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하아아, 끝났네.”
기말고사의 마지막 날.
나는 이 날의 마지막 시험을 끝마친 후였다.
‘대충 잘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적어도 몬스터와 관련된 건 만점 받을 듯했다.
솔직히 몬스터와 관련해, 나만 한 전문가는 이 학교에서 찾기 힘들 터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외의 과목들이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뭐가 어찌 됐든,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지나간 일에 묶여 있는 건 좋지 않았으니, 나는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아갔다.
그 할 일이란 다름이 아닌…….
파지지직—!
파직—!
헌터 대전을 대비한 훈련이었다.
시험을 끝낸 직후, 나는 바로 고연대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흡수해 보자.”
나는 엔드리온의 조각이 내뿜는 전류를 가능한 많이 흡수했다.
평소보다 더 많이 흡수한 후.
콰콰쾅—!
그걸 원본의 위력을 최대한 살린 채 방출했다.
그러나 몇 주나 이 짓을 반복했음에도, 전보다 큰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고 변화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나는 근처의 과녁에 내 전류를 다시 날렸다.
그러자 과녁에 커다란 금이 생겼다.
엔드리온을 얻기 전에 비하자면, 내 전류의 위력이 많이 상승한 것이기는 했다.
‘느리지만, 착실하게 성장 중이네.’
눈에 띄는 성장이 없어, 사람에 따라 답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런 과정을 거쳐 봤기에 잘 알았다.
‘지금은 기초를 다져 놔야 되는 시기지.’
눈에 띄는 성장보다, 앞으로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
신체 능력은 이 ‘거미의 왕’인가 뭔가 하는 반지 덕에 C급까지 올렸다.
하지만 다른 능력, 특히 일렉트로 마스터로서의 능력은, 엔드리온의 조각 없이는 여전히 D급 수준이었다.
그러니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 기본기를 더욱더…….
“뭐야? 너 벌써 와 있었냐?”
훈련을 계속하던 중, 훈련장의 출입구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나는 피식 웃으며,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런 건 매일 해 줘야 실력이 늘거든.”
“참 대단한 근성이네. 솔직히 그 근성이면 헌터 아니었어도 성공했을 거 같다.”
이민아는 피식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 또한 피식 웃으며, 잠시 훈련을 멈췄다.
“넌 생각보다 늦게 온 거 같다?”
“시험이 조금 어렵더라고. 그래서 푸는 데 시간이 걸렸어.”
“그래? 그러고 보니 오늘이 시험 마지막 날인데, 잘 봤냐?”
“다, 다, 당연히 잘 봤지! 내가 전에 말했잖아. 나는 시험 일주일 전부터 공부해도 충분히…….”
“오늘 낮에 본 몬스터의 생태, 그거 1번 문제 답 뭐라 적었냐?”
“어어어, 1번 문제?”
이민아는 당황한 눈빛이었고, 이에 나는 피식 웃었다.
“보가트가 영국에서 가장 많이 빙의하는 가축은?”
“다, 닭이잖아! 닭에게 빙의해서 울음소리로 무슨 이상한 뱀의 부화를 막는…….”
“소야, 인마. 이거 가장 쉬운 문제였는데, 으음, 아니다.”
“야, 이 개새끼야! 말하려던 거 끝까지 말해!”
“됐어. 아무튼, 우리 이제 1학기 확실히 끝난 거지?”
“그치. 계절 학기 같은 것만 없으면 끝났지.”
“너는 계절 학기 안 듣지?”
“안 듣지. 당장 학점 급한 건 없거든.”
“좋았어.”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헌터 대전 시작할 때까지 아무 일정 없는 거지?”
“그렇기는 한데… 야, 너 눈빛 좀 무섭다? 나한테 뭐 시키려고?”
“별 것 안 시킬 거야. 그냥 오늘부터 헌터 대전 시작 전날까지 빡세게 훈련하자고.”
“…박유진? 빡세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 그냥 천천히, 차근차근하는 것도…….”
