만 이진성의 기준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냥 내년부터 다른 일이나 시키는 게 맞겠군.”
들인 시간과 비용이 아까웠지만, 이진성은 이게 맞는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송출되는 영상에 다시금 집중했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박유진, 뭐지?”
드레이크, 아니.
알파 드레이크로 보이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이민아와 박유진.
처음 볼 때는 몰랐으나, 이진성은 그들의 전투 방식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민아는 막 싸우고 있어. 그냥 무계획적으로, 그냥 힘만 믿고 드레이크를 찍어 누르는 중이야.’
혼자 싸우는 거면 상관없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이러한 전투 방식 때문에 박유진이 다칠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저리 싸우는 거지?”
박유진은 이민아에게 완전히 맞춰 주고 있었다.
이민아가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있게끔 말이다.
‘내 길드에서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연차가 꽤 있는 헌터가 아닌 이상, 저렇게 남에게 맞춰 주는 전투 방식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박유진은 그걸 여유롭게 해내는 중이었다.
이진성은 어느새 자신의 딸보다 박유진을 더 유심히 보고 있었다.
‘재밌는 놈이라고는 했는데, 내 기대 이상이군.’
이진성은 그가 평범한 E급이 아니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전투를 보니, 박유진에 대한 이진성의 평가가 조금 더 올라갔다.
‘어쩌면 민아보다 잠재력이 클지도 모르겠어. 저 정도인데, 아직도 E급이라니.’
이진성은 A급, 아니, 많이 쳐서 B급 밑은 헌터로 취급을 안 했다.
그렇기에 E급에 불과한 박유진은 원래 이진성의 눈에도 안 들어올 존재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재밌는 친구를 데리고 왔네.”
이진성은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박유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진성의 눈에 들었다.
박유진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던 그 이진성에게 말이다.
* * *
“오케이! 거기까지! 예선 통과니까 전투 중지! 박유진! 칼 집어넣어! 저 드레이크 죽이면 큰일 나!”
“죽이면 안 되는 건가요?”
“당연하지! 저거 길들이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희나는 탈진해 쓰러진 알파 드레이크 곁으로 가며 외쳤다.
“아무튼! 9번 팀, 예선 통과! 그것도 처음으로! 두 사람, 축하한다!”
이희나는 체육관 내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로 크게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박수를 쳐 우리를 축하해 주는 사람들부터 시작해,
“와, 저게 말이 되냐? 겨우 두 명에서 성공했다고?”
“야, 돈 내놔. 역배 성공이다.”
“저거 혹시 뭐, 승부 조작이라거나 그런 거 아니면…….”
사람들은 관객석에서 웅성거렸다.
아무래도 나와 이민아, 단둘이서 예선을 한 번에 통과할 거라고 예상 못 한 듯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인 건 관객석 쪽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박유진! 우, 우리 해냈어! 예선을 한 번에 통과했어! 그것도 처음으로!”
이민아 또한 성공할 거라고 예상 못 한 듯했다.
“와, 저 알파 드레이크. 준 보스 몬스터 급으로 강하다는데, 내가 너랑 둘이서 저것을…….”
“수고했어, 인마.”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를 바라봤다.
‘엄청 좋아하네.’
아마 이민아는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불편했을 거다.
어쩌다 보니 단둘이서 하게 된 헌터 대전, 최근 성장의 성과가 없음, 거기다 자기를 증명하고픈 욕구까지.
이런 불안한 요소들이 이민아의 마음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을 터였는데, 예선을 한 번에 통과함으로 그걸 해소했다.
“박유진, 나 강해진 걸까? 너랑 같이 잡은 거는 맞는데, 저 알파 드레이크를 잡았을 정도면 나도 전보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당연히 성장했겠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박유진, 진짜 너 아니었으면…….”
“겨우 예선 통과한 거야, 인마. 누가 보면 우승한 줄 알겠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대회 끝나면 하고.”
나는 자바니아를 단검집에 집어넣은 후,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 일단 좀 쉬자.”
