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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92화 (92/240)

92화

“올해 헌터 대전에 참가한 팀은 총 열 팀입니다! 그리고 이미 들으셨겠지만, 월요일은 몬스터 사냥! 수요일은 팀전, 금요일은 개인전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오늘은 월요일이니, 열 개의 팀들이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여러분께 다양한 볼거리를…….”

고연대학교의 스타디움.

그곳의 선수 대기실 안, 중계 화면으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들어 보니 헌터 대전의 규칙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던데, 나는 굳이 저걸 들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걸 대신 설명해 줄 사람이 내 옆에 있었다.

“그러니까 우승하려면 점수를 많이 받아야 된다는 거지?”

“응, 맞아.”

내 옆에 앉아 있던 이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점수는 헌터학과 교수님 다섯 분이 정하시는데, 마지막 날에 점수가 가장 높은 팀이 우승이야.”

“그렇다는 건, 몬스터 잡는 거와 팀전. 그 두 개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점수가 높게 나올 수도, 낮게 나올 수도 있다는 거지?”

“몬스터 사냥, 팀전, 그리고 개인전. 각각 100점씩, 총 300점이야.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 몬스터 사냥에서 몬스터를 잡으면 기본 50점, 못 잡으면 기본 10점. 그리고 팀전에서 이기면 기본 50점, 지면 10점이라더라.”

“잠깐 몬스터를 잡고, 팀전에서 이겨도 기본이 50점이면, 나머지 50점은 어떻게 받는 거냐?”

“그냥 얼마나 잘 싸우고, 얼마나 좋은 전략을 세웠고, 얼마나 끈기를 보였고… 이런 것들 있잖아. 그거 보고, 교수님들이 알아서 판단해서 점수를 준대.”

“뭐, 여기까지는 알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마지막 날에 한다는 그 개인전 말이야. 거기서는 너와 내가 따로 할 텐데, 그럼 점수 합산은 어떻게 되는 거냐?”

“거기서는 교수님들이 학생 개개인에게 점수를 매겨.”

“똑같이 100점 만점으로?”

“응. 그리고 개인전 끝나고, 각자 점수를 받았을 거 아니야? 그걸 팀원들과 합산해서 평균을 내, 그걸로 개인전 점수를 낸다더라.”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내가 80점, 네가 70점 받았어. 그럼 우리 팀의 개인전 점수는 평균인 75점이 되는 거네?”

“으응, 그치.”

“그렇구먼.”

딱히 복잡한 규칙은 아니었다.

“그냥 너와 내가, 마지막 날까지 X나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거네?”

“그치. 우리 둘 다 X나 열심히 해서 점수 많이 따면 되는 거야.”

“…말은 쉽네.”

나는 대기실을 스윽 둘러봤다.

방금 중계 화면에서 들었듯, 이번 헌터 대전에 총 열 팀이 참가했다.

한 팀당 주로 여섯, 많아 봤자 일곱.

나와 이민아를 포함해서 대충 60에서 70명쯤 되는 인원이 대기실에 있었다.

“우승하려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제쳐야 한다는 거잖아.”

“그게 왜? 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말이 쉽다는 거잖아. 현실적으로 이 팀들을 전부 제치는 건 조금 힘들…….”

“할 수 있어, 해야 되고.”

이민아는 대뜸 내 손을 잡더니, 나를 나름 진지하게 바라봤다.

“야, 너 한 달 동안 나 굴렸잖아. 나 우승시키겠다면서.”

“뭐, 그랬었지.”

사실 우승은 핑계고, 그냥 이번 기회에 이민아의 전투력을 미리 올릴 생각이었던 것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노력을 한다고 해서 결과가 꼭 좋을 거라고는…….”

“그런 생각하지 마, 새끼야. 우리는 우승을 위해 그 개고생을 했고, 그러니까 우승을 할 거야. 우리는 우승을 한다. 그것만 생각해, 알겠지?”

“…훗. 알겠어, 인마, 알겠어.”

나는 피식 웃으며, 습관적으로 손을 이민아의 머리에 가져갔다.

“나는 어차피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어. 그리고 방금 네가 말한 것처럼, 한 달 동안 나름 고생했는데, 우승 못 하면 좀 아쉬울 거 아니야. 그치?”

“좀 아쉬운 게 아니라 X나 아쉬운 거겠지. 야, 솔직히 나 한 달 동안 구르고 맞고 다 했는데, 우승 못 하면 안 억울하겠냐?”

“하긴, 너는 억울할 만하겠다.”

나는 이민아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민아는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하자는 걸 착실히 다 해 주었다.

그것 때문에 실력이 꽤 좋아졌으니, 이민아에게는 당연히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거와는 별개로, 그녀에게 문득 고마웠다.

