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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77화 (77/240)

77화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그랜드 캐니언에 게이트가 하나 나타났다.

그래서 애리조나주 정부는 게이트를 토벌하기 위해 헌터들을 보냈고, 게이트 토벌에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게이트에서 탈출한 천둥새들이 몇 마리 있었다.

당시에는 그 수가 약 열 마리.

그리 큰 수가 아니었기에, 당시 주 정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약 열 마리 남짓하던 천둥새들은 번식을 해 수를 늘려 갔고, 지금에 와서 200마리가 넘는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너무 안일했던 거지.’

수가 적다고 해도, 천둥새는 결코 약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수가 적을 때 빠르게 처리했어야 했는데, 당시의 주 정부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었다.

‘그나마 천둥새가 인간과의 분쟁을 썩 좋아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천둥새들이 인간과 싸우고자 마음먹었다면, 쉽지 않았겠지.’

천둥새들은 자기들의 영역에만 안 들어오면 인간들을 먼저 해치지 않았다.

그래서 주 정부는 천둥새를 관광 요소로 쓰고, 천둥새는 인간들의 관광지에서 얹혀사는, 나름대로의 공생(?) 관계를 형성했다.

그렇게 인간과 천둥새의 공생은 잘 이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결국 일이 터지게 되지.’

회귀하기 전의 내가 30대일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후.

천둥새들은 인간들을 다시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그때 이곳으로 파견 당했다.

‘천둥새들을 최대한 많이 사냥했지만, 도저히 역부족이었지.’

그래서 나는 천둥새들의 언어 체계를 알아내, 그들과 협상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천둥새들이 왜 갑자기 인간들을 공격했는지 알아냈다.

‘천둥새들의 족장이 위독했던 거지.’

천둥새들은 부족 체계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그들에게 족장이 한 마리 있었다.

근데 그 족장이 몇 년 전부터 심한 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버틸만하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위독해졌다 했지.’

천둥새들이 인간들을 공격한 이유가 이와 관련 있었다.

자기들의 족장을 살리기 위해,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인간들을 공격한 것이었다.

인간들의 땅에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뭐, 그랬지만. 내가 잘 마무리 지었지.’

족장이 10년도 넘게 앓았다는 그 병은, 사실 별것 아니었다.

나 혼자서도 쉽게 치료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당시에 나는 족장을 치료했고, 덕분에 천둥새들은 다시금 잠잠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 족장님을 또 치료하러 가야지.’

어차피 천둥새들의 족장을 빨리 치료하는 편이 좋았다.

아까 말했듯, 족장이 가진 이 병 때문에 몇 년 뒤 천둥새들이 애리조나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대참사를 막기 위해, 지금 기회가 왔을 때 치료하는 편이 좋았다.

‘근데 이 도박에 성공해야 치료하든가 말든가 할 텐데 말이야.’

나는 내 눈앞의 거대한 천둥새, 그러니까 마하발을 바라봤다.

마하발은 미심쩍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녀석이 내 말을 믿어야 할 텐데.’

천둥새들의 족장, 그러니까 루프티카를 치료할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물론 다른 목적이 있었지만, 치료해 주겠다는 거 자체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걸 마하발이 믿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내 말을 믿어 주면 일이 쉬워지겠지만, 안 믿어 주면 일이 귀찮아지겠지.’

아마 높은 확률로 마하발은 다시 나를 공격할 터였다.

그렇게 되면 나는 마하발을 쓰러뜨려야만 했다.

그러나 마하발을 쓰러뜨리면, 그 순간 천둥새들은 전부 나를 적으로 인식할 것이었다.

‘그럼 루프티카에게 접근하는 게 어려워지겠지.’

내 계획, 그러니까 천둥새들에게서 어떠한 물건 하나를 얻어 오겠다는 것.

그걸 성공하려면, 루프티카와 반드시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했다.

‘후우우. 근데 이 녀석은 언제 대답을 하는 거야?’

마하발은 아까부터 계속 나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어떠한 대답이나 행동 없이, 그냥 나를 유심히 내려다봤다.

“마하발.”

몇 분 지나도 말이 없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그저 순순히 너희들을 도와주러 온 거야. 너희의 족장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건 절대 거짓말이 아니라고 내가…….”

- 밑져야 본전이겠지.

마하발의 몸에 전류가 흘러나오자, 그의 말이 다시금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 네놈의 이름, 무엇이냐?

“박유진. 그게 내 이름이야.”

- 바키이에유, 뭐?

“알아. 너희들의 언어 체계로는 쓰기 힘든 이름이지.”

회귀하기 전에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았다.

“그냥 유진이라고 불러. 이게 너희에게도 편하지?”

- 유진. 독특한 이름이군.

마하발은 거대한 날개를 또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를 위협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 좋다, 유진이여. 나는 네놈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이건 밑져도 본전이지.

“그치. 공짜로 치료해 주겠다는데, 너희가 전혀 손해 볼 거 없는 장사니까.”

- 하지만 명심하도록 해라.

거대한 천둥새는 전류를 내 쪽으로 날리며 말했다.

- 네놈이 족장님께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부리는 게 보이면, 나는 가만히 안 있을 거다. 아니, 우리 부족 전체가 움직일 것이다. 알겠냐?

“걱정 마.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인간이군.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를 돕겠다니, 참 특이한 인간이야.

“인간은 대가가 있어야지만 움직이는 생물이 아니야.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호의로만 움직이기도 하거든.”

물론 나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채 움직이는 거였지만, 그 사실을 굳이 마하발에게 말하지 않았다.

괜히 사족을 붙이다 일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나를 너희 족장에게 데려가 주는 거지?”

