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천둥새는 거대한 앞발을 휘두르며 내게 돌진해 왔다.
하지만 나는 그 공격을 쉽게 피했다.
‘이 녀석들은 회귀 전에 질리도록 상대했으니까.’
천둥새들을 상대로 일주일 가까이 싸운 적이 있었다.
그 경험 덕에 나는 이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이들의 시야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약점이 어디인지 등.
상당히 많은 정보들을 가지고 있었다.
- …카악?
내가 천둥새의 시야 범위 밖으로 벗어나자, 천둥새는 잠시 혼란스러워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 카아!
천둥새는 짐승의 감각으로 내 위치를 바로 찾아내더니, 나를 향해 다시금 날개를 휘둘렀다.
분명 시야 밖에 있었고, 천둥새는 눈으로 나를 찾지도 못했음에도 말이다.
‘X발. 감각 하나는 뛰어난 놈들이라니까.’
천둥새는 시각, 청각, 후각 등, 대부분의 감각들이 뛰어났다.
그래서 나 같은 암살 스타일의 헌터들은 천둥새를 쉽게 상대 못 했다.
유효한 타격을 입히려면 몰래 다가가야 하는데, 천둥새 상대로 몰래 다가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아예 못 상대하는 건 아니야.’
방금 말했듯, 천둥새들을 혼자서 100마리까지 잡아 봤다.
그 경험 덕에 한 마리쯤은 충분히 상대 가능했다.
‘…보통의 천둥새였다면 그랬겠지.’
아쉽게도 지금 내가 상대하는 건 평범한 천둥새가 아니었다.
가슴에 커다란 흉터를 지닌 이 녀석은 천둥새 부족의 경계 대장, 마하발.
단순 무력만으로는 천둥새 중에서 최강이었다.
‘대체 왜 이 녀석이 남쪽 경계에 나타난 거야? 게다가 나는 아직 녀석들의 영토에도 안 들어갔잖아?’
의문이 계속해서 생겨났지만, 나는 일단 전투에 계속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이 망할 천둥새의 힘을 좀 빼놔야 의문들을 해결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근데 힘을 빼놓는 것도 쉽지 않네.’
애초에 지금의 내 실력으로 마하발을 죽이거나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했다.
가장 쉬운 거라면 그냥 적당히 타격을 줘서 쫓아내는 거였는데, 마하발 성격상 쉽게 도망치지 않을 것이었다.
‘약점을 살짝만 공격해 보자.’
천둥새들의 약점은 등의 중앙이다.
그곳에 자바니아를 살짝만 찌르면, 마하발은 죽지는 않아도 몸에 힘이 풀릴 것이었다.
‘…좋아. 해 보자.’
나는 내게 날아오는 거대한 발톱을 피한 뒤, 와이어를 마하발의 목을 향해 날렸다.
와이어가 목에 감기자 마하발은 잠시 당황한 눈치였으나, 그는 이내 와이어를 끌어당겼다.
그로 인해 내 몸은 그대로 끌려갔는데, 나는 그걸 노리고 있었다.
‘…지금이다.’
타이밍에 맞춰 도약해, 마하발의 등 위에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나는 바로 자바니아를 들어 올려, 마하발의 등 중앙에 내리찍으려 했다.
‘여기다.’
천둥새 등의 중앙.
거기에 동전만큼 작은, 푸른 광원이 있었다.
이게 천둥새의 약점이었다.
이곳에 살짝만 상처를 내도, 대부분의 천둥새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하지만 마하발은 노련한 천둥새라, 나의 노림수쯤은 바로 알아차렸다.
- 카악! 키아아악!
내가 그의 등 위에 올라서자마자 마하발은 날뛰며 나를 떨어뜨리려 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대로 나는 균형을 잃고 그의 등에서 떨어졌는데, 이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마하발과 자주 싸워 봤기에, 그의 행동들 대부분 예측이 되었다.