한 달 동안 하기에 힘든 일정이었을 텐데, 나를 잘 따라와 줬으니 말이다.

“이민아.”

“응?”

“고맙다.”

“갑자기?”

“한 달 동안 내 훈련을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고. 그냥 문득 생각나서 말한 거다.”

“고, 고마워할 거까지는… 그야, 나도 네 덕에 실력이 많이 좋아지기는…….”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아, 알면 내게 잘해! 솔직한 나만 한 친구, 없는 거 알지?”

“내가 요즘 너에게 잘해 준 거 같은데, 부족했나?”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민아를 바라봤다.

그렇게 나와 눈이 마주친 이민아는, 살짝 얼굴이 붉어진 채로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럼 지금보다 더 잘해 주… 아, 아무튼!”

이민아는 대뜸 외치며 진지하게 나를 바라봤다.

“고마우면, 우승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해 줘. 할 수 있지?”

“…최선을 다 해 볼게.”

그나저나 최선을 다하는 거라.

내가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 될 듯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자, 그럼 지금 바로 헌터 대전 1일 차! 몬스터 사냥 종목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1팀부터 먼저 입장을…….”

중계 화면에서 들려오는 사회자의 말소리.

그와 동시에,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대회 관계자가 들어왔다.

“네, 1번 팀 지금 바로 나와 주세요. 1팀, 그러니까 이제나 씨 팀? 지금 바로 준비해서 나와 주세요.”

헌터 대전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했다.

“우리가 4팀이었나?”

“응, 우리가 4팀.”

이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왜 하필 우리가 4번일까? 4라는 숫자 되게 불길하다는데.”

“네가 그런 미신 믿는 줄은 몰랐는데.”

“에이, 진지하게 믿는 건 아니고, 그, 있잖아. 박유진, 너도 뭔가 평소에 이런 짓을 하면 재수가 없다, 이런 거 있을 거 아니야.”

“그런가?”

근데 뭐,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애초에 나는 미신을 잘 안 믿는 놈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무미건조하게 숫자로만 팀을 부르네. 보통 이런 대회는 각 팀마다 팀명을 정하게 해야 재밌는데.”

“됐어, 뭔 팀명이야. 오글거리게.”

“야, 오글거려도 이런 건 재밌다고.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 혹시 몰라 우리 팀명 두 개 몰래 생각해 놨었어.”

“뭘 그런 걸 또 생각을…….”

“궁금하지? 말해 줄까?”

“딱히 궁금하지는…….”

“아니, 넌 궁금해야만 해. 내가 알려 주고 싶으니까.”

이민아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옆에 더 바짝 다가와 앉았다.

“우선 가장 먼저 생각했던 건, 늑대와 검은 망토.”

“늑대와 검은 망토? 늑대는 너라 치고, 나는 왜…….”

“맨날 검은 코트 입고 다니잖아. 그리고 솔직히 네 코트, 멀리서 보면 망토와 비슷하거든.”

이민아는 내 코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 확실히 멀리서 보면 망토로 보일만은 한…….

“그리고 내가 또 생각했던 건 바로, 미남과 야수. 어때? 이건 괜찮지?”

“…야수야, 너라 치고. 그럼 내가 미남이냐?”

“너 정도면 미남이지. 그리고 나는…….”

이민아는 내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와 내 얼굴이, 닿을 듯 말 듯 했다.

“너 같은 미남을, 아주 좋아하는 야수. 히힛.”

“…근데 그런 걸 떠나서, 그 두 개 좀 유치한 거 같다. 오그라들지는 않는데, 뭔가 좀 그래.”

“뭐? 야! 솔직히 이 정도면 엄청 잘 만든 거…….”

이민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외쳤다.

하지만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민아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게, 이민아가 방금과 같은 표정으로 내게 달라붙자 회귀 전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지.’

마침 상황도 그때와 비슷했다.

내게 가까이 달라붙은 이민아가, 내게 조용히 말을 하는 것.

상당히 비슷했다.

‘…아니다. 생각하지 말자.’

과거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 헌터 대전에서 우승하는 것.

그리고…….

‘이 녀석의 미소를 유지하는 것이지.’

웃고 있는 내 옆의 이민아를 바라보며, 나 또한 미소를 지어 봤다.

* * *

“어? 이진성 씨? 이진성 씨도 오늘 여기 오셨네요?”

“…하세리.”

한창 헌터 대전이 진행되던 중, 하세리는 잠시 화장실에 들렸다.

근데 화장실에서 나와, 스타디움의 복도를 걷던 중.

붉은 머리의 헌터는 익숙한 거구의 남자를 마주쳤다.

