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 * *
“오빠, 진짜야? 진짜로 D급으로 오른 거야?”
“어, 진짜야. 오늘 헌터 협회 가서 검사받고 왔어.”
헌터 협회 본사에서 등급 검사를 진행하고, 그 후 이런저런 서류 작성 등의 절차를 전부 거친 후.
늦은 저녁이 돼서야 집에 귀가한 나는, 거실 바닥에 앉은 채 내 여동생에게 대꾸했다.
“검사 결과에 D급이라고 확실하게 쓰여 있더라고.”
“우와.”
내 대답에 유나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우와, 오빠. 축하해. 이거 엄청 잘 된 거 아니야?”
“뭐, 그렇다 봐도 무방하지.”
등급이 오른 건 확실히 좋은 소식이 맞았으니 말이다.
뭐, 나야 등급을 여러 번 올려 본 기억이 있어 감흥이 없었지만, 유나에게는 다르게 다가간 듯했다.
“그럼 오빠 오늘부터 D급 헌터인 거야?”
“엄밀히 따지면 아직은 아니야. 이런저런 절차들이 있는데, 그걸 다 거쳐야 공식적으로 D급이 되거든. 하지만 뭐, 사실상 D급이 맞는 거지.”
“와아, 오빠. 축하해, 진심으로.”
“고맙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전생에서는 이런 걸 축하해 줄 유나가 없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내 등급이 오른 걸로 유나에게 축하받으니, 뭔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후우우, 뭐. 그건 그렇고.’
나는 등을 벽에 기댄 채,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뭔가 참 긴 하루였던 거 같네.’
시계를 슬쩍 보니, 어느새 오후 8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일들이 많았는데, 아직도 하루가 안 지났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헌터 대전 예선을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별일 없을 줄 알았는데, 하아아.’
사람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헌터 대전의 예선, 그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기는 했다.
솔직히 이민아와 단둘이서 몬스터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이민아가 기대 이상으로 잘 싸워 줬고, 나도 이민아를 잘 보조했지.’
그 결과 나와 이민아는 예선을 한 번에 바로 통과했다.
덕분에 본선에 있을 팀전에서 약간의 어드밴티지를 획득할 수 있었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쓸데없는 관심을 좀 많이 끌었지.’
나는 스마트폰을 켜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민아가 알려 준, 고연대학교의 학생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나는 몇 시간 전, 호기심에 앱을 깔아 대체 뭔 내용의 글들이 있는지 확인했는데.
‘나와 이민아에 대한 이야기가 좀 많네.’
집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예선의 알파 드레이크를 잡은 건 나와 이민아밖에 없었다고 한다.
헌터학과 학생들 여덟 명에서도 못 잡은 걸 나와 이민아는 단둘이 잡은 것이었다.
‘어디 보자. 이민아가 생각보다 세다는 글, 내가 E급 아닌 거 같다는 글, 나와 이민아가 우승 후보라는 글과 그에 대한 반박 글, 나와 이민아가 커플이라는, 음?’
나는 커뮤니티의 글들을 훑어보다가 눈을 깜박였다.
다른 게 아니라, 나와 이민아가 사귀는 거 같고, 미친놈과 미친년이 잘 만났다는 내용의 글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읽은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머리에 이상한 게 든 놈들이 많네. 대체 뭘 어떻게 봐야 나와 이민아가 커플이냐?’
이민아는 나 같은 더러운 암살자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했다.
회귀하기 전에 그녀의 고생하는 모습만 봐서 그런지, 이민아가 이번에는 좀 행복하기를 바랐다.
‘근데 이민아. 이 녀석 아까 보니까 정신이 온전하지 않던 거 같은데.’
일단 회귀하기 전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그때의 이민아는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사는, 사실상 빈 껍데기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정신 상태가 건강하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었다.
‘나에게 정신적으로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어.’
이민아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귄 적도 없고, 제대로 된 사랑도 받은 적이 없었을 터였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첫 친구가 되었다.
‘상황만 고려하면, 나에 대한 의존이 생길 법도 하네.’
이민아는 아까 협회의 옥상에서, 다시 혼자가 되기 두렵다는 식으로 말했다.
마치 지금의 행복을 잃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참 곤란하다니까.’
이민아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내가 그녀 곁에 있어 주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민아가 내게만 의존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민아가 새로운 친구를 만들었으면 좋겠지만, 지금의 이민아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직 나라는 친구만 곁에 두고 싶어 하던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하아. 일단 이민아와 관련된 건 천천히 생각하도록 하고.’
나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이민아와 있던 일 말고도.
‘주하나에게도 이따 연락해야겠네.’
아까 나를 치료해 줬는데,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 하고 헤어졌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간단한 연락 한 번 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하나 말고도, 하세리에게도 해야지.’
하세리와는 가능하면 연락을 안 하고자 했지만, 오늘만큼은 감사 인사를 하는 게 맞았다.
그도 그럴 게, 원래 등급 검사를 진행하고, 그 후 등급을 승급시키는 건 매우 복잡했다.
하지만 하세리 덕분에 그 복잡한 절차를 간단히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절차가 얼마나 귀찮은지 잘 아는 나는, 하세리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연락해야 할 사람들이 많네.’
주하나와 하세리, 거기다가…….
‘이 녀석에게도 슬슬 답장해야지.’
나는 내 스마트폰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박유진, 뭐 해?]
몇 분 전, 이민아에게서 온 문자.
이 문자에도 슬슬 답장을 해야 할 듯싶…….