“이거나 먹어, 인마.”
나는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자바니아를 마하발의 등 중앙을 향해 던졌다.
자바니아는 날아가 마하발의 등에 정확히 명중했다.
물론 제대로 된 힘을 주고 던지지 못해, 단검은 깊게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스친 것만 해도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게, 천둥새들의 등은 꽤 예민한 부위였기 때문이다.
- 키억?!
약점에 상처를 입자, 마하발은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땅바닥에 넘어졌다.
그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으나, 나는 그저 피식 웃었다.
“적어도 5분 동안은 안 날뛰겠지……. 돌아와라.”
내 말에 마하발의 등에 박혀 있던 자바니아가 내 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자바니아를 단검집에 넣은 후, 나는 마하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원래 계획은 천둥새들에게 최대한 안 걸린 채 이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뭐 하기도 전에 이렇게 들통났으니, 아무래도 계획을 대대적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었다.
- 키아악… 카악…….
내가 다가서자, 마하발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마치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이려는 듯이 말이다.
이에 나는 피식 웃었다.
‘마하발답네.’
여기서 마하발을 죽이는 것도 선택지였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내게는 훨씬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다.
파지지직—
내 몸 주위로 전류를 불러냈다.
회귀하기 전, 천둥새들과 협상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은 싸움이었어. 하지만 여기까지만 하자. 나는 너와 싸울 생각 없으니까.”
- …카악?
내 말에 마하발은 상당히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미소를 지은 채 말을 계속했다.
“나는 이상한 수작을 부리러 온 것이 아니야. 그러니까 경계를 풀어도 괜찮아.”
- …카악.
천둥새는 잠시 나를 말없이 바라보다, 이내 나처럼 몸 주위로 전류를 뿜기 시작했다.
겉으로만 보면, 그냥 거대한 새가 전류를 내뿜는 것에 불과했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 너는 누구지?
천둥새의 전류로부터, 그들의 언어가 들려왔다.
아니, 들려왔다기보다는 이해가 됐다.
이 천둥새가 내게 뭘 말하고자 하는지가 말이다.
- 너는 누군데, 우리의 언어를 아는 것이냐?
“전에 배운 적이 있거든.”
나는 다시 전류를 뿜어내며 말했다.
“배우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더라고.”
천둥새들의 언어.
사실 언어라기보다는 일종의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천둥새들은 전류를 통해 전파를 만들어, 그것으로 각자의 생각을 공유했다.
지능이 높은 천둥새들에게 어울리는, 천둥새들만의 의사소통 방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방식을 알아냈지.’
보통의 일렉트로 마스터면, 천둥새들이 전파를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까지는 쉽게 눈치챌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사소통 방식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나였기에 가능했다.
내가 전류를 극한으로 활용했던 놈이라 가능했던 것이었다.
- 헛소리! 우리의 언어를 고작 인간이 이해했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그럼 지금 내가 너랑 대화하는 건 뭐냐?”
- …우리의 언어를 배웠다고 했나?
“가우타르, 그분에게 배웠지.”
거짓말이었다.
말했듯, 나는 천둥새들의 언어 체계를 혼자 알아냈다.
하지만 당장은 이렇게 거짓말하는 게 맞았다.
- 가우타르. 그분을 만난 건가.
참고로 가우타르는 남미에 서식하는 천둥새였다.
원래 이곳의 다른 천둥새들과 살았으나, 지루함에 세계 일주를 시작한 천둥새.
사실 그 천둥새를 만난 적은 없고 이야기만 들었다.
그러나 복잡한 상황을 만들기 싫었기에, 그 천둥새의 이름을 팔았다.
- 그래. 그분은 인간에게 호의적인 분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군. 그럼 이왕 말이 통하게 됐으니, 하나만 묻도록 하지, 인간. 네놈은 대체 왜 우리의 영토에 들어오려고 했던 거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너희들의 영토는 여기서 거리가…….”
