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 유진,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죠?
“엔드리온의 일부를 제가 가져가도 괜찮을까요?”
엔드리온은 천둥새들에게 있어 종족의 보물 그 자체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외부인이 그 보물의 일부분을 떼어 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리스크가 큰 행위기는 하지만, 그만큼 리턴이 확실하지.’
엔드리온의 일부를 얻어 내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상당한 이득이었다.
저 푸른 바위의 일부만 손에 넣으면, 내 전류가 비약적으로 강해질 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그런 보상은 쉽게 손에 들어오는 법이 아니었다.
- 유진, 저는 유진이 왜 그런 부탁을 하는지 이해가…….
- 이런 건방진 인간을 봤나?!
루프티카가 무언가를 말하려던 순간, 원로들이 격노한 모습으로 소리쳤다.
- 엔드리온의 일부를 가져가겠다고?! 인간 주제에 겁을 상실했구나!
- 우리는 지금이라도 네놈을 죽일 수 있다! 죽고 싶은 게 소원이면 당장 죽여 주마!
- 감히 우리 부족의 역사를 탐내?!
내 발언이 충격적이기는 했는지, 원로들은 그 어느 때보다 분노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듯한 분위기를 보였지만.
- 여러분. 진정하세요. 일단 유진의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해요.
이번에도 루프티카의 말에 원로들은 입을 닫았다.
금방 조용해졌지만, 원로들은 여전히 나를 노려봤다.
만약 루프티카가 그들을 진정시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죽지 않았을까 싶었다.
- 유진. 그러니까 엔드리온의 일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죠?
“제가 보다 더 강해지기 위해 필요할 거 같아서요.”
- 그러고 보니 유진도 전류를 다뤘죠. 그리고 강해지기 위해 엔드리온이 필요한 거면……. 흐음, 네. 어떤 상황인지 조금은 이해되네요.
루프티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히 말했다.
- 하지만 엔드리온은 저희 부족에게 있어… 부족의 역사 그 자체이자, 미래 그 자체예요. 엔드리온의 일부조차 외부인인 유진에게 쉽게 주기 힘들죠.
“안 되는 건가요?”
- 으으음. 제가 유진에게 매우 큰 빚을 진 거 또한 사실이에요. 그리고 유진이 원하는 게 이거라면, 저희 부족의 전통에 따라야만 하는…….
- 루프티카 님. 엔드리온의 일부를 주는 것 외에도 빚을 갚을 방법은 많습니다.
- 그 말 그대로입니다. 저희 전통에는 여러 가지가 있죠.
아무래도 내게 엔드리온의 일부를 안 주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운 듯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째는 그냥 포기하고 조용히 이곳을 떠나는 것. 그리고 둘째는, 몰래 엔드리온의 일부를 챙기고 도망치는 것.’
사실 후자의 선택지가 더 끌리기는 했다.
개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내 목숨을 보장 못 해.’
천둥새들은 생각보다 끈질긴 놈들이었다.
만약 엔드리온을 갖고 튀었다는 게 들키면, 저놈들은 한국까지 나를 쫓아올지도 몰랐다.
‘하아아. 상황이 참 애매하네.’
진짜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것도 못 하고 집으로 가야 될…….
- 어?
복잡한 상황이 이어지던 중, 루프티카는 놀란 목소리고 자기 몸 위의 장신구들을 바라봤다.
그 장신구들이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 이건 무슨…….
루프티카는 놀란 눈으로 장신구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방의 중앙에 있던 엔드리온 쪽을 바라봤다.
우웅. 우웅.
엔드리온, 그러니까 중앙의 거대한 푸른 보석 또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에 루프티카, 그리고 원로들 모두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 루프티카 님. 지금 엔드리온과 루프티카 님의 장신구에서 빛이…….
- 그 둘이 동시에 빛을 낸 건, 몇십 년 전의 사건 때 말곤 없지 않소?
- 이거 당황스럽네요.
루프티카는 다시 천둥새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방 중앙의 엔드리온에게 다가갔다.
- 여러분 말대로, 엔드리온과 제 장신구들이 동시에 빛을 낸 적은……. 저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였죠. 그 이후로는 엔드리온만이 저희에게 길을 제시해 주었는데…….