“헌터 대전에서 우승하고 싶다며? 우승하려면, 빡세게 해야지.”
“우, 우승 안 해도 괜찮은데, 혹시…….”
“어서 옷 갈아입고 와. 일단 간단히, 탱커로서 안 아프게 맞는 방법들을 다시 복습을…….”
“야, 내가 잘못했어!”
태연히 말하고 있었는데, 이민아는 울상을 지으며 나를 붙잡았다.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살려 줘!”
“뭐라는 거야? 야, 근데 솔직히 이거 그렇게까지 빡세지는 않잖아, 안 그래?”
“야! 네가 이걸 해 보고…….”
“됐고, 어서 시작하자. 오늘 저녁 8시까지 안 쉬고 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야! 나 죽기 싫다니까!”
이민아는 울상이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와의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훈련 끝날 때까지, 이민아의 비명이 꽤 자주 들린 듯했다.
* * *
“아아아아, 으으으으. 야, 유나야. 네 오빠가 오늘 날 죽이려 했다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날 밤.
이민아는 우리 집에 들렸다 가고 싶다고 해, 나는 별생각 없이 그녀와 함께 집에 왔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이민아는 유나 곁으로 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나 X나 힘들었어. X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한테 그 훈련용 골렘들에게 그냥 맞으라고 하는… 아악?! 야, 왜 때려?!”
“유나 앞에서 말 가려서 해. 욕 함부로 하지 말고.”
“으으으. 야, 솔직히 유나도 이제 알 거 다 알 나이잖아! 이거 과보호야, 새끼야.”
“어어, 오, 오빠. 나는 괜찮으니까 민아 언니에게 너무…….”
“거봐, 개새끼야! 민아도 내 편… 아악!”
“말 가려라.”
“…네.”
이민아는 울상을 지었지만, 한 대 더 맞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피식 웃으며 부엌 쪽으로 향했다.
“아무튼, 이민아. 너 저녁 여기서 먹고 간다 했지?”
“아무거나 줘. 나 지금 뭘 먹어도 맛있을 거 같아.”
이민아는 거실 바닥에 쓰러진 채 힘겹게 대꾸했다.
“너무 힘들어.”
“오빠. 오빠는 쉬고 있어. 저녁 준비 내가 할게.”
“됐어. 준비할 것도 별 것 없는데.”
이렇게 말했지만, 유나는 결국 내 곁으로 와 저녁 준비를 도와주었다.
“그러고 보니 오빠 방학에도 학교 간다고 했지?”
“헌터 대전 준비해야 되거든. 아마 헌터 대전 시작 전까지 훈련장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거다.”
그런 의미에서, 라고 말하며 나는 거실에 누워 있는 이민아를 바라봤다.
“이민아. 우리 오늘 한 거 내일도 할 거니까, 내일 아침까지 훈련장으로 와. 알겠지?”
“아아아아! 야, 제발! 이러다 나 죽는다고오오!”
이민아는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으나, 이건 이미 정해진 사안이었다.
헌터 대전에서 최대한의 성적을 내고, 나아가 이민아의 아버지에게서 인정을 받아 내려면 이 정도는 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음 날.
“야, 박유진. 헤엑, 헥. 아무리, 생각해도, 허억, 이건 아닌…….”
“탱커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해. 과장이 아니라, 최상위권의 탱커들에게 이건 기본이야.”
“하아, 하아. X발, 탱커가 이렇게 어려운 직업이었어?”
“탱커들이 괜히 귀한 취급을 받는 게 아니야. 다들 이 정도 노력을 했기에 인정받는 거지.”
나는 바닥에 쓰러진 이민아를 반강제로 일으키며 말했다.
“충분히 쉬었지? 그럼 바로 다시 가자.”
“에? 야, 잠깐만. 이건 아니지. 나 5분도 못 쉬었다니까.”
“5분이면 충분히 많이 쉰 거 아니냐?”
“아아, 제발. 솔직히 너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다 막는 거 X나 힘들다고.”
“말했잖아. 탱커라면 그 정도는 해야 된다고.”