- 원로들의 반발이 있겠지만, 일단은 데려가 주도록 하지. 그리고 미리 말하지만, 우리의 영역에 들어선 순간, 네놈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족장님을 뵈러 갈 것이냐?

“전혀 걱정할 거 없어. 나는 쉽게 죽는 놈이 아니거든.”

- 그렇다면 내 등에 올라타도록 해라. 족장님의 거처까지 태워다 주마. 하지만 날다가 네놈이 떨어져도 나는 책임을 안 질 거다.

마하발과의 이야기가 잘 되는 듯싶었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마하발의 등에 올라탔다.

- 나에게 고마워하도록 해라. 우리 종족은 같은 부족원끼리도 등에 누군가를 올리지 않으니까.

“그런 말 안 해도 고마워하고 있어.”

- 말은 잘하는군. 됐고, 출발하겠다. 꽉 잡아라.

“으윽?”

그와 동시에 마하발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매우 빠르게, 그리고 힘차게 말이다.

‘이러는 것도 오랜만이네.’

천둥새 위에 탄 건 처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건 정말 스릴이 넘치는 일이었다.

- 높이 올라간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마하발은 이 말과 함께 더 높이 날아올랐다.

덕분에 그랜드 캐니언이 한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아름답네.”

아래에 펼쳐진 장관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걸 또 들었는지, 마하발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족장님이 괜히 이곳을 우리의 보금자리로 정한 게 아니다. 네 말대로 이곳은 우리에게 알맞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렇겠지.”

- 반응이 싱겁군. 아무튼, 속도를 더 내겠다. 원로들이 방해하기 전에, 네놈을 족장님께 빠르게 데려가도록 하지.

이 말을 끝으로, 마하발은 진짜 속도를 높였다.

이에 나는 떨어지지 않게, 마하발의 깃털을 꽉 붙잡았다.

‘그래도 일이 어느 정도 잘 풀린 거 같네.’

마하발의 기습은 정말 예상 못 했지만, 나는 그걸 기회로 삼아 잘 풀어냈다.

이대로 루프티카를 만나, 그녀의 치료만 잘 해 주면 될 일이었다.

‘그나저나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겠지?’

일단 원하는 대로 천둥새들의 영역에 들어오기는 했다.

하지만 들어왔기에 오히려 불안감이 더 들었다.

‘타 종족을 심할 정도로 경계하는 놈들이니까.’

천둥새들은 심각할 정도로 폐쇄적인 몬스터들이었다.

‘그래서 마하발이 나를 쉽게 허락해 줬을 때는 조금 의외였지.’

한 번에 허락 안 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마하발은 내가 그들의 영토에 들어가는 걸 허락했다.

그것도 심지어, 마하발은 나를 자기 등에 태워 주기까지 했다.

천둥새들의 성격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의외였다.

‘그만큼 루프티카가 위독한 거지.’

나는 30대 때 루프티카를 처음 만났고, 그 당시의 그녀는 거의 죽어 가던 상태였다.

지금의 나는 20살이니, 아직 그 지경까지 가려면 약 10년이 남은 것이었다.

‘아마 서서히 못 움직이게 될 시기겠지.’

천둥새들의 족장, 루프티카.

그녀가 가진 병은 조금 많이 특이한 병이기는 했다.

하지만 특이할 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은 아니었다.

‘물론 그건 내 기준에서 안 어려운 거지.’

나같이 전류의 활용이 수준급인 일렉트로 마스터쯤은 되어야 치료할 수 있는 병.

평범한 사람, 그리고 보통의 천둥새들은 그 병의 원인조차 인지 못 할 것이었다.

- 카악! 카아악!

속으로 생각하던 중, 갑자기 천둥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 울음소리는 마하발의 것이 아니었다.

- 유진. 몸을 숨겨라.

머릿속에 마하발의 말이 들려왔다.

- 내가 너를 들였다고는 하지만, 다른 천둥새들에게 모습을 들키면 일이 귀찮아질 거다.

“알겠어.”

나는 몸을 낮춰, 마하발의 깃털들 사이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위로 천둥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아니, 한 마리가 아니었다.

- 카악!

- 칵!

- 카아아악!

근처에서 천둥새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내, 수십 마리의 천둥새들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너희들이 사는 곳이지?”

- 그렇다. 이곳이 바로, 우리 부족의 집이다.

붉은색 바위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협곡.

이 협곡의 곳곳에 새의 둥지들이 있었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평범한 둥지들이었지만, 이 둥지들의 크기가 하나같이 거대했다.

그뿐만 아니라, 협곡의 바위 곳곳에 큰 구멍들이 여러 개 보였다.

그 구멍 안에서 쉬거나 자는 천둥새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네.’

회귀하기 전, 수백 마리의 천둥새들이 살던 이 협곡에 온 적이 있었다.

수가 그때보다 적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모습은 비슷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루프티카는 분명 저 위에 있었지.’

나는 저 멀리 보이는, 협곡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바위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 바위에 있는 큰 구멍을 바라본 것이었다.

‘저기가 족장의 거처였지.’

루프티카는 아마 지금쯤 저기서 앓아 대고 있을 터였다.

이제 곧 저 안으로 가면…….

- 카악!

- 카아아악!

- 칵!

속으로 생각하던 도중, 갑자기 세 마리의 천둥새가 마하발과 내 쪽으로 날아왔다.

- 누가 오는군. 알아서 숨어라.

이 말과 함께 마하발은 공중에 멈춰 서며, 날아오던 천둥새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파지지직—

마하발은 비롯한 천둥새들의 몸에서 전류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들은 대화를 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들의 대화를 몰래 엿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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