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00화 (100/240)

100화

* * *

“헌터 대전의 두 번째 경기, 팀전이 오늘 시작됩니다! 오늘도 고연대학교를 찾아오신 분들이 많은 가운데, 경기장의 열기는 첫날보다 더욱…….”

어느새 밝아 온 수요일.

헌터 대전의 두 번째 경기인 팀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오늘도 많이 왔네.”

스타디움 내의 선수 대기실 안에서, 나는 중계 화면을 통해 관객석 쪽을 바라봤다.

어째 첫날, 그러니까 몬스터 사냥 경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온 것만 같았다.

‘팀전이라.’

몬스터가 아닌 사람들과 싸우는 경기.

헌터들이 보통 몬스터들과 싸우는 편이라, 이런 대인전을 힘들어하는 헌터들이 은근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아니지.’

나는 회귀하기 전에 암살로 일을 시작했었다.

암살,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에 나름 도가 텄다.

물론, 나만 그런 것이었다.

“야, 나 첫날보다 더 긴장되는데, 이거 정상이냐?”

“보통은 그게 정상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내 옆의 이민아에게 대꾸했다.

그러면서 대기실 내의 다른 참가자들을 훑어봤다.

다들 이민아와 마찬가지로, 꽤 긴장한 얼굴들이었다.

‘사람들을 상대로 진지하게 싸우는 편은 처음이겠지.’

수업에서 하는 모의전 같은 게 아닌, 다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진지하게 임하는 전투였다.

이런 걸 처음 접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긴장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흐음, 그나저나 이 가면을 쓰는 편이 좋으려나.’

나는 코트 주머니에 넣어놨던 실키의 가면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대인전에 있어, 이 가면은 꽤 유용했다.

다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가면의 존재를 드러내기는 애매했다.

특히 이 가면의 원래 주인이 살아 있는 이상, 아무래도 이 가면의 존재를 드러내는 건…….

“그리고 오늘 경기를 위해 고연대 헌터학과의 이희나 교수님이 해설로 와 주셨습니다. 이희나 교수님, 한마디 하시겠습니까?”

“우선 이 헌터 대전을 보러 와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이번에 헌터 대전을 참가하는 학생들에게도…….”

장비들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던 중, 중계 화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희나 교수님이 해설하시네?”

“응, 원래 헌터 대전에 해설은 없었는데, 이희나 교수님이 이번에 갑자기 하시고 싶다더라. 찌라시지만, 그냥 교수님이 심심해서 했다는데.”

“심심한 거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희나 교수가 해설을 하든 안 하든,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중요한 건,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럼 거두절미하고 바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원래 같았으면 A조, B조, C조, D조, E조 순으로 경기를 했겠지만, 이희나 교수님.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한다고요?”

“보통은 그 순서대로 하지만, 이번에는 E조부터 하자고 제가 제안했어요. 알고 계실 분들도 있겠지만, E조는 예선전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차지한 두 팀으로 이루어졌죠. 그리고 가장 높은 성적을 차지한 혜택으로, E조에서 승리한 팀은 바로 4강으로 올라갈 수 있고요.”

이건 또 뭔 소리지?

E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나와 이민아는 이희나의 말에 집중했다.

아니, 우리 둘만 집중하는 게 아니었다.

같은 E조인 7팀, 그러니까 어제 내게 시비를 걸었던 이지현이 속했던 팀.

그 팀의 구성원들도 이희나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헌터 대전은 E조를 마지막에, 그러니까 일종의 미리 보는 결승전? 그런 느낌의 이벤트로 놔두었죠.”

“오오, 근데 이번에는 E조의 경기를 가장 먼저 한다고요?”

“가끔 이런 변화가 헌터 대전을 더 재밌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장 뛰어난 두 팀의 대결로 스타트를 끊으면, 헌터 대전의 열기가 더 끓어오르지 않겠어요?”

“네, 그것도 매우 맞는 말이죠.”

“그리고 그것 말고도.”

이희나는 잠시 뜸을 들이며, 카메라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두 팀의 경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해설로서 중립을 지키기는 해야겠다만, 저는 4팀이 어떻게 팀전을 진행할지 매우 궁금하면서도 기대 중이거든요.”

“그렇군요! 4팀은 이번에 단 두 명에서 헌터 대전에 나온 최초의 팀이라는데, 아마 이희나 교수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희나의 말에 나는 헛웃음과 함께 옆의 이민아를 바라봤다.

“그렇다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더 긴장되는데? 뭔가 우리에게 어그로가 다 끌린 느낌이야.”

“어그로 끌리는 건, 헌터 대전을 둘이서 참가했을 때부터 각오했어야지.”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너무 긴장하지 마, 인마. 사람들이 우리에게 집중하든 말든, 우리는 그냥 준비한 대로만 하면 되니까.”

“으으, 야. 나 강아지 아니니까 손 떼라.”

“그런 것치고는 기분 좋아 보이는데?”

“아, 안 좋거든?! 머리 쓰담쓰담 당해서 내가 왜 조, 좋아하는데?”

“싫음 말고.”

“…아, 아니. 그, 시, 싫다는 건 아니니까, 가, 가끔 해도 상관은 없…….”

