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크르르.”
“야, 이민아? 일단 이거 놓고 이야기 좀 하자.”
“…싫어.”
이민아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 너 안 뺏길 거야.”
“아니, 나 어디 안 간다니까?”
나는 이민아의 팔을 풀려고 했지만, 이 녀석의 힘이 워낙 세서 무리였다.
게다가 내가 그럴수록 이민아는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를 뒤에서 끌어안은 이민아를 슬쩍 바라봤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크게 달라진 점은 안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달라진 점들이 있었다.
‘동공이 확장되었고, 손톱이 자라나고 있네.’
정황상 이민아의 늑대인간 본능이 튀어나온 듯했다.
그러나 이거는 이거대로 의문이었다.
이민아의 그 본능은 어지간하면 튀어나오지 않았다.
근데 지금 어떠한 이유로 이러고 있는 건지 감이 안 잡혔다.
“이민아 양? 아직 박유진 씨의 치료가 안 끝났는데 이러시면…….”
주하나는 당황한 표정과 함께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민아는 나를 주하나에게서 더 멀리 떨어뜨렸다.
“건들지 마! 내 주인 빼앗지 말라고!”
이민아는 이빨을 드러내며 주하나를 위협했다.
이에 주하나는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바, 박유진 씨? 혹시 이민아 양이 그때 말한 늑대인간 유전자를 가졌다는…….”
“네, 그 녀석 맞아요.”
나는 대답하며, 내 허리를 잡은 이민아의 손을 떼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내 힘으로는 안 됐다.
“아마 늑대인간의 본능 때문에 이러는 거 같은데, 정확한 이유는 저도 모르겠네요.”
“그, 방금 이민아 양이 박유진 씨를 주인이라고 부른 거 같은데, 혹시 두 사람의 관계가…….”
“그냥 친구 사이에요. 저도 얘가 왜 그렇게 부른 건지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전부터 의문이기는 했다.
본능에 잡아먹힐 때마다 이민아는 나를 주인이라고 부르던데, 그 이유가 뭔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그럼 둘이 연인이라거나 그런 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렇군요.”
주하나는 이민아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다행, 이네요.”
“네? 다행이라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하나는 이민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근데 이민아를 바라보는 주하나의 눈빛도 뭔가 이상했다.
평소의 주하나는 밝고, 착하고, 자비로운 성녀?
그런 느낌을 풍겼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민아가 거슬린다는 듯이 바라봤다.
“크르.”
이에 이민아는 주하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하아. 이민아도 그렇고 주하나도 그렇고. 둘 다 왜 이러는 거야?’
원인 모를 상황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두 여자 모두 신경 쓰였지만, 나는 일단 이민아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주하나 씨. 괜찮다면 잠시 자리 좀 비워 줄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이민아와 단둘이서 잠깐 얘기를 해야 할 거 같아서요.”
“단둘이서요?”
내 요청에 주하나는 무언가 언짢은 듯이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을 뿐, 주하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결 다 하면 저 부르세요. 박유진 씨의 치료를 마저 해야 되거든요.”
“알겠어요. 그리고 혹시 커튼 좀 쳐 줄 수 있을까요?”
“네, 그럼 혹시라도 도움 필요하면 바로 저 부르세요.”
이 말과 함께, 주하나는 침대 근처의 커튼을 주위에 치며 나갔다.
그렇게 이민아와 단둘이 남게 되자, 나는 바로 이민아에게 말을 걸었다.
“이민아.”
“안 놔. 나 버리지 마. 나 내 주인을 잃을 생각이…….”
“너 안 버려. 내가 ‘친구’인 너를 왜 버리냐?”
“친구? 나 안 버려?”
“응, 안 버려, 인마.”
본능에 심하게 먹힌 거 아니었는지, 키워드를 말하자 이민아는 빠르게 이성을 되찾는 듯했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나는 내 친구를 절대 쉽게 안 버리니까.”
“친구. 나, 안 버려지는…….”
“응, 그러니까 진정해.”
나는 고개를 돌려 이민아를 슬쩍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고, 길어졌던 손톱도 다시 짧아지는 중이었다.
아마 이대로만 하면 이민아를 되돌리는 건 금방일 듯했다.
그렇게 나는 시간을 들여 이민아를 천천히 진정시켰고, 그렇게 몇 분 뒤.
“…어? 어어? 어?”
놀란 듯 주변을 둘러보는 이민아.
그녀는 내 예상보다 빠르게 이성을 회복했다.
“…아! 미, 미안!”
정신을 차린 이민아는 팔을 풀며 내게 떨어졌다.
“일부러 이런 게 아니라! 나, 나도 모르게…….”
“알아, 인마. 너 방금 눈 뒤집힌 거 봤거든.”
“나도 내가 왜 이성을 잃었는지…….”
“그보다 서 있지 말고 좀 앉아라.”
