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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97화 (97/240)

97화

* * *

“이민아. 나 좀 놔줄 수 있겠어?”

“안 놔. 아니, 못 놔. 너 절대 안 놓을 거야.”

방금에 의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민아는 대뜸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의료실에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이민아는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너랑 떨어지기 싫어. 너와… 계속 붙어 있고 싶어.”

이민아는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 이민아의 이성은 어느 정도 돌아온 듯했다.

‘근데 눈빛은 아직 위험해 보이네.’

기절시키기 전보다는 나아졌다.

하지만 이민아의 눈빛은 여전히 위험했다.

즉, 그녀는 언제 또 날뛸지 몰랐다.

“오빠. 민아 언니 지금 괜찮은 거 맞지?”

유나 또한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는지,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민아가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으니 그럴만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될까?’

솔직히 말해, 여기서 기절시키는 편이 안전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 경험상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늑대인간의 본능은, 특정 욕망을 충족시키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네.’

이민아를 한 차례 기절시켰음에도, 그 본능이 아직도 이민아를 지배하고 있었다.

즉, 이민아의 본능은 무언가 원하고 있었다.

그 원하는 걸 손에 넣기 전까지, 이민아는 계속 이 상태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녀석이 뭘 원하는지 알 것 같기는 해. 근데…….’

나는 내 품에 안긴 갈색 단발머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어딘가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내게 꽤 익숙했고, 덕분에 이민아가 내게서 뭘 원하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근데 문제는 내가 그걸 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거야.’

내 트라우마를 고치기 전까지, 이민아가 현재 원하는 걸 해 줄 수 없었다.

해 주려고 시도는 할 수 있겠다만, 그러면 결과가 안 좋을 게 뻔했다.

나에게도, 그리고 이민아게도.

“유진아, 나… 나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이민아는 얼굴을 내 목 부근에 가져갔다.

그러면서 코로 내 목을 약하게 훑었다.

“부탁해도 될까?”

이민아의 분위기는 여러모로 묘했다.

나야, 이런 묘한 분위기를 전에도 겪어 봤지만.

“이민아 씨. 일단 박유진 씨에게서 떨어지는 건 어떨까요?”

주하나는 이런 걸 본 적이 없을 터였다.

하얀 머리의 힐러는 이민아를 내게서 떨어뜨리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손대지 마!”

이민아는 주하나의 손을 쳐 내며, 그녀를 위협하듯이 노려봤다.

“내 주인이야. 나만… 나만 그의 곁에 있을 거야.”

이민아의 이러한 반응에 놀라며, 주하나는 뒤로 물러났다.

이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골치 아프네.’

이민아의 이러한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방치하는 것도 애매했다.

다른 곳이면 모르겠는데, 여기는 의료실 안.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이 상황을 이어 나가는 건 결코 좋지 않은…….

“이민아 양의 상태가 많이 이상해 보이네요.”

“음? 아, 하세리 헌터님.”

언제 또 온 건지, 내 곁에 붉은 머리의 헌터가 도착해 있었다.

“이건, 그러니까, 지금 이민아가 본능에…….”

“네, 늑대인간의 본능. 저도 들은 적 있어요.”

하세리는 이민아를 바라봤다.

“크르르르.”

이민아는 이에 이빨을 드러내며 하세리를 노려봤으나, 하세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들의 욕구에 대해 전에 논문에서 읽은 적이 있죠.”

“하세리 헌터님. 이건 그러니까…….”

“주하나 씨였죠?”

하세리의 주하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유진 씨께 들었어요. 상당히 능력 있는 힐러라고요.”

“어? 아아, 하세리 헌터님. 저는 카시아 길드 소속의…….”

“소개는 됐어요. 방금 말한 것처럼, 박유진 씨께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보다, 혹시 마법을 쓸 줄 아시나요?”

“마법이요?”

주하나는 의문을 표했으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딱 평균적인 수준으로 쓸 수는 있어요.”

“잘 됐네요. 그럼 혹시 꿈 조작 마법을 배우셨나요?”

“꿈 조작이요? 그거야, 정신 치료를 위해 힐러들이 기본적으로 배우는 마법이기는…….”

“그걸 이민아 양에게 써 주세요. 그리고 꿈의 내용은…….”

하세리는 주하나에게 다가가, 그녀의 귀에 무언가를 아주 작게 속삭였다.

뭐라 속삭인 건지 모르겠지만, 그걸 들은 주하나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 그런 내용의 꿈을 왜…….”

“환자의 건강을 위해서라고 생각해 주세요.”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말한 후, 이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유진 씨. 주하나 씨께서 이민아 양에게 마법을 쓸 동안 꽉 붙잡아 주세요. 알겠죠?”

“네, 그거야 문제없죠.”

나는 대답과 함께 이민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에 긴장하고 있던 이민아의 몸에 힘이 약간 빠진 듯했다.

“이민아. 이쪽 봐 줄래?”

“…헤에?”

“옳지, 착하다.”

“으, 으읏.”

이민아는 몽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얼굴을 내 가슴에 비볐다.

이렇게 내가 이민아의 시선을 끄는 동안, 주하나가 조용히 이민아에게 다가왔다.

“꿈은 한낱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 꿈으로 인도하는…….”

주하나는 천천히 이민아에게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이에 이민아는 놀라며 뒤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나는 그녀를 붙잡았다.

“나만 바라봐야지? 응?”

“으, 응. 마, 맞아요. 저는 유진이만…….”

이민아는 무언가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는 사이에 주하나는 천천히 마법을 계속했고, 이내 이민아의 눈은 서서히 감겼다.

“…쿠울.”

“박유진 씨가 침대로 좀 옮겨 주세요.”

“아, 네.”