사실 바닥에 주저앉은 이유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였다.
전투가 끝나고 긴장이 풀리니까 몸에 근육들이…….
“어어?”
알고 보니 다리에만 힘이 풀린 게 아니었다.
앉아 있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나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아, X발.”
“바, 박유진?! 너 왜 이래? 괘, 괜찮아?!”
“어, 괜찮으니까 소리 지르지 마. 나 그냥 좀 지친 거니까 쉬기만 하면…….”
나는 놀란 이민아를 진정시키려고 했으나,
“뭐야? 야, 박유진! 너 왜 쓰러졌어! 야, 의료팀! 환자 발생! 어서 데리고 가!”
아니나 다를까, 이희나는 내 상태를 바로 눈치채 내 곁에 다가왔다.
“야, 괜찮아? 일단 머리 이쪽으로 눕히고, 자. 내 손가락 몇 개로 보여?”
“네 개인 거 아주 잘 보이고, 저 괜찮아요, 교수님. 그냥 지친 거니까 조금만 쉬면…….”
“쉴 거면 의료실 가서 쉬도록 해. 너 지금 탈진 증세가 조금 보이거든.”
“탈진 증세야 뭐, 그냥 물 좀 마시고 밖에서 바람 좀 쐬고 오면…….”
“잔말 말고 의료실 가도록 해.”
“…네.”
너무 단호하게 말했던 터라, 나는 그냥 이희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박유진, 괜찮은 거지? 죽는 거 아니지?”
“내가 이런 걸로 왜 죽어, 인마.”
“하지만 나 때문에…….”
“너 때문에 아니야. 그냥 내 체력이 저질이라서 그런 거지.”
C급만 됐어도 이런 걸로 안 쓰러졌을 테니 말이다.
‘솔직히 많이 빡세기는 했어.’
이민아가 마음껏 날뛰게끔 내가 판을 깔아 주고, 그와 동시에 나 또한 열심히 공격을 해야 했다.
이건 나라서 가능한 거지, 연배가 좀 있는 헌터들에게도 이건 꽤 난이도가 있는 일이었다.
‘그래, 경험이 있어 가능은 했지. 문제는 체력이지만.’
아직 내 체력은 내 경험을 못 따라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E급 신체는 여러모로 한계가…….
‘아, 그러고 보니 이제 E급이 아니겠구나.’
내가 달라졌다는 걸, 아까의 전투에서 느꼈으니까.
파지직—
나는 손끝에 전류를 불러냈다.
아주 미약한 전류가 발생했지만, 이에 나는 다시 확신할 수 있었다.
‘등급이 올랐어.’
이 느낌, 확실했다.
내 전류는 E급에서 D급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었다.
그리고 전류뿐만이 아니었다.
아까의 전투에서 내 전반적인 신체 능력 자체가 좋아졌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근데 신체 능력이 좋아져도 아까는 너무 힘들었어.’
D급 헌터가 되어도, 아까의 전투는 내게 벅찼다.
뭐, 애초에 C급 정도의 신체 능력은 되어야 버틸 수 있었을…….
“박유진, 약 사다 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병원에 입원을…….”
“오버하지 마, 인마.”
툭 건들면 울 것 같은 이민아를 바라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 * *
“간단한 탈진이네요. 치료 좀만 받고 푹 쉬면 금방 나아질 거예요.”
“아, 고마워요.”
고연대학교 의료실에 반강제로 이송된 후.
나는 거기서 치료를 받았는데, 나를 치료한 사람이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근데 주하나 씨께서 여기에 계실 거라고 생각 못 했네요.”
“그래요? 저 이번 헌터 대전 의료팀에 지원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본선 때 오실 줄 알았지, 예선부터 오실 줄은 몰랐거든요.”
나는 내게 치유 마법을 쓴 하얀 머리의 힐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주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오늘 의료팀 인원이 부족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저 보고 오늘 와 줄 수 있냐고 해서 온 거죠.”
