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87화 (87/240)

87화

- 아라고노트의 대리자여. 멈추도록 하게.

작은 돌멩이에서 푸른색 광원이 튀어나왔다.

그 광원은 남자의 앞을 향해 날아갔다.

- 내가 누군지는 알겠지?

“다, 당신은…….”

- 거미들을 물러나게 해. 어서.

“아, 알겠습니다.”

광원에서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

이에 남자는 놀란 표정과 함께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내게 다가오던 거미들은 바로 뒤로 물러났다.

“여신님을 뵙습니다. 하나 대체 이곳에는 왜…….”

- 나를 만난 게 싫은 눈치다?

“아,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런 생각을…….”

- 됐고, 내가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우리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이 말과 함께, 광원이 더 커졌다.

광원은 남자를 감싸, 이내 남자는 빛나는 구체 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구체 안에서, 남자 앞에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있었다.

‘여자…인가?’

푸른빛으로 이루어진 듯한, 머리가 상당히 긴 여자.

다만 여자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여자의 형태가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빛은 여자의 형태를 이루었으나, 그 형태가 구체적이지 않았다.

얼굴이나 입고 있는 옷 등, 무엇 하나 제대로 안 보였다.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어.’

구체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멀어서 그런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그 구체에 다가갔으나…….

“윽.”

몸이 튕겨져 나갔다.

나는 다시 구체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진짜 뭔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알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이 게이트부터 시작해, 저 정체 모를 남자.

그리고 방금, 엔드리온의 조각에서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까지.

처음 겪는 일들 때문에 내 머리가 많이 혼란스러웠다.

-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금 저 인간에게 이 힘이 필수적으…….

“하지만 제가 지키는 힘은 함부로…….”

- 저 인간은 이미 신들에 의해…….

가까이 다가가자 구체 안에서 들려오는 두 목소리.

나는 그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나, 마치 필터링이 되는 듯 잘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건 해 봤자 단어 몇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단어들도 영문 모를 것들뿐이었다.

‘인류의 미래? 신들? 저건 또 뭔 소리야?’

나는 원래 무신론자였다.

근데 막상 생각해 보니, 내 회귀한 건 어쩌면…….

- 이야기는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속으로 생각하던 중, 구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여자는 다시금 작은 광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 아라고노트의 대리자여. 내 말을 잘 이해했을 거라고 믿겠네.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 좋아. 그럼…….

푸른색 광원은 다시 내게 날아와, 내 목에 걸린 돌멩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내 머릿속에 울렸다.

- 유진. 우리는 괜히 너를 선택한 게 아니야. 너의 손으로 인류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 줘.

“뭐라고?”

나는 의문을 표했으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빛을 내며 진동하던 돌멩이는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아니, 이게 대체 뭐냐니까?”

인류의 운명이니 뭐니 같은 소리나 하고.

뭔가 내가 회귀한 것과 관련이 있는 거 같은데, 내가 회귀한 것과 인류의 운명이 대체 뭔 관련이 있다는…….

“박유진이여.”

“음?”

“자네가 신에게 인정받고, 나아가 신의 힘을 부여받는 자라는 걸… 내가 미처 몰라봤군.”

“…그건 또 뭔 소리냐?”

이해할 수 없는 말들 투성이였다.

애초에 신을 만난 적도 없는데, 신에게 어떻게 인정받냐고?

게다가 신의 힘 같은 걸 부여받은 기억도 없었다.

남자의 그 말 덕분에, 안 그래도 복잡했던 내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라고노트의 대리자라 불린 남자는 말을 계속했다.

“자네에게 자질이 있다는 건, 내가 직접 싸워 보면서 확인했지. 그리고 원래 같았으면 자격은, 자네가 이 거미들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지켜보면서 판단할 생각이었어. 하지만 이제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지.”

남자는 내 목에 걸린 엔드리온의 조각을 바라봤다.

“자네는 이미 신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신의 힘이라는 게 뭔데? 그리고 너와 방금 그 여자의 정체는 뭐고?”

“자신이 쓰는 힘이 무엇인지 모르는 건가? 하긴, 인간들 중에서 우리의 존재를 명확히 아는 건 극소수였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걱정 말거라. 너도 언젠가 이 모든 것에 대해 알게 될 터이니까.”

