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 * *
시간이 흘러, 금요일 저녁.
“오빠. 그러니까 주말 동안 외박한다고?”
“내일 새벽에 출발해서, 일요일 저녁? 늦어도 월요일까지는 올게.”
“그래야지. 오빠 월요일에 학교 가야 되잖아.”
유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내 말에 대꾸했다.
“근데 외박하는 거야 그렇다 치는데, 어디 가는 거야? 그리고 갑자기 왜 외박하는 거야?”
“…그냥 좀 놀다 오려는 거야.”
나는 최대한 태연히 말했다.
하지만 유나는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어디 가는지는 말 안 해 줄 생각인가 봐?”
“이상한 곳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래, 이상한 곳은 아니었다.
다만 국내가 아닐 뿐이었다.
“하아아. 알겠어. 굳이 캐묻지는 않을게.”
“고맙다.”
국내의 장소였으면 그냥 말했을 텐데, 미국은 말하기 애매했다.
사실 말하는 거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미국에 간다는 걸 말하면, 왜 가는지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것들을 전부 유나에게 설명해야 했다.
솔직히 그러기 귀찮았기에 말을 안 하려고 한 것이었다.
“근데 이건 대답해 줘. 혼자 가는 건 아니지?”
“아마도?”
“아마도, 라니?”
“이게 확실하지 않거든. 이민아가 내일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어서 말이야.”
하루 종일 놀다 오는 것과 하루 외박은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자기 딸에게 관심이 없는 이진성도, 막내딸이 외박하고자 하는데 아예 신경 안 쓸 리가 없었다.
“뭐? 민아 언니와 가는 거야?”
이민아의 이름이 나오자, 유나는 놀란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민아 언니와 가는 거야? 1박을? 숙소에서 같이?”
“숙소에서 같이 지낼지는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숙소에서 잠을 잘 수 있을지부터가 확실치 않았다.
아마 미국에 가면 잠을 잘 시간조차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아마 숙소는 굳이…….
“오빠. 잠깐만. 이 외박이라는 거, 혹시 1박으로 여행 갔다 오는 거야?”
“여행이라면 여행이지.”
다만 낭만 넘치는 여행이 아닌, 별 고생을 다 하게 될 여행이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금방 갔다 올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별일 없을…….”
“별일 없을 리가 없잖아!”
유나는 설거지하던 걸 내버려 둔 채, 내 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민아 언니와 언제 그런 사이가 된 거야? 둘이 벌써 같이 외박하고 올 정도로 친해진…….”
“네가 뭘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아니야, 인마.”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내 여동생을 내려다봤다.
“그냥 친구끼리 갔다 오는 거야. 다른 의미 없어. 게다가 말했잖아. 걔 안 올지도 모른다고.”
내가 미국을 가겠다고 하자, 이민아는 자기도 가고 싶다고 떼를 썼다.
그래서 나는 이진성에게 허락부터 받고 오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자 이민아는 바로 조용해졌다.
‘이진성이 아무리 이민아에게 관심이 없어도, 함부로 해외로는 안 보내겠지.’
근데 만에 하나 이민아가 이진성의 허락을 받고 나를 따라온다면, 그건 그때 가서…….
“오빠, 나는 개인적으로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 그래서 오빠가 민아 언니와 단둘이 여행 가는 건…….”
“남녀 사이에 친구가 없기는 왜 없냐? 충분히 존재할 수 있어, 이 녀석아.”
회귀하기 전의 나는 여자인 동료들이 많았다.
물론 동료라고 부르기 참으로 애매한, 비정상적인 관계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친구인 여자는 많았다.
하지만 유나는 그런 내 말을 안 믿는 모양이었다.
“오빠. 솔직히 남녀 둘이 같은 방에서 자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날까? 게다가 민아 언니도 오빠와 외박하겠다는 시점에서 이미 암묵적으로 동의를, 아악?! 아, 왜 때려?”
