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95화 (95/240)

95화

야생의 늑대인간, 또는 본능에 잡아먹힌 늑대인간.

이들은 말이 늑대 ‘인간’이지, 사실상 그냥 늑대, 그러니까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을 안 하고, 그저 본능에만 충실한 짐승들.’

그냥 짐승이면 크게 상관없었을 거다.

하지만 늑대인간은 그냥 짐승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몬스터였다.

이민아와 같은 예외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위험했다.

“하아, 하아. 하아.”

그리고 이민아는 지금, 늑대인간이 왜 위험한지 보여 주고 있었다.

“너 잘 생각해. 이거 옳은 일 절대 아니야.”

나는 이민아에게 넌지시 말했지만, 그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일지도 몰랐다.

“크르르르.”

이민아의 눈을 보니, 그녀는 더 이상 말이 통할 상태가 아니었다.

“하아, 하. 크르르.”

이민아는 나를 바닥에 눕힌 채, 내 위에 올라탔다.

그 상태로 내 팔을 붙잡아 나를 아예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미치겠네.”

지난번, 놀이공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민아가 본능이 잡아먹힌 채, 나를 이렇게 붙잡았었다.

하지만 지금, 그때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다.

‘나를 사냥감으로 보는 눈빛이 아니야.’

놀이공원에서 이성을 잃었을 당시, 이민아는 다른 늑대들과 함께 나를 죽이려 들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나를 사냥하려 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민아는 나를 죽인다거나 사냥한다든가, 그러려는 눈빛이 아니었다.

회귀하기 전, 본능에 먹힌 이민아를 자주 봐서 잘 알았다.

지금 이민아의 눈빛은…….

‘그때와 똑같아.’

내게 안 좋은 기억을 선물했던 그때의 눈빛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민아의 저 눈빛을 보자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러지 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윽?”

이민아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내 목을 향해 얼굴을 가져갔다.

뭐 하나 싶었는데, 그녀는 대뜸 내 목을 깨물었다.

하지만 저번의 놀이공원 사건과는 달리, 피가 날 정도로 깨물지 않았다.

그저 내 목을 간지럽히려는 듯, 약하게 물었다.

거기다 이민아는 그 과정에서 내 체취까지 조금씩 맡고 있었다.

“야. 그만해. 이건 아니라고.”

안 좋은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자, 나는 이민아를 내 몸에서 떨어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민아를 떨어뜨리기에, 이민아의 힘이 너무 강했다.

나는 바닥에 눕혀진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이민아는 완전히 맛이 가 버린 눈빛과 함께, 얼굴을 점차 내 쪽으로 가져왔다.

“크르.”

“…하아아, 미치겠네.”

회귀하기 전에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한창 C급 헌터로 활약하던 당시, 이민아와 단둘이 남겨지게 되었다.

단순히 둘이 남겨진 거면 전혀 문제없었겠지만…….

‘박유진. 미안해. 하필 오늘이… 크르르.’

‘이민아 씨. 또 본능에 먹힌 거면, 그냥 제가 다시 진정시키면 되는…….’

‘이건 그런 게 아니야! 이건……. 하아아, 하. 크르르르. 박유진, 크르르. 이건…….’

나는 멘탈이 꽤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일은, 지금까지도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극복하려고 해도 쉽게 극복이 안 되는 트라우마로 말이다.

“크르르.”

“…제발.”

그때와 거의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자, 나는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과거의 잔재가 내 몸을 붙잡는 듯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그때처럼 또다시…….

‘…정신 차리자.’

아프고, 잊고 싶은 기억은 맞았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더한 일들을 겪게 되었다.

지금 이 상황은… 정신만 차리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파지지직―!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양손에 전류를 불러냈다.

물론 내 전류로는 이민아의 피부에 흠집 따위도 낼 수 없었지만.

“크르르?!”

이민아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갑작스러운 전류에 이민아는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내 왼팔을 놓쳤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왼팔을 들어…….

“으으읍?!”

왼손을 이민아의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내 안의 전류를 최대한 끌어모아, 이민아의 입 안으로 그대로 흘려보냈다.

“크아아악?! 카카칵!”

이민아가 전보다 강해졌다 해도, 신체 내부로 전류를 흘려보내는 건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내 전류를 직격으로 맞은 이민아는 그대로 기절했다.

“…후우우.”

이민아가 완전히 기절한 걸 확인한 후.

나는 한숨을 쉬며, 내 위에 엎어진 이민아를 옆으로 치웠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네.”

