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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94화 (94/240)

94화

“모를 만도 하지 않나.”

하세리의 말에, 그녀의 옆에 있던 이진성이 넌지시 말했다.

“자네는 전부터 박유진을 알았지만, 여기 사람들 대부분은 박유진을 오늘 처음 봤을 테니까.”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알면 됐다.”

이진성은 하세리의 말에 대충 대꾸하며 경기장을 바라봤다.

그런 이진성의 모습에,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이진성 씨도 박유진에게 관심이 있나 봐요? 제가 아는 이진성 씨라면, E급, 아니. 이제 겨우 D급에 달성한 박유진에게 그렇게 관심을 안 가질 텐데 말이에요.”

“박유진에게는 관심 없다. 저 정도 실력을 가진 녀석은 내 길드에도 많으니까.”

이진성은 경기장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하세리에게 대꾸했다.

이에 붉은 머리의 헌터는 피식 웃었다.

“진짜로 아예 관심이 없는 건가요? 아예?”

“오늘따라 말이 많군. 내가 아는 자네는 조금 더 점잖은 성격이었던 거 같은데.”

“아아, 죄송해요. 너무 오랜만에 이진성 씨를 만나서, 저도 모르게 너무 신나 있었네요. 근데 그거와는 별개로.”

하세리는 다시금 경기장을 바라봤다.

만티코어의 공격을 당당하게 받아치는 이민아, 그리고 회피와 공격을 현란하게 하는 박유진.

그 두 사람은 스타디움의 모두에게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박유진에게 흥미, 있으신 거죠?”

“…방금 말한 것처럼, 박유진 정도의 실력은 내 길드에 넘쳐난다. 그래서 저놈의 실력에 흥미가 가는 건 아니다.”

이진성은 이 말과 함께, 자신의 막내딸을 가리켰다.

“내 딸, 이민아. 저 아이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저렇게 못 싸웠다.”

“네, 지금 보니까 확실히 그렇네요. 저도 전에 이민아 양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저런 실력을 못 보여 줬거든요.”

하세리는 전에 이민아와 같이 게이트를 토벌했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의 이민아는 잘 싸웠지만, 딱 B급 헌터의 평균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탱커임에도, 전혀 탱커로서의 면모를 못 보여 줬었다.

분명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때와는 모습이 많이 다르네요. 탱커의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고, 전반적인 신체 능력이 올랐어요. 거기다 무엇보다, 전투 자체를 더 잘하게 됐어요.”

지난번의 이민아는 실전 경험이 부족한, 어리숙한 헌터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 사이에 이민아는 상당한 실전 경험을 쌓고 온 듯했다.

“이진성 씨가 길드에서 잘 가르쳤나 봐요?”

“내가 가르친 게 아니다.”

“네? 무슨 말씀이시죠?”

“한 달 전에, 민아는 헌터 대전 전까지 내 길드에서 훈련을 안 받고 따로 하겠다고 했다. 그 아이는 박유진과 단둘이서 훈련을 하겠다고 하더군.”

“이민아 양이 박유진 씨와 단둘이서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해서, 나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당시에는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이진성은 만티코어의 목에 와이어를 날린 박유진을 바라봤다.

“저놈이 내 딸을 기대 이상으로 성장시켰더군. 나라도 한 달 내에 저렇게 성장시키기 힘들 텐데 말이다.”

“그것 때문에 박유진 씨에게 흥미를 가진 건가요?”

“흥미보다는 호기심이다. 박유진, 저놈은 뭐 하는 놈이길래 내 딸을 저렇게 키워 낸 걸까? 이런 호기심이지.”

“박유진 씨가 재밌는 사람이기는 하죠.”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기다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기도 하죠. 저는 그걸 첫눈에 알아봤고, 바로 그를 제 편으로 끌어들였죠.”

“엄청난 가능성이라……. 틀린 말은 아닌 거 같군.”

이진성은 박유진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자신에게 전혀 위축되지 않던 그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꽤 인상적이었다.

“네. 아, 그리고 경기가 슬슬 끝나 가네요.”

경기장에서 이민아는 힘으로 만티코어를 찍어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박유진은 단검을 만티코어의 목에 찔러 넣어, 그 안으로 다량의 전류를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대단하기는 하네요. 아직 학생인데, 단둘이서 만티코어를 잡아 내다니. 저도 저 나이였을 때는 많이 힘들었을 거 같은데.”

“저 정도는 당연히 해야 된다. 내 가족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저랑 이진성 씨의 기준이 많이 다른가 보네요.”

하세리는 이진성이 방금 한 말에,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무튼, 이진성 씨. 경기 끝나면 저는 박유진 씨와 이민아 양을 따로 보러 갈 생각인데, 혹시 같이 가실 생각이…….”

