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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13화 (113/240)

113화

* * *

눈을 뜨자, 나는 지금까지 무슨 꿈을 꾼 건가 싶었다.

아니, 지금도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었다.

“으으.”

아니, 꿈은 아닌 것 같았다.

꿈속이라면 몸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아아, 으.”

머리가 멍하고 아팠다.

아니, 머리만 아픈 게 아니라 온몸이 아팠다.

말 그대로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여기는 어디지?’

현실 파악이 안 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대체 뭔 일이 있었는지 확실치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무슨 꿈을 꾼 거지?’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확실하지……. 아니, 꿈이었던 거 같았다.

내가 회귀를 해서 유나를 다시 만났던 것.

그런 건 꿈이지, 현실일 리가 없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쓰러져 있던 거지?’

나는 분명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졌고, 그대로 배에 구멍이 뚫렸었다.

그때 나는 죽어 가고 있었는데, 지금 대체 왜…….

“박유진, 괜찮아? 나 잘 보여?”

“미, 민아 씨?”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하고도, 상당히 그리운 목소리였다.

“어, 나야. 나 맞……. 음? 뭐? 민아 씨? 뭐라고?”

이민아.

내가 유나 외에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민아는 분명 삶의 의지를 완전히 잃었을 터였다.

그런 그녀가 어째서 지금 내 눈앞에…….

‘뭐, 상관없나?’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눈앞에 보이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오랜만이네요, 민아 씨.”

“응? 우왁?!”

나는 이민아를 끌어, 내 곁에 눕게 했다.

그런 후, 나는 몸을 이민아 쪽으로 돌려, 그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봤다.

“박유진, 너, 너, 너 왜 이러는 거야?”

“후훗, 그러게요.”

나는 이민아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근데 어째 이민아의 모습이 내 기억과 조금 달랐다.

‘이렇게 어렸나?’

40대에 가까워지던 이민아였다.

그래도 그녀는 동안이었던지라, 여전히 20대 후반으로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이민아는 20대 초반, 아니, 잘만하면 고등학생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이민아의 눈에 이렇게 생기가 넘치는 건 본 적이…….

‘…됐다.’

그딴 게 뭐가 중요하냐.

중요한 건, 지금 이민아가 내 눈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제가 걱정돼서 여기 온 건가요?”

“거, 걱정하기는 했지. 너, 너 엄청 다쳤잖아.”

“그쵸. 제가 많이 다치기는 했죠.”

다른 것도 아니라, 배에 구멍이나 뚫린 거였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그때 배에 구멍 뚫리고, 쓰러지면서 무슨 이상한 꿈을 꾸었다.

회귀하고, 유나를 다시 만나고, 거기다 대학생의 이민아까지 만나는 꿈을 말이다.

참 특이했던 꿈이었다.

“저도 민아 씨 엄청 걱정했던 거 알아요?”

“응?”

“민아 씨 그때 이후로 방에서 안 나왔잖아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야, 너 아까부터 뭔 소리 하는 거냐? 게다가 너 대체 왜 내게 존댓말을…….”

“저도 제가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해요.”

나는 이민아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내 코를 이민아의 코에 갖다 대었다.

이민아가 가장 좋아하던 애정 표현이었다.

“으읏? 엣?”

나의 이 행위에 이민아는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싫어한다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은 듯했다.

“읏? 박유진, 너 뭔…….”

“힘들어도 도망치지 마요.”

“응?”

“제 곁에 있어 줘요.”

나는 얼굴을 이민아 쪽을 향해 더 가까이 가져갔다.

이민아는 얼굴이 상당히 빨개졌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아니면, 이민아에게 또 나의 이런 마음을 전할 기회가 없을…….

“이, 이건 아니야!”

이민아는 소리치며 내 품에서 벗어났다.

“박유진, 이건 아닌 거 같아! 싫은 건 아니지만, 이건 아닌 거 같아!”

이민아는 얼굴이 매우 빨개진 채로 의료실 출구를 향했다.

이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멍해서,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뭐지?’

이게 현실이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몸이 아픈데, 꿈이 아닌 거 같은…….

“응? 이민아 씨? 어디 가세……. 어? 박유진 씨! 일어나셨네요. 몸은 괜찮아요?”

…아.

