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06화 (106/240)

106화

“바, 박유진……. 으윽.”

“이민아?”

뒤를 돌아보자, 이민아가 휘청거리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야, 너 언제 깨어난 거야? 그보다 괜찮아? 너 머리에서 피가…….”

“으으, 머리 X나 아파…….”

나는 이민아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스스로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은 것 때문인지, 그녀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일단 이쪽으로 와서, 옳지. 자, 여기 앉아 봐.”

나는 이민아를 재빨리 내 옆에 앉았다.

피가 흐르는 그녀의 이마도 중요했지만, 나는 그녀의 눈을 가장 먼저 살폈다.

‘아까 그 몬스터 테이머에게 이상한 명령을 받았었지.’

그 몬스터 테이머, 그러니까 이상수.

그 남자는 이민아 보고 이성을 잃고, 본능에 몸을 맡기라고 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모르면서 말이다.

‘아직 그 본능이 몸에 남아 있으면…….’

나는 이민아의 눈빛을 살폈다.

그녀의 눈빛에 야생 늑대인간의 기운이 있으면, 그녀를 이 자리에서 바로 기절시켜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멀쩡하네.’

이민아의 눈빛을 자세히 살폈지만, 이상한 것은 못 발견했다.

즉, 이민아는 스스로 자신의 본능을 잠재우고 온 것이었다.

“박유진, 왜 그래? 나 왜 그렇게 보는 거야?”

“음?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네 상처가 좀 심해 보여서.”

나는 재빨리 이민아 이마의 상처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빨리 가서 치료 받자. 이거 흉터 남으면 안 되니까.”

“그 전에, 이 경기 어떻게 됐어?”

이민아는 불안하다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나 아까 기절했었고……. 1팀은 일곱 명이었잖아. 호, 혹시 진 거 아니지?”

“왜 졌다고 생각해?”

“그야, 아무리 너라도 일곱 명은…….”

“기다리고 있어 봐.”

“응?”

“경기가 어떻게 됐는지 곧 알게 될 테니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의 나무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회자의 말이 스타디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4팀! 4팀이 이겼습니다! 박유진이 혼자서 일곱 명을 이기는, 아무도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습니다!”

“…에?”

사회자의 말을 듣자, 이민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겼다고? 네가? 혼자서? 1팀을?”

“뭘 이 정도 갖고.”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따라와, 인마. 네 이마 얼른 치료해야지. 어떻게 이겼는지는 가면서 설명해 줄게.”

* * *

“희나 언니.”

“왜, 세리야?”

1팀과 4팀의 경기가 끝난 후.

이희나와 하세리는 스타디움 내의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방금 경기, 그거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 되니까 그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언니라면 혼자서 일곱 명을 이길 자신 있어?”

“상대에 따라 다르지.”

방금 자판기에서 뽑아 온 캔커피를 하세리에게 건네며, 이희나는 대답했다.

“나보다 약한 상대면 수에 상관없이 이길 자신 있지.”

“언니와 실력이 비슷한 일곱 명이면?”

“장담은 못 하지.”

이희나는 캔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대꾸했다.

“물론 주변의 환경을 고려해야지. 만약 내 주변에 동물들이나 몬스터들이 있으면 해 볼 만할 거야. 근데 그런 게 아니라면, 내가 이기기 힘들겠지.”

“하긴. 틀린 말은 아니네.”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의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다 쳐도, 박유진이 혼자서 일곱 명을 어떻게 이겼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어. 박유진은 최근에 D급에 올랐는데, 1팀은 거의 다 C급이었잖아. 그 정도 실력 차이는…….”

“아까 봤던 그 밀림 있지? 그거 암살자들에게 상당히 좋은 지형이더라.”

“박유진이 암살자의 방식으로 싸우는 건 알아. 하지만 아까 경기는 지형의 이점만으로 이기기 힘든 것이었어. 자기보다 더 강한 적들을 단순히 암살만으로는…….”

“하지만 박유진은 그걸 해냈어. 그것도 완벽한 암살로.”

