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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08화 (108/240)

108화

“박유진 씨!”

“박유진!”

이민아가 바로 내 곁에 다가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포션 저거, 아직 안 연 거. 가져와 봐.”

“어? 이, 이거?”

“뚜껑 열어 줘.”

나는 또 다른 포션을 확인했다.

그리고 확인 결과.

“…여기에도 넣어 놨네.”

어떤 개새끼인지 모르겠지만, 그 새끼는 나와 이민아.

우리 둘 모두에게 독을 먹이려고 한 듯했다.

“박유진 씨? 무슨 일이죠?”

내 곁에 다가온 하세리.

그녀는 평소에 잘 안 보이는,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프로기의 피예요.”

“프, 프로기의 피요?!”

근처에 있던 주하나는 놀라며 소리쳤다.

“프로기의 피가 왜 저 포션 안에…….”

“아마 누군가가 저와 이민아를 엿 먹일 작정이었나 보죠.”

나는 대꾸하며 내 몸을 살폈다.

프로기의 피는 섭취자의 신체를 느리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방금 극소량을 먹었지만, 프로기의 피는 극소량에도 효과가 발휘되는…….

“하아아, 으윽.”

숨쉬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손가락 하나조차 말이다.

“주하나 씨. 지금 박유진 씨를 치료…….”

“불가능해요. 프로기의 피는 자체적인 해독제가 아니면 치료를 못 하거든요.”

“그럼 그 해독제는…….”

“제작하려면 며칠 걸려요.”

주하나는 내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아니, 주하나뿐만이 아니었다.

“박유진. 이거 죽는 거 아니지? 지금 바로 병원에…….”

“프로기의 피는 사람을 죽이는 독은 아니야. 지금 그보다, 이제 곧 결승이…….”

“지금 그게 중요해, 새끼야?! 너 지금 상태가 이 꼴이잖아!”

“대회 쪽은 제가 말을 해 볼게요.”

하세리는 내 안색을 살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회 측에 제 지인들이 많으니, 제가 말을 잘 하면 될 거예요. 적어도 한 시간쯤은 미루는 게 가능할 테니, 그사이에 뭐라도 해 보죠.”

“가, 으윽, 감사합니다.”

“포션을 제대로 관리 안 한 제 책임도 있으니까요. 일단 5팀과 이야기를 해서, 경기를 미뤄 볼게요.”

이 말과 함께 하세리는 선수 대기실 반대쪽에 있는 5팀 쪽으로 갔다.

하세리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째 갈수록 하세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대체 뭔 이야기를 나누고 있나 궁금증이 생기던 중, 5팀의 탱커, 그러니까 5팀의 팀장으로 보이는 여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말이다.

“박유진 씨의 문제는 박유진 씨의 문제죠. 그것 때문에 경기를 미룰 이유가 전혀 없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지금 박유진 씨는 누군가 때문에 독을…….”

“그런 이유로 박유진 씨의 편의를 봐주면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

여자는 내 쪽을 슬쩍 바라봤다.

좋은 기회를 붙잡았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결승을 일정대로 진행하죠. 이것 때문에 경기가 미뤄지면, 저는 정식으로 학교, 그리고 헌터 협회에 항의를 하겠어요.”

“…김현지 씨였죠? 부협회장님의 손녀분?”

“맞아요. 어렸을 때 저를 본 기억 있으시죠?”

“있죠. 있기는 있죠.”

작게 한숨을 쉬는 하세리.

그 한숨을 듣자, 나는 확신했다.

오늘 하루가 길어질 거라는 것을 말이다.

* * *

“아니, 왜 그대로 진행하는 거죠? 박유진이 저 모양이잖아요?”

몇 분 뒤, 이민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항변했다.

하지만 대회 진행 위원 측의 의견은 확고했다.

“어쩔 수 없어요. 지금 와서 갑자기 결승을 미루는 건 불가능해요. 게다가 박유진 학생이 저렇게 된 건, 저희 입장에서는…….”

“박유진은 지금 독에 당했다고요! 그것도 누군가가 일부러 저희에게 독을 먹이려 한 건데, 이걸 그대로 진행하는 건 대체 뭐냐고요?”

이민아는 힘겹게 숨을 쉬는 나를 보며 외쳤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무래도 팀전의 결승을 미루거나 하는 건 힘든 듯했다.

