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 *
“여기에 손 가져가면 되는 거 맞죠?”
서울에 위치한 헌터 협회.
그리고 헌터 협회 본사 건물의 5층.
나는 거기에 있는 커다란 방 안에 있었다.
“네, 손대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알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세리 말에 대꾸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 앞의 커다란 구체를 바라봤다.
‘이것도 엄청 오랜만에 보네.’
유리로 이루어진 것만 같은 이 구체가 바로 헌터 전용 등급 검사기였다.
작동하는 원리는 나도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손을 올리고 작동시키면, 헌터의 등급을 몇 분 안에 알려 주는 물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고민수 작품이었나?’
원래 등급 검사는 되게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는데, 고민수, 아니.
‘바렐’이 만들었다는 이 구체 때문에 등급 검사가 몇십 배 쉬워졌다고 한다.
‘으음, 생각해 보니까 고민수 혼자 만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동 제작한 거였나? 기억이 애매하네.’
나는 잠시 턱을 매만지며 생각했으나, 이내 그 생각들을 머리에서 털어 냈다.
이 기계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기계가 알려 줄 나의 현재 등급이었다.
“그럼 바로 검사 시작할게요.”
“네. 근데 하세리 헌터님이 제 검사를 진행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왜요?”
“보통은 이런 검사기를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텐데, 왜 하세리 헌터님이 직접…….”
“아, 이건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거대한 구체에 달린 버튼들을 조작했다.
“박유진 씨 말대로 이 검사기를 관리하는 분들은 따로 계셔요. 그래서 원칙대로라면 등급 검사를 위해 협회에 미리 연락하고, 그분들과 함께 검사를 진행해야 해요.”
“그분들 없이, 하세리 헌터님이 하는 건…….”
“네, 제가 권력 남용 좀 했어요.”
하세리는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원칙대로 다 하면 시간이 너무 걸리거든요. 게다가 만약 등급이 올랐으면 또 이런저런 서류 작성하고 해야 되고요.”
“네, 그렇죠.”
나는 그 과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도 그럴 게, 회귀하기 전의 나는 E급에서 A급까지 올랐다.
등급이 네 번이나 오른 탓에, 그 망할 놈의 서류를 너무 많이 봤었다.
“그럼 하세리 헌터님이 검사하면, 그 과정을 다 넘길 수 있는 건가요?”
“네, 그렇죠. 물론 서류 작성 같은 건 하기는 해야 하지만, 제가 윗분들께 말만 잘하면 대부분 생략할 수 있을 거예요.”
“편의를 봐주셔서 고맙네요.”
솔직히 이건 많이 고마웠다.
그 X 같은 서류들을 대부분 생략한다는 게 생각보다 시간 절약이 되기 때문이다.
“고마워할 거 없어요. 사실 저도 그냥 오랜만에 이 검사기를 다루어 보고 싶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 검사기를 다룰 줄 아시나 봐요?”
“민수 아저씨와 지내면서 기계에 대해 많이 알게 됐어요.”
하세리는 익숙하게 검사기의 버튼들을 누르며 말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공학에 대해 많이 알게 됐더라고요.”
“하긴, 그럴 만도 하네요.”
“네, 그리고 그 이유 말고도.”
하세리는 내 쪽을 슬쩍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박유진 씨는 내년부터 저와 함께하실 분이잖아요. 그런 분이 등급이 올랐다는데, 축하의 의미로 직접 해 드려야죠.”
“아, 그런가요?”
축하의 의미가 많이 의문스러웠지만, 나는 그냥 말을 말았다.
이 누나가 기행을 펼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근데 참 곤란하네.’
하세리와는 적어도 내년까지 거리를 두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도 나를 찾아왔다.
‘이렇게 자주 만나면 하윤경의 눈에 들 텐데 말이야.’
뭐, 그래도 전에 비하자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내년 초부터 하세리와 같이 일하기로 했던지라, 하윤경에 대한 대비도 어느 정도 해 놨다.
‘하지만 하세리가 자꾸 나를 찾아오는 건 뭔가 불안하네.’
나야 상관없었지만, 혹시라도 유나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유나에게 혹시 모르니까 빨간 머리 아줌마를 조심하라고 말을…….
“아무튼. 이제 검사 바로 시작할게요. 준비됐죠?”
“당연하죠. 애초에 준비랄 것도 없는데요.”
“그쵸. 손만 올려놓으면 끝이니까.”