“솔직하지 못하기는.”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그러면서 이내 궁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방금 이희나 교수님 말로는 E조가 가장 먼저 경기를 한다는데, 이것도 뭐, 따로 공지 받은 거 있었냐?”

“아니, 이건 나도 못 들은 거야. 아마 어제저녁이나 오늘 아침에 정한 거 같은데?”

“흠, 그래?”

나는 7팀 쪽을 슬쩍 바라봤다.

저쪽도 고개를 갸웃하는 거 보니, 이희나의 독단으로 정해진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 그래도 이런 건 사전에 공지하는 게 맞지 않는…….

“이희나, 저 아줌마도 웃기고 있네.”

속으로 생각하던 중, 갑자기 이지현이 입을 열었다.

“4팀이 기대되기는 무슨. 어차피 이민아 말고는 볼 것도 없는데.”

“누나. 제발 목소리 좀 낮춰. 괜히 또…….”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이지현은 우리 보고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했다.

이에 어제 내게 친절히 인사를 건넸던 박재혁은 당황했고, 이민아의 표정은 험악해졌다.

“저년이 또…….”

“됐어, 신경 쓰지 마.”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이민아를 재빨리 말렸다.

그런 후, 나 또한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말했다.

그것도 이지현을 바라보며, 그녀 보고 들으라는 듯이 말이다.

“어차피 이기는 건 우리야. 곧 질 사람에게 너무 열 내는 건 시간 낭비지.”

“…허, 참 나.”

이지현은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내가 진다고? 이민아에게 버스 타는 내가 너에게 질…….”

“쓸데없는 말싸움으로 힘 빼지 말죠. 누구 말이 맞는지, 직접 싸워 보면 알게 될 테니까요.”

“하, 너 E급이라면서? E급 따위가 C급 힐러인 내게 뭐를 할…….”

“우선, 저는 D급입니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제게 겁먹은 거 아니죠? 겁먹은 사람들 특징이 혓바닥이 긴 건데.”

“뭐라고? 이 개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을…….”

“그럼 말로 그만 싸우고, 이따가 직접 싸워 보죠. 거기서 누가 더 허접한지, 결과로 나올 테니까요.”

나는 이렇게 말하며, 내 허리의 자바니아에 손을 가져갔다.

싸움이 이렇게까지 기대되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년을 가장 먼저 쓰러뜨려 버리자.’

저 여자에게 최초 탈락의 영광을 주면… 아주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 * *

이지현은 4팀이, 정확히는 박유진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 있었다.

우선, 이지현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졸업이었다.

작년에 이미 헌터 대전에서 3등을 차지했지만, 졸업하기 전에 그녀는 어떻게든 1등을 하고 싶었다.

거기에 더불어, 상위권 길드들의 눈길을 끌어, 최대한 좋은 곳에 스카우트 되고자 했다.

하지만 그걸 박유진이 망쳤다.

‘아무것도 아닌 새끼가 관심을 다 가져갔잖아.’

C급, 하지만 이제 곧 B급으로 올라갈 힐러인 이지현.

그녀는 자신이 고작 E급, D급에게 밀리는 걸 도저히 용납 못 했다.

게다가 심지어 그 D급은…….

‘이민아에게 얹혀 가는 주제에 뭐가 대단하다고.’

박유진이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이유였다.

결국 4팀은 이민아가 혼자 다 하는 팀이었고, 박유진은 말 그대로 그냥 들러리였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적어도 이지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지현은 저딴 D급이 자신과 1등을 경쟁한다는 게 너무 불쾌했다.

‘누가 더 허접한지 결과로 나온다고? X발, 저 새끼는 내가 직접 패 죽인다.’

이지현은 이를 악물며, 손에 들린 메이스를 더 세게 붙잡았다.

그녀는 힐러지만, 나름 딜러를 겸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 조만간 B급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상 준B급이었으니, 이지현은 박유진을 단신으로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다가오기만 해 봐. 바로 대가리를 날려 버릴 테니까.’

이지현은 박유진이 단검으로 싸우는 근접 딜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박유진은 이지현을 잡기 위해 다가올 수밖에 없을 터였다.

“자, 애들아. 가자.”

마음을 독하게 먹은 후.

이지현은 자신의 팀을 데리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우승이 목표다. 알겠지?”

“네!”

“네!”

“넵!”

“그리고 박유진. 그 새끼는 그냥 반쯤 죽여. 재혁아, 네가 탱커니까 그 새끼를…….”

“누나. 제발 부탁인데, 그렇게까지…….”

박재혁은 한숨을 쉬었지만, 이지현은 이미 박유진을 철저히 박살 내기로 마음먹은 후였다.

그렇게 이지현은 포함한 7팀은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는 경기장에 도착했다.

“네! 4팀과 7팀! 두 팀 모두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울려 퍼지는 사회자의 말.

이지현은 경기장 반대쪽에 서 있는 이민아와 박유진을, 특히 박유진을 노려봤다.

하지만 박유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것도 비웃는 듯한 웃음을 말이다.

이에 이지현은 순간 짜증이 확 치솟았다.

