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 * *
당황한 조원선의 얼굴은 상당히 볼만 했다.
뭐, 사실 저런 얼굴일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극소수였으니 말이다.
“너… 너, 이 X발 새끼야! 대체 뭔 수작을 부린 거야!?”
“수작을 부리다니요? 제가 얼마나 정정당당히 싸웠는데.”
“X발, 정정당당은 개뿔! 너 지금 뭔…….”
“암살자에게 이런 방식이 정정당당하거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암살자들에게 있어 이런 방식이 가장 올바른 것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애들 목소리, 그거 네가 낸 거지?! 방금 내 목소리로 은아 씨 유인한 것도…….”
“제게 잔재주가 조금 많아서요.”
나는 피식 웃으며, 가면 안쪽의 버튼 하나를 눌렀다.
그리고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예를 들어, 이런 잔재주요.”
나는 조원선의 목소리로 말했다.
어설픈 변조가 아닌, 완벽한 조원선의 목소리였다.
‘엄밀히 따지면 내 잔재주가 아니기는 하지.’
실키의 가면.
이 가면이 지닌 수많은 기능 중 하나였다.
최대 열 명의 목소리를 녹음해,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완벽히 복사할 수 있었다.
‘내가 자주 쓰는 기증 중 하나지.’
혼자서 다수를 상대할 때 상당히 유용했다.
적들의 목소리를 이용해 혼선을 주면, 그만큼 상대하기 쉬워졌으니 말이다.
‘물론 이게 쉽지만은 않지.’
실키의 가면으로 베낄 수 있는 건 어디까지 목소리뿐.
적들의 말투까지는 베낄 수 없었다.
실제로 말투를 못 따라 해, 이 방식이 파훼 당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지.’
몇 년간의 경험 덕에, 나는 적들의 말투쯤은 바로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몇 분 전, 나는 1팀의 마법사와 궁수의 말투를 완벽히 따라 했다.
그리고 지금, 조원선의 말투까지도 말이다.
“별것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유용한 잔재주이기는 하죠.”
나는 조원선의 목소리와 말투로 한마디를 더 했다.
이에 조원선은 분노에 찬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이 개새끼가. 그렇게 싸우니까 좋냐?”
“말했잖아요. 암살자에게 이런 방식이 정정당당한 거라고.”
나는 눈웃음과 함께 답하며 조원선을 살폈다.
‘일단 화나게 하는 데 성공했네.’
분노로 사리 분별 못 하는 적만큼 상대하기 쉬운 게 없었다.
나는 조원선이 완전히 이성을 잃을 때까지 속을 긁을 생각이었다.
“근데 조원선 씨도 참 대단하네요. 이민아를 먼저 잡아서 훨씬 유리했는데, 이렇게 제게 말려 버리고.”
“이건 네가 X같이…….”
“저보다는 조원선 씨의 전략이라거나 리더십에 문제가…….”
“닥쳐, 이 개새끼야!”
조원선은 이 말과 함께 내게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분노로만 가득한 그의 공격 따위는 내게 안 닿았다.
나는 그의 공격을 쉽게 피한 후, 와이어를 이용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X발! X같이 싸우네, 이 개새끼가!”
“칭찬 감사합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암살자에게 있어 저런 말은 극찬 중의 극찬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남은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할까?’
나는 나무 위에서 남은 1팀 인원들을 바라봤다.
남은 건 메인 탱커인 창잡이, 조원선.
그리고 마탄 사수와 궁수.
이렇게 셋이었다.
‘힐러와 서포터가 없으니 장기전으로 가면 내가 유리해.’
이 나무들 사이를 숨어 다니며 조금씩 적들을 갉아먹으면, 결국 내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실력이 적들에 비해 모자랄 경우에 쓰는 방법.
솔직히 말해, 지금의 나라면 저 셋쯤은 금방 이길 듯했다.
“야! 저 새끼 어서 맞혀! 총과 활로 맞히라고!”
밑에서 들려오는 조원선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마탄과 화살들이 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여유롭게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자, 어떻게 할까?”
내 전반적인 능력은 여전히 D급 헌터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얻은 검은색 보석의 반지.
이 반지 덕에 내 신체 능력은 C급 헌터와 맞먹게 되었다.
‘게다가 내게는 최후의 수단이 하나 있지.’
