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09화 (109/240)

109화

* * *

- 아, 아. 야, 이민아. 제대로 들리지?

- 응, 제대로 들려.

귀에 꽂은 작은 장치.

통신용 장치의 일종이었다.

결승 시작 전, 헌터학과 장비 창고에서 가져오라고 이민아에게 부탁했었다.

- 좋아. 이걸로 계속 소통하는 거다, 알겠지?

- 알겠어. 조금 불편하지만 해 볼게.

- 그래, 해 보자.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을 거다.

이민아는 이런 장비를 거의 처음 쓰는 것일 터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난 한 달 동안 이런 걸 쓰는 연습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지.’

애초에 나와 이민아의 전술은 같이 들어가서 하나씩 잡는 것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을 일이 없다 보니, 이런 걸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필 독에 당해 가지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다.

이번의 일로 내가 많이 유해졌다는 걸 문득 느꼈다.

옛날의 나였다면, 남이 주는 걸 함부로 먹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내가 고연대 학생들을 너무 얕봤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독을 준비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나 또는 이민아에게 방해가 들어올 거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과격한 방법을 쓸 줄은 몰랐다.

‘에휴, 됐다. 이제 와서 이 생각을 해서 뭐하냐?’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나는 프로기의 피에 당했고, 안일했던 대가를 치르는 것이었다.

‘빨리 끝내자.’

이 망할 결승을 끝내서 치료를 받고, 내게 엿을 먹인 범인이나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눈앞의 전투에 집중해야 했다.

- 이민아. 기억해. 너는 들어가서 어그로만 끌고, 그대로 빠져나가. 나는 멀리서 전기로 공격할게. 그리고…….

-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새끼는 잡으라고?

-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만. 네가 잡히거나 쓰러지면 절대 안 되니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보다, 안정적으로 가는 거에 집중해.

“알겠어.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할까?”

“잠시만.”

나는 건물 옥상에서 몸을 숨긴 채, 아래를 바라봤다.

이민아 앞에 어느새 5팀 전원이 나타나 있었다.

이민아와 5팀은 서로 조용히 바라보며 대치했다.

‘그래도 저 녀석들의 전술은 명확해서 좋네.’

다 함께 돌격해 적들을 다 함께 박살 낸다.

무슨 이상한 마법을 쓴다거나 몬스터 테이머를 부른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이길 가능성이……. 잘해 봤자 50%이려나?’

내 몸 상태가 이러지 않았다면 훨씬 높았을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 맞게 싸워야만 했다.

‘…해 보자.’

나는 내 주위로 전류를 불러냈다.

엔드리온의 조각을 쓸까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번 싸움은 장기전으로 끌고 가야 했다.

단기전에 적합한 엔드리온의 조각은 지금으로서는 봉인해 둬야 했다.

가뜩이나 상태가 안 좋은데 몸에 과부하라도 온다면, 아무리 나라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윽?”

전류를 불러내자, 온몸에 또다시 고통이 퍼졌다.

순간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냥 이대로 쓰러져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이 악물고 버텨냈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지.’

나는 이진성, 그 아저씨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이민아는 버려도 되는 패가 아니라고, 생각 이상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이다.

‘게다가 여기서 쓰러지면, 내게 독을 먹인 새끼는 엄청 좋아하겠지.’

다른 건 몰라도 그 꼴은 못 봤다.

여기서 이겨 그 망할 새끼에게 역으로 엿을 먹인 후, 반드시 찾아낼 생각이었다.

찾아내, 이 빚을 몇 배로 갚아 줄 생각이었다.

“박유진, 왜 그래? 몸이 이상하면…….”

“아니, 괜찮아. 그러니까 이민아.”

“응?”

“파이팅이다. 자, 지금 들어가. 내가 엄호해 줄게.”

* * *

5팀의 팀장, 김현지.

그녀는 지금 상황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른 것도 아닌, 박유진의 상태가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누가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고맙기는 하네.’

원래는 이민아를 어떻게 상대할지가 제일 걱정이었다.

그러나 전의 경기에서 박유진이 보인 모습에 생각이 달라졌다.

‘박유진은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놈이야.’

이민아처럼 정면에서 달려드는 적은 상대하기 편했다.

하지만 박유진처럼 소리 소문 없이 아군을 없애는 암살자는 매우 까다로웠다.

그래서 김현지는 박유진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운이 좋았어.’

누군가가 박유진의 포션에 독을 탄 것이었다.

덕분에 김현지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겨도 비겁한 거,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이기고 싶어.’

헌터 대전에서의 우승은 이후 진로에 많은 영향을 줄 터였다.

그래서 그녀는 우승하기 위해, 팀전에서 반드시 1등을 해야만 했다.

