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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98화 (98/240)

98화

【 팀전 】

이민아는 잠든 지 약 30분 만에 다시 깨어났다.

그녀는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히이. 유진이 조아.”

그러다가 이내, 헤픈 미소와 함께 다시금 나를 끌어안았다.

이 녀석은 아직도 자기가 꿈꾸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헛웃음과 함께 이마를 살짝 때려 줬다.

“아얏?!”

“잠 깨, 인마.”

“…에?”

“잠 깨라고. 이거 꿈 아니니까.”

“…….”

이민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내 그녀의 얼굴의 터질 듯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X발, X발, X발.”

“으윽?”

이민아는 나를 침대 밖으로 밀어냈다.

그러고는 침대에 엎드린 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뭐, 여기까지야 그러려니 했다만.

“으아아아! X발! 나 뭐 한 거야!”

이불을 막 걷어차며 소리를 지르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야, 인마. 목소리 좀 낮춰라. 여기 의료실…….”

“그냥 놔두세요, 박유진 씨.”

언제 다가온 건지, 주하나는 멋쩍게 웃으며 내 옆에 서 있었다.

“잠시 저렇게 놔두는 편이 이민아 씨에게 더 좋을 거예요.”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다만, 그래도 여기에 다른 환자들이…….”

“그건 걱정 마세요.”

주하나는 이 말과 함께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언제 발동한 건지, 그녀의 손바닥 위에 작은 마법진이 있었다.

“이럴 거 같아서 미리 주위에 방음 마법을 깔아 놨거든요.”

“철저하시네요.”

“힐러로 지내다 보면 온갖 일들을 다 겪거든요. 소리치는 분들도 여럿 있었죠.”

그건 그렇고, 라고 주하나는 내 옆을 슬쩍 보며 말했다.

“유나는 갔나요?”

“주하나 씨가 일하시는 동안 먼저 집에 보냈어요. 어차피 여기 있어 봤자 지루하기만 할 테니까요.”

“그렇군요. 근데 박유진 씨. 혹시 이민아 씨께서 전에…….”

“하나 씨! 여기 좀 도와주세요!”

주하나는 내게 무언가 물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이야기 도중, 의료실의 다른 힐러가 주하나를 불렀다.

“이분 다리 쪽 뼈가 이상하게 붙은 거 같은데, 뼈 재생 마법을 다시 해야 될 거 같아요! 하나 씨 그 마법 쓸 줄 아시죠?”

“네, 지금 갈게요.”

주하나는 대꾸한 후, 아쉽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다음에 마저 이야기해도 괜찮죠?”

“네, 시간 비시면 오세요.”

이 대화를 끝으로 주하나는 다시 일하러 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이민아 쪽을 향했다.

“좀 진정됐냐?”

“…말 걸지 마. 나 지금 X나 쪽팔리니까.”

“뭐가? 방금 잠 덜 깬 상태로 내게 애교 부린 거? 그 정도는 내가 모른 척…….”

“X발, 그딴 배려가 더 기분 나쁘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만 이러는 게 아니야!”

“그럼 왜? 혹시 나에 대한 이상한 꿈이라도 꾸고 왔냐?”

“어, 어떻게 알았……. 으으, 그런 거 아니야!”

“아니면 말고.”

이민아는 여전히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쪽팔려 할 거 없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게…….”

“이걸 어떻게 그냥 넘어가는데.”

이민아는 이불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내가 아까 잠결에 애, 애교 부린 건 그렇다 쳐. 근데… 아까 경기 끝나고 내가 너를… 더, 덮쳤잖아.”

“아, 뭐야? 기억하고 있었냐?”

“당연히 기억하지! 그, 물론 자세히 기억하는 건 아니야. 내가 그런 몹쓸 짓을 했다는 것 정도만 기억하고 있어.”

“뭐, 몹쓸 짓까지는 아닌…….”

“몹쓸 짓이지. 그때 네 표정, 자세히는 못 봤지만, 네가 엄청 싫어하고 있는 건 봤어.”

…이걸 또 기억할 줄은 몰랐다.

회귀 전의 이민아는 이성을 잃으면 뭔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 하던 편이었는데, 이건 또 어찌어찌 기억하고 있었다.

“너 그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봤어. 하지만 나는…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데도 멈추지 않고…….”

“그건 네 본능 때문에 어쩔 수 없던 거야.”

“…그게 문제인 거야.”

이민아는 내 시선을 피한 채 중얼거렸다.

“내 본능을 조절 못 하고 있어. 너에게 애교 부리거나 쪽팔린 꼴 보인 거? 그건 괜찮아. 근데 내가 내 본능을 통제 못 해서 너에게 그딴 짓을 한 건…….”

“괜찮다니까. 내가 전에 너에게 말했잖아. 네가 본능에 먹혀도 내가 꼭 너를 책임지겠다고.”