나는 내 목에 걸린 푸른 돌멩이, 그러니까 엔드리온의 조각을 바라봤다.
여차하면 이 하나로 저 셋을 이기면 됐다.
‘하지만 이건 최후의 수단이니, 일단 직접 움직여 보자.’
나는 자바니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셋의 위치를 파악한 후, 가면에 손을 가져갔다.
“뒤쪽! 저 새끼 우리 뒤쪽으로 움직였어! 6시 방향!”
나는 조원선의 목소리로 마탄 사수와 궁수에게 외쳤다.
그러자 두 원거리 딜러는 무의식적으로 뒤쪽을 바라봤다.
“야! 아니야! 뒤쪽이 아니야! 방금 그건 내가 말한 게 아니라고!”
조원선은 이미 한 번 당한 덕인지, 두 번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저 두 원거리 딜러의 시선을 잠깐 돌린 것만 해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해 보자.’
나는 몸을 날려, 그대로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정확히 말해, 1팀의 두 딜러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크악?!”
“이건 뭔…….”
내 갑작스러운 등장에 두 사람은 놀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두 사람의 손에서 총과 활을 자바니아로 쳐 냈다.
그런 후, 그들의 급소를 향해 주먹과 무릎을 한 번씩 날려 줬다.
‘역시 원거리 딜러들이라 쉽네.’
원거리 딜러들은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거리를 좁히는 순간, 상대하기 매우 쉬웠다.
그도 그럴 게, 원거리 딜러들 대부분은 근접전에 약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나는 두 사람을 3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내에 제압을…….
“X 같은 새끼가.”
“윽?”
내 뒤에서 날아오는 창.
나는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래, X발. 인정할게. 너 대단한 새끼인 거,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까지 대단하지는…….”
“개소리하지 마. 혼자서 여섯을 순식간에 쓰러뜨렸는데, 이게 안 대단한 거면 뭐가 대단한 건데, X발.”
조원선은 창을 들어 올리며 나를 노려봤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를 좋아할 수는 없겠다. 이렇게 비겁하고 X 같이 싸우는데,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
“아, 그러니까 머리는 나쁘지만 몸 쓰는 건 자신 있다는 거죠? 그럼 한 번 제대로 붙어 보죠.”
“…뭐?”
“비겁하게 안 싸우고, 수작도 안 부리고, X 같이 안 싸울게요. 말 그대로 정정당당하게 싸울 테니까, 한 번 붙어 볼까요?”
“하, 참 나.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더럽게 싸우는 것뿐인 녀석이 뭔…….”
“크큭, 혓바닥이 참 길다?”
나는 반말과 함께, 약간의 비웃음을 날려 줬다.
“왜? 쫄았냐?”
“이 개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마법의 단어를 말하자, 조원선은 눈을 부릅뜨며 내게 돌진해 왔다.
원래 같았으면, 나는 여기서 와이어를 날리거나 그의 시야에서 벗어났을 것이었다.
그래, 원래 같았으면 말이다.
‘이번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지.’
지금까지 조원선과 제대로 싸워 본 적이 없었다.
해 봤자 그의 공격을 피한 게 다였다.
그러나 조원선의 실력을 판단하기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조원선 정도면 단검 하나로 이기겠지.’
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조원선보다 더 강한 창잡이를 훨씬 많이 상대했었다.
객관적인 판단 결과, 나는 조원선을 압승할 가능성이 높았다.
“넌 죽었어, X 같은 새끼야.”
조원선은 내게 창을 내리찍었다.
하지만 나는 큰 어려움 없이 그 공격을 피했다.
“있잖아요, 조원선 씨.”
“또 뭔……. 커억?!”
“이 경기 막 시작했을 때, 제게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조원선의 턱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며, 나는 피식 웃었다.
“조원선 씨 혼자서도 저를 이길 수 있다면서요. 근데 왜 못 이기는 거죠?”
“보자 보자 하니까! X나 나대네!”
조원선은 또다시 나를 공격했으나, 나는 이번에도 그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바니아의 손잡이로, 조원선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아악?! 으으, 이 새끼가.”
보통이라면 방금 그 공격을 맞고 쓰러졌을 거다.
하지만 탱커는 탱커였는지, 조원선의 맷집은 생각보다 좋았다.
