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02화 (102/240)

102화

* * *

“박유진 씨. 몸은 좋아진 거 같나요?”

“네, 주신 포션 덕분에 좋아졌네요.”

나는 병에 남아 있던 포션을 마저 다 마시며 말했다.

“고마워요, 주하나 씨. 바쁠 텐데 이렇게 찾아와 주고.”

“뭘요,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닌데.”

주하나는 미소를 지으며 내 곁에 앉았다.

몇 분 전, 다른 팀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중.

선수 대기실에 주하나가 찾아와, 내게 체력 회복 포션을 주었다.

갑자기 찾아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하얀 머리의 힐러에게 고마웠다.

“그나저나 이 포션 성능이 좋네요. 피로가 전부 사라진 느낌이에요.”

“최상급 체력 회복 포션이거든요. 엘릭서 계열이라 효과가 바로 나타났을 거예요.”

“엘릭서요? 그거 비싼 거 아닌가요?”

힐러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도 엘릭서에 대해서는 들어 봤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분명 엄청나게 비싼 포션 중 하나였는데…….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제가 박유진 씨에게 주고 싶어서 준 거니까.”

“그래도…….”

“괜찮다니까요. 게다가 힐러들은 엘릭서쯤은 쉽게 얻을 수 있는 편이에요.”

“그런가요?”

“네. 게다가 박유진 씨에게 엘릭서가 필요했을 것 같거든요.”

주하나는 내 곁에 다가오며 말했다.

“아까 7팀이었나? 아무튼 박유진 씨가 싸우는 거 봤는데,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돌아다니더라고요.”

“네, 좀 많이 뛰어다녔죠.”

“근데 박유진 씨는 D급이시잖아요. D급이 그렇게 뛰어다니다 보면 분명 탈진 증상이 올 수밖에 없거든요.”

“아, 그래서 엘릭서를 들고 찾아온 건가요?”

“박유진 씨라면 뭔가 탈진해도 그냥 이 악물고 버틸 거 같았거든요.”

“…저에 대해 잘 아시네요.”

“제가 박유진 씨와 나름 오래 알고 지냈잖아요? 그래서 예상이 되더라고요.”

주하나는 나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예쁜 미소라, 나 또한 미소를 지어 주려고 했는데…….

“저기요. 제가 박유진과 더 오래 알고 지냈거든요.”

이민아가 주하나와 나 사이에 냉큼 끼어들었다.

그녀는 누가 봐도 심기가 불편한 표정이었다.

“제가 그쪽보다 박유진을 더 잘 안다고요.”

“뭐, 어때요.”

주하나는 따뜻하게 말했다.

“저는 앞으로 천천히 박유진 씨에 대해 알아 가면 되거든요. 천천히, 그것도 오랫동안이요.”

“으읏?”

이런 반응은 예상 못 한 건지, 이민아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민아는 이내 뻔뻔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됐고요. 제 포션은 어딨어요? 설마 박유진 것만 준비한 거 아니죠?”

“박유진 씨 것만 준비했는데요?”

주하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이민아 양은 B급이라 당연히 체력이 넘쳐 날 거라 생각했죠. 그리고 실제로도 아까 왔을 때 쌩쌩하셨던…….”

“와, 이 아줌마 사람 차별하네. 힐러라면서 환자를 차별하면… 아앗?!”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인마.”

나는 이민아의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날리며 말했다.

이에 이민아는 억울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야, 왜 때려?!”

“이상한 소리 하니까 때린 거다. 그리고 주하나 씨는 너와 한 살인가 두 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 아줌마는 뭔 아줌마냐?”

“아니, 그러니까 이건……. 아이 씨, 몰라! 그리고 너 왜 맨날 나만 때리냐?”

“너 말고 때릴 사람 없으니까. 내가 주하나 씨를 때릴 수는 없잖아.”

“왜 못 때린다고 생각해? 야, 너도 충분히 저 아줌마의 이마에 딱밤을, 아앗?!”

“조용히 하고 있어라, 인마.”

나는 한숨을 쉬며 이민아의 이마에 또 한 번 딱밤을 날렸다.

그 후, 머리를 긁적이며 주하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죄송해요, 주하나 씨. 이 녀석, 오늘 뭔가 기운이 필요 이상으로 넘치네요.”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주하나는 특유의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이제 곧 B조의 경기가 끝나서, 의료실에서 치료할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네. 고생하시고, 엘릭서 줘서 고마워요. 역시 제 건강을 챙겨 주는 건 주하나 씨밖에 없네요.”

“…혹시 방금 그 말, 다시 해 줄 수 있을까요?”

“네? 주하나 씨밖에 없다는 거요?”

“후훗.”

주하나는 그 말을 듣고 무언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를 이렇게 웃게 만들어 주는 건, 역시 박유진 씨밖에 없네요.”

“뭐,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요.”

“도움이 엄청 됐죠. 아무튼, 박유진 씨. 다음 경기 잘 하시고, 혹시라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저 찾아오세요. 제가 어떻게든 치료해 드릴 테니까요.”

“네, 알겠어요. 고맙고, 이따 시간 되면 찾아갈게요.”

“오늘도 꼭 1등 하세요.”

주하나는 이 말과 함께 선수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주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내 옆에 있던 이민아가 울상을 지으며 앉았다.

“씨이이. 야, 너 어째 갈수록 더 세지는 거 같다. 야, 봐봐. 나 이마 빨개졌다니까.”

“어차피 빨개져도 10초 안에 괜찮아지잖아.”

“아니,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머리 맞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

“너 좋아하던 거 같은데, 아니냐?”

“…응?”

“맨날 맞을 때마다 입꼬리가 조금씩 움직이던데, 내가 잘못 본 건가?”