“애들아! 할 수 있지?!”

“응!”

“당연하지!”

“가자!”

팀원들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김현지는 이에 미소를 지으며, 무너진 도시의 거리를 나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 앞에 늑대인간 한 명이 나타났다.

“뭐야? 네 남자친구는 어디에 두고 혼자 온 거냐?”

김현지는 피식 웃으며 말했으나, 이민아에게서 그 어떠한 대답도 없었다.

이민아는 그저 무표정하게 5팀을 바라볼 뿐이었다.

“…애들아. 긴장해. 저 새끼 언제 달려들지 모르니까.”

이전 경기들을 통해 이민아의 폭발적인 기동력을 본 터였다.

그래서 김현지는 이민아의 돌격을 최대한 주의하고 있었다.

“크르르르.”

그렇게 몇 초 뒤, 이민아는 짐승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높이 뛰어올라, 순식간에 김현지 앞에 도달했다.

이에 김현지는 들고 있던 도끼를 바로 들어 올렸다.

“다들! 받아칠 준비해!”

김현지는 도끼를 이민아에게 내리찍었으나, 이민아는 팔로 그 공격을 손쉽게 막았다.

그런 후, 이민아는 김현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어억! 으윽!”

얼굴에 주먹을 맞은 김현지는 뒤로 밀려났지만, 그녀는 곧바로 다시 자세를 잡았다.

“유정아! 나 힐 해 줘! 그리고 다들! 이민아 바로 잡을 준비해!”

이민아는 B급 헌터라,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였다.

이민아는 다섯에서 충분히 잡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현지는 바로 이민아를 향해 달려들었는데.

“크르!”

“어엇?”

이민아는 도약해, 근처 건물의 3층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김현지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 순간.

파지직―!

어디선가 전기 한 줄기가 날아왔다.

“끄아악?!”

“유정아!”

자기 팀의 힐러가 공격당하자, 김현지는 당황했다.

그녀는 재빨리 전류가 날아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보였다.

“김혜성! 가서 저 새끼 잡아!”

“알겠어!”

김현지는 팀에서 기동성이 제일 좋은 딜러, 김혜성을 박유진 쪽으로 보냈다.

그는 빠르게 건물 벽을 타고 옥상으로 향했는데, 이미 늦은 뒤였다.

김혜성이 옥상에 도착한 순간, 박유진은 이미 와이어를 타고 다른 건물로 도망친 후였다.

“…X 같이 싸우네, 저 개새끼.”

김현지는 유유히 도망치는 박유진을 보며 욕하다, 이내 정신을 차리며 판단을 내렸다.

“박유진, 저 새끼 지금 몸 상태가 안 좋을 거야. 멀리 못 도망칠 테니까, 빠르게 따라가자. 호산아. 이속 마법을 우리에게 어서…….”

“크어억?!”

지시를 내리던 중 비명이 들려왔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 보니, 5팀의 힐러 겸 서포터인 이호산이 이민아의 주먹을 맞고 날아간 것이었다.

“이, 이년 잡아!”

김현지는 이에 재빨리 반응하며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 순간.

파지직―!

“크으윽?!”

어디선가 또다시 전류가 날아왔다.

그걸 손에 그대로 맞은 김현지는 균형을 잃어, 도끼를 엄한 곳에 휘둘렀다.

“이 개 같은…….”

김현지는 재빨리 다시 자세를 잡아 공격을 이어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민아는 또다시 근처의 건물로 도약해, 모습을 숨긴 뒤였다.

“…이 개새끼들.”

김현지는 박유진과 이민아가 도망친 방향으로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싸움 X같이 하네.”

* * *

‘예상대로 이게 잘 먹히네.’

나는 다른 건물의 옥상으로 몸을 옮기며 생각했다.

‘근접전이 특기인 팀이면, 근접할 기회를 주지 말아야지.’

5팀은 극단적인 팀이었다.

근접전은 다 이기지만, 그 대신 원거리 공격을 거의 못 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기동성 좋은 사람은 김혜성. 그 남자 하나밖에 없고.’

원거리에서 전류를 날리는 내가 거슬릴 것이었다.

그래서 나를 견제하려고 하겠지만, 나는 기동성 하나는 준수한 편이었다.

잡히기 전에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 박유진, 괜찮아? 몸은 좀 어때?

- 괜찮으니까 전투에만 집중해.

통신 장치에서 이민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바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너 지금 엄청 잘 하고 있어. 이렇게만 계속하자.”

“알겠어. 그럼 네가 신호를 보내면 또 진입할게.”

“오케이.”

우리 전술의 핵심은 5팀을 조금씩 갉아먹는 것이었다.

우리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5팀에게 피해를 계속 누적시키는 것.