최대한 잊으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일부러 여자들까지 멀리하며 살았다.

시간이 약인 줄 알았고,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귀한 후, 다시 이렇게 이민아와 친하게 지내려고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 효과가 전혀 없었다.

“회귀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게 없잖아.”

피하기만 하면 그 무엇도 극복할 수 없다.

나는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은 과거의 잔재를 극복하기 거부했다.

그래서 애써 내 트라우마를 무시하며 살았는데,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피하기만 한 대가를, 방금 치를 뻔했다.

‘결국 마주해야 하는 건가.’

방금의 일을 겪고 나니, 이제서야 생각이 바뀌었다.

이민아에 의해 생긴 나의 트라우마.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아가 이민아를 위해서라도 이건 극복해야 했다.

“근데 X발, 이걸 어떻게 극복하냐고.”

마음을 먹는 거와는 별개로,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무언가 시도를 하려고 하면, 내 몸이 분명 무슨 X랄을 할지 모르는…….

“으, 으읏? 으으음. 으으.”

“…나중에 생각하자.”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몸을 뒤척이는 이민아.

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를 내 품에 안았다.

“…지금이나 그때나, 자는 모습 하나는 예쁘네요, 이민아 씨.”

이민아를 품에 안은 채, 나는 그녀를 들어 올렸다.

겉으로는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근데 방금, 나도 모르게 이민아에게 강한 전류를 흘려보냈다.

그러니까 필요 이상의 고압으로 말이다.

평소의 나라면 잘 조절했을 터인데, 두려움 때문에 조절을 못 했다.

‘일단 의료실에 데려가자.’

늑대인간이 이 정도로 크게 다치거나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 트라우마 극복에 관한 건…….

‘천천히 해결하든가 해야지.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내 품에 안긴 이민아를 바라봤다.

이 갈색 단발머리 친구와의 관계가… 앞으로 많이 복잡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 * *

“아으으. 자 다리에 감각이 없어요.”

“아아악?! 저, 저 지금 숨이…….”

수많은 환자들이 쓰러져 있는 고연대학교의 의료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헌터 대전이 한창 진행 중인 탓에, 실려 오는 헌터학과 학생들이 많았다.

덕분에 힐러들은 평소보다 더 고생을 해야 했다.

“네. 일단 이민아 씨의 진료는 끝났어요.”

그리고 그 힐러 중에 주하나도 포함됐었다.

“큰 상처는 없네요. 내상이 조금 있었지만, 그건 제가 방금 치료했어요. 아마 곧 다시 일어날 거예요.”

“다행이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주하나 씨.”

“감사할 거 없어요. 애초에 이게 제 일인걸요.”

하얀 머리의 힐러는 내 곁에 다가와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이민아 씨는 어쩌다가 기절한 거예요? 경기를 처음부터 다 봤는데, 이민아 씨가 쓰러질 만한 상황이 없지 않았나요? 게다가 경기 끝나고서도 상태가 멀쩡해 보였는데.”

“…그럴 일이 있었어요.”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기에, 나는 대충 대꾸했다.

그리고 매우 고맙게도, 주하나는 이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첫 번째 경기에서 잘 싸우고 오셨더라고요. 아직 점수는 안 나왔지만, 사실상 거의 1등 확정 아닌가요?”

“그건 모르는 거죠. 그리고 제가 잘 싸웠다기보다는 이민아가 잘 해 준 거에 가까워요. 이 녀석 덕분에 수월히 싸울 수 있었거든요.”

“이민아 씨도 잘 싸웠죠. 근데 박유진 씨도 엄청 멋있게 싸우더라고요, 특히 와이어로 막 날아다니셨잖아요? 그거 보고 여기 계신 힐러 분들 전부 감탄했다니까요.”

“…그런가요?”

나는 주하나의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웃으며 주하나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내 머릿속에 너무나도 복잡했다.

‘이민아. 얘와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까의 일 때문에 머릿속에 이민아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국 내가 극복해 내야 하는데, 솔직히 도저히 자신이 없는…….

“박유진 씨? 혹시 무슨 일 있던 건가요? 아까부터 얼굴이 어두우시네요.”

“일이… 없던 건 아니죠.”

나는 대답과 함께 주하나를 바라봤다.

회귀하기 전, 내 목숨을 살려 줬던 힐러를 말이다.

‘혹시 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도와줄 마법을 알고 있으려나?’

