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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88화 (88/240)

88화

‘그나저나 이 반지, 안 빠지는구나.’

이민아와의 대련을 끝마친 후에 알아낸 사실이었다.

손에 땀이 차서 반지를 빼려고 했는데, 반지가 안 빠지는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이런저런 짓들을 해 봤는데, 반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빠졌다.

‘뭐, 상관없으려나.’

애초에 이 반지를 손가락에서 뺄 일이 앞으로 없을 듯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게, 오늘 얻어 온 이 반지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신체 능력이 생각 이상으로 좋아졌어.’

D급에서 C급.

이 반지를 손에 넣은 후, 적어도 신체 능력만큼은 한 단계 상승했다.

물론 지금 내 체력은 C급 헌터들 사이에서도 최하위수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C급 헌터의 수준으로 올랐다는 것이었다.

‘신체 능력뿐이지만, 그걸 한 단계 올리는 것도 절대 쉽지 않아.’

나야, 실전으로 다져진 경험들 덕분에 E급에서 D급으로 빠르게 올랐다.

하지만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E급에서 A급까지 올라가면서, 나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 단계를 올라가는 것만 해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신체 능력을 기르는 게 매우 어려운 편에 속했다.

‘근데 그걸 이렇게 쉽게 올리네.’

이 반지를 고생해서 얻은 보람이 느껴졌다.

신체 능력만 오르고, 그 외의 능력은 안 올랐다는 게 아쉽긴 했다.

하지만 전투에 있어 신체 능력은 매우 중요했다.

속도와 힘의 차이가 전투의 결과를 판가름할 때가 많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체력이 좋아진 덕에, 엔드리온의 힘을 더 잘 쓸 수 있게 되었어.’

고압의 전류를 더 오래, 그리고 더 섬세하게 다루는 게 가능해졌다.

이 또한 내게 있어 엄청난 것이었다.

‘C급의 신체 능력. 거기다 엔드리온의 힘을 빌리면, 적어도 20분은 전성기 시절의 전류를 낼 수 있어.’

지금의 내 수준…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아마 내 전성기 시절의 50%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아으으으. 야, 이 개새끼야. 너 X나 너무한 거 아냐?”

내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내리던 중, 근처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 오늘 아침보다 더 세진 거 같거든? 너 그 뭐냐, 구인사? 거기서 뭐 하고 온 거냐?”

“…특별한 일은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기는 개뿔.”

이민아는 바닥에 쓰러진 채 헛웃음을 보였다.

“너 방금 맨손으로 나랑 싸웠잖아.”

“그치.”

“그것도 뭐 이상한 기술 안 쓰고, 내 앞에서 정정당당히, 무슨 특이한 무술로 싸웠고.”

“그게 왜?”

“그게 왜, 가 아니라고, 이 새끼야!”

이민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B급 탱커야. 그것도 늑대인간. 나는 정면승부에서는 밀린 적이 거의 없어. 적어도 이 학교 내에서는 그랬다고.”

“나는 너 이긴 적 많잖아.”

“아니, 너는 매번 뭐 이상한 기술 썼잖아. 그건 나는 정면승부라고 안 봐. 근데 방금은…….”

이민아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내 시야에서 벗어나는 이상한 기술이나, 전기 날리는 거나… 그런 걸 하나도 안 썼잖아. 내 정면에서, 그것도 맨손으로 싸웠는데… 내가 졌어. 이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하기야. B급 헌터, 그것도 탱커를 정면승부로 이기는 건 쉽지가 않지.”

“게다가 네 체력, 그저께보다 훨씬 좋아진 거 같았어. 아무리 봐도 D급이 아니던데. 거의 B급 딜러들과 맞먹는…….”

“에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E급에서 A급까지 전부 겪어 본 나였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C급 딜러의 체력, 그것도 상당히 아슬아슬한 C급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뭐, 이민아 입장에서는 C급 이상으로 보일만도 하지.’

나는 일반적인 헌터가 아닌, 10년 넘게 싸우기만 한 헌터였다.

그렇다 보니 C급의 신체 능력을 가졌지만, 경험과 노하우 덕에 실질적으로 거의 B급에 가까운 놈일 터였다.

‘뭐, 아무튼.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대충 알 거 같다.’

방금 이민아와의 대련을 통해 그걸 보다 더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반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결론 또한 확실히 내릴 수 있었다.