“그러다가 네가 다치면 어쩌려고? 게다가 만약 오늘처럼 내가 너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안 다쳐도 네가 상처 입는 거잖아.”

이민아는 어느새 상체를 일으킨 채, 얼굴을 내게 가까이 가져오고 있었다.

“나는 네가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 내 손으로 널 다치게 할 바에, 그냥 다른 사람들을…….”

“그딴 소리 하지 마, 인마. 그리고 괜한 걱정도 하지 말고.”

나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나는 너에게 다칠 일이 없잖아. 이성을 유지하면서도 날 못 이기는데, 이성을 잃은 채로 날 이길 수 있겠냐?”

“…네가 다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야.”

장난스럽게 말해 봤으나, 이민아는 여전히 우울한 눈빛이었다.

“아까 내 몸이 뭔가 이상했어. 본능이 통제 안 되는 것도 그렇지만……. 이건 뭔가 달랐어. 나 이러다가 진짜 너에게 큰 사고를 한 번…….”

“괜찮아. 다 괜찮아.”

나는 이민아의 손을 잡았고, 이에 이민아는 흠칫 놀랐다.

“…박유진?”

“너는 강해지는 것에만 집중해. 그 외의 문제들은 내가 해결할게.”

“하지만 내가 다음에도 이러면…….”

“나를 믿어 봐. 해결책 금방 구해 올 테니까.”

해결책 자체는 간단했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를 고치는 것.

그것만 해결되면, 오늘 같은 일이 또 일어나도 내 선에서 해결이 가능했다.

‘어차피 해야만 했던 일이야.’

일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민아가 강해질수록, 그녀는 본능에 먹힐 위험이 더욱 커졌다.

그렇기에 이민아를 성장시키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나는 과거를 극복해 내야만 했다.

‘뭐, 그래도 당분간 이민아가 폭주할 일은 또 없겠지.’

하세리가 제안한 그 꿈 조작인지 뭔가로, 오늘의 위험은 넘겼다.

그렇다면 최소 다음 한 달 동안은 별일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사이에 해결책을 찾으면 됐다.

그건 다시 말해, 적어도 오늘은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됐고. 첫 번째 경기 점수 나왔는데, 들었냐?”

“뭐야? 나왔어? 우리 몇 점이야? 지금 몇 등이야?”

“96점, 그리고 현재 1등.”

“1등? 우리가?! 진짜로?!”

“목소리 낮춰, 인마. 그리고 벌써 기뻐하지 마. 현재 1등이지, 최종 1등은 아니니까. 우리 이 짓을 두 번은 더해야 해.”

“야, 그래도 시작이 좋잖아. 게다가 두 명에서 1등 하기 쉬운 게 아니야. 와. 근데 잠깐만. 우리 이거 완전 인터넷에 난리 난 거 아니야? 아마 너와 나에 대한 온갖 헛소리들이 커뮤에…….”

이민아는 온갖 호들갑을 떨었지만, 솔직히 이 모습이 보기 더 좋았다.

축 처져 있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몸도 다 괜찮아진 거 같으니, 주하나에게 말해서 얘랑 슬슬 집에나 가자. 그리고 내일 하루 쉬고, 모래에 팀전이니까……. 내일 하루 동안은 간단히 훈련을…….’

나는 이민아의 밝은 분위기에 맞춰 주며, 천천히 내일의 계획을 세웠다.

근데 그러던 도중, 예상치 못한 방문객이 의료실에 들어왔다.

“여기에 내 딸이 있다 들었는데, 잠시 들어가도 괜찮겠나?”

“이, 이, 이, 이진성…….”

“맞네. 그리고 놀랄 거 없네. 나는 내 딸을 만나러 온 것뿐이니까.”

거구의 사내는 놀란 힐러들을 지나, 우리 쪽을 향해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나 또한 꽤 당황했고.

“아, 아버지? 여기는 왜…….”

이민아는 몸을 조금씩 떨며 그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들에도, 이진성은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싸우는 거 잘 봤다. 그래서, 몸은 좀 괜찮니?”

* * *

알고 보니 이진성만 온 것이 아니었다.

이진성의 가족 전부가 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민아의 어머니부터 시작해 그녀의 오빠와 언니 전부가 의료실에 온 것이었다.

‘고세연, 이민주, 이현준. 저 세 사람들도 오랜만이네.’

회귀 전에 저들을 전부 만났기에,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다.

이민아의 언니인 이민주, 그리고 이민아의 오빠인 이현준.

저 둘은 크게 특별한 것 없었다.

단지 상식 밖의 부모 밑에서 자란 탓에, 저 둘의 상식이 조금 괴상하다는 것뿐.

‘하지만 고세연. 저 아줌마는 위험하지.’

무력 측면에서 위험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을 구슬리는 언변은, 어떻게 보면 단순 무력보다 더 위험했다.

실제로 저 아줌마 때문에 회귀 전에 피를 본 적이 있었고 말이다.

