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 *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7팀의 팀장, 이지현이 순식간에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4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바로 다음 표적을 쓰러뜨리는데요! 이희나 교수님,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
“저도… 이건 많이 당황스럽네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이희나는 진짜로 당황했다.
이런 식의 싸움 방식은 그녀 또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보통 팀전에서의 전투 방식은 정해진 편이에요. 탱커들이 진입을 해 최대한 많은 자리를 선점해, 뒤의 딜러들과 힐러들이 최대한 날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네, 맞습니다. 그래서 팀전은 주로 땅따먹기 게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땅따먹기. 네, 땅따먹기죠. 그리고 그 땅따먹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탱커들이 전선을 유지하는 것이에요. 탱커들이 전선을 유지한 채 전진을 해야 그 땅따먹기가 이루어질 수 있거든요.”
탱커들의 이 땅따먹기는 몬스터를 레이드할 때도 유효했다.
최대한 많은 공간을 확보해야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몬스터 사냥에서도 중요했고, 이 팀전에서도 공간 확보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 보니, 이 팀전이라는 게임도 시간을 흐를수록 정형화가 되었다.
물론 다양한 전략과 전술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탱커들의 이 ‘땅따먹기’라는 개념은 변하지 않았다.
그만큼 전투에 있어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박유진과 이민아는 그 대전제를 깨는 중이었다.
“4팀, 그러니까 박유진과 이민아 학생은… 전선이 없어요.”
보통 팀전의 초반은, 최대한 많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탱커들의 땅따먹기부터 시작되었다.
그게 당연했기에 이희나는 그런 광경을 예상했다.
‘이민아가 혼자서 7팀 탱커 두 명을 상대하며 공간 확보에 나설 줄 알았어.’
이희나는 팀전에서 박유진과 이민아가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닌, 이민아 혼자서 공간을 확보를 못 하기 때문이었다.
공간 확보를 못 하면, 이민아와 박유진은 자연스럽게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런 줄 알았는데…….
“공간 확보를 안 하고, 그냥 냅다 적 본진에 뛰어든다고?”
이희나는 자기도 모르게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지만, 이희나는 지금 그런 것 따위에 신경을 안 썼다.
그만큼 눈앞의 광경이 신박했기 때문이다.
“그, 이희나 교수님. 지금 마이크…….”
“…아. 네, 제가 많이 놀라서요.”
“아마 교수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겁니다. 이런 팀전은 탱커들이 천천히 전진하면서 경기를 풀어 나가는 편인데…….”
“이민아와 박유진은 그 대전제를 깨뜨린 거죠.”
이희나는 이 말과 함께 다시금 경기장을 바라봤다.
이지현을 쓰러뜨린 후, 박유진과 이민아는 7팀의 다음 힐러를 같이 잡는 중이었다.
쉽게 말해, 박유진과 이민아는 7팀의 멤버 하나씩 각개 격파 중이었다.
‘팀전에서 저런 방식을 쓴다?’
헌터들 중에, 합이 매우 잘 맞는 팀들은 저런 전술을 쓰기는 했다.
적의 최전선부터 차근차근 무너뜨리는 방식이 아닌, 냅다 적의 중앙의 뛰어드는 전술.
그리고 적의 최후방의 서포터와 힐러들부터 잡아내는 전술.
‘해외에서 이런 방식으로 싸우는 팀이 있다고는 들었어. 근데 이 방식은 엄청 위험할 텐데.’
적진 한가운데에 뛰어드는 거니, 오히려 역으로 당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하지만 팀 합이 매우 잘 맞으면, 파괴력이 상당히 높은 방법이었다.
‘물론 지금 박유진과 이민아는 한 몸처럼 싸우고 있기는 해. 근데 그렇게 하더라도, 이건 상당히 불안한 전술이야.’
이 전술을 쓰는 해외의 팀들은 기본적으로 탱커, 딜러, 힐러, 서포터를 다 갖춘 팀들.
전술은 위험해도, 팀 자체는 상당히 안정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진 편이었다.
그러나 4팀은 탱커 이민아와 딜러 박유진, 단둘.
힐러와 서포터가 아예 없는, 한 번 당하면 끝인 불안정한 팀.
쉽게 말해, 뒤가 없는 팀이었다.
‘한 번 무너지면 끝인 팀. 그렇지만……. 무너질 것 같지가 않네.’
이희나는 경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말했듯, 이민아와 박유진 둘 중 한 명만 부상을 입어도 큰 타격이었다.
그러나 7팀 중 그 누구도 제대로 된 공격을 못 하고 있었다.