이희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렇게 완벽한 암살은 나도 처음 봤어. 아무 소리도 안 내도, 몰래 다가가서 단번에 쓰러뜨리는 거. 완전히 프로 암살자던데.”

“한두 번 해 본 솜씨는 아니었지.”

하세리는 고개를 또다시 끄덕였다.

“박유진이 어디서 뭐 하다 온 사람인지, 언니는 아는 거 없어?”

“내가 아는 게 뭐가 있겠냐? 나와 박유진은 교수와 학생. 그 이상도, 그 이하의 관계도 아니야.”

“으음, 그럼 내가 직접 알아봐야 되나?”

“그래,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너 어차피 내년부터 박유진 데리고 일한다고 했잖아. 같이 다니면서 천천히 알아 가 봐.”

“…천천히는 못 하겠다.”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언니. 나 이따 저녁에 박유진과 저녁 먹으러 갈 생각인데, 같이 올래?”

“음? 굳이? 애초에 교수와 같이 밥 먹는 걸 좋아할 학생은 없을 거다.”

“그럼 어쩔 수 없고.”

“근데 그 와중에 박유진과 저녁 약속까지 잡은 거냐?”

“아직 약속을 확정받은 건 아니야. 근데 어지간하면 오겠지.”

“근거 있는 자신감인 거 같다?”

“언니. 나 내년부터 박유진의 상사야. 박유진도 눈치가 있으면 오지 않겠어?”

“…하아아. 네가 그렇지 뭐.”

이희나는 어이없다는 웃음과 함께 한숨을 쉬었다.

잘못된 상사에게 걸렸다고, 박유진을 동정하며 말이다.

* * *

“지금 다들 네 이야기밖에 안 하네.”

“그러냐?”

“그럴 수밖에 없지. 혼자서 일곱 명 이긴 게 흔히 있는 일도 아니고.”

경기 끝나고, 이민아의 이마를 대충 치료한 후.

나와 이민아는 선수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야, 이거 봐. 여기 너 암살하는 거 찍혔다. 저 사제에게 몰래 다가가서 기절시키는……. 우와, 근데 너 이거 어떻게 하는 거냐? 진짜 깔끔하게 움직이네.”

“암살자라면 저 정도는 해야 해.”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내 대답에도, 이민아는 감탄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저 몬스터 테이머. 저 개새끼를 소리도 안 내고 어떻게 끌고 간 거냐? 단검 손잡이로 탁 치고, 완전 조용하게…….”

“저 정도는 해야 암살자라 불리는 거야.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너무 놀라지 마.”

“아니, 이게 왜 기본인데? 나도 지금까지 암살 스타일의 헌터들 많이 봤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본 적 없다니까.”

이민아는 이 말과 함께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게 보여 줬다.

“댓글도 보라니까. 네 움직임에 나만 놀라는 게 아니라고.”

이민아의 말대로 사람들은 이런 내 전투 스타일에 감탄하는 분위기였다.

뭐, 이제 막 성인이 된 녀석이 10년 넘게 구른 암살자의 포스를 보이면, 나도 놀라기는 했을 거다.

‘그나저나, 생각해 보니 이 실키의 가면의 존재를 오늘 공개한 거구나.’

그렇게 되면 이 가면의 원래 주인이 또 언제 나를 찾아올지 몰랐다.

아무래도 그에 대한 대책을 미리 세워 둘 필요가 있을 듯했다.

근데 그보다…….

“와, 다시 봐도 놀랍기는 하네. 사람들이 괜히……. 어어, 으음, 으으흠.”

“왜 그래? 뭔 일 있냐?”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이민아는 그렇게 대답했으나, 그녀의 반응은 누가 봐도 뭔 일이 있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뭔 일인데? 내게 말해 봐.”

“아,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이민아는 내 시선을 피하며, 스마트폰을 재빨리 옆으로 치웠다.

나는 뭔가 싶어서 그녀의 스마트폰을 뺏어 직접 확인했다.

“아! 야, 뭐 하는데? 어서 돌려…….”