문득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약 진짜 주하나가 그런 마법을 알고 있다면, 나는 주하나에게 한 번 더 빚질 의향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 트라우마는 지금까지도 나를 좀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 박유진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 있나요? 왜 저를 그렇게 쳐다보는…….”

내가 말없이 주하나를 계속 쳐다보자, 주하나는 당황했다.

이에 나는 생각을 정리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하나 씨. 혹시 괜찮다면, 제가 주하나 씨께 다시 한번 빚을 져도 될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제가 말입니다. 사실… 그러니까, 으음.”

분명 생각을 정리한 줄 알았는데, 막상 말하려니까 다시 망설이게 되었다.

이 상황을 주하나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리고 대체 어디까지 말하는 게 좋을지.

이런저런 요소들 때문에 망설이게 되었다.

그래도 주하나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오빠, 여깄었구나?”

생각을 정리해 주하나에게 다시 말하려던 찰나, 의료실에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났다.

“유나야? 여기를 어떻게 온 거야?”

다른 곳은 몰라도 고연대학교 의료실은 외부인이 쉽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자기 가족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유나가 여기에 나타나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이분이 데려와 주셨는데? 오빠 찾으려고 선수 대기실 쪽 돌아다니다가 만났어.”

“음? 그게 무슨 소리… 아.”

나는 유나와 함께 온 여자를 보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하세리 헌터님.”

“네, 박유진 씨. 오랜만이네요. 그리고 오늘 경기, 잘 봤어요.”

붉은 머리의 헌터는 내게 간단히 인사한 후, 옆에 있던 유나를 바라봤다.

“유나는 제가 오는 길에 발견했어요. 박유진 씨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데려온 건데, 괜찮은 거죠?”

“뭐,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나저나 하세리 씨께서 제 여동생을 만난 적이 있나요?”

“전에 리저드 라이더 사태 때 잠깐 봤었죠.”

“아, 하기야. 그때 봤겠군요.”

근데 그건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인데, 하세리는 그때 잠깐 본 유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거 참… 여러모로 대단한 기억력이었다.

“그건 그렇고, 의료실은 학교 관계자 아니면 못 들어오실 텐데 어떻게 오신 거죠?”

“저야, 고연대에 아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래서 쉽게 들어올 수 있었죠.”

“…그렇군요.”

“네, 그보다 이민아 양은 괜찮은 거죠? 아까 경기 끝날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사실 안 괜찮았나 보네요?”

“너무 열심히 싸워서 탈진한 것뿐이에요. 크게 다친 거 아니니,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나저나 이 누나는 대체 나를 왜 찾아온 걸까?

내가 직접 찾아가는 거면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이 얼굴에 쓰였는지, 하세리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를 왜 찾아왔는지 궁금하다는 얼굴이네요.”

“티 많이 났나요?”

“조금 났어요. 뭐, 제가 박유진 씨를 찾아온 이유는 별것 없어요. 그냥 박유진 씨와 이민아 양의 얼굴이나 볼 겸 들린 거고……. 박유진 씨. 잠깐 이쪽으로 와 주실래요?”

하세리는 대뜸 나를 의료실의 창가 쪽으로 데려갔다.

뭔 일인가 싶어서 그녀를 따라가 창밖을 확인했는데, 창밖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저 사람들… 전부 누구죠?”

“길드에서 온 분들이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박유진 씨와 만나고 싶어서 온 분들이죠.”

“…아.”

“아무래도 이 사실을 알려 주는 편이 저분들에게, 그리고 박유진 씨에게 좋을 거 같아서요.”

“…하루가 길어지겠네요.”

사실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길드들은 항상 쓸 만한 헌터들을 원했다.

그리고 오늘 내가 보인 모습은 저들의 마음에 아주 잘 들었을 거다.

일렉트로 마스터인 점은 그렇다 쳐도, 와이어를 쓰는 헌터는 그리 흔치 않았다.

그렇다 보니, 나는 특색이 있으면서 기본적인 전투력이 있는 헌터였다.

길드 관계자들이 딱 원하는 그런 인재상이었다.

“저 사람들을 다 언제 돌려보내냐.”

회귀 전에도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지라, 이게 얼마 귀찮은지 잘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저렇게 복잡한 일까지 더해지면…….

“표정이 안 좋아 보이네요, 박유진 씨.”

“네, 뭐. 안 좋다기보다는 그냥 조금 귀찮은…….”

“사실 이거와 관련해서 제가 하나 제안드릴 게 있는데, 들어 보시겠어요?”

“네? 제안이요?”

하세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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