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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03화 (103/240)

103화

모든 일의 발단은 몇 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 *

“1팀과 4팀의 대결, 지금 시작합니다!”

스타디움에 울려 퍼지는 사회자의 말.

나와 이민아, 단둘로 이루어진 4팀.

그리고 일곱 명으로 이루어진 1팀.

두 팀은 경기장에 양쪽 끝에 모인 채 서로를 바라봤다.

“그럼 바로 두 팀이 싸울 장소를 정하겠습니다. 이번에도 필드 마법이 랜덤으로 발동되는데, 과연 이 두 팀이 어디서 싸우게 될지…….”

거대한 경기장 바닥에 나타난 마법진.

마법진은 다양한 색깔로 빛났다.

그러다가 이내, 마법진은 초록색 빛에서 멈추었다.

“네! 필드는 밀림으로 정해졌습니다!”

사회자의 말과 동시에, 경기장에 수백의 나무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경기장 반대편에 있던 1팀이 더 이상 안 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말이다.

“으음, 기습하기 좋겠는데?”

이민아는 우리 앞에 나타난 숲을 보며 말했다.

“나무 뒤에 숨어서 몰래 다가가면 될 거 같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을 거다. 그리고 밀림이라…….”

나는 밀림, 아니, 사실상 정글에 가까워진 경기장을 바라봤다.

“…이런 지형이면, 나 혼자서 될지도?”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이민아의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방금 했던 혼잣말은 나름 근거가 있었다.

‘고지대와 엄폐물이 많고, 이렇게까지 어두운 곳은 암살자에게 있어 최적이지.’

물론 1팀의 실력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지형의 이점을 살리면, 어쩌면 이민아 없이도 1팀은 나 혼자서…….

‘됐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나 혼자 싸우게 될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높지는 않았다.

이민아가 쓰러지지 않게끔, 내가 잘 봐 줄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저 나무 위에 올라갈 수 있지?”

“이 나무?”

“응, 이거.”

나는 와이어를 꺼내 들어, 나무의 꼭대기를 향해 던졌다.

“일단 고지대에 올라가자.”

이 말과 함께 나는 와이어를 타고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민아 또한 날카로운 손톱들을 이용해 따라 올라왔다.

“오케이, 올라왔어. 이제 뭐 해?”

“1팀을 찾아야지. 언제나 먼저 해야 할 건 적의 위치 파악이야.”

“뭐가 보이기는 보이냐? 나무들 때문에 암만 둘러봐도 아무것도…….”

“그러냐? 나는 이미 찾았는데.”

“엥? 찾았다고? 대체 뭘 보고?”

“잘 찾아봐. 너는 나보다 시력도 좋을 텐데.”

“으음, 야. 아무리 봐도 안 보이는…….”

“그럼 귀를 이용해 봐. 너라면 적들의 소리가 들릴 테니까.”

이희나 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민아 또한 감각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아직 감각들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2km 떨어진 적들도 잘만 찾아냈던 녀석이었다.

“으으음, 으음. 아! 야, 저기! 맞지?”

“저기보다 조금 옆이다.”

나는 이민아가 가리킨 곳에서 몇 미터 떨어진 장소를 가리켰다.

“나무와 수풀 뒤에 다들 숨었지만, 한 명의 발이 조금 나왔잖아. 보이지?”

“…아니, 넌 대체 저게 어떻게 보이는 거냐? 시력이 좋은 걸 떠나서 숨은그림찾기 고수도 저건…….”

“이런 짓을 자주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거든.”

표적 중에서 몸을 숨기던 인간들도 자주 있다 보니, 이런 짓거리에 말 그대로 요령이 생긴 터였다.

“됐고, 1팀 기준 오른쪽, 30m 떨어진 곳에 있는 느티나무 보이지?”

“느티나무가 뭐야?”

“하긴, 이건 아는 내가 이상한 거지. 그러니까 내 말은, 저기 엄청 큰 나무 보이지?”

“저 나무?”

“응, 저 나무.”

내가 손으로 가리키자, 이민아는 바로 내 말을 이해했다.

“저 나무로 최대한 빠르고 조용히 이동해. 그리고 저기서 한 번 숨을 고르고, 바로 1팀을 기습하는 거야. 이해했지?”

“X나 단순하네. 마음에 들어.”

“그럼 어서 가자. 시간 더 지체하지 말고.”

나는 이 말과 함께 와이어를 날리며 먼저 출발했다.

이민아는 그런 나를 순수한 각력을 이용해 따라왔다.

그렇게 우리 둘은 커다란 느티나무에 순식간에 도착했다.

“1팀 위치, 보이지?”

“응, 여기서는 잘 보이네.”