박유진과 이민아의 이런 방식을 전혀 예상 못 했는지, 그저 우왕좌왕하는 모습들만 보여 주고 있었다.
‘이 전술을 생각해 낸 건 아마 박유진이겠지.’
근거는 없었지만, 이희나의 직감이 그렇다 말해 주고 있었다.
‘세리가 보는 눈이 있어. 저런 인재를 바로 영입하려 들고.’
이런 과감한 전술을 생각하고, 그걸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박유진은 이민아를 데리고 그걸 해냈다.
“이희나 교수님. 4팀이 준비한 이 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이희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와 함께 싸우는 박유진을 바라봤다.
검은 코트를 입은 채 싸우는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인상적이었다.
“박유진, 저 학생은 크게 될 헌터입니다. 제 이름을 걸고 보장할게요.”
* * *
“야, 박유진! 힐러 두 명 다 잡았어! 이제 뭐 해?”
“저쪽에 저격 총 든 남자, 보이지?”
“오케이, 가능! 바로 뛰어?”
“가자.”
“가즈아!”
7팀의 힐러 두 명을 쓰러뜨린 후.
우리는 숨 돌릴 틈조차 가지지 않고, 바로 다음 목표를 정해 공격을 이어 나갔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죽어, 새끼야!”
“으, 으아아악?!”
저격수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이민아는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저격수는 이에 대응하려고 한 거 같았지만, 그러기에 이민아가 너무나도 빨랐다.
그가 할 수 있던 거라고는, 저격 총을 들어 이민아의 주먹을 막는 것뿐이었다.
쾅―!
“크억?!”
그러나 이민아의 완력에 저격 총이 박살 나는 것과 동시에, 남자는 뒤로 멀리 밀려났다.
그래도 저격 총으로 막은 탓에, 그는 바로 쓰러지지 않았다.
그래, ‘아직’은 쓰러지지 않았다.
“고통 없이 보내 드리죠.”
“뭐, 뭐야? 너 언제 내 옆에…….”
“방금 온 거예요.”
남자가 뭘 더 하기도 전에, 나는 남자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대로 전류를 흘려보냈다.
“크아아악?! 카아악?!”
7팀의 원거리 딜러도 순식간에 쓰러뜨렸다.
이렇게 20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나와 이민아는 7팀의 인원 절반을 쓰러뜨렸다.
‘계획했던 대로야.’
보통의 팀전은 탱커들이 천천히 땅따먹기를 진행하며, 상대를 서서히 압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단둘.
게다가 이민아는 땅따먹기를 하는, 그러니까 천천히 싸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전술을 준비했지.’
상대 적 진영 중심으로 뛰어들어, 빠르게 하나씩 쓰러뜨리는 것.
물론 이 계획은 말이 쉽지, 실제로 하려면 꽤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게, 적의 중앙에 바로 뛰어들 수 있는 기동성.
그리고 상대를 순식간에 끝낼 수 있는 순간적인 파워가 필요했다.
심지어 적의 본진에 뛰어드는 거라, 리스크가 상당했다.
‘하지만 나와 이민아는 그게 가능했지.’
우리 둘 다 기동성이 좋은 편에 속했고, 순간적인 파워 또한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적진에 냅다 뛰어든 리스크는…….
‘이민아는 그냥 신체 능력 하나로, 나는 회귀하기 전에 쌓은 경험들로 상쇄했지.’
거기다 나는 이민아와 함께 한 달 내내 이 전술을 연습했다.
빡세게 한 만큼, 우리가 준비한 이 계획은 완벽에 가까웠다.
“박유진! 다음 타겟은 누구로 해?!”
“저쪽에 너클 낀 여자 보이지?”
“확인! 바로 뛸 수 있어! 지금 갈까?”
“먼저 뛰어. 내가 따라갈… 윽?”
이민아와 다음 표적을 정하던 중.
방패와 한손검을 든 7팀의 탱커, 박재혁이 내게 돌진해 왔다.
“잘 싸우네요, 박유진 씨.”
“각개 격파를 잘한 거죠.”
나는 자바니아를 들어, 박재혁의 검을 막았다.
“그리고 그게 잘 먹혀든 거고요.”
“각개 격파. 좋네요. 그럼 저희도 그걸 참고할게요.”
이 말과 함께 박재혁은 내게 방패를 내리찍었다.
원래 같았으면 피하거나 막았겠지만, 나는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이민아는 바로 내 곁에 달려와 대신 공격을 맞아 줬다.