“엇?”
나는 내게서 멀어진 이민아를 붙잡아, 내 옆에 앉혔다.
이에 이민아의 얼굴이 확 붉어졌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약 1분 후.
“좀 진정됐냐?”
“으, 응.”
“다행이네. 여기서 네가 날뛰면 큰일 나거든.”
나는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이민아는 고개를 숙인 채 내 시선을 피했다.
이에 나는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만을 긁적였다.
“그나저나 너, 방금 왜 본능이 튀어나온 거냐?”
“…나도 몰라.”
“모른다고?”
“으, 응.”
이민아는 내 시선을 피한 채 작게 대꾸했다.
그리고 이에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너 아까 주하나 씨 보자마자 그런 반응을 보였는데, 혹시 이거 주하나 씨와 관련된…….”
“그, 그런 거 아니야!”
이민아는 목소리를 높인 채 내 말을 끊었다.
“그런 게 아니라, 아니. 그, 나,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도 완전히 내 본능을 이해 못 한…….”
횡설수설하는 이민아.
그녀의 모습에 나는 한 가지 확신했다.
‘무언가 숨기고 있네.’
이민아의 이런 모습을 자주 봤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뭘 숨기고 있는지 내심 궁금했지만, 나는 굳이 캐묻지 않을 생각이었다.
멘탈 안 좋은 녀석을 굳이 몰아넣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앞으로 자주 볼 텐데, 지내다 보면 천천히 알게 되겠지.’
나는 빠르게 결론을 내리며 이민아를 바라봤다.
갈색 단발머리의 여학생은 여전히 얼굴이 빨개진 채,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근데 아까는 진짜 왜 그런 걸까?’
궁금하기는 했다.
아까 이민아는 주하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본능이 튀어나왔는데, 이민아와 주하나 사이에 뭔가가 있는 건가 싶었다.
* * *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박유진 곁에 앉은 이민아는,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박유진을 끌어안고, 내, 내가 뭔 짓을 한 거야?’
이민아의 얼굴은 매우 빨개져 있었다.
박유진과 그녀는 분명 친구 사이인데, 이민아는 방금 친구로서의 그 선을 넘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정작 박유진은 이에 대해 아무 생각 없었지만 말이다.
‘진짜. 나 왜 그런 거야? 그냥 박유진이 아까 여자와 붙어 있는 걸 본 것뿐인데, 그걸 보자마자… 어? 잠깐 그 여자.’
박유진과 붙어 있던 여자, 그러니까 주하나.
그녀를 떠올리자, 복잡했던 이민아의 머리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기분 나빴어.’
주하나가 박유진의 손을 잡고, 심지어 그의 얼굴까지 만지고 있었다.
그 광경에 기분이 나빴고, 어쩌다 보니 늑대인간의 본능까지 튀어나온 것이었다.
‘내 친구인데. 왜 나랑은…….’
한 시간 전, 그러니까 예선을 통과했을 때까지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다른 여자가 박유진과 친하게 지내는 걸 본 이민아는 기분이 매우 나빠진 것이었다.
“주하나 씨, 해결됐으니까 들어오세요.”
그러나 박유진은 이런 이민아의 기분을 전혀 모르는지, 그는 별생각 없이 주하나를 다시 불렀다.
“다 됐나요?”
커튼을 거두며, 하얀 머리의 힐러는 다시 박유진 곁으로 갔다.
“네. 그리고 아까 제대로 소개를 못 했는데, 이민아. 이분이 주하나 씨. 내가 전에 알게 된 힐러 분.”
“…안녕하세요. 저는…….”
“네, 이민아 양. 누군지 알아요. 박유진 씨께 이야기 많이 들었거든요.”
주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 후, 다시금 박유진 쪽을 바라봤다.
“이민아 양과 이야기는 조금만 이따가 해도 될까요? 박유진 씨의 치료를 마저 끝내는 게 우선이라서요.”
“아, 네. 괘, 괜찮아요.”
“네, 그럼 박유진 씨. 이쪽으로…….”
주하나는 이 말과 함께 박유진의 손을 또다시 붙잡았다.
그리고 그걸 보자마자, 이민아는 속으로 알 수 없는 짜증을 느꼈다.
‘왜 치료하는데 손을 잡는 건데? 굳이 잡을 필요 없는 거 아니야?’
불만을 표출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거기다 이민아는 또다시 박유진을 끌어안을 뻔했다.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말이다.
‘아니. 나 왜 이래? 늑대인간 본능 때문인가? 으으, 그래도 내 주인을 지키는, 응? 주인? 나 왜 박유진을 주인이라 부르는 거지? 이것도 늑대인간 그것 때문인가? 아니, 나 대체 왜 이런…….’
짜증이 났고, 동시에 이민아는 이런 자신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 이민아는 박유진을 치료하던 주하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후훗.”
