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 *
이민아는 복도를 지나 빠르게 밖으로 향했다.
“그 망할 년이 감히 박유진을…….”
이민아의 눈은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색깔도 조금씩 변하는 중이었다.
검은색에서 노란색으로.
아까 결승 때 보인 색으로 말이다.
“…죽여야지, 그년.”
야생 늑대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된 이민아는 건물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헌터 대전의 팀전 경기가 마무리된 후라, 수많은 사람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엄청난 인파 속에 숨어 있을 그녀를 살폈지만, 이민아는 이지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 둘러봤다.
‘분명 어딘가에 있어.’
이민아의 본능이 그녀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이지현, 자신의 사냥감이 근처에 있다고.
이지현이 아직 학교 내에 있다고 말이다.
“어디에 있는 거야, X발.”
이지현이 이 근처에 있다고 본능적으로 확신했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그것 때문에 이민아는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답을 찾아냈다.
“…저쪽이다.”
이민아는 고연대학교의 공대 건물들 쪽으로 향했다.
왜 그쪽으로 향하고 있는지, 이민아 스스로도 몰랐다.
그녀는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크르르르.”
정확히 말해, 그녀는 본능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분노 때문에 이민아는 지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 결과, 본능과 자신의 감각에 모든 걸 맡기는 중이었다.
“…찾았다.”
그러나 늑대인간의 감은 매우 뛰어난 편이었다.
미래 예지 수준으로 뛰어났고, 덕분에 이민아는 진짜로 이지현을 찾을 수 있었다.
“여깄었구나, 이 개 같은 년아.”
“이, 이민아?”
공대 건물 앞의 벤치에 있던 이지현.
조용히 혼자 스마트폰을 보던 이지현은 이민아의 등장에 상당히 당황했다.
“여기는 갑자기 왜… 크억?!”
“네가 그랬지?”
“어억?! 뭔…….”
“네가 한 거잖아, 개새끼야.”
이민아는 망설임 없이 이지현의 얼굴과 배에 주먹을 한 대씩 날렸다.
“그딴 짓 하니까 좋냐? 좋냐고?”
“아악?!”
이민아는 이지현의 멱살을 붙잡은 뒤, 그녀를 근처 건물을 향해 집어 던졌다.
이에 이지현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흥분 상태의 이민아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안 썼다.
이민아는 이지현의 머리카락을 잡아 그녀를 강제로 일으켰다.
“내, 내가 뭘 했다는…….”
“X나 뻔뻔하네.”
“으억?”
이민아는 이지현의 명치를 한 대 더 때렸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민아는 이지현의 머리를 붙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 결과 이지현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 둘 여기서 뭐 하는 거래?”
“야, 저 갈색 머리 이민아 아니야? 오늘 팀전에서 우승한 늑대인간.”
“맞는 거 같은데?”
이민아가 일으킨 난동에 주변 사람들이 그녀와 이민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민아는 이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지현에게 또다시 주먹을 날렸다.
반면 이지현은 주변에 사람들이 모인 걸 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야, 이 X발! 이민아! 내가 무슨 짓 했는데? 내가 무슨 짓 했는지 말을……. 케엑?!”
“네가 무슨 짓 했는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이 미친년아!”
이민아는 이지현의 머리를 잡아 다시 한번 바닥에 내리찍었다.
이지현의 머리가 찍힌 곳에 큰 구멍이 생겼고, 이지현의 이마에서 더 많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지현은 헌터였다.
일반인보다 훨씬 좋은 신체 덕에, 아직은 기절하지 않았다.
아직은 말이다.
“박유진에게 독을 먹이는 게 좋았냐?! 그딴 더러운 짓 하니까 좋았냐고! 지금 너 때문에 박유진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크억?!”
“알기나 해?!”
이민아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이지현을 걷어찼다.
이민아는 현재 이성적인 판단을 아예 못 하는 상태였다.
그저 자신의 우두머리를 습격한 적에게 보복하는, 한 마리의 늑대에 가까웠다.
“으으윽. 아으으으.”
이지현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 만행을 이렇게 빨리 이민아에게 들킬 줄 꿈에도 몰랐었다.
‘아니야. 정신 차리자. 이민아, 저년은 보니까 그냥 감으로 때려 맞힌 것일 거야.’
명확한 증거가 없을 거라고, 이지현은 결론을 내렸다.
그런 후, 이지현은 주위 사람들을 슬쩍 바라봤다.
“뭐야? 박유진 독에 당했었대?”
“에이, 설마. 아까 걔 결승에서 혼자 잘 싸웠잖아. 그게 독에 당한 거라고?”
“근데 보니까 혼자 갑자기 피 토했었잖아. 진짜 독에 당했던 건가?”
“그럼 지금 이민아가 패고 있는 쟤가 박유진에게 독을 먹인…….”
사람들의 전반적인 여론이 이지현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지현은 사람들의 여론을 자신에게 끌고 오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이민아!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뭔 짓을 했다고? 나 아무것도 안 했거든? 박유진이 독에 당했다는 것도 처음 듣는…….”