“이상한 소리 하니까 때린 거다, 인마.”
나는 유나 머리에 딱밤 한 대를 더 때리며 말했다.
“한창 그런 거에 관심 많을 나이라는 건 알겠지만, 그런 건 속으로만 생각해. 괜히 입 밖으로 꺼내지 말고.”
“아니, 오빠. 오빠는 민아 언니와 같은 공간에서 단둘이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할 자신 있어?”
“어, 아주 자신 있다.”
나는 당당히 말했다.
회귀하기 전에 나는 이민아와 자주 시간을 보냈고, 단둘이서 밤을 지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
‘아니. 아예 없던 건 아니구나.’
30살이 되던 해, 이민아와 단둘이 게이트를 토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쩌다 보니 단둘이 게이트 내부의 동굴에 갇히게 됐었는데.
‘박유진. 부탁할게. 이런 나라도 괜찮으면, 제발 나를, 제발 나를 좀…….’
그때를 떠올리자,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
“그때 X나 힘들었지.”
“음? 오빠,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좋다면 좋은 기억이고, 안 좋다면 안 좋은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나와 이민아의 관계가 여러모로 이상해졌다.
그러다가 결국 안 좋게 끝났지만 말이다.
뭐, 아무튼.
과거의 일은 그냥 묻어 두고, 눈앞의 일에 집중하고자 했다.
“됐고, 주말 동안 얌전히 지내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알겠지?”
“칫, 알겠어. 근데 진짜 어디 가서 뭘 하는지 말 안 해 줄 거야?”
“설명하자면 많이 복잡하거든.”
천둥새들의 땅에 들어가, 그들이 신성시하는 돌의 일부를 가져온다.
나야, 이걸 간단히 이해할 수 있지만, 유나를 이해시키려면 많이 귀찮을 터였다.
* * *
“이민아는 결국 못 오는 건가.”
다음 날 새벽.
나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으음, 못 오는 거 같네.”
나는 이민아가 보낸 문자들을 확인했다.
결국 이전성의 허락을 못 받았는지, 이민아는 따라오지 못한다고 했다.
‘이진성, 그 아저씨도 참 종잡을 수 없다니까.’
어떤 면에서는 개방적이면서 어떤 면에서 보수적인, 중간이 없는 아저씨였으니 말이다.
‘뭐, 됐고. 얼른 가 봐야지. 미국 가는 디맨션 도어가 7시였나?’
나는 미리 예매한 표를 다시금 확인했다.
7시 20분에 디맨션 도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미리 들어가 있자.”
짐을 다 챙겼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나는 서울역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 국제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 * *
“네, 박유진 씨. 확인됐습니다. 표는 여기 있고, 7시 20분에 4층의 5—C 디맨션 도어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직원에게 여권을 돌려받은 후, 옆쪽을 바라봤다.
‘여기는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른 게 없네.’
서울 국제 터미널.
원래 해외를 가려면 공항에 가 비행기를 타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먼 과거의 이야기였다.
헌터가 생겨 난 뒤로부터 마법이 고도로 발달해, 디맨션 도어라는 장치가 만들어졌다.
‘마법으로 해외 등, 장거리 여행을 위해 만들어진 마도구.’
또 다른 디멘션 도어가 설치된 곳으로 이동시켜 주는 게 이 ‘디맨션 도어’라는 이동수단이었다.
이동하고자 하는 위치에도 디맨션 도어가 설치되어야 하는 특성상 세계 곳곳에 디맨션 도어들이 만들어졌고, 그 디맨션 도어들을 관리하는 곳이 바로 국제 터미널들이었다.
“7시 20분에 애리조나로 가는, 터미널 4층에 위치한 5—C 디맨션 도어.”
나는 방금 받은 표를 보며 중얼거렸다.
별일 없으면 그냥 무난히 미국으로 가지 않을까 싶었다.
* * *
시간이 흘러 어느새 7시 15분.