루프티카는 말없이 엔드리온과 그녀의 장신구들을 바라봤다.
그녀의 장신구들은 점점 더 밝게 빛을 내었고, 엔드리온은 한 줄기의 빛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빛이 나를 가리켰다.
- 어? 이건……. 설마… 이게, 우리 종족이 나아가야 할 미래라는…….
그 광경에 루프티카의 눈빛이 잠시 몽환적으로 변했다.
이에 원로들은 놀라며 루프티카 곁으로 다가갔지만, 루프티카는 빠르게 다시 정신을 차렸다.
- 루프티카 님? 방금 대체 무슨…….
- 엔드리온이 저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어요.
루프티카는 이 말과 함께 나를 바라봤다.
- 유진에게 엔드리온의 일부를 제공하는 게… 저희 부족이 나아가야만 하는 미래였어요.
- 하지만 루프티카 님, 그건…….
- 잘 보세요.
루프티카는 날개로 엔드리온을 가리켰다.
그러자 잠시 뒤.
티틱—
엔드리온의 끝부분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금은 이내 커지더니, 이내 거대한 바위의 일부가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일부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우우웅.
푸른빛과 함께 진동하며, 푸른색 돌멩이는 공중에 떠 있었다.
‘뭐지?’
이런 상황은 처음 겪는 것이라, 나 또한 많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뭘 더 생각할 틈도 없이, 그 푸른색 돌이 내게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날아와, 내 손에 들어온 것이었다.
“…루프티카 님?”
나는 내 손에 들어온 엔드리온의 일부를 바라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 저도 이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확실한 건, 엔드리온이 유진을 선택했다는 거예요.
“대체 왜…….”
- 저희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잘 모르겠네요. 엔드리온은 늘 납득이 되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했어요. 하지만 이건 저희도 이해를 못 하겠네요.
엔드리온은 보통의 생명체들을 초월한, 정체 모를 신성한 힘을 지닌 보석이었다.
천둥새들이 이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것도, 이 엔드리온 덕이었다.
엔드리온이 항상 천둥새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준 덕분에, 천둥새들은 몇십 년째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이었다.
‘이상하기는 하네.’
그렇다 보니, 방금 제시한 선택지는 여러모로 의문이었다.
엔드리온이 저런 선택지를 제시한 건, 분명 천둥새들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일 터였다.
그러나 이미 미래를 겪고 온 나는 이 선택이 천둥새들의 미래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도저히 유추할 수 없었다.
- 엔드리온이 저런 선택지를 우리에게 제시한 거면, 우리는 역시 따라야 하는 것이…….
- 잠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소. 일부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엔드리온을 인간에게 맡기는 건…….
- 안 될 게 뭐가 있소? 저 일부를 준다고 해도, 저 인간이 우리에게 어떤 위협이 된단 말이오?
- 저희 부족의 모든 것이 담긴 신성한 물체입니다. 일부라고 해도, 그걸 다른 생명체에게 주는 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 그것 말고도……. 그래, 자네들 말대로 엔드리온의 선택지가 틀린 적이 없었네. 하지만 이번에 준 선택지는 너무 이상해. 왜 이런 선택지를 준 건지, 그 이유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지금의 상황은 원로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많이 갈리는 듯했다.
물론, 이번에도 그들을 조용히 시킨 건 루프티카였다.
- 다들 일단 조용히 해 주세요. 여러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는 건 잘 알았어요.
- 루프티카 님. 최종적인 결정은 루프티카 님이 하시는 게 맞지만, 엔드리온의 일부를 인간에게 주는 건…….
- 네.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른 선택지죠. 저도 그 점에는 동의해요.
하지만, 이라고 말하며 루프티카는 나를 다시 바라봤다.
- 엔드리온은 항상 우리에게 최선의 미래를 제시해 줬어요. 이제 와서 의심할 이유가 없죠.
- 그럼 엔드리온의 일부를 저 인간에게 주겠다는 겁니까?
- 그게 엔드리온이 내린 선택이면, 저희는 늘 그래 왔듯 믿고 따라야겠지요.