주하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사실 주하나는 아무 생각 없이, 눈이 마주친 어색함에 미소를 지은 것이었지만.
‘저, 저 여자가?’
이에 이민아는 또다시 이성을 잃을 뻔했다.
‘내 친구라고! 내 친구!’
이민아는 자신의 본능이 튀어나오는 걸 가까스로 억제했다.
물론 그녀는 내심 주하나를 밀쳐 내고 박유진을 다시 데려오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박유진에게 밉보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이민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박유진과 주하나를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는데.
“아, 박유진 씨. 여기 계셨군요.”
의료실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여자.
그 여자는 박유진 침대 쪽으로 오며 미소를 지었다.
“희나 언니에게 듣고 겨우 찾았네요.”
“하세리 헌터님?”
박유진은 당황한 표정으로 붉은 머리의 여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A급 헌터의 등장에 이민아 또한 당황했고.
‘X발.’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욕을 중얼거렸다.
* * *
“하세리 헌터님께서 여기는 왜…….”
“그야, 박유진 씨를 보러 온 거죠.”
붉은 머리의 헌터는 내 곁에 오며 미소를 지었다.
“예선 치르는 거 잘 봤어요. 이민아 양과 둘이서 알파 드레이크를 잡다니, 놀랍더라고요.”
“예선을 보신 건가요? 근데 예선에 외부인이 못 들어온다고 들었는데.”
“제가 희나 언니와 친하거든요. 그래서 슬쩍 부탁하고 몰래 구경했어요.”
하기야.
하세리와 이희나, 두 사람 꽤 친해 보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박유진 씨. 시간 괜찮다면 저랑 같이 헌터 협회에 가실래요? 제가 차로 태워다 드릴게요.”
“헌터 협회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헌터 협회는 제가 내년에 가기로…….”
“아, 그거와 상관없는 거예요.”
하세리는 피식 웃었다.
“헌터 협회에 가서 등급 검사를 다시 받아 보실 생각 없나요?”
“등급 검사라면… 눈치채셨나요?”
아까 예선 도중, 내가 더 이상 E급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하게 알아차렸다.
근데 미세한 차이라 보통은 못 알아차릴 터였는데.
“제가 괜히 A급에 오른 거 아니거든요.”
뭐, 하세리가 보통 여자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근데 박유진 씨도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게 놀랍네요. 보통은 자신의 등급이 올랐다는 걸 쉽게 눈치 못 채던데.”
“…제가 보통이 아닌가 보네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근데 말하던 중, 이민아가 내 코트 소매를 슬쩍 잡아당겼다.
“야, 박유진.”
“음? 왜?”
“그게 무슨 뜻이야? 등급이 올랐다니?”
“아, 이민아 양.”
내가 뭐라 입을 열기 전, 하세리가 먼저 이민아에게 말했다.
“다른 게 아니라, 박유진 씨가 더 이상 E급이 아닌 거 같아서요. 아까 예선에서 보여 준 신체 능력과 전류는 E급의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렇다는 건…….”
“네. 지금 박유진 씨가 D급으로 오른 거 같은데, 한 번 확실히 확인하고 싶네요.”
하세리는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내년부터 저와 일하기로 했으니, 이런 건 더더욱 확실히 해야 되거든요.”
“…내년부터 일한다니요?”
“아, 박유진 씨가 말 안 했나요? 제가 박유진 씨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박유진 씨가 내년부터 협회에 들어오기로…….”
“하세리 헌터님? 그건 굳이 말씀 안 하셔도….”
나는 하세리의 말을 재빨리 끊으려 했지만, 이미 이민아는 들을 걸 다 들은 후였다.
“박유진. 사실이야?”
“뭐, 사실이기는 한데, 이건 굳이 네가 신경 쓸…….”
“왜 내게 말 안 한 거야?”
화난 표정은 아니었다.
이민아는 화났다기보다는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친구인데, 내게 이런 것쯤은 말해도…….”
이민아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그 순간 하세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혹시 이민아 양도 저희와 같이 가실래요? 헌터 협회를 한 번 둘러보는 것도 꽤 좋은 경험이 될 거 같은데.”
“…….”
이민아는 하세리가 불편하다는 듯, 그리고 무언가 불만이 있다는 듯이 잠시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가도록 해요.”
“좋아요. 으음, 그럼.”
이민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후, 하세리는 주하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혹시 치료가 다 되는데 얼마나 걸릴 거 같나요?”
“…5분 내로 끝날 거 같네요.”
주하나 잠시 망설이다, 이내 태연히 대답했다.
근데 그녀도 이민아처럼 무언가 불편하다는 눈빛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하나는 대답하면서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오늘 단체로 내게 왜 이러는 거냐?’
예선을 통과했을 때만 해도 평범하게 기분 좋은 날일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