“오빠. 근데 오빠 등급 오른 거 축하 파티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용돈 모아 놓은 거 있는데 지금 케이크라도…….”
“됐어. 그렇게까지 축하할 일은 아니야, 인마.”
“그래도, 오빠 이제 등급 올랐으니까 헌터로서, 어어? 잠깐만.”
유나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반응과 함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오빠. 혹시 등급이 올랐으니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헌터 일 하려는 거 아니지? 막 몬스터와 싸운다거나 하는…….”
“애초에 몬스터와 싸우는 게 헌터 일 아니냐?”
“아, 안 돼. 오빠가 만약에 몬스터와 싸우다 다치…….”
“그런 일 없을 거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지만, 유나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해? 만약 오빠가 다치거나 죽으면, 나는……. 아니, 그전에 굳이 헌터를 할 필요가 없잖아. 오빠는 그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일단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해 보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내 여동생을 달랬다.
다시 생각해도 참 많은 일이 있던 하루였다.
근데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이민아, 주하나, 하세리에게 연락 돌려야 되는데, 이제는 유나까지 달래 줘야 한다니.’
회귀하기 전에도 이렇게 일상적으로 바쁜 날은 없던 거 같은데 말이다.
그래도 뭐, 괜찮았다.
‘유나가 없는 거보다야, 이게 훨씬 낫지.’
나는 울상이 된 내 여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유나가 내 곁에 있어 주니, 없던 기운도 생기는 거 같았다.
* * *
“어우, 뻐근하네.”
지난주 금요일.
나는 이민아와 함께 예선을 한 번에 통과했고, 그날 나는 D급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된 오늘.
“야, 이민아. 우리 기말고사, 3주 정도 남았지?”
“응, 대충 그쯤 남았을 걸?”
“시험 일주일 전부터 공부해도 얼추 잘 나오겠지?”
“으음, 몰라. 왜냐하면 나는…….”
“그치. 너 공부한 적 없다 했지.”
오늘 수업을 모두 마친 후.
나와 이민아는 오늘도 고연대의 훈련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튼 이민아. 우리 이제 2주 동안 매일 훈련장에서 헌터 대전 본선을 준비할 거야. 괜찮지?”
“너랑 함께하는 거면 다 괜찮지.”
이민아는 뭔가 기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뭐 할 거야? 또 골렘 잡는 거? 아니면 따로 생각해 둔 거 있어?”
“생각해 둔 거라면, 하나 있기는 하지.”
“그래? 뭔데?”
“별 것 아니고, 앞으로 일주일만 각자 훈련하는 걸로 하자.”
“…각자 훈련이라니?”
이민아는 살짝 충격받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나와 같이하기 싫은…….”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인마.”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이민아의 말을 재빨리 끊었다.
“나 지난번에 D급으로 올랐잖아. 그래서 내 전반적인 능력을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거 같거든.”
“되돌아본다고?”
“앞으로 내 성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어.”
E급에서 D급으로 올랐다는 건, 나의 성장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성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할 생각이었다.
‘회귀하기 전과는 다르게 해야지.’
전생의 나는 지식도, 노하우도 없었다.
그래서 비효율적으로 성장했고, 그로 인해 한 등급씩 올라가는데 꽤 고생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지금의 나는 지식도, 노하우도 많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빠르고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장의 내가 해야 할 게 몇 가지 있었다.
“이민아, 앞으로 일주일 동안 나는 매일 이 훈련장에 와서 혼자 훈련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그동안은 혼자서 훈련하도록 해, 알겠지?”
“…딱 일주일이지? 그 이후로는 같이 할 거지?”
“응, 그러니까 지루하더라도 일주일만 참아 줘.”
“알겠어.”
이민아는 영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지하게 부탁하자, 이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저쪽에 가서 골렘들이나 상대하고 있을게. 나 필요하면 불러.”
“알겠다. 그럼 나는 반대쪽에 있을게. 너도 나 필요하면 불러라.”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훈련장의 구석 쪽으로 향했다.
이민아에게 내 전류가 안 튀었으면 해, 그녀에게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것이었다.
“시작해 보자.”
나는 구석 쪽에 자리 잡으며 천천히 심호흡했다.
회귀한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나만의 훈련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되게 오랜만에 하는 거 같은, 아니.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오랜만이기는 하구나.’
B급에 오른 이후, 이런 방식의 훈련은 안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D급.
그에 맞는 방식으로 해야 했다.
‘그렇다고 전생과 똑같은 방법을 써서는 안 돼.’
내가 최강의 일렉트로 마스터가 될 수 있었던 건, 전류를 엄청난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던 덕이었다.
그래서 회귀하기 전에는 전류의 활용을 중심으로 훈련을 진행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전류를 활용하는 것에 있어 나는 이미 정점.
거기서 특별히 더 연마할 건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생은 전생의 나에게 부족했던 걸 중심으로 훈련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름이 아니라…….
파지지직—
나는 손에 전류를 불러냈다.
E급이었을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약했다.
솔직히 말해, 같은 D급들에 비해 꽤 약한 편이었다.
‘전류의 위력이 약했었지.’
회귀하기 전의 나는 전류를 극한으로 활용했지만, 동일한 A급에 비해 전압이 상당히 약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건 간단했다.
파직!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전류를 불러냈다.
최대, 그러니까 내 한계치까지 말이다.
“후우우, 전류의 위력 그 자체도 올려야지.”
전류의 위력도, 전류의 활용도 최강이 되는 것.
그게 바로 이번 생의 내 목표 중 하나였다.
파지직—!
그리고 그 첫 발자국을 지금 내디딜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