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 * *
“크윽?”
나는 5팀의 여자 딜러, 그러니까 맨손으로 격투를 하는 여자의 주먹을 맞고 밀려났다.
“하아, 후우. 박소영 씨였죠? 주먹이 꽤 아프네요.”
“고마워요.”
박소영은 이 말과 함께 다시 내게 달려들었고, 나는 그녀를 향해 자바니아를 던졌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쉽게 내 단검을 피했다.
“너무 대충 던진 거 아니에요?”
“일부러 대충 던진 거예요.”
“네, 뭐라는… 어억?!”
“그쪽 시선을 끌려는 거였으니까요.”
나는 박소영의 배에 주먹을 날려 줬다.
그러던 중,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잡았다!”
김혜성이 뒤에서 접근해, 내게 도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수법은 너무 뻔했다.
휘리릭―!
“케엑?!”
나는 김혜성의 목을 향해 와이어를 던져, 와이어로 그의 목을 졸랐다.
그러고는 그대로 와이어를 잡아당겨, 그의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것 좀 빌리죠.”
나는 김혜성의 검을 왼손에 들었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린 순간, 내 옆에서 김현지가 돌진해 왔다.
“너 X나 잘 버틴다? 독에 당한 거 맞아?”
“제가 독에 안 당했으면 김현지 씨는 진작 잡았어요.”
나는 김현지의 검을 김혜성의 검으로 막으며 대꾸했다.
“돌아와라.”
내 말에 내 오른손에 자바니아가 돌아왔다.
그 상태로 나는 김현지를 공격했다.
왼손에는 긴 도검을, 오른손에는 단검을 든 채로 말이다.
“아윽? 윽? 아니, 너 뭐야? 검으로 왜 이렇게 잘 싸워?”
“하나만 잘해서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니까요.”
나는 김현지의 검을 손쉽게 막으며 피식 웃었다.
그런 후, 나는 김현지의 뒤쪽을 슬쩍 바라봤다.
그녀의 뒤에 5팀의 힐러와 서포터가 있었다.
‘지금이다.’
나는 자바니아를 남자, 그러니까 이속 마법을 발동하던 이호산에게 던졌다.
“크아악!”
자바니아는 그의 어깨를 정확히 꿰뚫었다.
나는 김현지를 재빨리 옆으로 쳐 낸 뒤, 김혜성의 검을 들어 이호산에게 접근했다.
‘단번에 끝낸다.’
그의 다리와 상체를 베고, 검의 손잡이로 관자놀이를 친다.
그렇게 이호산을 쓰러뜨릴 생각이었는데.
“멈추시죠.”
“에라이.”
방금 쓰러뜨렸던 박소영이 다시금 내 길을 막아섰다.
그녀는 내게 주먹을 날렸고, 나는 검으로 그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그 직후.
“내 검 내놔라.”
“…처음부터 뺏기지 말든가요.”
뒤에서 나타난 김혜성이 내 손을 향해 발을 내리찍었다.
그로 인해 순간적으로 내 손에 힘이 풀렸고, 김혜성은 자신의 검을 다시 되찾았다.
김혜성과 박소영, 두 사람이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빠졌는데, 김현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크윽.”
김현지는 내게 검을 휘둘렀다.
나는 재빨리 팔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았다.
네메이아의 코트 덕분에 팔이 베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충격에 의해, 나는 뒤로 멀리 밀려나 넘어졌다.
“…힘들어 뒤지겠네.”
나는 입 주변의 피를 닦으며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몸을 일으킨 순간, 격한 통증에 휘청거렸다.
‘이제 슬슬 한계인가.’
프로기의 피에 당하면, 보통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그 결과, 평소보다 체력 소모가 심했고, 극심한 고통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게다가 몸도 더 쉽게 망가졌고.’
나는 내 몸을 내려다봤다.
코트는 흙과 피투성이였다.
게다가 몸에 잔상처들이 상당히 많았다.
뭐, 몸 외부에 상처 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쿨럭, 어억.”
입에서 또다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아무래도 속을 크게 다친 듯했다.
“…이러다 진짜 뒤지겠네. 돌아와라.”
자바니아를 다시 내 손에 불렀다.