느티나무 위.

나와 이민아는 서로에게 작게 속삭였다.

“아까 대기실에도 말했지만, 1팀은 탱커 둘, 딜러 셋, 힐러 하나, 서포터 하나야. 그리고 우리가 우선적으로 노릴 건…….”

“힐러나 서포터?”

“맞아. 우리는 무조건 힐러와 서포터부터 잡고 가는 거니까.”

“이번에도 내가 먼저 들어가서 어그로 끌고, 네가 마무리 짓는 전략으로?”

“응. 우리가 연습했던 대로.”

“그럼 들어간다? 목표는 저 하얀 사제복 힐러로?”

“좋아. 저 인간부터 잡자.”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민아는 1팀을 향해, 정확히는 1팀의 힐러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약 0.5초 뒤에 나도 같은 방향으로 뛰었다.

나는 당연히 이민아가 힐러를 향해 주먹을 휘둘러, 그를 팀에게서 멀리 날려 버릴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일이 일어났다.

“멈춰. 움직이자 마.”

1팀의 딜러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자, 이민아는 갑자기 그 자리에 굳었다.

“엇?! 뭐, 뭐야?”

이민아는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는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 듯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와이어를 이용해, 재빨리 뒤로 빠졌다.

그런 후, 이민아를 내 옆으로 끌고 오기 위해, 와이어를 이민아의 손목 쪽을 향해 날렸는데…….

“늑대인간. 이쪽으로 와. 어서.”

방금 입을 열었던 그 딜러가 다시 명령을 내리자, 이민아는 내 와이어를 피해 1팀 쪽으로 몸을 옮겼다.

“뭐야? 야, 너 X발, 내 몸에 뭔 짓을…….”

“오, 설마 했는데 진짜 되네? 이민아 정도의 늑대인간은 조금 힘들 줄 알았는데.”

“너 내 말에…….”

“입 다물고 잠시 대기하고 있어.”

“헛소리하지 말고 답을……. 으읍?! 읍읍으읏?!”

이민아는 어째서인지 1팀 딜러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내 파악했다.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몬스터 테이머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요.”

“제가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었나 보네요?”

“전의 경기들을 다 봤으니까요.”

나는 1팀의 인원들을 전부 한 번씩 둘러보며 말했다.

“다칠수록 강해지는 탱커, 아군에게 보호막을 주는 탱커. 이렇게 탱커 둘. 궁수, 마탄 사수, 마법사. 이렇게 딜러 셋. 프리스트 하나, 그리고 정령 계열의 서포터 하나. 인원 구성은 이미 파악해 놨죠.”

하지만, 이라고 말하며 나는 이민아를 바라봤다.

“그 마법사가 몬스터 테이머의 힘을 지니고 있을 줄은……. 방금 말한 것처럼, 상상도 못 했네요.”

“그럴 수밖에 없죠. 흔한 능력이 아니니까요. 이희나 교수님이 괜히 대한민국에서 귀한 취급을 받는 게 아니잖아요?”

7팀의 마법사는 피식 웃으며 나를, 그리고 이민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민아 씨는 인간이지만, 늑대인간의 유전자가 섞였죠. 그리고 늑대인간은 몬스터. 몬스터의 유전자가 섞인 이상, 제 능력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거죠.”

“그럼 저희의 위치도 처음부터 다 파악하고 있었겠네요.”

“그렇죠. 몬스터 테이머들은 몬스터들의 위치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이민아 씨가 저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걸 저는 처음부터 파악하고 있었어요.”

“…이거 제대로 한 방 먹었네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몬스터 테이머라는 존재 덕에, 나는 지금 제대로 한 방 먹은 것이었다.

‘이거 일이 귀찮아지겠네.’

몬스터 테이머란, 말 그대로 몬스터들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었다.

다만, 몬스터 테이머들의 구체적인 능력은 사람마다 상이했다.

이희나 같은 경우에는 몬스터를 다루는 걸 넘어, 직접 의사소통까지 가능한 몇 안 되는 몬스터 테이머였고.

‘저 마법사는……. 보니까 몬스터에게만 명령을 내릴 수 있나 보네.’

가장 흔한 유형의 몬스터 테이머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도 위협적이었다.

만약 이민아를 이용해 나를 공격하게 한다면…….

“그건 그렇고,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늑대인간의 본능이 그렇게 강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늑대인간. 네 본능에 몸을 맡겨 봐.”

“으으읍?! 으읍! 으으브……. 으으……. 크르르르.”

“…X됐네.”

나는 근처의 나무를 향해 와이어를 날려,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자 했다.

하지만…….

“늑대인간, 공격해.”

“크르르르!”