루프티카는 원로들과 함께 몇 분 동안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그리고 이후에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그녀는 다시금 내게 다가왔다.
- 결정했습니다. 저희는 유진에게 엔드리온의 일부를 드리겠습니다.
“좋은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 고마워할 거 없어요. 그리고 유진. 혹시 아까 엔드리온에게 받은 그 조각을 잠시 제게 줄 수 있을까요?
“안 될 것도 없죠.”
나는 엔드리온의 조각을 루프티카에게 건넸다.
갑자기 왜 달라고 한 건지 의문이었지만, 나는 불안한 마음 없이 그것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게, 천둥새들은 한 번 한 말은 지키는 편이었다.
갑자기 마음을 바꿔 이 엔드리온의 조각을 가져갈 일은 없을 터였다.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돌려드릴게요.
날개로 엔드리온의 조각을 받아 간 루프티카는 동굴의 구석 쪽으로 갔다.
거기서 루프티카는 무언가 중얼거리고, 갑자기 몸 주위에 빛을 내는 등, 정체 모를 행위를 시전했다.
뭔가 싶었지만, 나는 일단은 잠자코 기다렸다.
그리고 몇 분 뒤, 루프티카는 조각을 가지고 다시 내 앞으로 왔다.
엔드리온의 조각은 모습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루프티카 님, 이 줄은…….”
- 유진이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바꾸어 봤어요. 저대로 목에 걸고 다니시면 될 거예요.
조각에 두꺼운 실이 한 줄 달려 있었다.
루프티카의 말 대로, 목에 걸고 다니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다.
- 그 실은 제 깃털을 바탕으로 만들어서, 어지간해서 안 끊어질 거예요. 그 외에도 몇 가지의 주술을 그 실에 걸었으니, 유진에게 나중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그렇군요.”
나는 엔드리온의 조각을 목에 걸어 보았다.
내 신체에 닿자, 조각은 잠시 짧게 진동을 했다.
마치 살아 있다는 듯이 말이다.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네.’
원래 엔드리온의 일부를 얻으려던 건, 고압의 전류 공급원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막상 이걸 손에 넣자, 나는 직감했다.
이 조각… 나는 분명 많은 분야에서 유용하게 써먹게 될 것이었다.
‘나중에 집에 가서 더 알아보든가 해야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엔드리온의 조각을 관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그 충동을 참으며, 천둥새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보였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루프티카 님을 비롯한 여기 모든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네요.”
- 고마워할 거 없다니까요. 유진은 제 목숨을 구했고, 저는 그저 그 은혜를 최대한 갚으려 한 것뿐이죠. 게다가…….
루프티카는 동굴 중앙의 거대한 푸른색 바위를 바라봤다.
- 저는, 아니. 저희 부족은 그저 엔드리온의 뜻에 따른 것뿐이에요. 엔드리온이 유진을 택한 거면, 저희는 유진을 최대한 도와야겠죠.
루프티카는 이 말을 끝으로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내, 천둥새들의 족장은 내 앞으로 오더니, 대뜸 몸을 낮추었다.
루프티카가 그러자, 동굴 안에 있던 다른 원로들이, 거기다 마하발까지 나를 향해 몸을 낮추었다.
“루프티카 님? 지금 무슨…….”
- 유진은 엔드리온에게 선택을 받았어요. 그건 즉, 저희 종족의 미래가 유진과 큰 관련이 있다는 거겠죠. 그러니 유진.
“네?”
- 제 부족이 올바른 미래를 맞이할 수 있게, 저희의 부족을 잘 부탁드릴게요.
“아아, 네. 뭐, 저도 최대한 노력을 해 보도록…….”
우웅—
말하던 도중, 내 목에 걸린 엔드리온의 조각이 다시금 진동했다.
이때의 나는 몰랐다.
오늘의 이 만남이, 미래에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 이 엔드리온의 조각은 나중에 알게 되니 생각 이상의 물건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후 한국에 돌아가 이 엔드리온의 조각을 활용해 봤는데…….
파지지직—!
“우왓?! 야, 박유진! 이거 너무 센 거 아니야?!”
“…그러게. 생각보다 너무 세네.”
엔드리온의 위력이 내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