나는 바닥에 있던 화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끝이 뭉툭해서, 살상력이 전혀 없는 화살이었다.
‘힘든 훈련이기는 하겠지만, 이민아라면 이 정도는 반드시 해내야 해.’
현재 이민아가 하는 훈련은 간단했다.
내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전부 대신 막아 내는 훈련이었다.
‘내가 탱커는 아니었지만, 탱커들, 특히 이민아가 해 왔던 훈련들은 잘 알고 있지.’
회귀 전의 그 경험들 덕에, 이민아에게 어떤 훈련이 가장 효과적인지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 맞춰 이민아에게 그 훈련들을 시켰는데…….
“아아아. 야, 박유진. 진짜 미안한데 나 좀만 더 쉬면 안 될까? 나 진짜 못 움직이겠어.”
“…알겠다.”
아무래도 지금의 이민아에게는 이 훈련들이 조금 벅찬 듯했다.
하긴, 지금의 이민아에게 이런 훈련들이 충분히 힘들 수도 있었다.
“20분 정도 쉬면 충분하지?”
“그, 30분은 어떨…….”
“25분. 됐지?”
“응, 그 정도면 충분해.”
이민아는 대답과 함께 바닥에 완전히 뻗어 버렸다.
많이 지친 듯한 이민아의 모습을 보니, 그녀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아무래도 훈련의 난이도 조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뭐, 이민아가 쉬는 동안 나도 연습 좀 하자.’
이민아를 구석에 놔둔 채, 나는 훈련장 중앙으로 갔다.
거기서 나는 엔드리온의 조각에 전류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평소대로, 엄청난 양의 전류가 내 몸 안에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자, 정리해 보자. 엔드리온의 전류를 최대 20분 동안 버틸 수 있고, 그동안 내 신체 능력이 전반적으로 하락해. 그리고 엔드리온의 힘을 한 번 쓰면, 그 후로 약 40분 동안 못 쓴다.’
내가 그동안 엔드리온의 조각을 쓰면서 알아낸 사실들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엔드리온의 조각은 내게 있어 필살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전투 중, 딱 한 번, 주로 마무리용으로 쓰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는 건, 평상시의 전투에는 나만의 전류로 싸워야 해.’
그래서 나는 그동안 내 전류의 위력을 올리기 위한 훈련들을 자주 했었다.
덕분에 그 결과, 나는 내 나름대로 성장을 했다.
파지직—!
나는 손에 전류를 불러내, 그걸 근처의 과녁을 향해 날렸다.
그러자 과녁의 중앙에 커다란 금이 생겼다.
‘이 정도면… D급 일렉트로 마스터들 중에서도 상위권은 되겠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했다.
하지만 맞는 길이었고, 그 길 위에서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좋아, 엔드리온. 이번에도 부탁할게.”
우웅.
내 말에 대답하듯 엄청난 전류를 내뿜으며 진동하는 푸른 돌멩이였다.
‘그나저나 엔드리온의 정체가 대체 뭘까?’
지난번, 구인사의 게이트에 갔다 온 후.
이 돌멩이에서 그 여자의 목소리를 두 번 다시 못 들었다.
솔직히 이 돌멩이가 정확히 뭔지 궁금했지만, 당장으로서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 성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편이 가장 효율적이었으니 말이다.
“후우우우.”
엄청난 전류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평소대로 그 전류를 이용해,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전류의 양과 위력을 조금씩 증가시켰다.
‘이대로만 하자. 이대로만 가면 나, 그리고 이민아는 분명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 몇 년 뒤, 몬스터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었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려면 나, 그리고 무엇보다 이민아의 성장이 중요했다.
회귀 전의 그런 암울한 상황을 막기 위해, 반드시 성장을 이루어야만 했다.
‘헌터 대전에서의 좋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성장하는 거 그 자체. 이 사실을 잊지 말자.’
그렇게 나와 이민아는 오늘, 그리고 나아가 방학 내내 훈련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헌터 대전의 시작 전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