“오랜만이군. 이렇게 얼굴을 보고 만나는 건, 몇 개월만인 거 같네.”

“반년 다 됐죠. 작년 헌터 협회 연말 파티 이후로 못 본 거니까요.”

보통 사람은, 이진성에게 위압감을 느껴 말을 제대로 못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하세리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여유롭게 그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둘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 서로가 편한 걸로 보일 법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하세리는 이진성의 본모습을 몰랐기에, 이렇게 여유롭고 태연하게 대화를 할 수 있던 것이었다.

“그나저나 이진성 씨는 이 복도에 무슨 일이시죠? 저야 화장실 갔다가 나오는…….”

“나도 화장실 갔다 왔다.”

“아, 그렇군요. 그럼 저와 같이 관객석 쪽으로 가실래요? 아까 보니까, 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앉으셨던 거 같은데.”

“그러도록 하지.”

이진성은 별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렇게 하세리와 이진성.

두 사람은 무언가 어색한 분위기로 같이 걷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진성 씨, 오늘 가족들과 다 같이 여기에 오신 거 같은데, 이 헌터 대전에 무슨 볼일이 있나 봐요?”

“…스카우트하러 온 것뿐이다. 가족들은 그냥 심심해서 나를 따라온 거고.”

“으음, 그래요? 근데 별일이네요. 이진성 씨의 가족분들이 심심하다니. 항상 바쁘신 분들 같던데.”

“…….”

“게다가 보통 스카우트를 길드장이 직접 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

“하세리.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후훗. 딸 보러 오신 거죠? 이민아 양 말이에요.”

하세리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고, 이에 이진성은 잠시 그녀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렇다고 하면 어쩔 거지?”

“그냥 확인하는 거예요. 다른 의미는 전혀 없고요.”

“허. 지금이나 그때나. 자네의 의도는 전혀 모르겠군.”

“저도 지금이나 그때나, 이진성 씨가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겠네요.”

복도를 걷는 두 사람 사이에, 어딘가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럼 하세리. 자네는 직접 학생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여기를 온 건가?”

“당연하죠. 제 취미가 인재 발굴인걸요.”

근데 이번에는 영, 이라고 말하며, 하세리는 턱을 매만졌다.

“끌리는 친구가 없네요. 분명 다 잘 싸우는 헌터 꿈나무들인데……. 최근에 알게 된 한 친구 때문에, 제 눈이 너무 높아진 게 아닌가 싶네요.”

“자네가 말한 그 친구, 혹시 이번 헌터 대전에 나온 학생 아닌가?”

“오오오, 어떻게 알았어요?”

“…박유진인가 보군.”

“으음, 역시 이진성 씨도 박유진 씨를 아셨군요. 하긴, 막내딸 분과 자주 시간을 보내던 남자인데, 당연히 알 법도 하네요.”

“내 가족 문제는 자네가 알 바 아니다. 그보다, 자네는 박유진에게 꽤 큰 기대를 하는 거 같은데, 맞나?”

“기대를 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친구거든요, 박유진은.”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진성 씨도 박유진에게 흥미가 있는 거죠?”

“없다고는 말 못 하지. 딱 한 번 만난 친구지만, 그 한 번의 만남이 내 기억에 꽤 강하게 남았거든.”

“그렇군요. 근데 제가 먼저 발견한 친구니, 도중에 채 가지는 않았으면…….”

“내 길드에는 박유진보다 더 뛰어난 놈들이 많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라.”

“후훗. 알겠어요. 그리고… 아. 저희 벌써 도착했네요.”

어느새 복도를 벗어나, 두 사람은 관객석에 돌아왔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사회자의 목소리가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자, 이제 4팀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몬스터의 사냥에 성공한 팀은 2팀, 단 한 팀뿐. 과연 4팀은 두 번째로 성공한 팀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4팀은 헌터 대전 역사상 처음으로 단 두 명으로 이루어진…….”

“오, 시간 딱 맞춰서 왔네요.”

하세리는 최대한 앞으로 가,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그곳에 박유진과 이민아, 두 사람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이 또 뭘 보여 줄지 기대되네요. 안 그래요, 이진성 씨? 막내딸분이 얼마나 성장했을지 기대가…….”

“해 봤자 거기서 거기일 거다.”

이진성은 별 관심 없다는 투로 하세리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4팀의 경기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시작한 지 약 5분 뒤.

“…박유진 씨는 역시, 저를 볼 때마다 놀라게 하네요.”

하세리는 자기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 준 박유진에게 감탄했다.

그리고 그녀 옆의 이진성은…….

“…몰라보게 달라지기는 했군.”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그로서, 상당히 의외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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