“부협회장님의 손녀라. 인맥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는데, 저쪽의 인맥도 만만치가…….”

“괜찮, 으윽. 괜찮아요, 하세리 헌터님.”

나는 내 곁에 있던 붉은 머리의 헌터에게 대꾸했다.

“그리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이건 하세리 헌터님 탓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괜찮아요. 그리고 주하나 씨. 방법을 혹시 찾았나요?”

“…없어요.”

온갖 전문 서적들을 뒤져 보던 주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프로기의 피는 전용 해독제를 만들어야만 해요. 하지만 그 해독제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직접 만들려면 며칠이나 걸려요.”

“네, 알고 있어요.”

나도 이 독을 써 봐서 알았다.

장담하는데 한국에 그 해독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해외에는 찾아보면 있을 터였지만, 그걸 당장 손에 넣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쩔 수 없네요.”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움직이자 하세리와 주하나, 두 사람은 바로 나를 멈춰 세우려 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한 후, 아직도 말싸움을 벌이는 이민아 쪽으로 갔다.

“이민아. 그만하고, 그냥 결승 준비나 하자.”

“야, 뭔 소리 하는 거야? 너 지금 이 몸 상태로는…….”

“결승 미루는 건 안 된다잖아. 안 되는 거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준비나 마저 하자.”

“하지만 너는 지금 싸울 수가 없잖아.”

“못 싸우는 건 아니야. 고생 좀 하겠지만, 충분히 움직일 수는 있어.”

더한 상황을 더 많이 겪었다.

프로기의 피에 조금 당한 것 가지고, 내가 못 싸울 리가 없었다.

물론 방금 말한 것처럼 많이 힘들…….

“우욱?”

헛구역질을 했다.

순간 숨이 안 쉬어졌고, 동시에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는 듯했다.

“허억, 헉…….”

“병원 가자.”

그런 나를 바라보며, 이민아는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 이대로는 큰일 나. 지금 당장 치료를 받아야겠어.”

“…아니, 괜찮아. 아직 싸울 수 있어.”

나는 다시금 똑바로 서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우리 우승하기로 했잖아. 그럼 오늘 결승, 꼭 이겨야지.”

“그딴 거 필요 없어, 새끼야. 너 그러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됐고, 얼른 준비하자. 할 수 있을 때까지 해 봐야지.”

사실 마음 같아서는 치료나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이민아가 혼자 결승에 나가야 될지도 몰랐다.

‘아무리 이민아라도 혼자서는 무리일 거야.’

적어도 이민아의 뒤를 봐 줄 사람이 한 명은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으로서,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었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박유진 씨.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아무 말이 없던 하세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선수 대기실에 있던 5팀 쪽으로 또다시 향했다.

“김현지 씨?”

“네, 하세리 헌터님, 무슨 일이죠?”

“다시 한번 부탁드리려고요. 지금 박유진 씨가 누군가에 의해 독에 당했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전투를 못 할 상황인데, 배려를 해 준다면…….”

“제 의견은 변함이 없어요. 그리고 하세리 헌터님.”

김현지 불린, 5팀의 팀장으로 보이는 여자는 나름 진지하게 말했다.

“하세리 헌터님은 헌터 대전과 관련 없는 외부인이시죠. 이렇게 박유진의 편만 들면, 나중에 말이 많아질 수도 있어요.”

“그걸 고려 안 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 포션을 준비한 거 저라, 저에게도 책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최소한의 책임을 지려는 거죠.”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저희도 이건 양보를 못 하는…….”

“이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싶은 건가요?”

“…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이기고 싶네요.”

“…알겠어요.”

순간 하세리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하지만 하세리를 오래 봐 온 나조차도 그 눈빛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결승에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죠.”

이 말과 함께 하세리는 등을 돌렸다.

근데 그 과정에서 하세리는 무언가 작게 중얼거렸는데.

“전부 기억해 놔야지.”

너무 작게 중얼거린 거라 확실치 않았지만, 뭔가 저런 내용으로 말한 듯했다.

이에 대해 나는 하세리에게 물으려고 했으나, 하세리는 내게 다가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결승을 그대로 진행해야 할 거 같네요.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오히려 이렇게까지 도와줘서, 저야 감사하죠.”

내가 아는 하세리는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그녀가 여러모로 고마웠다.