“착하시네요. 저라면 귀찮아서 안 왔을 거 같은데.”
“에이, 착한 것까지는 아니에요.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게 제 일인데요.”
“그걸 착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가요?”
주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마를 바라봤고, 나 또한 이에 미소를 지었다.
근데 주하나의 눈빛이 어째 의미심장했다.
뭔가 나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네요. 아무튼, 치료 마저 해 드릴게요.”
“아, 네. 부탁드릴게요.”
“네, 그럼.”
주하나는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이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하나 씨? 왜 제 손을…….”
“이 편이 치료하기 더 편하거든요.”
주하나는 내 안으로 치유의 기운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환자와 신체 접촉을 하면 더 잘 치료되거든요.”
“…그런가요?”
뭐, 힐러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서 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김민호 씨는 요즘 잘 지내고 계신가요?”
“네, 길드장님은 잘 지내고 계시죠. 물론 트라우마가 조금 남은 거 같기는 한데,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어요.”
“다행이네요.”
“네. 그리고 그 이야기 나온 김에, 박유진 씨께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박유진 씨 아니었으면, 길드장님, 그리고 저희 길드까지 어떻게 됐을지 모르니까요.”
“주하나 씨 부탁이었는데, 당연히 최선을 다해 줬어야죠.”
“…제가 박유진 씨께 빚을 졌네요.”
“빚이라면 제가 있죠.”
나는 나를 치료해 주는 주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옛날 생각나네.’
회귀하기 전에도, 주하나는 나를 이렇게 치료해 줬다.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던, 죽어 가던 나를 유일하게 도와준 것이 그녀였으니 말이다.
“아니요. 빚은 저에게만 있죠. 아, 그리고.”
주하나는 내 오른쪽 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얼굴에도 상처가 났네요. 바로 치료해 드릴게요.”
“에이, 얼굴은 그냥 나중에 천천히…….”
“이런 건 바로 치료해야죠. 잘생긴 얼굴에 흉터 지면 안 되잖아요.”
“뭐, 잘생긴 줄은 모르겠는데, 흉터 남으면 골치 아프기는 하겠네요.”
“후훗. 에이. 박유진 씨 정도면 잘생긴 거죠.”
주하나는 한쪽 손으로 내 손을, 반대쪽 손으로 내 얼굴에 가져간 채였다.
그 상태로 치료받으며, 나는 주하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야, 박유진! 나 왔어! 괜찮은 거지?”
갑자기 의료실의 문이 열리며 뛰어 들어온 이민아.
그녀의 손에는 무언가가 많이 담긴 봉투가 들려 있었다.
“나 일단 건강에 좋다는 거 다 사 왔는데, 한 번 먹어 보고…….”
“목소리 좀 낮춰, 인마. 여기 우리만 있는 거 아니야.”
실제로 이 의료실에는 환자와 의료진들이 꽤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 괜찮아. 지금 주하나 씨께 잘 치료받고 있으니까.”
“…음?”
이민아는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나를 치료해 주고 있던 주하나를 바라봤다.
“주하나? 혹시, 지난번에 통화했다는 그 힐러?”
“응? 어, 그분 맞는데?”
“아, 혹시 이민아 양인가요?”
주하나는 여전히 내 손과 얼굴에 손을 갖다 댄 채, 이민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박유진 씨의 친구분이라고, 박유진 씨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네, 친구죠.”
주하나는 이민아에게 밝게 인사했지만, 이민아의 표정은 꽤 어두웠다.
“…….”
이민아는 들고 온 봉투를 내 침대 위에 툭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와,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니, 정확히는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어? 야, 이민아? 너 뭐 하는 거냐?”
“이민아 양? 치료 도중에 이러시면…….”
갑작스러운 이민아의 행동에 나와 주하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민아는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크르르르.”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민아는 주하나를 바라보며 늑대의 것과 비슷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건들지 마.”
“…하아아.”
이 녀석은 또 왜 이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