그런 후, 나는 내게 다가오는 5팀을 바라봤다.
“야, 유정아. 호산이 얼른 치료해 줘. 그리고 혜성, 소영. 우리는 그동안 저 새끼 끝내자.”
그들은 승리를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나를 너무 쉽게 이기려고 하네.’
나는 내 목에 걸린 엔드리온의 조각을 바라봤다.
내가 준비하는 이 공격만 잘 들어가면 저 다섯을 잡을 수 있었다.
‘딱 한 번의 기회. 그것만 노리자.’
저 다섯이 다 같이 모여 내게 다가왔을 때.
그때 자폭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저 다섯을 전부 잡고 나까지 쓰러질 거다.
‘하지만 이민아가 아직 있으니, 결국 우리의 승리로 끝나겠지.’
내가 고생을 좀 많이 할 방법이지만, 이 불리한 상황에서 이게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 아픈 몸을 조금만 더 굴릴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이민아, 얘는 괜찮은 건가?’
5팀과의 싸움에 집중한 탓에 정작 이민아를 확인 못 하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그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뭐야. 저 녀석 눈빛 왜 저래?’
파편에 깔려 있던 이민아의 눈빛이 본능에 먹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저건… 분명…….’
이민아가 본능에 먹혀 이성을 잃은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저 야생 늑대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민아는 야생 늑대인간 따위로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민아의 저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저건 분명, 이민아가 자기 안에 내재된 본능을.
그러니까 늑대인간의 진정한 본능을 깨우쳤을 때 보인…….
“크아아아!”
멀리서도 크게 들려오는 이민아의 울음소리.
그와 동시에 이민아는 자기 위의 파편들을 일격에 전부 박살 냈다.
“엥? 야, 쟤 왜 저래?”
“혀, 현지야? 저거 뭔가 위험해 보이지 않냐?”
“크아아아아!”
“…다들, 일단 이민아를 조심, 우왁?! 무슨…….”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이민아는 김현지의 코앞에 도달했다.
“크르르!”
“커어억?!”
이민아는 김현지에게 주먹을 날렸고, 그걸 맞은 김현지는 그대로 근처의 건물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건물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크르르르……. 크아아아아!”
이민아의 포효가 스타디움 내에 울려 퍼졌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걸 이렇게 각성하네.”
이민아 내에 있는, 늑대인간의 다섯 가지 본능.
이민아는 지금, 그 첫 번째 층을 깬 것이었다.
* * *
“커어억?!”
이민아는 자신의 주먹을 맞고 날아간 김현지를 잠시 바라봤다.
김현지가 건물에 깔리는 걸 확인한 뒤, 이민아는 바로 나머지 5팀 인원들을 바라봤다.
“크르르르……. 크아아아아!”
“야, 우리 저거와 싸워야 되냐?”
“이민아 쟤 갑자기 왜 저러는…….”
“크아아아아!”
“크악?!”
이민아는 박소영의 머리를 붙잡아, 그래도 바닥에 내리찍었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 미친년이…….”
김혜성은 놀란 와중에도 이민아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민아는 손으로 그의 검을 너무나도 쉽게 붙잡았다.
“무슨…….”
“크르르.”
“으엇?”
김혜성을 노려보던 이민아는 그의 검을 너무나도 쉽게 두 동강 냈다.
그러고는 그의 상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어억?!”
김혜성은 이민아의 주먹을 맞고 바로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이민아는 10초도 안 되는 사이, 세 명이나 쓰러뜨린 것이었다.
“우, 우리… 그냥 항복할까?”
“항복보다, 빠, 빨리 도망치는 게 나아 보이는데?”
남게 된 두 사람은 이민아의 이런 모습에 겁먹어,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민아는 그 둘에게 관심을 안 보였다.
그녀는 근처에서 이 모든 걸 조용히 지켜보는 박유진을 바라봤다.
“…내 주인.”
본능에 먹힌 와중에도, 이민아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나의 우두머리.”
이민아는 자신이 조금 더 늑대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정확히 말해, 자신의 사고방식이 조금 더 늑대에…….
“지금이야! 도망가자!”
이민아가 박유진 쪽을 보며 생각하던 중.