‘신체 능력을 한 등급이나 올려 주는 아이템은 어디서도 쉽게 못 구하지.’

게다가 이 반지… 단순히 신체 능력만 올려 주는 물건이 아닌 듯했다.

근거는 없었지만, 내 직감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남자, 스타페리아였나? 그 남자가 분명 거미의 왕인가 뭔가 하는 힘이라 했어.’

거미의 왕.

나는 이게 무엇인지 아직 정확히 몰랐다.

다만 몇 시간 전, 스타페리아와의 전투 때.

스타페리아는 ‘거미의 왕’의 힘을 일부 썼다고 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광경들이 몇 개 있었는데.

‘거미줄을 손가락 끝에서 뽑아냈고, 거기다 거미들을 지배하기도 했어.’

아마 이것 외에도, 이 반지에 보다 다양한 힘이 내재되어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 두 개의 능력만 얻어도, 내게 있어 엄청난 이득이었다.

특히 거미줄을 다루는 능력은 나의 전투 스타일에 있어…….

“야, 박유진. 이제 끝난 거지? 나 너와 더 안 싸워도 되는 거 맞지?”

“음? 아, 그래. 대련은 여기서 끝. 고생했어.”

“응, 나 X나 고생한 거 같아.”

이민아는 훈련장 바닥에 대자로 뻗으며 눈을 감았다.

“너를 상대로 싸우는 거 X나 힘든 거 알지? 너와 싸우면 신경 쓸 요소가 너무 많아서 몸도, 정신도 피곤해진다고.”

“걱정 마라. 앞으로 당분간 나랑 대련할 일은 없을 테니까.”

“응? 그게 뭔 소리야?”

“오늘부터 헌터 대전 시작하는 날까지 매일 훈련만 할 거니까. 아마 나와 대련하기보다는 다른 것들을 많이 할 거다.”

“아아, 아. 어어, 후, 훈련. 그, 그렇구나. 후, 훈련 좋지.”

어째서인지 이민아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그럼 나 또 안 아프게 맞는 거 연습하고, 반응 속도 늘리는 그 개같은 연습을…….”

“개같다니. 그거 나름 많은 헌터들이 활용하는 훈련 중…….”

“그보다! 지, 지금 바로 훈련을 시작할 건 아니지?”

“지금 바로 할 생각이었는데? 어차피 너나 나나 지금 할 것도 없잖아.”

“하, 할 게 없기는 왜 없어?! 무엇보다 너!”

이민아는 바로 몸을 일으키며 내게 다가왔다.

“너 오늘 아침에 한국 도착하고, 또 바로 충북에 가서 뭐 하고 왔다면서. 피곤할 텐데 오늘은 그냥 쉬어라. 게다가 너 몸에 상처들 꽤 있는 거 같던데, 병원이라도…….”

“나 멀쩡해, 인마. 너 훈련하기 싫은 건 알겠는데,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우승이 목표라며?”

“그렇기는 한데… 으으, 솔직히 네가 시키는 것들 너무 힘들어. 나 집에서 하는 훈련보다 더 빡센 훈련은 이번이 처음이라니까.”

“원래 고생을 해야 성장할 수 있는 거야. 됐고, 슬슬 준비하자. 오늘은 가볍게 세 시간이나 네 시간만 하고…….”

“자, 잠깐만.”

이민아는 재빨리 내 말을 끊었다.

“아까 네가 내게 약속한 거. 그거 지금 쓸게.”

“…그걸 바로 쓴다고?”

“왜? 안 될 것도 없잖아.”

“그렇기는 하다만…….”

아까 대련하기 전, 나는 이민아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제안 하나를 했다.

바로 대련을 최선을 다해 해 주면, 나중에 원하는 날, 원하는 장소에 같이 놀러 가 주겠다고 말이다.

“그걸 오늘 바로 쓸 줄은 몰랐지. 너 나랑 그렇게까지 훈련하기 싫었냐?”

“아니, 싫은 건 아닌데… 그냥 나는 미룰 수 있는 건 가능한 미루는 편이라서, 헤헤.”

“뭐, 그게 너답기는 하다.”

“으, 응. 게다가 그… 솔직히 너도 오늘은 이만 쉬었으면 했거든.”