하세리는 이 말과 함께, 구체의 가장 상단에 있는 큰 버튼을 하나 눌렀다.
우우웅—
그러자 검사기는 빛을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잠시만 그러고 계세요. 검사는 곧 끝날 거예요.”
하세리는 이 말과 함께 검사기와 연결된 커다란 모니터 쪽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검사기에 손을 올려놓은 채, 그냥 멍하니 기다렸다.
그렇게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박유진 씨, 손 떼세요. 검사 결과 나왔어요.”
등급 검사기가 스스로 꺼지는 것과 동시에, 모니터 앞에 있던 하세리가 나를 불렀다.
“어떻게 됐나요?”
나는 검사기에서 손을 떼, 하세리에게 물었다.
이에 하세리는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축하드려요. 예상대로 D급으로 오르셨어요.”
“그렇군요.”
이미 예상하고 있던 터라,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D급 중에서 상위 98%. D급 중에서 그렇게 특출나지 않지만…….”
“E급에서 D급으로 올랐다는 게 중요한 거죠.”
“그렇죠. 등급 하나 올렸다는 것만 해도 기삿거리인데, 박유진 씨는 E급이셨죠.”
하세리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E급이 D급으로 오르는 건 흔치 않죠.”
“그렇기는 하죠.”
뭐, 정확히는 흔치 않은 거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E급에서 D급으로 올라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대부분의 E급들은 진작 헌터라는 진로를 버려 사례가 적은 것뿐이었다.
“협회장님께 이 사실을 전해 드려야겠네요.”
하세리는 근처에 있던 프린터에서 검사 결과를 출력했다.
“박유진 씨는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검사 결과를 제출하는 것 말고도 할 게 좀 있거든요.”
하세리는 나름 사무적으로 설명했다.
“등급이 안 올랐으면 모르겠는데, 등급이 올랐을 경우에는 거쳐야 할 절차들이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최대한 생략해 드릴 거지만, 그래도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천천히 하세요. 어차피 오늘 시간 많거든요.”
“후훗. 30분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그동안 협회 둘러보셔도 괜찮으니, 심심하면 나갔다 오세요.”
“알겠어요.”
“네, 그럼 저는 갔다 올게요.”
이 말과 함께 하세리는 등급 검사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커다란 방에 혼자 남게 된 나는, 아니.
혼자 남은 건 아니었다.
“미안, 이민아. 오래 기다렸지.”
“…딱히.”
내가 하세리와 등급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이민아는 검사실 구석의 의자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이 타이밍에 이민아를 놀리며 장난을 쳤을 터였는데.
‘얘는 또 왜 삐진 거야?’
이민아는 누가 봐도 서운한 표정을 지은 채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아까 고연대 의료실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 상태였다.
‘멘탈이 약한 녀석이라 어쩔 수 없나?’
이 녀석을 내 든든한, 한국 최강의 탱커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이 녀석의 멘탈은 내가 관리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아.”
“응?”
“나 좀 따라와 봐.”
* * *
“우, 우와.”
“어때? 경치 좋지?”
“으, 응. 예쁘네.”
이민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민아를 데려간 곳은 헌터 협회의 옥상.
정확히는 옥상에 만들어진 정원이었다.
“예쁠 수밖에 없을 거다. 돈이 넘쳐 나는 게 헌터 협회인데, 이런 데 예산을 꽤 썼을 테니까.”
“…너 협회를 전에도 자주 왔나 봐? 이런 곳도 알고.”
“뭐, 몇 번 오기는 했지.”
사실 몇 번이 아니라 엄청 들락날락했었다.
회귀하기 전, 나는 협회에서 꽤 중요한 자원이라 협회장이 나를 자주 불렀다.
그래서 협회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쯤은 잘 알고 있었다.
뭐, 아무튼.
“됐고, 이쪽으로 와 봐. 좋은 거 보여 줄게.”
“으, 응? 바, 박유진? 내 손…….”
“어서.”
나는 이민아의 손을 잡아, 그녀를 옥상 난간 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한강이 아주 잘 보이는 서울의 풍경을 보여 줬다.
“어때?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경치 중 하나야.”
“오오… 멋있다.”
한강과 서울 도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회귀하기 전부터 내가 좋아하던 경치였고, 이민아 또한 꽤 마음에 든 듯했다.
“기분 안 좋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여기 자주 왔어. 오면 속이 뚫리는 느낌이거든. 뭐, 그래서 너를 지금 여기에 데려온 거지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아까 학교에서부터 기분 계속 안 좋아 보였거든.”