“자, 잘 못 본 거야! 내,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 잘못 본 거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 주제는 대충 넘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까 주하나와 있는 동안 연락이 몇 통 온 거 같았는데…….

[오빠! 아까 경기 다 봤어! 오빠 우승까지 하는 거 지켜볼 테니까, 파이팅!]

이 문자들과 함께 사진도 하나 와 있었다.

유나가 관객석에서 웃으며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자,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귀엽게 잘 나왔네.”

나는 유나의 사진을 바로 저장했다.

이렇게 건강하게 내게 미소를 지어 주니, 나는 행복을…….

“너 진짜 유나에게만 그렇게 웃어 주는구나.”

유나의 사진을 보던 중, 옆에 있던 이민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너 그렇게 헤프게 웃는 거 보기 좋은데, 맨날 유나에게만 하고 나는…….”

“너도 유나만큼이나 내게 소중해지면, 너에게 이렇게 웃어 줄 수 있어.”

“유나는 네 가족이잖아. 내가 네 가족만큼이나 어떻게 소중해져?”

“간단하잖아. 너도 내 가족 되면 되잖아. 안 그래?”

“내가 네 가족이 어떻게 되는데? 핏줄이 안 이어진…….”

“핏줄이 안 이어져도 가족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많아. 너도 알고 있는 거 몇 개 있을걸?”

“허. 그럼 내가 뭐, 너랑 겨, 결혼이라도 해?”

“안 될 것도 없지.”

“…에?”

내 장난스러운 말에 이민아는 얼굴이 붉어졌다.

“내, 내, 내가 너랑 겨, 결혼을 왜 하는…….”

“싫으면 말고.”

“시, 싫다는 건 아니…….”

“그래, 그래. 알겠다.”

“으으으.”

나는 이민아의 갈색 단발머리를 쓰다듬으며 대화를 대충 마무리 지었다.

이민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손길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 둘은 평소처럼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내 스마트폰이 다시 울렸다.

“누구지?”

유나 말고 내게 또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던…….

“…하세리 헌터님이네.”

“응, 그러네.”

내 스마트폰을 먼저 확인한 이민아의 목소리는 차갑게 내리 앉았다.

이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기만 했다.

“너 하세리 헌터님과 싸우기라도 했냐?”

“그런 거 아니야. 오해하지 마.”

“아니, 너 목소리가 갑자기…….”

“그런 거 아니라고.”

이민아는 고개를 홱 돌리며 내게서 떨어졌다.

누가 봐도 토라진 모습이었다.

얘가 또 왜 이러나 싶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 녀석이 이유 모를 행동을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하세리가 또 내게 왜 문자를…….

[첫 경기 잘 봤어요. 이대로만 하면 오늘 팀전 1등은 당연히 가져가겠네요.

미리 축하드리고, 이따 같이 저녁이라도 먹을까요. 오늘 박유진 씨의 경기에 대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거든요.]

…그냥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내용이었다.

뭐, 하세리와 저녁 먹는 건 나는 괜찮았다.

근데 이민아가 그걸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만 봐도, 이민아는 하세리를 불편해하는 듯했으니 말이다.

‘그냥 상황 봐서 어떻게든 하자.’

대충 결론을 내린 후, 나는 하세리에게 답장을 보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는 건 오늘 경기들 다 끝나고 알려드릴게요. 오늘 저녁에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요.]

나는 그럴듯한 답장을 보냈다.

내가 아는 하세리라면 내 이런 답장에 분명 넘어가 줄…….

[네, 알겠어요. 그럼 오늘 남은 경기들 잘 하시고, 끝나고 제가 이따 찾아갈게요.]

…하세리가 직접 찾아올 거라는 건 예상 못 했다.

내가 아는 하세리는 누군가를 직접 찾아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근데 하세리는 어째 나를 자주 찾아왔다.

‘내게 뭔가 있는 건가?’

여러모로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그냥 대충 이 주제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어차피 이런 걸로 생각을 해 봤자 의미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흠, 그나저나 팀전 1등은 우리가 당연히 가져간다라…….’

나는 어지간해서 내 실력을 과신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름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었다.

“…뭐야? 나 갑자기 왜 쳐다보는 거야?”

내가 이민아는 뚫어져라 쳐다보자, 이민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에 나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4강 곧 시작이지?”

“응? 어어, 그렇지? 왜?”

“별것 아니고. 그냥, 이번에도 잘해 보자고.”

이민아만 할 걸 다 해 주고, 내가 이민아의 활약에 호응만 잘 해 주는 것.

그렇게만 하면 우승은 당연히 우리 것이 될 터였다.

‘우리의 다음 상대는… 1팀이구나.’

1팀.

탱커 둘, 딜러 셋, 힐러 하나, 서포터 하나.

총 일곱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별 것 없겠네.’

아까 7팀을 상대했던 것처럼, 준비한 대로만 하면 됐다.

1팀에게 숨 돌릴 틈도 안 주며 공격을 이어 나가면 쉽게 이길 듯했다.

…그래, 이때까지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막상 1팀과의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크르르르.”

“으윽. 야, 이민아. 정신 좀…….”

“크아아아!”

“아, 그래. 알겠다.”

내 위에 올라탄 이민아는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민아도 최대한 힘을 뺀 건지, 죽을 정도로 조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민아가 이 상태가 된 건, 많이 안 좋았다.

‘하아. 1팀에 몬스터 테이머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

나는 저 멀리서 우리를 구경하는 1팀, 그중 팔짱을 끼고 있는 딜러 한 명을 바라봤다.

그는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뭔가 참, 내 입장에서 기분이 나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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