이게 이지현을 도발시키기 위한 박유진의 계획임을 눈치 못 채며 말이다.

“…애들아. 이민아는 그냥 무시해. 박유진 저 새끼만 조져. 알겠지?”

“누나. 그냥 기존의 계획대로 이민아 씨부터…….”

“내 말대로 해.”

이지현은 박재혁의 의견을 묵살했다.

그녀는 지금 박유진을 잡을 생각뿐이었다.

박유진을 잡고, 사람들에게 박유진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거품으로 가득 찼던 인간인지 보여 주고 싶었다.

“자, 그럼 선수들이 다 모인 거 같으니! 바로 필드 마법을 랜덤으로 발동하겠습니다!”

필드 마법.

특정 공간을 바꾸어 버리는 마법이었다.

이 필드 마법을 통해, 팀전은 경기장의 모습을 랜덤으로 바꿔 가며 진행될 수 있었다.

그리고 E조가 싸우게 될 장소는…….

“네! 황무지! E조의 전투 장소는 황무지로 정해졌습니다!”

사회자의 이 말과 함께, 경기장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경기장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스타디움의 경기장에서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이 갈라진 황야로 말이다.

“우와!”

“와, 이거 직접 보니까 신기하다.”

“방금 바뀌는 거 봤어.”

필드 마법을 처음 보는 관객들은 그 광경에 감탄했다.

하지만 이지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팀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엄폐물 없는 개활지. 플랜 D로 간다.”

“누나 말 다들 들었지? 플랜 D다, 플랜 D.”

“네!”

“넵!”

이지현은 자기 앞으로 대열을 갖추는 자신의 팀을 바라봤다.

자신의 팀, 그러니까 7팀은 팀전에서 가장 전형적인, 탱커 둘, 딜러 둘, 힐러 둘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전형적이었지만 그만큼 효율적이었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가 가능한 구성이었다.

‘개활지니까, 탱커들이 엄폐물 역할을 해 주고, 원거리 딜러에게 버프를 몰아줘야지.’

이지현은 다시금 박유진과 이민아를 바라봤다.

이지현이 아는 바에 의하면, 이민아는 방벽 등의 엄폐물을 만드는 능력이 없었다.

즉, 박유진과 이민아는 7팀의 원거리 공격을 일방적으로 맞을 운명이었다.

‘내게 그딴 소리를 한 걸 후회하게 해 주겠어.’

이지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얼른 경기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그녀는 바로 박유진을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재혁, 저 둘에게 천천히 접근해. 미연, 넌 서브 탱커니까 재혁이를 잘 보조해 줘. 예준, 네가 원거리 딜러니까 뭘 해야 되는지 알지?”

계획은 완벽했다.

이지현은 이렇게만 하면 박유진과 이민아 따위는 손쉽게 이길 자신 있었다.

“3, 2, 1! 경기 시작입니다!”

경기의 시작을 알려오는 사회자의 말.

이지현은 자신의 팀원들을 전진시키며, 후방에서 상황을 주시했다.

그녀의 역할은 팀원들을 치료하면서, 팀의 또 다른 힐러를 보호하는 것.

만약 박유진이 자신의 팀원들을 암살하러 온다면, 그녀가 재빨리 대처를…….

“…음?! 뭐야?!”

이지현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소리쳤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죽어, 이년아!”

갑자기 자기 코앞에 나타난 이민아 때문이었다.

“어, 언제…….”

이민아는 분명 박유진과 같이 경기장 반대쪽에 있었다.

그러나 이민아는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그 거리를 좁혔다.

앞에 있던 탱커와 딜러들을 지나, 바로 자기 코앞으로 온 것이었다.

이지현은 당황하면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메이스를 들어 올렸으나.

“커어억?!”

이민아가 훨씬 빨랐다.

이지현은 이민아의 주먹을 맞고 뒤로 날아갔다.

“어억, 허억.”

상당히 아픈 한 방이었다.

그러나 아까 미리 써 둔 방어력 버프 덕분에, 이지현은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

휘리리릭―

“…어?”

이번에는 와이어가 어디선가 날아와, 이지현의 상체를 묶었다.

이에 이지현은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그럴 틈이 없었다.

“제가 말했죠. 누가 더 허접한지는 결과로 알게 될 거라고.”

“박유진?! 너, 너 언제 내 뒤로…….”

이지현은 그가 다가오는 걸 전혀 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인기척조차 못 느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박유진은 이지현 근처에 나타나 있었다.

“아무래도… 이지현 씨 쪽이 더 허접했나 보네요.”

“이 새끼가 뭔…….”

이지현은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와이어는 너무나도 견고히 그녀를 묶고 있었다.

게다가 박유진은 그저 구경만 하지 않았다.

파지지직―

박유진은 와이어를 통해 고압의 전류를 흘려보냈고.

“크아아악! 카가각!?”

이지현은 그 전류를 직격으로 맞았다.

그로 인해, 7팀의 힐러는 그 자리에 그대로 기절했다.

“…별 것 없으면서 나대기는.”

박유진은 피식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5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사이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 이지현은 팀전에서 가장 빨리 쓰러진 참가자가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