“아무튼, 몇 분 뒤에 나가야 하니, 슬슬 준비하도록 하죠. 자, 이민아. 가자.”

“진짜 괜찮겠어? 너 지금 몸 제대로 못 움직인다면서?”

“어쩔 수 없잖아. 그러니 그냥 최대한 빠르게 끝내고…….”

나는 근처에 놓여 있던 유리병.

그러니까 프로기의 피가 담겨 있던 그 유리병을 바라봤다.

“나를 엿 먹이려 한 인간을 찾으러 가 보자.”

* * *

“드디어 결승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4팀과 5팀! 이번 팀전에서 가장 적은 인원수로 참가한 두 팀의 싸움이 지금 시작됩니다!”

몇 분 뒤, 나와 이민아는 다시 한번 스타디움의 경기장에 서고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여유롭게 이 마지막 경기에 참여했을 터였는데.

“으윽. 아야야.”

“야, 무리하지 마.”

이민아는 나를 부축해 주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빠져. 내가 혼자서라도 싸울 테니까.”

“혼자서는 절대 못 이길 거다.”

이민아를 과소평가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전투력과 전투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혼자 5팀을 이기기 힘들었다.

적어도 내가 그녀를 보조해 줘야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졌다.

“바뀐 전술 기억하지?”

“내가 혼자 들어가고, 너는 멀리서 전기를 쏘는 거?”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좋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너 혼자 들어가서 누구를 쓰러뜨릴 생각하지 마.”

“나 혼자서 다 못 잡으니까?”

“응, 그거지. 네가 무리하면 한두 명쯤은 잡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네가 잡히겠지. 그렇게 되면, 나 혼자 남은 놈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지금의 너로서는 무리겠지?”

“당연하지.”

나는 저 멀리, 경기장의 반대편에 있는 5팀을 바라봤다.

지금의 내 몸 상태로는, 저들 중 한 명도 잡기 힘들 듯했다.

“그냥 어그로만 한 번씩 끌어 주고 빠지는 걸 반복해. 5팀을 천천히 갉아먹는 전술로 가는 거야.”

“알겠어.”

그렇게 이민아와 최종적인 작전 회의 직후, 사회자의 말이 다시금 귀에 들어왔다.

“결승이 펼쳐질 무대는! 바로……. 네! 폐허의 도시로 정해졌습니다!”

경기장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내, 수많은 건물들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쟁이 일어난 곳 같네.”

“폐허라잖아. 대충 그런 설정이겠지.”

나는 반쯤 무너진 도시의 거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계획대로 가자. 너는 거리에서 자리를 유지해. 내가 고지대에서 너를 엄호할게.”

“알겠어. 근데 너 진짜로 괜찮은……. 아얏?!”

“너 그거 한 번만 더 물었다가, 앞으로 너랑 안 논다. 알겠냐?”

“에이 씨! 걱정해도 X랄이야!”

“나는 괜찮아, 인마. 그러니 걱정 말고 마음껏 싸워.”

이 말과 함께 나는 와이어를 근처 건물의 옥상으로 던졌다.

그대로 와이어를 타고 평소처럼 고지대로 이동했는데.

“어윽?”

옥상에 착지한 그 순간, 엄청난 고통이 내 몸을 덮쳐 왔다.

“하, X발. 미치겠네.”

프로기의 피.

극소량만 섭취해도 효과가 나타나는, 가성비가 매우 좋은 독.

이걸 해독하기 전까지 지속적인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 망할 경기를 빨리 끝내고, 해독제를 얻든가 해야지.”

나는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무너진 도시의 거리에서 이민아와 5팀의 다섯 명이 어느새 대치하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고연대학교의 의료실 안.

하세리는 의료실을 둘러보다가, 이내 옆에 있던 주하나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제가 준비한 포션을 여기에 뒀다는 거죠?”

“네, 제가 조금 손보고, 저기 창가에 놔뒀죠.”

“그렇군요.”

“…하세리 헌터님, 근데 이곳에는 왜…….”

“아, 별것 아니고요.”

하세리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그 미소는, 보기에 따라 상당히 소름 돋는 것이었다.

“타인이 저의 사람을 건드는 걸 매우 싫어해서요. 그리고 저는 싫은 건, 확실히 표현하는 사람이거든요.”

하세리는 이 말과 함께, 의료실을 계속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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