나는 하세리의 말을 따라, 이민아를 침대 쪽으로 옮겼다.

여기까지야 별문제 없었지만, 하세리의 다음 말이 당황스러웠다.

“이민아 양과 같이 침대에 누워 주세요.”

“같이요?”

“네. 애초에 지금 이민아 양과 떨어지고 싶어도 못 떨어지실걸요?”

“그렇기는 하네요.”

하세리의 말대로, 이민아는 잠든 와중에도 나를 꽉 붙잡고 있었다.

“이민아 양이 깨어날 때까지만 함께 있어 주세요. 그 편이 이민아 양에게 더 도움이 될 거예요.”

“늑대인간에 대해 잘 아시나 보네요.”

나는 이민아를 먼저 침대에 눕힌 후, 그녀를 따라 나도 침대에 올랐다.

“늑대인간을 이렇게 진정시키는 건 처음 들었거든요.”

“처음 들을 만하죠. 늑대인간의 욕구를 가라앉히는 방법을 보통은 모르니까요.”

“…하세리 헌터님. 지금 이민아는 그냥…….”

“걱정 마세요, 박유진 씨. 이민아의 양의 이런 모습을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 않을 거니까요.”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 품에 안긴 이민아를 다시금 바라봤다.

“음냐… 유, 유진아…….”

이민아는 잠꼬대를 하며 내 몸을 이곳저곳 더듬었다.

나야, 이민아가 이러는 건 크게 상관없었다.

하지만 하세리는 어째서인지 조금 불쾌하다는 눈빛이었다.

“근데 보기에 조금 그렇기는 하네요. 이민아 양이 원해서 저러는 건 아닐… 흐음, 아닌가?”

하세리는 말끝을 흐리며 이민아를 쳐다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하세리는 이민아를 부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본능이니까 본인이 원해서 저러는 것일지도?”

이유는 나도 몰랐지만, 확실히 부럽다는 눈빛이었다.

회귀하기 전에 하세리와 자주 협업했기에, 하세리의 저 눈빛을 매우 잘 알았다.

“하세리 헌터님? 혹시 무슨 일 있는 건가요?”

“네? 아아. 괜찮아요. 제가 무슨 일이 있겠어요?”

내 말에 하세리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다시 지었다.

물론 억지 미소라는 게 너무나도 티가 났지만, 나는 굳이 그걸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리고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지금 이민아에게 무슨 꿈을 꾸게 한…….”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어요.”

하세리는 의미 모를 미소와 함께 내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이민아 양의 문제는 얼추 해결된 거 같으니,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협회의 일을 마저 해야 하거든요.”

“아, 네. 오늘 도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뭘요. 게다가 박유진 씨도 제 부탁을 들어주시기로 했으니까요.”

“부탁이라면…….”

“저와 하루 어울리기로 한 거요. 잊으신 거 아니죠?”

“아. 그거라면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후훗. 헌터 대전 끝나고 따로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제가 준비하는 데이트니, 기대하셔도 좋아요.”

“…그거 데이트인가요?”

“남자와 여자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거면 데이트죠.”

하세리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의료실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가기 전, 하세리는 뒤돌아서서 나와 이민아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이민아를 바라본 것이었다.

“…….”

하세리는 이번에도 이민아를, 무언가 부럽다는 눈빛으로 잠시 바라봤다.

이에 나는 의문이 들어 하세리에게 질문하려고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이 하세리는 의료실 밖으로 나갔다.

“…참 알 수 없는 누님이라니까.”

나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뭐, 그래도 저 누님 덕에 상황 자체는 잘 해결된…….

“오빠, 이거 대체 뭔 상황이야? 민아 언니는 왜 이러는 건데?”

아니, 아직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었다.

이게 뭔 상황인지 유나에게 설명해야 됐으니 말이다.

아니, 유나만이 아니었다.

“박유진 씨. 늑대인간의 본능에 대해서는 저도 전에 들은 적은 있는데, 이민아 씨가 방금 보인 행동은…….”

“그게 그러니까……. 후우우. 일단 유나야. 너는 먼저 집에 가 있어. 이따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아니, 오빠. 이러고서 또 집 가서 대충 둘러댈 거잖아. 오빠랑 민아 언니가 무슨 관계인지 설명을…….”

“그냥 친구 사이야. 그 외에 뭐 없어.”

나는 유나에게 대충 대꾸한 후, 주하나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금 말한 것처럼 저와 이민아는 아무 관계 아니고, 이민아가 이런 건 그냥 불가항력 같은 거죠. 늑대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이해는 하는데……. 혹시 평소에도 이민아 씨가 박유진 씨에게 이러는 건 아니죠?”

“그런 거 아니에요. 얘가 이러는 건 진짜 드물거든요. 그보다 주하나 씨. 아까 이민아에게 꿈 조작 마법? 그걸 쓰셨는데, 혹시 꿈 내용이 무엇인지…….”

“…하세리 헌터님 말씀처럼, 모르는 게 약일 거예요.”

주하나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이민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주하나 또한 이민아를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근데 박유진 씨는 여자와 관련해서는 눈치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닌가 보네요. 좋았다면, 제가 무슨 꿈을 꾸게 했는지 보통 알 텐데.”

“…네, 뭐, 그렇죠.”

사실 이민아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알 거 같았다.

그냥 내가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뿐이었다.

모르는 척이라도 안 하면… 과거의 잔재들이 또 나를 괴롭힐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으음, 히히. 유진아…….”

이민아는 행복하다는 표정과 함께, 내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기는 했다.

아무래도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나아가 이민아까지 행복해지려면, 나는 이 과거를 떨쳐 낼 필요가 있었다.

다만 나는 내 과거를 떨쳐 낼 준비가 아직 안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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