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 *
천둥새들에게서 엔드리온의 조각을 얻어 낸 후.
나는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고, 시차 때문에 한국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짐을 놓기 위해 바로 집에 들렀고, 그 과정에서 유나에게 간단히 인사를 했다.
그리고 유나는 왜 오자마자 바로 나가냐고 내게 물었다.
‘솔직히 궁금해서 이걸 어떻게 참냐?’
나는 내 목에 걸린 푸른색 돌을 바라봤다.
일부이기는 했지만, 이 조각에 엄청난 전류가 내재되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 힘을 제대로 이끌어 낼 수만 있다면, 나는 분명 올해 내로 엄청난 성장을 이룰 터였다.
‘일단 바로 고연대 훈련장에 가 보자. 거기서 직접 해 보면 알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학교를 향해 걸어가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혼자 가면 심심할 거 같은데, 이 녀석이라도 부를까?’
화면에 비치는 이민아의 연락처를 보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일요일 아침부터 얘를 부르는 건 조금…….
‘뭐, 그래도 연락은 해 놓을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민아에게 간단한 문자를 하나 보냈다.
지금 학교의 훈련장에 가는데, 혹시 올 생각 있냐고 말이다.
그 후, 별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 했는데…….
우웅!
이민아에게 답장이 바로 온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당장 학교로 가겠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다.
“…얘는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네.”
이제 막 오전 8시가 된 시간이었는데, 이 시간에 내 문자를 볼 줄은 몰랐다.
여러모로 예상외의 반응을 보인 이민아 덕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얘 지금 시간에 와 봤자 할 것도 없을 텐데.’
나는 이민아가 빨라도 9시쯤은 되어야 내 문자를 보고 올 줄 알았다.
그래서 그사이에 나는 엔드리온의 조각을 이용해 이것저것 다 해 보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근데 일이 이렇게 됐네. 이민아 보고 갑자기 오지 말라는 것도 이상하고…….’
어차피 헌터 대전의 준비를 위해 이민아를 부를 생각이기는 했었다.
그러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엔드리온의 조각은 오늘 간단히만 써 보는 게 좋을 듯했다.
나머지 시간은 이민아와 훈련하면서 보내고 말이다.
‘어차피 시간 많으니까, 이 돌멩이에 대해서는 천천히 알아봐도 되겠지. 근데 그나저나…….’
나는 내 목에 걸린 푸른색 돌을 바라봤다.
‘확실히 뭔가 심상치 않네.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그 어떤 아이템보다 기운이 묘해.’
이 작은 조각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해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 새로운 힘 】
“박유진! 나 왔어!”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왔냐?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냐?”
“뭐, 뭐, 뭐래? 그, 그냥 차 안 막혀서 바로 온 건데.”
고연대학교의 훈련장에 도착하고 몇 분 안 지나 이민아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보다 너, 미국 갔다 온다고 하지 않았어? 갔다 온 거야?”
“어제 갔다 왔지. 그리고 오늘 아침에 한국에 온 거고. 나 여기 온 지 이제 막 한 시간 정도 지났을걸?”
“와, 그럼 방금까지 미국 있다가, 한국에 오자마자 훈련장에 온 거야?”
“그게 왜?”
“너 X나 독하기는 하구나. 나 같았으면 시차 적응이니 뭐니로 그냥 하루 종일 쉴 거 같은데.”
“독하기는 무슨. 그냥 시간을 허투루 안 쓰는 거지.”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를 바라봤다.
이 녀석을 안 본 지 하루 정도밖에 안 됐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기는 했다.
이렇게 밝은 녀석과 매일 지내다 보니, 나도 조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것도 독한 거야, 새끼야. 그건 그렇고, 너 미국에서 뭐 가지러 간다고 하지 않았냐?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구해 왔어?”
“엔드리온의 일부를 말하는 거면, 응. 제대로 가져왔지.”
나는 내 목에 걸린 푸른색 돌을 이민아에게 보여 줬다.
“오오. 이거야? 이야, 되게 예쁜데?”
“예쁘기는 하지.”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한 후, 훈련장의 제어 장치 쪽으로 갔다.
“아무튼, 이민아.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봐. 실험 몇 개만 하고, 바로 훈련 시작하자.”
“에? 훈련?”