뭐, 그래도 저 아줌마는 아직까지 내게 큰 관심이 없어 보이니 다행이었다.

‘그건 그렇고.’

나는 이민아의 가족들에게서 눈을 돌리며, 다시금 이진성을 바라봤다.

그는 의외로 이민아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실력이 많이 좋아진 게 보였다. 한 달 안에 많이 달라졌구나. 지난 1년 동안 전혀 성장을 못 하더니.”

“아버지, 그건…….”

“박유진 덕이라고?”

“…네.”

“예상은 하고 있었다. 너를 한 달 동안 훈련시킨 게 박유진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진성은 이 말과 함께 이번에 내 쪽을 바라봤다.

“박유진. 그동안 잘 지냈나?”

“네, 뭐, 잘 지내고 있었죠.”

“일단 고맙다는 말부터 하지. 자네 덕분에 민아가 강해졌으니까.”

“그건 이민아가 열심히 한 거지, 딱히 제 덕은…….”

“아니, 자네 덕이 큰 게 맞네. 애초에 자네의 존재 자체가 민아에게 있어 동기 부여였을 테니까.”

이진성은 평소처럼 무심하게, 그리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지난번에 봤던 것처럼 약간의 즐거움이 담겨 있었다.

“내 막내딸을 나보다 더 강하게 만들 거라는 자네의 말. 나는 잘 기억하고 있네. 그리고 계속 자네를 지켜볼 거고. 이 점, 명심하고 있도록.”

이 말을 끝으로, 이진성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아야. 치료 마저 받고, 집에 천천히 오도록 해라. 그리고 두 번째 경기는 수요일이었지?”

“네, 마, 맞아요. 내일은 쉬고, 수요일에…….”

“내일 쉬지 말고, 박유진과 계속 훈련하도록 해라. 보니까 오늘은 각자 실력으로 그냥 밀어붙인 거 같던데, 다음의 팀전은 쉽지 않을 거다.”

“…네, 아버지.”

“오늘 저녁부터 훈련해도 된다. 원한다면 집에 안 들어와도 되고. 박유진의 집에서 지내면서, 작전을 준비해도 괜찮다.”

“아,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할 테니, 선택은 네 몫이다.”

이진성은 이민아와 대화를 마친 후, 다시금 나를 바라봤다.

“자네의 활약도 기대하도록 하겠네. 솔직히 말해, 헌터 대전 최초로 E급이 우승을 하면 재미있을…….”

“아, 저 이제 D급입니다. E급이 아니라.”

“…그사이에 등급을 올린 건가. 흠, 역시 재밌는 놈이네. E급에서 올리는 건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진성의 입가에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물론 아주 잠깐이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 막내딸과 더불어, 자네의 성장과 활약도 기대 중이네. 그러니 나를 실망시키는 일 없도록 하게.”

“뭐, 노력해 보죠.”

“…저번에도 그렇고… 나를 상대로 당돌하구먼.”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이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의료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를 따라 고세연과 이현준도 따라 나갔고.

“박유진 씨. 만나서 반가워요. 저 민아의 언니인 이민주라고 해요.”

“아, 네. 만나서 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혹시 민아와 사귀는 사이라면 제게 솔직하게…….”

“언니.”

이민주가 내게 다가와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민아는 그런 이민주의 말을 바로 끊었다.

“부탁인데, 그냥 나가. 어서.”

“아, 알겠어. 뭘 정색을 하고 그래.”

이민아가 차갑게 말하자, 이민주는 움찔하며 빠르게 자기 가족들을 따라 나갔다.

그나저나 의외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민아는 이민주를 포함해 자기 가족에게 아예 못 대들었다.

근데 방금의 상황은 대체 뭔…….

“야, 혹시 저녁에 훈련할 생각 있냐?”

이민주가 나가는 걸 확인한 후, 이민아는 바로 내게 물었다.

“나는 크게 상관없어. 근데 웬일이냐. 네가 먼저 훈련하자고 제안하고. 평소에는 싫다면서 도망이나…….”

“우리 지금 1등이잖아. 이 기세를 유지해야지. 1등 할 수 있는 희망이 아예 없다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희망이 보이잖아. 그럼 더 열심히 해야지, 안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그럼 나 유나에게 늦는다고 연락을 하고…….”

“아, 그 전에 우리 뭐 좀 먹자. 나 배고파. 육회 먹으러 가자.”

“또 육회냐? 너 때문에 내가 요즘 날고기를 너무 많이 먹는…….”

“아아, 가자. 나 오늘 열심히 했잖아.”

“열심히 하기는 했지.”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주하나에게 인사를 하고, 이민아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런 후 나와 이민아는 그날 저녁 늦게까지 함께 훈련을 했다.

* * *

그리고 다음 날, 훈련을 바로 하기 위해 아침부터 고연대에서 다시 만났지만…….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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