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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86화 (86/240)

86화

【 거미의 왕 】

엔드리온의 조각에 전류를 흘려보내자, 작은 돌멩이로부터 엄청난 전류가 나오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그 전류들을 통제하기 위해 전부 내 몸 안으로 흡수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음껏 날뛰도록 해.”

우웅!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작은 돌조각으로부터 고압의 전류들이 막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전류는 사방에 퍼져,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너, 지금 뭐 하는…….”

“뭐 하기는. 내가 가진 힘을 너에게 보여 주는 거지.”

전류는 사방에 퍼져 거미줄들을 공격했다.

거미줄에 전류가 닿자, 거미줄들은 바로 녹아 사라졌다.

“내, 내 거미줄이?! 너 지금 내 거미줄들을 다 없앨 생각이냐?!”

“없애야지. 못 없애면 내가 지는데.”

나는 고압의 전류를 사방에 더 날렸다.

그중 몇 줄기는 남자를 향해 날아갔고, 덕분에 남자는 거미줄에서 떨어졌다.

“감히 내 거미줄을…….”

바닥에 떨어진 남자는 바로 몸을 일으키며 나를 노려봤다.

그러면서 그는 손끝에서 거미줄을 뽑아 신전에 또다시 날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남자가 새로 거미줄을 치는 속도보다, 내가 그 거미줄을 없애 버리는 게 더 빨랐기 때문이다.

파지직! 파지지직!

엔드리온에서 더 많은, 더 강한 전류들이 계속 튀어나왔다.

덕분에 신전에 있던 거미줄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약 90% 정도의 거미줄이 사라지자, 나는 엔드리온에게 전류를 공급하는 걸 멈췄다.

“그만. 이 정도면 충분해.”

우웅.

내 말에 푸른 돌멩이는 진동하며 이내 폭주를 멈추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야 조금 할 만해졌네.”

방금 말했듯, 신전에 있던 거미줄의 90% 정도가 사라졌다.

이제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게다가 신전의 석상들과 기둥들 등, 내가 와이어로 올라갈 수 있는 고지대들이 많았다.

그걸 이용하면 충분히…….

“어억?”

그러나 엄청난 현기증이 순간적으로 나를 덮쳤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몇 시간 전, 고연대의 훈련장에서 처음 엔드리온의 전류를 흡수했을 때.

그때 몸을 무리하게 쓰면서 겪은 현기증과 비슷했다.

“하아아. 진짜… 리스크가 너무 큰 돌멩이라니까.”

엔드리온의 전류를 흡수하지 않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냥 엔드리온이 마음껏 전류를 내뿜게 놔두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니었다.

고압 전류를 내뿜는 이 돌멩이를 몸에 닿게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쓰기도 애매하지.’

리스크가 크기는 했지만, 리턴이 그만큼 확실했다.

이 돌멩이가 있어야 나는 일렉트로 마스터로서 더 성장할 터였다.

게다가 만약 이 돌멩이가 없었으면…….

‘이 상황 자체를 타파 못 했겠지.’

나는 거미줄이 사라진 신전을 다시 둘러봤다.

그런 후,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내 자질과 자격, 잘 확인했냐?”

“…내가 너를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이네.”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낱 암살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예상 이상의 화력을 지니고 있었구나.”

“하나만 잘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거든.”

“…틀린 말은 아니구나.”

후드를 눌러써 얼굴은 안 보였다.

하지만 남자는 분명 미소를 짓고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네가 거미줄을 없앤 것까지는 좋아. 하지만 이제는 어쩔 거지?”

“어쩌기는. 이제 너를 패야지.”

“그게 가능할 거 같아? 거미줄들을 전부 없앴지만, 거미줄은 새로 뽑아내면 그만이야. 내 손짓 몇 번으로…….”

“그럼 그 손짓을 막으면 되겠네.”

“뭐? 무슨 소리를… 으아아악?!”

남자가 거미줄을 뽑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자, 나는 그의 손을 향해 자바니아를 던졌다.

날아간 자바니아는 남자의 오른손을 정확히 꿰뚫었다.

“내, 내 손이?! 으아악! 이, 인간 따위가 감히…….”

“그 정도 상처 갖고 엄살 부리기는. 돌아와라.”

내 말에 자바니아가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남자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거미줄을 다시 못 치게 해야지.’

그 망할 거미줄들만 없으면 할 만했다.