“박유진을… 건들기만 해 봐.”
“으윽? 애들아! 다 모여!”
박재혁은 이민아와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7팀의 남은 인원들을 모았다.
“이민아는 나중에 잡아! 박유진부터 공격해!”
도끼를 든 서브 탱커와 너클을 낀 근접 딜러.
그 둘과 함께 박재혁은 내게 다시금 천천히 다가왔다.
이민아는 그 세 사람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박유진, 어떻게 할까? 너클 낀 놈 노려? 근데 저렇게 뭉쳐 있으면 각개 격파가…….”
“이제 각개 격파는 못 하겠다.”
내가 준비한 ‘적진에 돌진’ 전략은 적들이 흩어져 있을 때 큰 효율을 보였다.
저렇게 뭉쳐 있으면 안 하느니만 못했다.
“그래도 세 명이면… 실력으로 눌러 버릴 수 있겠지.”
“아, 실력으로 누르라는 건…….”
“예선 때 기억하지? 마음껏 날뛰도록 해. 내가 널 보조해 줄게.”
“알겠어!”
이민아는 신난 표정을 지으며, 7팀의 남은 3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피식 웃으며 이민아를 따라갔다.
자바니아와 와이어들을 꺼낸 채, 거기다 전류까지 마음껏 내뿜으며 말이다.
* * *
“박유진! 우리가 해냈어! 우리가 이겼다고! 우리 이제 바로 4강으로 올라가!”
“알겠어, 인마. 알겠으니까 목소리 좀 낮춰라.”
나는 선수 대기실 바닥에 누운 채 곡소리를 냈다.
7팀과의 경기가 끝난 지 약 20분이 지났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우리의 승리였다.
7팀의 남은 세 명은 열심히 싸웠지만, 나와 이민아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이민아를 상대로 고전하는 게 보였다.
여섯 명 전부가 이민아를 다굴했으면 모르겠으나, 셋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나까지 상대를 해야 했으니 더더욱 힘들었을 터였다.
‘근데 나도 힘드네, X발.’
속전속결로 끝내는 전략.
빠르게 싸워야 하다 보니,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전투를 할 때는 아드레날린으로 버텼지만, 전투가 끝나고 긴장이 풀리자…….
“아으. 온몸이 아프네.”
말 그대로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신체 능력을 C급까지 끌어올렸음에도, 방금의 전술은 내게 있어 꽤 버거웠다.
“괜찮아? 많이 힘들면 의료실 갈래?”
“됐어. 한 시간만 쉬면 괜찮아질 거다.”
“그래도 가자, 응?”
나와 다르게 이민아는 체력이 넘치는 듯했다.
뭐, B급 헌터에 늑대인간이기까지 하니, 넘쳐 나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가는 김에, 이지현. 그년의 면상을 보자고.”
“너 그게 목적이구나?”
“야, 솔직히 이지현이 선 시비 걸었는데 졌잖아. 그런 년에게 티배깅쯤은, 아앗?! 야, 왜 때려?”
“그런 거 하지 마, 인마. 사소한 이유 때문에 적 늘려 봤자 좋을 거 없거든.”
나는 이민아의 이마를 살짝 때리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지현 입장에서 우리가 안 찾아가는 편이 더 기분 나쁠 거다.”
“응? 아아, 그러니까 ‘너에게 티배깅할 가치조차 없다.’ 이런 건가?”
“뭐, 대충 그런 거라 보자.”
나는 코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아무튼, 우리 이제 4강에 올라간 거지?”
“응, 그치.”
“4강 언제 시작하는지 알아?”
“그건 몰라. 다른 팀들 경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하기야. 그럼 지금 다른 조들의 경기들은 시작했고?”
“지금 A조 하는 중이야. 저 TV에 중계 중이고.”
“알겠다. 그럼 다른 팀들 하는 거 보면서, 우리도 다음 경기 준비하자.”
“응!”
이민아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준비하고, 그대로 우승까지 가자! 솔직히 팀전 긴가민가했는데, 아까 하고 오니까 자신감 생겼어. 우리 잘만 하면 우승할 수 있을 거 같아!”
“할 수 있을 거 같은 게 아니라, 할 수 있어. 연습한 대로만 하면 충분히 가능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 또한 방금의 경기를 통해 자신감이 생겼다.
‘7팀이 우리 다음으로 성적이 좋았던 팀이었지. 그리고 7팀이 저 정도면… 진짜 우승까지 노려 볼 만해.’
나는 A조의 경기를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내가 고연대학교의 헌터학과 학생들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