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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83화 (83/240)

83화

“이건 무슨…….”

전에도 환각을 여러 번 겪었지만, 지금의 이 환각은 무언가 달랐다.

내게 위협을 가하려는 등의 환각이 아니었다.

마치…….

‘내게 무언가를 알려 주려는 거 같아.’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진 환각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낯선 장소였다.

어느 건물의 지하실인 듯했는데, 대체 무슨…….

‘음? 잠깐만. 여기 구인사 아니야?’

자세히 보니 낯선 장소가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지하실.

회귀 전에 내가 방문했던 장소였다.

‘내가 33살인가 34살이었나? 그때 즈음에 구인사 지하에 게이트가 나타났지.’

그 게이트에 무슨 번개 쓰는 드래곤이 있던 탓에, 내가 파견됐던 것이었다.

아무튼 한 번 가 본 적이 있던 장소라, 환각이 보여 주는 장소가 어딘지는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근데 무언가 이상했다.

그도 그럴 게…….

‘저 구석의 조그마한 게이트는 또 뭐야?’

환각은 어째서인지 지하실에 있는 게이트를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 보는 게이트였다.

그러니까 방금 말한 번개 쓰는 드래곤이 있던 게이트가 아니었다.

보통의 게이트보다 훨씬 작고,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어?”

내 시야가 점차 그 작은 게이트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게이트 안에 들어서자, 상당히 징그러운 광경이 나를 맞이했다.

‘거미들?’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거미들이 게이트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거미들부터 시작해, 성인 남성보다도 더 큰 거미들까지.

온갖 종류의 거미들이 거미줄을 친 채 게이트 안에 기어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거미들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저 인간은 또 뭐지?’

거미들과 거미줄을 지나 게이트 안쪽에 더 들어가자, 사람이 하나 보였다.

거대한 거미줄 사이에 편하게 앉은 사람이었다.

머리를 다 덮은 커다란 후드와 온몸을 가린 망토.

그 둘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저건 분명 인간이 맞는다고, 내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갑자기 이 환각이 왜 보이는 거지?’

문득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이 환각이 왜 내게 보이는 거고,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말이다.

‘아까 분명 엔드리온을 바라보자 이 환각이 나타났어.’

이 환각의 원인은 엔드리온이 아닐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엔드리온은 천둥새들에게 이런 식으로 선택지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이 환각은 엔드리온이 내게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일 터였다.

‘근데 갑자기 왜 내게 이러는 거지? 그리고 이 환각은 대체 뭔 의미고?’

머리를 굴려 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렇게 머리를 최대한 정리하던 중, 환각 내의 시야가 또 움직였다.

게이트 깊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점차 다가가, 그의 오른손에 시야가 집중되었다.

‘반지?’

검은색 보석이 박힌 반지가 그 사람의 손에 끼워져 있었다.

처음 보는 종류의 반지였다.

나는 그 반지를 더 자세히 보려고 했는데, 그 순간 환각이 사라졌다.

“어? 대체 뭔…….”

“박유진? 박유진! 너 괜찮은 거야? 왜 갑자기 눈에 초점을 잃고…….”

“나… 나 몇 분 동안 이러고 있던 거야?”

“몇 분이라니? 뭔 소리야? 너 한 1초인가 2초만 멍때렸잖아.”

“…그러냐?”

나는 어지러워진 내 머리를 매만졌다.

분명 환각을 몇 분 동안 겪은 거 같았는데, 알고 보니 2초 정도밖에 안 지났던 것이었다.

“…방금 그거, 네가 한 짓이지?”

나는 내 목에 걸린 푸른 돌멩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돌멩이는 또다시 진동을 해, 긍정의 의사를 보였다.

“아까 마지막에 봤던 반지. 그거 중요한 거 같던데, 맞냐? 혹시 내 체력을 증가시켜 줄 아이템 같은 건가?”

우웅—

이번에도 보인 긍정의 표시.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퍼즐 조각들을 하나둘씩 맞췄다.

엔드리온은 그동안 천둥새들이 나아가야 할 길들을 알려 줬다.