“내가 널 못 잡을 거 같아?!”
이후로 전투는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되었다.
조원선이 온 힘을 다해 나를 공격하면, 나는 그 공격을 피하거나 막았다.
그런 후, 나는 조원선의 급소를 한 번씩 가격했다.
이런 식의 전투가 이어졌고,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지는 건 조원선이었다.
정작 나는 상당히 여유로웠는데 말이다.
“박유진, 허억, 헉. 너 D급이라며. 대체 D급이 어떻게 이런…….”
“제가 평범한 D급이 아니거든요.”
“…하앗!”
“약하네요. 조원선 씨 C급 헌터라고 하지 않았나요?”
자바니아로 창을 막으며, 나는 피식 웃었다.
“힘이 빠진 건가요? 아니면 C급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 그게 아니라면…….”
“크억?”
“조원선 씨가 그냥 약한 건가요?”
나는 조원선의 턱에 주먹을 날리며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내 주먹을 맞은 조원선은 잠시 휘청거렸으나, 이번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이내 중심을 잡은 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래. 나 아직은 약해. 하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그 말을 후회…….”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자바니아를 들어 올리며 조원선의 상태를 살폈다.
내게 일방적으로 맞은 덕에, 그의 몸 곳곳에 상처가 조금 나 있었다.
‘그래. 저 녀석을 상대로 싸움을 길게 끌어서는 안 되겠지.’
조원선의 능력은 광전사 계열의 능력.
그러니까 조원선은 다칠수록 더 강해지는 헌터였다.
즉, 조원선의 몸에 상처가 많아질수록 불리해지는 거 나였다.
‘이제 슬슬 끝내 볼까.’
광전사 능력을 발휘하기 전에 조원선을 단번에 끝내야 했다.
단 하나의 일격으로 말이다.
파지직―
내 몸 주위로 전기가 튀기 시작했다.
순간 엔드리온의 힘을 쓸까 고민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내 힘만을 써 보자.’
엔드리온의 조각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
게다가 항상 그 돌멩이에 의지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나 스스로의 힘만으로 싸워 나가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침 잘 됐어. 그동안 얼마나 강해졌는지, 실전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내 전류의 위력을 올리기 위해 매일 노력을 했다.
그 노력의 결과를 지금 선보일 때였다.
“그럴 일 없다고? 그럼 X발, 해 보자! 끝까지 가면 내가 다 이겨, 개새끼야! 누가 이기는지 한번 보자고!”
조원선은 아까 전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더 힘을 담아 창을 내게 휘둘렀다.
몸에 상처가 누적된 덕인지, 그의 광전사 능력이 발동된 듯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회귀 전에 이보다 더한 인간과 몬스터를 상대했으니까.
파지지직―!
나는 전류를 자바니아의 칼날 주위로 둘렀다.
그리고 조원선의 창을 피한 뒤, 그 칼날을 창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창은 단 일격에 두 동강 났다.
“내 창이?! 어, 어떻게…….”
“창을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엇?!”
나는 조원선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조원선이 이에 대처하기 전에, 나는 그에게 전류를 흘려보냈다.
최대한 많이, 그리고 최대한 고압으로 말이다.
“크아아악! 크카아악! 칵!”
조원선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게 잠시 뒤, 조원선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생각보다 힘드네.”
조원선이 쓰러지는 걸 확인한 후, 나는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역시 C급을 전류만으로 제압하는 건 쉽지 않아.’
방금 그 공격은, 나 혼자서 낼 수 있는 최대의 화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조원선을 겨우겨우 기절시켰다.
‘훈련을 더 빡세게 해야겠네.’
물론 조원선은 그냥 C급 헌터가 아닌, C급 탱커였다.
C급 탱커를 전류만으로 잡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전류만으로 조원선을 잡은 건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만족할 수 없어.’
나는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C급 탱커쯤은 가볍게 잡을 수 있어야 했다.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나는 바닥에 쓰러진 조원선을 바라봤다.
“이번 경기도 이긴 건가?”
1팀은 총 일곱 명이고, 나는 한 명씩 각개 격파했다.
분명 다 잡은…….
“으으으, 바, 박유진…….”
“음?”
끝난 줄 알고 긴장을 풀고 있던 중.
내 뒤쪽에서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