그러니 남자가 거미줄을 만들 낌새를 보이면, 바로 자바니아를 던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내 예상과 다르게 거미줄을 또 치지 않았다.

“언제까지 건방지게 굴 수 있을지 지켜보마!”

남자는 거미 독니 모양의 단검을 든 채.

그러니까 마카리를 들어 올리며 내게 돌진해 왔다.

원래 같았으면, 나는 자바니아를 이용해 그와 단검 싸움을 펼쳤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내 몸 상태가 영 아니란 말이지.’

아무래도 평소보다 더 비겁하게 싸울 필요가 있었다.

휘리릭!

빠르게 판단을 내린 후, 나는 와이어를 이용해 근처의 석상 위로 몸을 옮겼다.

“호오? 너도 실을 이용하는구나.”

“이건 실이 아니라 와이어라는…….”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 네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구나.”

“그럼 너도 올라오든가.”

“네가 말 안 해도 그럴… 크아악?!”

“거미줄 뽑을 생각하지 마.”

남자가 거미줄을 만들 낌새를 보이자, 나는 바로 그의 손을 향해 자바니아를 던졌다.

이제부터 저 남자에게 거미줄을 생성할 틈을 안 줄 생각이었다.

‘게다가 빠르게 끝내야지.’

나는 내 왼손을 슬쩍 바라봤다.

어느새 왼손 전체에 독이 퍼져 있었다.

이제 슬슬 왼손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거기다 독이 왼손을 넘어 손목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몇 분 지나면, 내 왼팔 전체가 초록색으로 물들 터였다.

‘그리고 그대로 어깨를 넘어 심장 쪽으로 넘어오면, 나는 사실상 죽는 거나 마찬가지지.’

전투를 속전속결로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내 최대의 장점을 살려 비겁하게 싸울 생각이었다.

‘신전의 저 광원들. 총 열세 개가 있네.’

석상 위에서, 그러니까 고지대에서 둘러보니 이 신전의 모습이 더 잘 보였다.

신전은 폐쇄된 구조였고, 신전을 밝히고 있던 광원들이 곳곳에 있었다.

나는 그 광원들 중 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지직—

내 손에서 전류가 나와 그대로 광원을 향해 날아갔다.

전류에 맞은 광원은 그대로 파괴되었다.

“통하네. 그렇다면…….”

나는 남은 열두 개의 광원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그 광원들을 향해 전류를 날리기 시작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별것 아니야. 그냥 나만을 위한 무대를 만드는 것뿐이지.”

나는 이 말과 함께 광원들을 하나씩 전부 없앴다.

이내 마지막 광원까지 사라지자, 신전은 완벽한 어둠에 먹혔다.

“…무슨 속셈이지? 여기를 어둡게 만들어 봤자, 뭔 의미가 있다고?”

“의미가 많지.”

나는 코트의 주머니에서 실키의 가면을 꺼내, 얼굴에 가져갔다.

“어두운 곳이야말로 내 주 무대거든.”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군. 이렇게 어둡게 해 봤자 서로가 서로를 못 보는 것밖에…….”

“틀렸어.”

나는 석상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지금 앞을 못 보는 건 너뿐이야.”

“그러니까 지금 무슨 소리를… 아악?!”

“그 말 그대로야. 너는 내가 안 보이겠지만, 나는 네가 대충 보이거든.”

“대체 어떻게… 크아아악?!”

“꼬우면 너도 좋은 장비 구해 오든가.”

나는 피식 웃으며 남자를 향해 자바니아를 정확히 휘둘렀다.

광원이 없어진 덕에, 신전은 지금 한 치 앞이 안 보였다.

보통이라면 이런 곳에서 절대 전투 같은 건 불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지.’

회귀하기 전, 사람들은 나를 상대로 어두운 곳에서 싸우기를 꺼려 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가면 덕이었다.

‘참 유용한 물건이라니까.’

남자의 눈먼 공격을 피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실키의 가면에게는 상당히 많은 기능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어둠에서도 볼 수 있는 기능.

정확히 말해, 빛이 있을 때만큼 정확히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근처의 사람이나 물건의 형체는 볼 수 있었다.

‘뭐, 그것만 해도 충분하지.’

이런 어둠에서 적은 형체도 제대로 못 볼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형체만 대략적으로 볼 수 있어도 적을 일방적으로 이길 수 있었다.