나는 터미널의 4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4층의 5—C에 도착하자, 커다란 문이 나를 맞이했다.
문, 그러니까 말 그대로 손잡이가 달리고 앞뒤로 열리는 그런 평범한 문 말이다.
이러한 문들이 이 터미널에 수십 개나 있는 것이었다.
“이제 곧 디맨션 게이트가 작동됩니다! 7시 20분, 애리조나 국제 터미널로 가시는 분들은 디맨션 게이트 앞으로 줄 서 주시면 되겠습니다!”
들려오는 직원의 안내.
이에 근처의 사람들은 전부 디맨션 도어 앞에 일렬로 섰고, 그중 나도 포함되었다.
그 이후로는 뭐,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디맨션 도어를 작동시키겠습니다! 모두 한 발자국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커다란 문에서 빛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고, 이내 직원의 안내에 따라 내 앞의 사람들이 익숙하게 디맨션 도어 안으로 향했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여전히 평범했다.
그저 앞뒤로 뻥 뚫려 있는, 빛이 나는 문.
그러나 이내 내 차례가 되고 그 문 사이로 지나가자…….
‘…역시 별 것 없네.’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 서울 국제 터미널이었는데, 디맨션 도어를 지나가자마자 변했다.
“애리조나 국제 터미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입국 절차를 위해 저쪽 방향으로 가 주시면 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터미널을 이동했다.
“흐음.”
미국.
회귀하기 전에 자주 왔었다.
‘헌터 협회에서 더럽게 많이 파견 보낸 탓이지.’
내가 30대가 된 이후, 몬스터들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했다.
그에 따라 해외에서 자주 증원 요청이 있었고, 그때마다 내가 자주 끌려갔다.
덕분에 고생을 꽤 했었다.
‘그나저나 이 터미널도 내 기억과 크게 다를 게 없단 말이지.’
회귀하기 전에 애리조나도 자주 왔었다.
그래서 이 터미널 또한 내 기억에 남았다.
‘그나저나 이쯤에서 입국 심사를 했던가?’
너무 오랜만의 미국이라 잠시 헷갈렸지만, 앞에 보이는 터미널 직원들을 보니 내 기억이 틀리지 않은 듯했다.
‘빨리 하고 입국이나 해야지.’
나는 앞으로 가, 미국인 직원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Good morning, sir.(좋은 아침이네요.)”
“Umm, it’s actually afternoon here in Arizona, sir.(으음, 사실 지금 애리조나는 오후입니다.)”
“Oh, right. I forgot I was on the opposite side of the planet.(아, 그렇군요. 지구 반대편으로 왔다는 걸 깜박했네요.)”
“Yeah, it can be quite confusing. Anyway sir. May I ask the purpose of your visit?(네, 헷갈릴 수도 있죠. 아무튼, 저희 나라의 방문 목적이 무엇이죠?)”
“Just planning on touring the state until…….(그냥 주를 관광할 목적으로 내일까지…….)”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오랜만에 하는 영어라 잘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막상 하니 술술 나왔다.
‘근데 뭐, 술술 나올 수밖에 없기는 하지.’
회귀하기 전에 내가 미국을 한두 번 간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애리조나는 내가 가장 자주 가 본 미국의 지역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게, 약 10년 뒤, 이곳은 천둥새들에 의해 난장판이 된다.
나는 당시에 애리조나로 시도 때도 없이 파견을 갔었다.
그때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영어 실력 하나는 좋아지기는 했다.
‘그래. 영어 실력이라도 좋아졌으면 됐지. 뭐, 그나저나…….’
나는 터미널 밖에 보이는 애리조나의 모습을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리조나의 사막 한가운데에 지어진 도시, 피닉스.
특유의 아름다운 도시의 광경을 바라보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여기는 지금이나 그때나 아름다운 곳이라니까.’
천둥새들에게 습격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더 아름다운 도시로 남았을 텐데, 뭔가 참으로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