“헌터 대전 준비 안 하냐? 우승하려면 더 훈련해야지.”
“…설마 그러려고 나 부른 거였어?”
“뭐, 꼭 그렇지만은 않지. 혼자면 심심할까 부른 것도 있고, 네 얼굴이나 보려고 부른 거니까. 근데 온 참에 훈련하는 것도 괜찮을 듯해서.”
“너도 참 특이하다. 그보다 실험이라니? 갑자기 뭔 실험을 하겠다는 거야?”
“새 아이템을 얻었으면, 성능 실험부터 해야지.”
나는 이 말과 함께 제어 장치의 버튼들을 몇 개 건드렸다.
그러자 훈련장에 커다란 과녁 다섯 개가 나타났다.
“좀만 기다리고 있어 봐. 몇 개만 확인하고, 바로 너와 놀아 줄게.”
“나랑 노는 게 아니라 나를 또 굴리는 거겠지. 훈련할 때마다 항상 나를 개고생…….”
“개고생이라니, 말이 심하네.”
하지만 반박은 하지 못해, 나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어쨌든 기다리고 있어 봐. 금방 끝내고 올게.”
“대체 뭘 한다는 거냐?”
이민아는 근처 의자에 자리 잡으며, 궁금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과녁 앞으로 가 본격적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파지직—
나는 우선 내 주위로 전류를 불러냈다.
‘엔드리온의 힘 없이 하면… 이 정도 수준이네.’
D급 헌터의 수준에 맞는 미약한 전류.
나는 손을 들어 올려, 그 전류를 앞의 과녁을 향해 날렸다.
파지직—!
내 손에서 출발한 전류는 과녁의 정중앙에 직격했다.
하지만 튼튼하게 만들어진 과녁에 큰 피해는 없었다.
해 봤자 과녁의 중앙이 살짝 그을렸을 뿐이었다.
“…약하네.”
D급 헌터에게 딱 적당한 수준의 전류였다.
하지만 한때 최정상의 일렉트로 마스터였던 내게 있어, 이런 전류는 너무나도 약해 보였다.
‘빨리 강해지든가 해야지. 그보다, 이 파란 돌멩이는 대체 어떻게 쓰는 거지?’
나는 내 목에 걸린 엔드리온의 조각을 바라봤다.
엔드리온에게 끝없는 천둥의 힘이 있다는 걸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아주 작은 조각에게도 엄청난 힘이 내재되었다고 듣기도 해, 내가 미국까지 가 이것을 구해 온 것이었다.
그래서 구해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뭐, 전기로 충전이라도 시켜야 되나?’
이런 건 회귀 전에도 써 본 적이 없었다.
원래 같았으면 시간을 들여 이것저것 다 실험해 볼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이민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민아를 오래 기다리게 하면 미안하니,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것부터 시도할 생각이었다.
그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거란 다름 아닌…….
파지지직—
돌멩이 안에 전류를 욱여넣는 것이었다.
물론 이게 진짜로 될지 긴가민가하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근데 만약 이 방법이 안 된다면 대체 뭘 해야 이것을…….
우우웅.
“음?”
엔드리온에게 전류를 흘려보내자마자, 푸른 돌멩이는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이 방법이 맞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 이거 먹고, 네가 가진 힘을 마음껏 내뿜어 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엔드리온의 조각에 더 많은 전류를 흘려보냈다.
이 상태로 몇 초 정도 후, 엔드리온의 조각은 이내 엄청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피지직!
“우왓?! 야, 박유진! 저, 저거 뭐야?”
“그, 그러게?”
조용히 진동만 하던 돌멩이에서 엄청난 양의 전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그것도 고압의 전류가 말이다.
그런 전류가 훈련장의 곳곳에 퍼지자, 이민아는 놀란 얼굴로 엄폐물 뒤에 숨었다.
“박유진! 저거 어떻게 좀 해 봐! 저거 한 대 맞으면 골로 갈 거 같다고!”
“잠깐만 기다려 봐.”
나야, 일렉트로 마스터라 이런 고압의 전류는 문제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민아의 말대로 꽤 위험할 듯했다.
그래서 나는 엔드리온을 진정시키려고 했는데, 그 와중에도 작은 돌멩이에서 엄청난 전류가 계속 뿜어져 나왔다.