그리고 이번에 엔드리온이 어째서인지 나를 선택했다.

만약 엔드리온이 진짜로 내게 호의적인 거라면…….

‘환각에서 본 반지를 손에 넣는 게 나의 길인 건가?’

아까까지 나는 체력적인 문제로 고생하고 있었다.

나의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엔드리온이 내게 길을 제시해 준 것일지도 몰랐다.

‘뭐, 밑져야 본전인가.’

환각에서 본 반지가 나쁜 물건은 아닐 거라고, 내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구인사에 가, 그 반지를 손에 넣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방금 그 조그마한 게이트는 뭔가 불안한데.’

처음 보는 형태의, 상당히 이질적인 게이트였다.

크기가 너무나도 작은 것부터 시작해, 게이트에서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이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이트 주변에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보통 게이트가 생기면… 거기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그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편이지.’

하지만 환각 속의 게이트 주변은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는커녕, 몬스터의 흔적조차 안 보였다.

심지어 구인사 측에서 이 게이트의 존재 자체를 못 알아차린 듯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나도 회귀 전에 눈치채지 못했어.’

말했듯, 회귀 전에 나는 구인사에 갔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에 저런 게이트의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한창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그 시절에 말이다.

‘일단 한 번 가 보는 편이 좋겠네.’

이쯤 되면 뭐 하는 게이트인지 궁금했다.

환각에서 본 반지를 얻든 말든, 일단 그 조그마한 게이트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박유진? 너 또 혼잣말하는데, 괜찮은 거 맞지 머리를 다쳤다거나 그런 건…….”

“그런 거 아니야, 인마. 쓸데없는 걱정 마.”

나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현기증이 아직 남아 있기는 했지만,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듯했다.

“그보다 이민아. 나 지금 가 볼 곳이 생겨서 먼저 가 볼게.”

“…뭐? 야, 이 개새끼야.”

이민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일요일 아침부터 나 학교에 불러 놓고, 한 시간도 같이 안 있고 어디 가는데?”

“충북에 볼 일이 생겼거든. 그래도 3시 전에는 돌아올 테니까, 그때 다시 만나자. 그때 훈련 조금만 하고 밥 먹고 어디 놀러 가면…….”

“잠깐만? 충북? 어제는 미국 가더니, 오늘은 갑자기 왜 충북에 가는 건데?”

“…해야 할 일이 생겼거든.”

나는 엔드리온의 조각을 슬쩍 바라봤다.

작은 돌멩이였지만, 이것의 원본은 천둥새들을 긴 세월 인도해 주었다.

나를 구인사의 그 게이트로 보내는 건,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아무튼 갑자기 불러 놓고 가는 건 미안해. 하지만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이따 네가 원하는 거 다 해 줄게. 오케이?”

“아니, 야! 기다려 봐!”

“음?”

“차라리 같이 가자. 충북이면 나도 같이 갈 수 있잖아.”

“으음, 그렇기는 한데…….”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미안. 거기는 널 못 데려가겠다.”

“왜?”

“위험할 수도 있거든.”

처음 보는 형태의 게이트로 향하는 것이었다.

이민아가 함께하면 든든하기야 하겠다만,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나는 이민아 같은 미래의 훌륭한 자원을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았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너는 집에 가서 쉬어도…….”

“위험한 곳이면 내가 더더욱 같이 가야 되는 거 아니냐? 적어도 너 대신 공격을 맞아 줄…….”

“위험한 곳이니까 나 혼자 가는 거야.”

나는 나름 진지한 투로 이민아에게 말했다.

“괜히 나 때문에 너를 또… 아니, 그러니까 이런 걸로 널 잃고 싶지 않거든.”

실수로 ‘또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이민아는 당황해, 내 말실수를 못 들은 듯했다.

“그, 그런 말로 넘어갈 수 있을 거 같아?! 무, 물론 그런 말 해 준 건 고맙지만, 그, 그래도…….”

“나 진지하게 말한 거야, 인마. 내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일지 나도 몰라. 그래서 이런 일에 너까지 안 끌어들이려는 거야.”