“…뭐라는 거야?”

나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존재, 그리고 이 게이트.

계속 말했듯, 전부 이질적이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계속 신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귀찮은 일에 연관된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이제 이 시련이 더는 의미가 없으니…….”

남자는 내 왼손을 바라보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독이 퍼지고 있던 내 왼팔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독이 내 왼팔에서 전부 빠져나간 것이었다.

“박유진이여. 영광으로 알거라. 자네가 인간 중에서 세 번째로 ‘거미의 왕’이 된 거니까.”

“세 번째고 뭐고, 그놈의 ‘거미의 왕’이라는 게 뭐냐? 설명해 줄 수 있어?”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네가 직접 쓰면서 알아 가야 될 것이지.”

남자는 이렇게 말하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혹시나 해서 자바니아를 들어 올리려다 이내 내렸다.

그도 그럴 게, 남자에게서 더 이상의 적의가 안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스타페리아. 거미와 암살의 신, 아라고노트의 대리자.”

남자는 몽환적인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내 왼손을 붙잡았다.

나는 놀라며 손을 빼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남자가 내 손을 세게 잡은 게 아니었다.

정체 모를 기운이 내 손을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라고노트 님을 대신해 너에게 이 힘을 허가하겠다.”

남자는 자기 손에 있던 반지를 빼내더니, 그 반지를 내 왼손의 검지에 끼웠다.

그 순간, 엄청난 통증이 내 전신에 퍼졌다.

“무슨 짓을…….”

엄청난 압력이 내 몸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금 뭔…….”

“신의 힘을 처음으로 손에 넣은… 아니지. 자네는 이미 갖고 있었으니까.”

남자는 내 목에 걸린 푸른 돌멩이를 바라보며 말을 정정했다.

“두 번째 신의 힘을 얻은 걸 축하하네. 그리고 앞으로 자네의 활약을 기대하지. 자네가 진정한 ‘거미의 왕’이 될 수 있게 말이야.”

“왕 같은 소리 하네. 나는 왕 같은 건…….”

쉬이이익!

키아아아!

나는 말하려고 했으나 거미들의 울음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혔다.

주변에 있던 수백의 거미들이 어느새 내 근처에 다가와 몸을 낮추고 있었다.

거미 종류에 상관없이, 크기에 상관없이 전부 말이다.

심지어 아크라맨튤라, 아라크네론, 아난시.

그 세 보스 몬스터들까지 내게 머리와 몸을 숙이고 있었다.

“…살다 살다 이런 광경을 다 보네.”

몬스터들을 그동안 죽이기만 했지, 몬스터들에게 이런 식의 인사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이 게이트에서 알 수 없는 일들만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거미들이 새로운 후계자의 탄생에 기뻐하는구나. 모두가 자네에게 기대하는 만큼, 잘 부탁하도록 하지.”

“…이것만 대답해 줘.”

사실 정황상 답은 확실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 남자에게 직접 답을 듣고 싶었다.

“신들이 존재하는 거냐?”

“존재하지. 너희들 인간이 부르는 그, 뭐였냐? 아, 그 게이트들. 게이트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나타나는 줄 알았나?”

“…잠깐, 뭐? 게이트들이 나타나는 이유를 알고 있는 거야?”

게이트들이 왜 나타나는지, 그 원인을 지금까지 아무도 못 알아냈다.

만약 이걸 알아만 낼 수 있다면, 이후로 희생되는 헌터들의 수를 줄일 수…….

쿠콰콰쾅—!

“으윽?”

“아무래도 이곳에서의 시간은 끝난 거 같군.”

게이트가 갑자기 흔들렸고, 신전의 기둥들과 석상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저 침착한 목소리였다.

“자네라는 적임자를 찾았으니, 이곳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지.”

“…나도 이제 모르겠다.”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계속 일어나니, 나도 어느새 체념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또 뭘 하면 되는 거냐?”

“이제 자네가 할 건 없어.”

후드를 깊게 눌러쓴 남자는 내 왼손의 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자네가 할 건 많지. 그러니 열심히 해서, 반드시 운명을 뛰어넘도록 해, 이해했지?”