- 거짓말하지 마라. 내 오랜 경험상, 인간들이 여기까지 오는 건 우리의 영토에 몰래 침입하기 위해서다. 우리 부족의 남쪽 경계의 경비가 허술한 것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래, 뭐. 솔직히 말하자면 너희들의 영토에 들어가려고 했어. 근데…….”
- 역시 그랬군. 오늘 우연히 이곳에 순찰 나왔는데, 네놈이 보였다. 그리고 내 직감이 네놈이 매우 위험한 인간이라 말해, 내가 직접 네놈을 쫓아내려고 했던 거다.
‘아, 그런 거였냐?’
이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냥 쉽게 말해, 내가 운이 X나 없던 거다.
마하발이 오늘 우연히 이곳을 순찰하던 바람에, 그의 눈에 걸린 것이었으니 말이다.
뭐, 그래도 이건 이미 일어난 일이니, 이에 맞춰 최대한 계획을 진행해야 했다.
“미리 말하는 거지만, 나는 너희들의 영토에 나쁜 의도로 접근한 건 절대 아니야.”
- 웃기는군! 그딴 거짓말이 나, 경계 대장 마하발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 네 이름이 마하발이구나.”
나는 처음 듣는 척, 한마디 해 준 뒤, 이내 침착하게 입을 다시 열었다.
“아무튼 마하발, 내 말을 믿어 줘, 나는 너희 부족에게 해를 끼치러 온 것이 아니야.”
- 네 말을 내가 어떻게, 그리고 왜 믿어야 하는 거지?
몸이 그사이에 회복된 건지, 마하발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러면서 그는 거대한 날개를 내게 위협적으로 펼쳐 보였다.
- 네놈이 우리 부족에게 해를 안 끼칠 거라고 내가 믿을…….
“너희들의 족장. 지금 많이 아프다 들었는데, 사실이냐?”
- …그걸 어떻게 안 거지?
내 말에 마하발은 당황했는지, 펼쳤던 날개를 접었다.
- 가우타르에게 들은, 아니. 그분은 족장님이 다치기 전에 떠났다. 그럼 네놈이 우리 족장님의 상태를 어떻게…….
“어쩌다 보니 소식을 듣게 됐어.”
사실 회귀하기 전, 천둥새들과 협상하던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는 거지만, 마하발. 나는 너희들 부족에게 해를 끼치러 온 게 아니야.”
나는 최대한 태연히 말한 후, 잠시 뜸을 들였다.
이걸로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었다.
“오히려, 나는 너희를 도와주러 온 거야.”
- 도와주러 왔다고?
“너희들의 족장, 그러니까 루프티카였나?”
- 맞다. 족장님의 이름은 가우타르께 들은 거냐?
“맞아.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내가 너희들의 족장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거야.”
- 치료할 수 있다고? 네놈이, 족장님을?
“응, 치료할 수 있어.”
누누이 말했듯, 내 원래 계획은 몰래 일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몰래 천둥새들의 족장 루프티카에게 접촉해, 조용히 그녀를 치료하고, 조용히 그녀에게 내가 원하는 물건을 받아 내는 것이었다.
‘루프티카라면 성격상 조용히 일을 넘겨줄 법도 했으니까.’
성공 확률이 아주 높은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늘 운이 너무 안 좋았다.
하필 뭘 시작하기도 전에 이 깐깐한 경계 대장에게 걸렸으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나는 우선 마하발을 먼저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너희들의 족장 앞으로 나를 데려가. 그럼 내가 그분을 바로 치료해 주도록 할게.”
- 네놈이, 그러니까 인간이 족장님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냐?
“확실하게 치료할 수 있으니까, 내가 너희들의 영토 안에 들어가는 걸 허락해 줘.”
- 으으음.
아까 말했듯,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것이었다.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오늘 고생길이 될 수도 있었고, 꽃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행운의 여신이 이번에는 내 편이기를 기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