“이거 때문에 그러는 거냐? 사람들이 너 욕해서.”

나는 스마트폰 화면에 비추는, 이민아를 비난하는 몇몇 댓글들을 가리켰다.

대충 내용이 이민아가 뭐 했느냐,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쉬었다, 등등의 내용들이었다.

“아니, 그, 그런 건 아니고, 그러니까…….”

“아니면 뭔데?”

“…하아아. 그럴 수도 있지, 새끼야.”

이민아는 의자 위에 늘어지며 한숨을 쉬었다.

“욕먹는데 기분 안 좋을 사람이 어디 있냐?”

“그런 거 신경 쓰지 마라. 할 일 없는 인간들이 그냥…….”

“나도 신경 안 쓰고 싶은데, 그게, 하아아. 맞는 말이잖아.”

이민아는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금 바라보며 말했다.

“나 한 거 없는 맞잖아. 혼자 아무것도 못 하고 쓰러지고, 너 혼자 진짜 다하고.”

“어쩔 수 없던 거야. 1팀에서 아예 너를 저격할 작정으로 나온 거라…….”

“그래도 내가 뭐라도 했으면, 너 혼자 고생을 안 해도…….”

“그만. 거기까지.”

이민아가 또 우울해지려고 하자, 나는 재빨리 그녀의 말을 끊었다.

“네가 잘못한 거 아무것도 없어. 그냥 운이 안 좋았던 것뿐이야.”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머리로는 다 이해하는데……. 그냥 너에게 미안해서. 아까 경기 다 너에게만 맡기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괜찮다니까 그러네.”

“게, 게다가……. 나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한 거……. 아버지가 이걸 어떻게 생각하실…….”

“…하긴, 그건 마음에 걸릴 만하다.”

생각해 보니까 이진성, 그 아저씨는 방금 이민아의 모습에 불만족스러워할 게 뻔했다.

혼자 정신 잃고 타인에게 모든 일의 해결을 맡긴 것.

이진성이 그런 걸 좋아할 리가 없었다.

“됐고, 이런 거 너무 신경 쓰지 마. 다음 경기 때 만회하면 되니까, 그거에 집중하자.”

“…응, 알겠어.”

내 말에 이민아는 이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아직 우울한 것 같았지만, 아까보다는 기운을 차린 모습이었다.

“이제 결승이잖아. 힘내고 여기서도 꼭 1등 해야지.”

“아, 그러네. 이제 결승이구나.”

방금 1팀과의 경기가 4강이라는 걸 깜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곧, 오늘의 마지막 경기를 하러 가야 했다.

“그럼 더 힘내야겠네. 그리고 이민아. 아까 경기에서 못 날뛴 거, 이번에 만회하는 거다. 오케이?”

“당연히 그래야지, 새끼야. 오늘의 마지막 경기니까 전력으로 갈 거다.”

“그래, 파이팅하자.”

하지만 이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의 그 마지막 경기에서, 이민아가 생각 이상으로 날뛰게 될 것을 말이다.

* * *

한편 같은 시각.

고연대학교의 의료실 안.

“박유진. 그 망할 새끼가…….”

7팀의 팀장이자 힐러를 맡았던 이지현.

그녀는 의료실의 침대에 앉은 채, 주먹을 세게 쥐었다.

“별것도 아닌 새끼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그녀는 지금 박유진이 증오스러웠다.

그가 대단하고 말고를 다 떠나, 그냥 그를 추락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방법을 그녀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박유진이 자기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이미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방법이…….’

그렇게 이지현이 속으로 고민하던 중, 의료실의 반대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현준 씨! 포션 준비됐어요? 결승 나가는 학생들에게 주기로 한 거!”

“아, 네. 저기 있어요. 두 개 따로 놔둔 건 4팀에게 주고, 나머지는 다른 팀에게 전부 주세요.”

“네! 고마워요!”

그 대화를 우연찮게 들은 이지현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잠깐……. 1팀에게 주는 포션이라면…….’

이지현은 힐러라, 포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었다.

그 지식 덕분에, 이지현은 박유진에게 복수할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