나는 이민아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서운한 거 있으면 지금 말해. 괜히 속으로 앓지 말고.”
“으, 응?! 그, 그런 거 아니야! 나, 나 너에게 서운한 거는…….”
“너에게 화 안 낼 거고, 절교한다든가 싶은 말도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어서 말해 줘.”
사실 이민아가 내게 뭐가 서운했는지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민아가 그걸 직접 말했으면 했다.
그편이 이민아의 멘탈 케어에 더 도움이 될 터였으니 말이다.
“…너 D급으로 오른 거.”
이민아는 망설이다,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선을 치르면서 오른 거야?”
“정확히 언제 올랐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걸 눈치챈 거는 예선 도중이었지.”
“그럼 왜 내게 바로 말 안 한 거야? 친구인 내게 이런 소식은 제일 먼저 공유를…….”
“말할 틈이 없었잖아, 인마. 예선 끝나자마자 나 쓰러지고 실려 갔는데, 말하고 싶어도 못 말한 거지.”
“…그치. 맞아. 이건 내가 봐도 좀 억지다.”
이민아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그럼 내년에 하세리 헌터님과 협회에서 일한다는 건? 그건 어떻게 된 일이야?”
“일이 좀 있었고, 어쩌다 보니 하세리 헌터님께 빚 하나를 지게 됐었어. 그래서 그걸 갚기 위해 내년부터 협회에서…….”
“왜 내게 말 안 했어?”
이민아는 상처받았다는 목소리였다.
“이건 내게 말해 줄 법도 했잖아. 근데 왜…….”
“안 말해도 되는 줄 알았거든. 애초에 이건 딱히 중요한 게 아니잖아.”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이민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이게 왜 안 중요한데? 너 내년부터 협회에 가면 학교 그만두는 거 아니야? 그럼 나를 더 이상 못 만나는…….”
“이민아. 학교 안 다닌다고 너를 못 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잖아. 그럼 너는 내게서 멀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냥 나에 대한 건 잊고…….”
“이민아. 진정하고 들어 봐.”
나는 이민아를 진정시키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일단 나는 학교 그만두지 않을 거야. 하세리 헌터님이 나 협회에 일하면서 학교 다녀도 된다고 하셨거든.”
“하지만 결국 나랑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잖아. 그럼 나는 또 혼자서…….”
“나 너 안 버릴 거야, 이민아. 내 제일 친한 친구인데, 내가 널 어떻게 버리냐?”
“…진짜로?”
“이런 걸로는 거짓말 안 해.”
나는 나름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는지, 이민아는 전보다 한결 편해진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조금 삐진 듯한 분위기였다.
“흥. 근데 너 진짜 웃긴 거 아냐? 지난번에 하세리 헌터님이 우리 영입할 때, 너는 졸업하고 가겠다고 했잖아. 근데 나는 내버려 두고 너 혼자 이러는 건 대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 네가 이해 좀 해 줘. 그리고 나는 몰라도, 너는 졸업 후에 협회에 들어오는 게 맞아. 그때도 말했지만, 너는 일단 너만의 성장 방식을 혼자서 찾아야 되거든.”
“그렇다면야 뭐……. 하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나는 또 혼자 학교 다니고, 혼자 밥 먹으면서 다니고 싶지는…….”
“그럼 새로운 친구 만들어. 나 말고도 친구는 얼마든지…….”
나는 별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새로운 친구’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민아의 눈빛이 돌변했다.
동공이 확장된, 야생 늑대인간의 것과 비슷한 눈이었다.
“박유진. 너 그런 소리 하지 마.”
이민아는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있어 친구는 너밖에 없어. 그러니까 다른 친구, 새로운 친구 같은 소리 하지 마. 절대로.”
“…알겠다.”
나는 일단 최대한 태연히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미치겠네.’
이민아의 유리 멘탈을 돌보기 위해, 나는 이 녀석이 행복할 수 있게끔 해 줬다.
물론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원래 이때쯤의 이민아는 멘탈이 털린 채 피폐해져 가고 있을 타이밍이었다.
내가 미래를 바꿔 준 덕에, 이민아의 멘탈은 건재했고, 행복도도 훨씬 높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에 대한 의존증이 많이 생긴 거 같네.’
아직 이민아의 심리가 어떤지 정확히는 몰라, 확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만약 진짜 나에 대한 의존증이라면, 앞으로 곤란한 일들이 많이 생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