이민아가 나보다 훨씬 빨랐다.

이성을 잃은 이민아는 순식간에 나를 덮쳐, 내 위에 올라탔다.

“으윽. 야, 이민아. 정신 차려 봐. 너는…….”

“크아아아아!”

“하아아, 또 시작이냐.”

나는 이민아를 내게서 떨어뜨리고자 했다.

그러나 이민아는 내 양팔을 붙잡은 채, 나를 완벽히 제압했다.

“목 졸라서 기절시켜. 그리고 기절만 시켜. 절대 죽이지는 말고.”

“…크르르르.”

마법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민아는 늑대인간의 손을 내 목에 가져갔다.

이대로 숨 막혀 쓰러지는 건가 싶었는데, 어째서인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민아?”

“크르르, 나, 크르, 는…….”

이민아의 손은 내 목 위에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내 목을 조르고 있지 않았다.

“으으, 나는…….”

이민아의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그녀는 손에 힘을 안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하긴, 몬스터 테이머라고 모든 몬스터를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지.’

별의별 몬스터를 전부 다루는 이희나가 이상한 거지, 보통은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몬스터밖에 못 다루었다.

그리고 저 마법사는 이민아를 완벽히 조종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민아는 아마 이런 식으로 조종당하는 건 처음이겠지. 그래서 그에 대한 내성이 없을 거야.’

이민아 수준의 늑대인간이라면 어지간한 몬스터 테이머에게 당하지 않을 터였다.

그녀라면 정신력으로 저 마법사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민아. 내 말 잘 들어. 지금부터 최대한 집중해. 너의 자아는…….”

이런 계열의 정신 오염이나 세뇌.

나 또한 많이 써 봤고, 많이 당해 봤었다.

그래서 그 대처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민아에게 그것들을 말로 빠르게 설명하고자 했는데.

“크아아아아!”

이민아는 냅다 포효를 하더니, 머리를 높게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머리를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바닥에 엄청난 구멍이 생겼고, 이민아는 그대로 쓰러졌다.

아무래도 나를 직접 공격할 바에, 스스로를 기절시키는 방법을 택한 듯했다.

‘뭐, 이게 최선이기는 했겠네.’

정신 공격을 못 이겨 낼 거 같으니, 그냥 스스로 기절시킨다.

나라도 살리고자 이런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근데 나를 이렇게 살린 것까지는 좋은데…….

“으음, 조원선 씨. 아무래도 제 실력으로는 완벽한 통제는 무리였네요. B급이나 되는 늑대인간인데, 통한 것만 해도 기적이죠.”

“아니. 이민아를 쓰러뜨린 것만 해도, 너는 할 거 다 한 거야.”

마법사의 말에, 조원선이라 불린 창잡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저 B급이었잖아. 근데 잡혔고, 이제 남은 건… E급 하나네. 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지.”

“으음, 조원선 씨라고 했죠?”

나는 이민아를 안전한 곳에 옮긴 뒤,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보니까 1팀의 팀장 같으신데, 맞나요?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는 이제 D급…….”

“박유진 씨가 E급인지 D급인지 관심 없어요.”

조원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찮은 싸움은 하기 싫으니 그냥 항복하세요. 그리고 덕분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네요. 헌터 대전에서 전투 없이 적을 이긴 팀으로…….”

“왜 제게 항복을 권유하시는 거죠?”

“네? 왜라니? 그야, 박유진 씨 혼자서 저희 일곱 명을 어떻게 이겨요? 솔직히 C급인 저만 해도 혼자서 이길 자신이…….”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것이죠.”

나는 자바니아를 꺼내 들며 말했다.

“끝까지 한 번 싸워 보죠. 아직 누가 더 긴지 모르는 거니까.”

“하. 박유진 씨. 잘 싸우는 건 알겠는데, 혼자서 저희 일곱 명을 어떻게…….”

“혹시 모르잖아요? 1대7 상황에서 일곱 명을 이긴 놈으로, 제가 역사에 남을지도?”

원래라면 무리였다.

내가 암만 회귀했다고 해도, 지금의 나는 D급 헌터.

이런 몸으로, C와 D급이 섞인 일곱 명의 팀을 혼자 이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경기장의 지형이 매우 좋지.’

경기 시작 전에 말했듯, 이곳은 암살자들에게 있어 최적의 장소였다.

지형의 이점을 살리면, 저 일곱 명을 상대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좋아. 암살 의뢰를 받았다 생각하자. 암살 대상은 저 일곱 명으로.’

오랜만에 본업을 하려고 하니 몸이 간질거렸다.

그런 몸으로, 나는 코트의 주머니에서 실키의 가면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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