참 비겁한 방식이었지만, 이렇게 해야 5팀을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너무 끌어서는 안 되겠지.’

팀전의 룰상, 15분이 지나도 결착이 안 나면, 두 팀을 경기장 중앙에 모이게 한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싸우게 하는데, 정해진 영역을 벗어나면 지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가게 되면, 5팀이 너무 유리해져.’

좁은 공간에서 싸우게 되면 5팀이 유리해졌다.

실제로 5팀은 이 룰을 이용해 여러 팀을 이기고 온 터였다.

‘15분 내에 끝내야 되지만, 마음 급하게 먹지 말자.’

호흡을 길게 가져야 한다.

15분 동안 계속 이렇게 몰아붙이면 반드시 기회가 올 터였으니까.

- 이민아. 지금 쟤네들 이호산 치료하는 거 보이지?

- 이호산? 내가 방금 날린 남자애?

- 응. 지금 이호산 치료 중인데, 지금 기습해 봐.

- 알겠어. 들어간다?

- 응. 그리고 적당히 어그로 끌다가 빠지는 거 잊지 마.

- 걱정 말라니까.

이민아는 이 말과 함께 다시 한번 5팀을 습격했다.

이에 5팀은 이민아에게 대응하느라 내게 빈틈을 보였고,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파지직―!

“꺄아악!?”

들려오는 5팀 딜러의 비명 소리.

이번에도 명중이었다.

회귀 전에 이런 식의 저격을 자주 해 본 덕이었다.

‘자, 그럼 위치를 들켰으니 어서 자리를 옮겨야지.’

나는 와이어를 꺼내 들며 다른 건물로 가려고 했다.

근데 몸을 일으키자, 엄청난 고통이 나를 찾아왔다.

“으윽?! 아악?!”

모든 근육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아가 숨조차 제대로 안 쉬어지는 듯했다.

- 박유진?! 왜 그래?! 괜찮아?!

- 나, 윽,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빠져. 거기에 너무 오래 있으면 잡혀.

- 아, 알겠어.

이민아는 내 말대로 빠르게 5팀과 거리를 벌렸다.

나는 그걸 보며 다시금 몸을 움직여 봤다.

‘더럽게 아프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쓰러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으니 어떻게든 고통을 참아 냈다.

‘15분. 15분만 어떻게 해 보자.’

더한 것도 겪었으니, 15분쯤은…….

“어딜 가려고?”

“음? 아아. 결국 오셨네요?”

독 때문에 고생하던 사이, 결국 5팀의 딜러, 김혜성이 내 앞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원래 그가 오기 전에 도망쳤어야 했는데, 방금의 그 고통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김혜성 씨였죠? 도검을 들고 싸우면서, 벽을 매우 잘 타는 분이라고 들었…….”

“헛소리 집어치우고 싸울 준비나 해.”

“준비할 틈을 주시다니, 매우 고맙네요.”

나는 최대한 여유로운 척을 하며 말했다.

그리고 경기 시작부터 쓰고 있던 실키의 가면 안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는 김혜성 씨와 싸울 생각이 없어서요.”

“싸울 생각 없으면, 내 손에 쓰러질 준비나…….”

“야, 혜성아! 박유진 놔두고 돌아와! 어서!”

“…뭐라고?”

갑자기 들려온 김현지의 목소리에 김혜성은 당황하며 뒤를 돌아봤다.

나는 그 광경에 피식 웃었다.

“김혜성 씨.”

나는 김현지의 목소리로 말했다.

“참 순진하시네요.”

“뭐? 아니, 너…….”

경기 시작 전, 김현지의 목소리를 미리 녹음해 놓기 잘했다.

이 생각과 함께, 나는 재빨리 와이어를 날려 다른 건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김혜성은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렇게 나는 이번에도 무사히 도망을…….

“…어억?”

와이어 타고 옆 건물로 넘어가던 중, 가슴 부근에 엄청난 통증이 일어났다.

가슴, 정확히는 폐 쪽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쿨럭.”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

뭐, 피를 토하는 것까지야 상관없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에라이.”

갑작스러운 통증 때문에 와이어를 순간 놓친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그대로 추락하게 되었다.

이에 나는 재빨리 와이어를 근처의 기둥을 향해 다시 던졌다.

“…됐다.”

와이어를 제대로 던져, 추락사하는 걸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야! 저 새끼 내려왔다! 얼른 잡아!”

내가 고지대에서 떨어지자마자, 김현지는 눈에 불을 켜고 내게 달려왔다.

아니, 그녀뿐만 아니라 5팀 전부가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하아, 미쳐 버리겠네.”

나는 한숨을 쉬며, 허리에서 자바니아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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