“없다. 어차피 민아와는 집에 가서 이야기 나누면 그만이다.”

“그럼 박유진 씨를 만날 생각은…….”

“박유진은 어차피 나중에 나와 결국 만나게 될 거다. 그러니 당장은 만날 이유가 없다.”

“알겠어요. 그럼 이진성 씨. 오랜만에 봬서 반가웠고, 저는 이만 먼저 자리를…….”

“가기 전에, 한마디만 하지.”

이진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하세리를 내려다봤다.

그와 동시에, 이진성 주위로 정체 모를 위압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놀라 물러날 정도였다.

이에 하세리도 흠칫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리에서 물러나지는 않았다.

“무슨 말씀이시죠?”

“자네가 인재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건 잘 알겠고, 인재를 모으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할 생각이 없네. 하지만 그 짓을… 적어도 상대를 가려 가면서 했으면 좋겠군. 쉽게 말하자면, 선을 넘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군. 알겠나?”

“…알겠어요.”

사실 하세리는 이진성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본능이 빨리 자리를 벗어나라고 했기에, 그녀는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이 말과 함께, 하세리는 빠르게 이진성에게서 벗어났다.

이진성 또한 하세리가 가는 걸 바라보다, 이내 자신의 가족이 있는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방금 대체 뭐였지?’

하세리는 내심 의문이 들었지만, 그녀는 이내 그 의문을 지웠다.

어차피 이진성을 자주 보지 않았으니,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세리는 별생각 없이, 박유진과 이민아를 만나기 위해 스타디움의 복도를 향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관객석에 있던 길드 관계자들의 말을 우연히 들을 수 있었다.

“야, 야! 어서 박유진, 이 친구 좀 만나고 와 봐. 저 정도면 바로 데려와도 될 수준이잖아. 어서 가 봐.”

“조건은 최대한 좋게 제시하고, 다른 길드들보다 빠르게 가 봐. 박유진, 쟤 우리 길드만 노리는 게 아닐 테니까.”

“박유진에게 어떻게든 우리 길드 연락처 주고, 이민아? 이민아는 건들지 마. 이진성 딸이잖아. 괜히 나대다가 뒤지기 싫으면, 눈치껏 건들지 마.”

“근데 박유진, 저 친구 어디서 나타난 인재래. D급인데 저 정도면, 진짜 만약 등급이 더 올라가면 완전 거물이 되는 거 아니냐?”

수많은 길드 관계자들이 전부 박유진을 칭찬하며, 그를 어떻게든 본인들 길드에 데려오려고 하고 있었다.

그 말소리에, 하세리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가진 자의 여유, 이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뭔가 기분이 좋네.’

자기가 선택한 인재가 저렇게 인정을 받으니, 하세리는 어째서인지 뿌듯했다.

* * *

“잡았습니다! 4번 팀! 그것도 단 두 명에서! 만티코어를 잡아 냈습니다!”

만티코어와의 전투를 시작한 지 약 10분 뒤.

스타디움에 울려 퍼지는 사회자의 말처럼, 나와 이민아는 깔끔하게 만티코어를 잡았다.

“9분 21초! 제한시간 15분 내에, 그것도 아까의 2번 팀보다 4분이나 일찍, 훨씬 여유롭게 잡았습니다! 이걸로 4번 팀이 받게 될 점수가 제일 높아질 수 있는…….”

“후우우.”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자바니아에 묻어 있던 만티코어의 피를 털어 냈다.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았네.’

솔직히 못 잡을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게, 만티코어는 두 명에서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티코어의 독이 워낙 전투에 있어 치명적이었기에, 기본적으로 힐러 두 명.

거기다 만티코어의 공격을 받아칠 탱커까지 다수 있어야 하는 등, 보통 머릿수가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민아가 어지간히, 아니. 어지간한 것도 아니야. 그냥 엄청 강했어.’

방금 말했듯, 만티코어를 상대하려면 힐러와 탱커가 거의 필수였다.

하지만 이민아는 혼자서 그 공백을 모두 채웠다.

‘만티코어의 공격을 혼자서 전부 받아치고… 거기다 내게 올 공격들을 전부 대신 맞아 줬어. 그 덕에 힐러가 필요한 상황 자체를 안 만들었지.’

회귀하기 전에 만났던 이민아는 한국 제일의 탱커라 불렸다.

그리고 이민아가 그 타이틀을 거저먹은 게 아니라고, 아까의 전투로 확실히 느꼈다.

‘타고난 재능이 있던 거네.’

한 달 동안 이렇게까지 성장한 건,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것도 엄청난 재능이 말이다.

‘이렇게 보니까, 저 아저씨가 더더욱 이해가 안 되네.’

나는 관객석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이진성을 바라봤다.