“이해를 했겠냐? 이 게이트가 뭔지부터 이해가…….”

“오늘의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언젠가 이해하게 될 거야. 조급해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남자는 후드를 거두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게, 아까 그의 얼굴을 봤을 때, 그의 얼굴은 계속 모양을 바꾸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 스타페리아를 기억하도록 해. 아라고노트의 대리자로서 언젠가 너를 다시 보러 갈 테니까.”

평범한 청년의 얼굴을 한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야, 잠시만…….”

나는 남자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내가 말을 꺼내려던 순간, 주변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무너져 가는 신전 안이었는데.

“여기는…….”

어두운 지하.

내가 이질적이고 조그마한 게이트를 처음 발견한, 구인사의 지하였다.

상황을 파악한 후, 나는 그 작은 게이트가 있던 구석 쪽으로 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게이트는 사라져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꿈이라도 꾼 거 같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한순간의 꿈이 지나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왼손 검지에 있는, 검은색 보석이 박힌 반지.

그 반지 덕에, 지금까지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 *

그렇게 몇 시간 뒤.

“그래서 어디 갔다 온 거냐고?”

“그냥 절에 좀 갔다 왔어. 별일 없었고.”

“별일 없기는 개뿔. 네 꼴을 좀 봐라.”

더 할 일 없던 나는 구인사에서 서울로 바로 돌아갔다.

이것저것 확인하러 고연대 훈련장으로 향했는데, 이민아는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어이없으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코트는 엄청 더러워졌고, 너 몸에 상처 난 곳이 한두 곳이 아니거든? 대체 뭔 일이 있었기에 네가 이렇게까지…….”

“넘어진 것뿐이야, 인마.”

“야, 내가 암만 빡대가리라지만, 그 정도에 속지 않…….”

“알기는 아는구나.”

“뭐?! 야, 이 개새…….”

“됐고,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훈련장에 들어가며, 엔드리온의 조각에 전류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엄청난 전류가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몸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전류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체력이 X나 좋아졌네.”

어중간하게 좋아진 게 아니었다.

방금 엔드리온의 조각이 내뿜는 전류를… 약 20분 동안 버텼다.

내 경험상, 이런 고압의 전류를 그렇게 오래 버티는 건 분명…….

“내 신체 능력이… 최소 C급이라는 뜻이야.”

다른 능력치에 변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신체 능력 하나만큼은 좋아진 게 확실했다.

‘설마 이 반지 덕분인가?’

나는 내 왼쪽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봤다.

아직까지도 뭐 하는 반지인지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이 반지를 손에 넣은 후, 전보다 신체 능력이 좋아진 듯한 느낌이…….

‘아니, 일단 함부로 단정하지 말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정에 불과했다.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직접…….

“야, 박유진. 너 아까부터 그냥 멍하니 서 있던데, 괜찮은 거 맞아?”

속으로 생각하던 중.

언제 다가온 건지, 이민아는 옆에서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너 거의 20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었어. 혹시 몸 안 좋은 거면… 응? 그러고 보니 그 반지, 오늘 아침에 못 보던 건데, 언제 구한…….”

“이민아. 마침 잘 됐다.”

“…응?”

“내 대련 상대 좀 해 줘라. 나 확인할 게 있거든.”

이런 변화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실전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때마침 좋은 상대가 한 명 있었다.

하지만 그 상대는 나랑 썩 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꼭 그래야 해? 어차피 나 또 너에게 쳐 맞고 지기만 할 텐데. 게다가 너는 지금 나랑 대련이 아니라, 나랑 병원이나 가는 편이…….”

이민아는 내키지 않는다는 티를 냈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그녀는 다루기 매우 쉬운 친구였으니 말이다.

“이민아. 나와 지금 싸워 주면 이따가…….”

나는 이민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고, 그걸 들은 이민아의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진짜지? 이따 딴말하기 없기다.”

“이런 걸로는 거짓말 안 해, 인마.”

“그, 그렇다면… 좋아! 덤벼! 최선을 다해 싸워 줄 테니까!”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역시 다루기 참 쉬웠다.

그럼 내가 개고생하면서 얻은 이 반지.

이 반지가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