“그런 위험한 곳에 너 혼자 가는 건 괜찮고? 만약에 네가 잘못되면…….”

“왜? 나 없이 못 살기라도 하냐?”

나는 살짝 장난스럽게 말했으나, 이번에는 이민아 쪽이 진지했다.

“응. 너 없으면… 나 진짜 못 살지도 몰라.”

“…그러냐?”

예상외의 답변에 당황했으나, 나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손을 이민아의 머리에 가져갔다.

“읏? 야, 내 머리를 갑자기 왜 쓰다듬는…….”

“너를 위해서라도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그, 그거야 알겠는데… 너 만약 진짜 잘못되면…….”

“그런 걱정하지 마. 나는 너보다 강하니까, 쉽게 안 다칠 테니까.”

“…너 방금 뭐라 했냐?”

이민아는 고개를 들어 나를 째려봤다.

“네가 왜 나보다 강한데, 어?”

“나를 한 번이라도 이기고 그런 말 하지 그래?”

“지, 지금 붙어 봐? 나 요즘 세져서 이제 너랑 비빌 수준은…….”

“이따가 하자. 나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

“으으, 너 진짜… 아니, 그보다 충북의 어디에 뭘 하러 가는지 정도는 알려 주면 안 되냐? X나 궁금하거든?”

“으음, 별 것 아니야.”

나는 턱을 매만지며 뜸을 들인 뒤,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거미들 좀 잡고, 걔네들의 보물을 훔쳐 오려고.”

* * *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

약 세 시간 뒤.

나는 소백산에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절에 도착했다.

“자, 아까 환각에서 본 지하는 분명…….”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 지하는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내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암살자에게 그런 건 의미가 없으니까.’

안 들키고 무단침입하는 것 또한 암살의 기본 중 하나였다.

뭐, 그것 때문에 회귀 전에 좀도둑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좀도둑이나 암살자나, 은밀해야 하는 건 똑같았으니 말이다.

‘이쪽으로 가면 계단이 나왔고… 여기에 창문을 따고 들어가면…….’

구인사 내에 지어진 현대식 사찰.

나는 그 사찰의 지하에 몰래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환각에서 봤던 그 지하실에 말이다.

‘환각에서는 분명 이쪽 구석에 있었는데…….’

나는 불상들과 오래된 책들을 치우며, 지하실을 세세히 살폈다.

회귀 전에도 이곳에 한 번 왔던 터라, 지하실의 구조는 얼추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옛 기억을 이용해 지하실을 돌아다녔고, 잠시 뒤.

“오케이. 찾았다.”

지하실 구석에 생성된 게이트를 발견했다.

환각에서도 느꼈지만, 참 이질적인 게이트였다.

크기도 보통 게이트의 절반밖에 안 됐고, 게이트치고는 주변이 너무나도 깔끔했다.

그러니까 주변에 그 어떠한 몬스터의 흔적도 안 보였다.

게다가 생기가 이렇게까지 안 느껴지는 게이트는 처음이었다.

‘이런 게이트가… 있었나?’

회귀 전에 별 괴상한 상황들을 다 겪었지만, 이런 건 나 또한 처음 봤다.

아무래도 여기에 들어가는 건 다시 한번 고려를…….

우웅! 우웅!

내가 게이트 안에 들어서기를 망설이자, 목에 걸려 있던 돌멩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서 들어가라고, 나를 보채는 듯했다.

“알겠어, 이 녀석아. 알겠다고.”

나는 피식 웃으며, 내 목의 돌멩이를 매만졌다.

뭐가 어찌 됐든, 그 엔드리온이 내게 제시한 길이었다.

엔드리온이 내게 일부러 엿 먹이려는 게 아닌 이상, 분명 여기를 들어가는 게 맞을 터였다.

“…해 보자.”

마음을 다잡은 후, 나는 작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게이트에 들어서자, 나를 향한 열렬한 환영식이 시작되었다.

쉬이이익!

시키키키익!

각양각색의, 수십 마리의 거미들.

그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심심한 날이 없구먼.”

나는 자바니아를 꺼내며 거미들을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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