이민아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너 오늘 아침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거잖아. 게다가 바로 충북까지 갔다 왔는데, 좀 쉬는 게 좋지 않을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야, 너 그러다 몸 상한다니까. 내 말 듣고, 너 오늘 제발 좀 쉬어라.”

“굳이 그럴 필요 없…….”

“그냥 내 말 들어, 새끼야. 너는 네 스스로가 다치는 걸 크게 신경 안 쓰겠지만…….”

이민아는 꽤 진지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네가 다치는 것에 마음 아파할 사람이 있다는 걸, 적어도 알고 있으면 좋겠어.”

“…알겠어, 인마. 알겠어.”

저렇게까지 말하니, 나는 그냥 꼬리를 내렸다.

뭐, 사실 조금 피로감이 느껴지던 차라, 이민아 말대로 오늘은 이만 쉬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그럼 오늘은 훈련이니 뭐니 하지 말고 놀러나 가자. 그런 의미에서, 혹시 가고 싶은 곳 있냐?”

“흐음, 너랑 놀러 갈 곳이라… 아무래도 마음과 몸이 안정을 취할 수 있을…….”

이민아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평소에는 이렇게 안 진지한 녀석이, 나랑 놀러 갈 곳에 왜 이렇게 진심으로…….

“아! 하나 있다! 너랑 가고 싶었던 곳!”

이민아는 이 말과 함께, 내 손을 잡고 훈련장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약 30분 뒤.

고연대학교를 벗어나, 이민아가 나를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야, 이민아.”

“응?”

“네가 고양이 좋아하는 줄은 처음 알았다.”

“그래?”

“늑대는 갯과고, 개는 보통 고양이를 싫어하잖아. 그래서 너는 당연히 고양이를…….”

“X발. 야, 그건 또 뭔 근본 없는 헛소리냐? 그리고 나는 늑대 ‘인간’이지, 늑대가 아니야.”

“아, 네, 네. 그렇기는 하죠.”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아무튼, 이민아가 우리를 데려온 곳은 다름 아닌 고양이 카페.

그러니까 온갖 고양이들이 다 있는 카페 말이다.

뭐, 나야 딱히 고양이에게 큰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라 그러려니 했지만.

“와, 얘 좀 봐. 엄청 귀엽지 않아?”

이민아는 꽤 관심이 있는 듯했다.

그녀는 내 옆에 앉아, 자기 무릎 위의 고양이를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쓰다듬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귀엽기는 하네.”

평소에 귀여운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근데 막상 이런 고양이들을 보니, 조금 흥미가 생기는 거 같기도 했다.

“야, 이 녀석 어때? 솔직히 얘가 제일 귀여운 거 같은데?”

카페를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을 구경하던 중.

이민아는 방금 자기 무릎에 뛰어온 갈색 고양이를 내게 보여 주며 말했다.

이에 나는 그 고양이를 잠시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엽기는 하네. 뭔가 너 닮은 거 같기도 하고.”

“나, 나를 닮았다고?”

“…아닌가?”

갈색 고양이, 그리고 갈색 단발머리의 이민아.

같은 색이라 비슷해 보였는데, 지금 보니까 조금 달랐다.

이민아는 고양이보다는 강아지와 비슷한 느낌이 있는…….

“저희 카페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으로 생각하던 중, 갑자기 고양이 카페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기 처음 오신 손님들께 무료로 음료수 한 잔씩 제공하고 있는데, 혹시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실까요?”

“아아, 저는 망고 스무디 하나로 부탁드릴게요.”

“저도 똑같은 걸로 해 주세요.”

메뉴 정하기 귀찮았던 탓에, 그냥 이민아와 같은 걸 마시기로 했다.

이에 직원은 미소와 함께 주문을 받아적은 뒤, 우리에게 다시금 말을 걸었다.

“네,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그리고 두 분, 엄청 잘 어울리는 커플이시네요.”

“네? 커플이요? 저, 저희가요?”

아무런 의도 없이, 순수하게 보이는 대로 말한 직원의 말.

이에 이민아는 상당히 당황했고,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 두 분 연인 아니셨나요?”

“그, 그게… 그러니까…….”

“네, 저희는 커플 같은 게 아닌…….”

나는 직원에게 대충 아니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귀찮아졌다.

여기서 아니라고 말하면 뭔가 분위기가 어색해질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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