이건 현실이 아니었다.

몇 년 전에 죽은 사람이 내 눈앞에 있을 리가 없으니까.

“주하나 씨.”

“네?”

“이렇게 보니까 반갑네요.”

“…네?”

주하나는 내 말을 이해 못 한 듯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내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었다.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박유진 씨? 아무래도 정신이 오락가락하신 거 같은데, 일단 누워 보시고…….”

“저를 그때 살려 줘서 고마워요.”

주하나는 내 말을 이해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앞의 이 광경은 현실이 아니었다.

그러니 전부 내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었다.

* * *

“하아, 하아. 아니, 박유진.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의료실 근처의 복도.

이민아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쟤 상태 뭔가 이상해. 응, 확실히 이상해.”

자기를 갑자기 민아 씨라고 부르지 않나, 게다가 심지어 존댓말까지 했다.

박유진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존댓말을 쓴 적이 없는데 말이다.

“몸이 아파서 저러는 건가? 근데 솔직히…….”

이민아는 방금 본 박유진의 모습을 떠올렸다.

멍하고 몽환적인 표정.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 주고 있었다.

매번 그의 여동생, 그러니까 박유나에게나 지어 주던 미소를 그녀에게 지어 준 것이었다.

“…나쁘지 않았어.”

그걸 떠올리자, 이민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아니야.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야. 물론 박유진의 아까 모습은 좋았는데, 그거와는 별개로 몸 상태는 안 좋아 보였어.’

이민아는 의료실 쪽을 바라봤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워 도망치듯 나왔지만, 막상 생각하니 박유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혼자 놔두면 안 됐나? 빨리 돌아가자.’

이민아는 재빨리 의료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이민아 씨. 왜 밖에 나와 계세요?”

“…아, 하세리 헌터님.”

저 멀리서 붉은 머리색의 헌터가 다가오고 있었다.

“박유진 씨와 같이 있던 거 아니었어요?”

“이, 일이 있어서 잠깐 나온 거예요.”

“아, 그렇군요. 그럼 같이 갈까요?”

“네? 아, 네.”

이민아는 하세리와 같이 의료실을 향했다.

“박유진 씨 상태 어떤가요? 좀 좋아졌나요?”

“…깨어나기는 했어요. 하지만 좋아진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 깨어났어요? 그렇다면 어서 가서…….”

“그러니까 그, 방금 말한 것처럼 좋아진 건지는 몰라서요.”

“그게 무슨 뜻이죠?”

“직접 보시면 알 거예요.”

이 말을 끝으로 이민아와 하세리는 의료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의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본 건 다름 아닌.

“가지 마요.”

“박유진 씨. 이러시면 안 되는…….”

주하나의 손을 잡고 있는 박유진이었다.

그것도 그냥 잡는 게 아닌, 아주 꼭 붙잡고 있었다.

“저 지금 치료해야 되는 환자들이…….”

“아직 하고 싶은 말들… 있어요.”

박유진은 주하나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이에 주하나는 당황한 듯했지만, 동시에 옅게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 상황이 싫지만은 않다는 듯이 말이다.

“저년이…….”

그 광경에 이민아는 알 수 없는 짜증이 느껴졌다.

그래서 바로 주하나에게 한 소리 하려고 했는데, 하세리가 먼저 움직였다.

“주하나 씨. 치료는 잘 되었나요?”

“어? 하, 하세리 헌터님. 오셨네요?”

“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서요. 그보다 지금 박유진 씨의 상태가 어떤지…….”

“어? 뭐야, 세리 누나도 왔네?”

주하나의 손을 놓으며, 박유진은 하세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 바람이 불었기에 누나가 내 병문안까지 온 거야?”

“네? 박유진 씨?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죠?”

“음? 누나 왜 내게 존댓말이야? 안 어울리게?”

“…오히려 박유진 씨가 왜 제게 반말을…….”

“이 누나는 또 뭐라는 거야?”

“…네?”

박유진의 본 적 없는 모습에 하세리는 당황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휩싸였다.

‘누나라고 불리는 거, 태어나서 처음이네.’

박유진이 누나라 부르자, 하세리는 자기도 모르게 옅게 미소를 지었다.

뭔가 그에게 이런 호칭을 더 불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하세리가 무어라 더 반응하기 전, 박유진이 갑자기 입에서 피를 토했다.