콰콰쾅—!
그중 한 줄기의 전류가 과녁을 향해 날아갔는데, 과녁은 산산조각이 났다.
내 전류로는 흠집도 못 내던 과녁이 말이다.
“…X나 세기는 하네.”
다른 건 몰라도, 고압의 전류는 앞으로 제대로 공급받을 수 있을 듯했다.
“야, 진정해 봐.”
나는 오른손으로 엔드리온의 조각을 쥐었다.
돌멩이에 말을 하는 것도 이상했지만, 엔드리온은 평범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천둥새들을 계속 이끈, 생명체를 초월한 무언가였다.
나와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내 예상이 적중했는지, 내가 입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엔드리온은 폭주를 멈추기 시작했다.
우웅. 우웅.
전류를 완전히 거둔 엔드리온은 내 목에 걸린 채 진동만 했다.
이에 나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내 말을 알아듣는구나? 맞지?”
우웅.
당연히 돌멩이에게서 아무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방금의 진동은 긍정의 의미인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네가 어떤 미래를 보고 나를 선택했는지 몰라. 하지만 뭐가 어찌 됐든, 잘해 보자고. 알겠지?”
우웅.
이번에도 답 대신 미약한 진동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게 긍정의 답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좋았어. 그럼 다시 한번 날뛰어 봐. 하지만 이번에는 전류를 사방에 날리지 말고 내게 집중해서…….”
“야, 박유진. 너 지금 돌멩이랑 이야기하는 거야?”
“…모양새가 이상한 건 알겠는데, 그냥 그러려니 해 줘라.”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이민아에게 대꾸했다.
“별일들 다 일어나는 세상인데, 돌멩이에 말하는 것쯤은 별 것 아니잖아, 안 그래?”
“으으음, 그래도 돌에 이야기하는 건 암만 생각해도…….”
“그냥 대충 넘어가, 인마.”
나는 피식 웃으며 말한 뒤, 다시금 엔드리온에게 고개를 돌렸다.
“전류를 마음껏 내뿜어. 대신 아까 말한 것처럼, 내게만 집중시켜 줘. 알겠지?”
우웅.
엔드리온은 또다시 진동했다.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돌조각에 다시 한번 전류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엔드리온은 또다시 엄청난 양의 전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다만, 아까와 달리 사방에 날리지 않았다.
“으윽.”
엔드리온에서 나오는 모든 전류가 내게 집중됐다.
다시 말해, 아까 그 엄청난 전류를 온몸으로 받아 내는 중이었다.
“…더럽게 아프네.”
이 정도의 전류는 보통의 인간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일렉트로 마스터라 이걸 버텨 내는 거지, 어지간한 헌터들은 엔드리온의 이 전류를 맞았다가 골로 갈 터였다.
“으으윽.”
예상했던 것 이상의 고통에 당황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엔드리온을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정도는 감내해야 했다.
“박유진! 뭔가 위험해 보이는데, 괜찮은 거야?”
“다가오지 마. 너 그러다 다친다.”
나는 내게 다가오려는 이민아를 멈춰 세웠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엔드리온의 전류라면 아무리 몸이 튼튼한 이민아라도 다칠 수 있었다.
“…할 수 있어.”
나는 눈을 감으며, 내 안에 들어오는 전류에 집중했다.
그 전류들을 최대한 몸 안으로 끌어들였고, 그러자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강해지기 위해 선택한 이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지금이다.”
나는 내 안에 쌓인 전류를 과녁을 향해 날렸다.
고압의 전류가 과녁의 정중앙을 직격했다.
콰쾅—!
아까는 과녁에 그을린 자국을 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녁 중앙에 커다란 금을 낼 수 있었다.
‘엔드리온이 냈던 것보다는 약하네.’
과녁을 아예 산산조각 냈던 것과 달리, 방금의 내 일격은 금을 낸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건 성과가 있던 것이었다.
“바, 박유진? 방금 그거 네가 날린 거야? 펴, 평소보다 조, 조금 많이 센 거 같던데?”
“…세지기는 했지.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나는 전류를 내뿜는 엔드리온을 바라보다, 이내 이민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할 것 없으면, 나 좀 도와줄 수 있냐? 실험해 보고 싶은 게 몇 개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