남아 있던 5팀의 두 명은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크르르.”
하지만 이민아는 늑대인간이었다.
그녀는 절대 사냥감을 놓치지 않았다.
* * *
‘본능의 첫 번째 층을 깬 건 확실하네.’
이민아가 김현지, 박소영, 김혜성을 단숨에 쓰러뜨리는 걸 본 후.
나는 이민아의 상태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과 속도. 그리고 신체 내구도까지. 그냥 전반적인 능력치가 하나 같이 다 상승했어.’
아까 건물 파편들을 단번에 박살 내는 것부터 시작해, 김현지를 날려 버리는 것.
게다가 지금, 이민아는 5팀의 두 힐러, 그러니까 문유정과 이호산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엄청 빨라. 아마 지금의 이민아와 다시 붙으면……. 내가 이길 거라는 보장이 없겠어.’
이민아의 힘도 힘이었지만, 저 엄청난 속도가 눈에 들어왔다.
탱커가 엄청난 힘에 저런 기동성을 가지고 있으면……. 이민아가 한국 최강의 탱커가 되기까지 얼마 안 남았을 듯했다.
‘게다가 생긴 것도 조금 변했네. 손톱이 더 길어졌고, 팔과 다리의 털들이 더 두꺼워지고, 머리카락의 숱까지 많아졌네. 그리고 저 눈빛은……. 음? 뭐야? 잠깐, 저거 꼬리 아니야?’
5팀을 하나하나 박살 내는 이민아를 보던 중, 그녀의 등 쪽에 익숙한 갈색 꼬리가 보였다.
내가 회귀 전, 여러 가지 의미로 갖고 놀았던 그 꼬리였다.
‘…이번에는 꼬리가 먼저 나타났네. 회귀 전에는 송곳니가 가장 먼저 자라났는데.’
아무래도 진화의 순서가 무작위인 듯했다.
회귀 전의 이민아는 본능을 한 층씩 깰 때마다, 송곳니, 꼬리, 손톱 등의 순으로 변화를…….
“크르르르.”
“…아, 이런.”
속으로 생각하던 중, 이민아는 어느새 혼자서 5팀을 전부 마무리 지은 후였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이런 건 내가 해야지.”
이민아가 본능에 먹혔을 때마다 진정시킨 건 늘 나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러는 게 맞았다.
‘근데 몸 상태가 이 꼴이라는 게 문제네.’
이민아를 진정시키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부상을 한두 군데 입는 걸 가끔 각오해야 했다.
평소에는 그런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이민아에게 한 대라도 맞았다가 바로 골로 갈 거 같은데.’
프로기의 피에 당한 것도 있지만, 아까 5팀과 너무 치열하게 전투를 했다.
나는 지금 바로 입원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었다.
‘천천히 해 보자.’
이민아를 진정시키는 것.
뭐, 그 과정에서 항상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운이 좋으면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운을 바랄 수밖에 없는…….
“크르르.”
“…좋아. 이민아. 내 말 들리지. 진정하자.”
나는 이민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적은 다 잡았으니, 이제 진정을…….”
“저의 주인님.”
“…음?”
“주인님.”
이민아는 내게 다가왔다.
순간 움찔했지만, 이민아가 나를 공격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이민아는 나를 슬며시 끌어안았다.
“이민아? 너 갑자기 왜 이러는…….”
“저의 주인……. 저의 우두머리여.”
“음?”
“제가 지켜 줄게요.”
나는 이민아의 눈빛을 바라봤다.
이민아의 눈은 노란색으로 빛났다.
노란색, 그러니까 진정한 본능을 깨우쳤을 때 보이게 되는 색깔이었다.
즉, 이민아는 여전히 본능에 먹혔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본능에 먹혔음에도 말을 꽤 잘하는…….
‘잠깐? 방금 나 보고, 우두머리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무언가 깨닫는 것과 함께 이민아를 다시 바라봤다.
“그러니까 내가 너의 우두머리라고?”
“네, 저의 주인이여.”
“아, 그런 거였냐?”
이민아가 지금 왜 이러는지, 그리고 이민아가 나를 그동안 왜 주인이라고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