“커억? 우욱! 으윽?”

“박유진 씨!”

주하나는 놀란 표정으로 바로 박유진 곁에 다가갔다.

그리고 이민아와 하세리는, 뒤에서 아무것도 못 한 채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박유진이 피를 토하고 약 10분이 지난 후.

박유진의 치료를 끝마친 주하나는 땀을 닦으며 허리를 폈다.

“급한 불은 껐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 병원에 보내는 게 좋을 거 같네요.”

“프로기의 피 때문인가요?”

“네, 맞아요.”

주하나는 하세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박유진 씨를 암만 치료해도, 프로기의 피 때문에 몸을 계속 상처 내고 있어요. 물론 그 독으로 죽지는 않겠지만…….”

“박유진 씨가 계속 고통받겠네요. 병원에 가면 치료할 방법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가능성이 높아요. 프로기의 피는 자체적인 해독제 아니면 해결 못 하거든요. 그래도 병원에 가면 박유진 씨의 통증을 완화는 할 수 있을 거예요.”

“알겠어요. 그럼 박유진 씨를 병원에 보내는 건, 여기 의료실에 계신 분들에게 맡길게요. 그래도 혹시라도 도움, 구체적으로는…….”

하세리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입을 열었다.

“이곳의 윗분들이 무언가를 방해하거나 하면 저를 부르세요. 그건 제가 해결해 줄 수 있으니까요.”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별것 아니에요.”

하세리는 이 말을 끝으로 눈을 감은 박유진을 다시 바라봤다.

그런 후, 그녀는 의료실의 출구로 향했다.

“박유진에게 도움을 많이 주시네요.”

이민아는 그런 하세리를 따라가며 물었다.

헌터 협회 최고의 에이스가 박유진을 이렇게까지 아끼자, 이민아는 내심 궁금해 물은 것이었다.

“당연히 도와야죠. 박유진 씨는 앞으로 저와 함께할 인재예요. 그것도 제가 최근 들어 가장 높게 평가하는 인재죠. 잘못되지 않도록 최대한 살펴야죠.”

“…그렇군요.”

이민아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티 내지 않고 넘어갔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뭘요. 애초에 박유진 씨가 먹은 포션, 제가 준비한 거예요. 하지만 제가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이 사달이 난 거죠.”

하세리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후,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는 방금 고연대의 CCTV들을 확인하고, 고연대 약품 보관실을 방문하고 오는 길이었어요.”

“…혹시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으셨나요?”

“교직원이 확인한 결과, 보관실에서 프로기의 피 일부가 사라졌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주변의 CCTV들을 다 확인했는데, 특정 시간에 잠시 끊겨 있더라고요.”

“끊겨 있다는 건, 누군가가…….”

“네. 누가 건드렸다는 거죠. 하지만 괜찮아요.”

하세리는 목소리를 살짝 낮추며 말을 이었다.

“영상 복구하는 건 일도 아니죠. 제 지인들 중에 그걸 바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아마 이번 주 내로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범인은 사실상…….”

“네, 잡은 거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증언까지 얼추 구해 냈어요.”

“증언이요?”

“이지현이었나? 박유진 씨와 이민아 양이 팀전 첫 경기에서 잡은 힐러 있잖아요. 그 여자가 약품 보관실로 가는 걸 본 사람들이 몇 명 있었어요.”

“…이지현. 그러니까 그년이 박유진에게 독을 먹인 거라고요?”

“확실한 건 아니에요. 증언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으니까요. 일단 영상 복구되는 대로 확인해서…….”

하세리는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민아는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민아의 머릿속은 분노로 차오르는 중이었다.

“…그 망할 개새끼가.”

이민아는 건물 밖으로 빠르게 향했다.

그녀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

“어? 이민아 양? 잠시만 기다려 주…….”

그걸 본 하세리는 이민아를 불렀지만, 이민아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주인을, 우두머리를 상처 입힌 여자를 죽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한편, 같은 시각.

“으으, 으으으.”

의료실에서 치료받은 박유진은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정신을 차리는 것과 동시에.

우웅. 우웅―

그의 왼손에 있던 검은 보석의 반지.

그 반지가 진동하며, 검은색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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