“인간, 너, 무슨 수작을…….”

“수작 부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커억?!”

“그냥 장비가 좋은 것뿐이야.”

나는 남자의 눈먼 공격들을 쉽게 피하며, 그를 향해 자바니아를 휘둘렀다.

그리고 이후로 이 패턴이 반복되었다.

남자는 앞이 안 보이는 상태로 애먼 곳을 공격하고, 나는 그걸 쉽게 피해 자바니아로 공격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안 쓰러지는 거야.’

자바니아로 스무 번 정도 찔렀는데도 남자는 내게 계속 덤벼들었다.

이에 나는 이 남자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짙어졌다.

그래서 나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차 그를 넘어뜨렸다.

“으윽… 이런 비겁한 방식으로 싸움을…….”

“암살자는 원래 비겁해. 그보다 너, 얼굴이나 좀 보여 봐라.”

나는 남자의 후드를 뒤로 걷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칼빵을 수십 번 맞고도 멀쩡… 으음?”

남자의 얼굴을 보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의 형체가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지?’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몸 주위로 전류를 불러내 빛을 냈다.

하지만 빛을 내서 확인한 남자의 얼굴은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너 정체가 뭐냐?”

남자에게 얼굴은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얼굴은 계속 모양이 바뀌었다.

평범한 남자의 얼굴에서 노인의 얼굴로, 그러다가 아이의 얼굴로.

그의 얼굴이 매초마다 달라졌다.

“신의 대리인의 얼굴은… 함부로 봐서는 안 되는 것이지.”

“신의 대리인?”

“후후후. 히얏!”

“윽?”

내가 낸 빛 때문에 앞이 보인 남자는 단검을, 그러니까 마카리를 내게 휘둘렀다.

나는 재빨리 물러나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자는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인간이여. 네 이름, 무엇이냐?”

“…박유진이다.”

“박유진. 좋다. 박유진이여.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인간은 네가 처음이다. 너는 ‘거미의 왕’의 힘을 지닐 자질이 있다는 걸 증명했어.”

“잘됐네. 그럼 이 더러운 싸움 좀 끝내고 나를 보내 줄 수…….”

“하지만 아직 자격이 부족해! 이 힘은 진정으로 강한 자만이, 시련을 이겨 낸 자만이 가질 수 있다! 그러니 박유진. 너에게 마지막 시련을 내리도록 하지.”

“아니, X발. 저 거미의 왕이고 뭐고, X도 필요 없으니까 그냥 나를 좀 여기서…….”

끝나지 않는 그놈의 시련 때문에 나는 욕을 하며 남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마지막 시련까지 극복해 보거라! 그럼 너에게 이 힘을 허락해 주마!”

남자의 이 말과 함께, 갑자기 신전이 다시 밝아졌다.

둘러보니, 내가 파괴했던 광원들이 다시 복구된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상관없었는데, 문제는…….

키이이이!

쉬익!

크크클.

탱크보다 더 큰 세 마리의 거미.

그러니까 아까 오던 길에 봤던 아크라맨튤라, 아라크네론, 아난시.

거미형 몬스터들 중에서도 최강인 세 마리가 신전 쪽으로 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 셋만 오는 게 아니었다.

“미치겠네.”

수백 마리의 거미 떼들까지 함께 오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거미들부터 성인 남성 크기의 거미들까지 말이다.

“자, 이걸 전부 이겨 보거라! 신의 힘에게도 대항할 수 있다면, 너에게 순순히 이 힘을 넘겨주마.”

“신의 힘은 또 뭔 개소리냐? 그리고 그냥 그 힘을 줄 생각 없다고 해, 이 개새끼야.”

지금의 나로는 저걸 못 이겼다.

게다가 심지어 내 왼팔은 독에 당해, 전력을 낼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탈출구를 찾자.’

이 신전에 분명 도망칠 길 하나쯤은 있을 터였다.

그걸 어떻게든 찾아내면…….

우웅!

“음?”

속으로 계획을 세우던 중, 갑자기 내 목의 돌멩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또 뭔 일인가 싶어, 엔드리온의 조각을 바라봤는데, 그 순간.

- 고생했다. 인간으로서 할 건 다 했어.

“…응?”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이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은 것만 같은…….

- 여기서부터는 우리들의 영역이니, 너는 이만 쉬고 있어라.

이 말과 함께 엔드리온의 조각에서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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