이민아는 이렇게 대단한 재능을 가졌는데, 저 아저씨는 자기 딸의 잠재력을 날려 버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이해할 수 없는 아저씨였다.

‘근데 아까까지 하세리와 같이 있지 않았나? 그 누나는 또 어디 간 거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바쁜 분이라, 또 어디 간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건 그렇고, 지금 보니 관객석의 사람들 중…….

‘길드 관계자들이 꽤 왔나 보네.’

헌터 대전에 헌터 길드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얼핏 듣기는 했다.

괜찮은 학생들을 스카우트하려니 뭐니, 그런 목적으로 말이다.

그걸 이민아에게 들을 당시에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보니 꽤 귀찮아질 거 같았다.

‘이민아야, 이진성 때문에 함부로 못 건드리겠지. 근데 내게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거 같네.’

나의 현란한 전투에 감명이라도 받았는지, 길드 관계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죄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집 가기 전까지 많이 귀찮을 거 같은…….

“박유진, 으으으. 윽.”

“음? 야, 너 왜 그래? 괜찮아?”

주위를 둘러보던 도중, 이민아가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많이 붉어진 얼굴로,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혹시 다친 거야? 다친 거면…….”

“다친 건, 아니야. 그냥 온몸에 열이… 그리고 제대로 된 생각을 못 하겠……. 으으. 하아아.”

이민아는 말끝을 흐리며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이러한 돌발 행동에 관객석에서는 환호하고 박수를 쳤지만, X발, 지금 그런 게 전혀 아니었다.

‘지금 보니까, 얘 눈빛이 아직도 이상하네.’

늑대인간의 본능에 먹혔을 때의 눈빛.

아까 전투 도중부터 이런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전투가 끝난 지금까지 이 눈빛을 유지하는 건, 어떻게 보면 위험할 수 있었다.

자칫 잘못했다가, 이 스타디움의 사람들을 공격하게 되면 일이…….

“네! 4번 팀! 두 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사냥에 성공했지만, 전 팀보다 훨씬 빠르게 끝내셨네요.”

이민아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는데, 사회자로 보이는 남자가 마이크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왔다.

“헌터 대전 역사상, 최소 인원으로 참가한 최초의 팀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두 분께 궁금한 점이…….”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나는 사회자의 말을 재빨리 끊었다.

“지금 제 친구의 상태가 안 좋거든요. 그래서 빠르게 가 봐야 할 거 같네요.”

“네? 아아, 그, 그렇군요. 그런 거라면 어서…….”

“그래도 경기 소감이라도 간단히 말하자면, 제 친구, 그러니까 이민아가 잘 해 줬어요. 그것도 제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요. 그래서 얘에게 진짜 고맙네요.”

나는 마이크에 간단히 말한 뒤, 여전히 나를 끌어안고 있는 이민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서 가자. 따라올 수 있지?”

“으, 응. 어, 어서 가자. 나… 더 버티기 힘들어.”

이민아는 여전히 나를 끌어안고, 얼굴을 내 가슴에 묻고 있었다.

거기다 숨소리는 더 거칠어졌고, 얼굴 또한 더욱 붉어져 있었다.

“빨리 가자.”

나는 이민아를 데리고, 빠르게 경기장을 벗어났다.

관객석에서 사람들이 전부를 우리를 쳐다보는 거 같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민아를 사고를 치기 전에, 그녀를 사람 없는 곳으로 재빨리 데려가야 했다.

그렇게 경기장을 벗어나, 스타디움 내의 복도에 도착했다.

“야, 어때? 좀 괜찮아?”

복도에 아무도 안 다닌다는 걸 확인한 후, 나는 다시금 이민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늑대인간의 본능, 그것 때문이지? 아까 만티코어와 싸울 때부터 이런 거고?”

“…응. 아, 아마 그럴 거야.”

“자, 일단은 전투가 끝났다는 걸 인지해. 그게 가장 우선이고, 그 후에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회귀 전의 이민아가 워낙 날뛰어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았다.

나는 반쯤 본능에 먹힌 이민아의 눈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그녀에게 설명을 했는데…….

“…미안.”

“음?”

“미안. 나… 더 못 참을 거 같아.”

“갑자기 뭔 소리를… 으윽?”

이민아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이민아가 갑자기 나를 밀어 바닥에 넘어뜨렸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놀랄 상황이었는데, 이민아는 넘어진 내 위에 올라탄 것이었다.

“미안. 진짜 미안해. 근데 나… 더 못 버텨.”

“그러니까 너 대체 뭔 소리를 하는… 아.”

내 위에 올라타서 나를 내려다보는 이민아.

그녀의 저 눈빛과 지금 이 상황 자체.

…익숙했다.

‘X발.’

회귀하기 전에 이민아와 있었던 일.

내가 가장 기억하기 싫었던 그 사건이, 지금 이 상황과 매우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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