“웃기지 마. 네가 약품 보관실에서 프로기의 피를 가져갔잖아.”
“증거는? 내가 그랬다는 증거가 있어?!”
이지현은 자신의 모습이 CCTV에 찍힌 걸 전부 지우고 왔었다.
그 덕에 그녀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증거도 없으면서 그냥 이렇게 나를 패는 건…….”
“너 봤다는 사람들 많아, 이년아. 구라도 적당히 쳐라.”
“그, 그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거잖아? 사람들의 증언만으로 어떻게, 끄아악?!”
“조작은 네가 한 거고, 이 쌍년아.”
이민아는 이지현의 발을 밟으며 그녀를 벌레 보듯이 내려다봤다.
“너 CCTV 조작했잖아.”
“증거도 없으면서 말은…….”
“그거 알아? 그 CCTV, 복구 가능해.”
“…뭐라고?”
“네가 지운 거 복구 가능하다고. 들어 보니까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나온다던데?”
“그게 왜 복구가 되는 건데?! 내가 확실하게 지웠……. 아.”
이지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차가웠다.
방금 자신이 한 말이 쐐기를 박은 것이었다.
“진짜 네가 맞았구나. 역시 네가 한 게 맞았어.”
“아, 아아, 그, 그게…….”
이민아를 올려다본 이지현은 말문이 막혔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민아의 눈빛에서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그랬어? 왜 내 주인에게 그런 거냐고?”
“그, 바, 박유진을 죽이려던 건 아니고, 그, 그냥 방해만 조금…….”
“조금?!”
노란색 눈을 빛내며, 이민아는 이지현의 멱살을 다시 잡았다.
이지현은 뭐라도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이지현은 이민아의 살기에 완전히 압도된 상태였다.
“크르르르.”
“…히끅.”
이민아는 이지현은 내려다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우두머리를 건든 새끼는… 절대 용서 못 해.’
이성을 잃은 이민아는 이지현을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다.
이지현을 때려눕힌 뒤, 손톱으로 찌르고 이빨로 물어뜯을 마음이었다.
그렇게 이민아가 이지현에게 주먹을 날리려던 그 순간.
“이민아, 멈춰. 거기까지 해.”
“…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이민아가 제일 좋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위한 건 좋지만, 선은 넘지 마.”
“박유진? 너, 괜찮은 거야?”
“어, 괜찮아. 그러니까 멈춰.”
박유진은 거친 숨을 내쉬며 이민아에게 말했다.
* * *
“으으, 아으. 아파 뒤지겠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온몸이 아프고, 정신도 제대로 차리기 힘들었다.
‘대체 뭔 일이 있던 거야?’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정신 줄을 붙잡았다.
‘나 여기에 왜 쓰러져 있는 거지?’
나는 내 기억을 하나둘 되돌아봤다.
헌터 대전, 팀전, 독이 든 포션, 결승에서 개고생, 이민아가 첫 번째 본능을 각성, 그리고…….
“…아.”
전부 기억이 났다.
의료실에 온 것, 치료를 받은 것.
거기다가 내가 도중에 잠깐 깨서 벌인 짓들까지 말이다.
“…X발.”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더 아파진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아까의 나는 완전히 맛이 갔었기 때문이다.
‘회귀 안 한 거라고 착각해서 이민아를 민아 씨라 부르고, 하세리를 누나라 불렀네.’
게다가 주하나에게도 아마 영문 모를 소리들을 했던 듯했다.
그 기억들이 떠오르자,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의 나는 환자다 보니, 아까는 그냥 정신이 오락가락했다고 설명하면 될 듯싶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회귀 전에 어지간히 사람들이 그리웠나 보네.’
이민아와 주하나를 보자, 아까의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회귀 전, 다시는 못 볼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세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친구라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바로 하세리였다.
사람의 온기를 거의 못 봤던 나는 하세리를 보자 상당히 반가워했었다.
‘에휴, 뭐. 이미 지나간 일들은 그렇다 치고.’
나는 상체를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엄청난 통증이 나를 덮쳐 오자, 나는 바로 다시 쓰러졌다.
‘…프로기의 피 때문인가.’
나는 내 몸을 살폈다.
얼추 치료가 다 된 걸로 보아, 의료실의 힐러들이 잘 조치해 준 듯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치료됐음에도 이 모양인 이유는 독 외에는 없었다.
‘해독하기 전까지 이 모양이겠네.’
프로기의 피는 사람의 신체를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독이었다.
그것도 해독하기 전까지 효과가 계속 유지되었다.
아무래도 당분간 고생을 해야 할 듯했다.
“어? 박유진 씨? 벌써 깨어나셨네요?”
“네, 뭐. 어쩌다 보니 깨어났네요.”
나를 발견한 주하나는 바로 내 곁에 다가왔다.
“제 눈을 바라봐 주세요. 네, 그렇게. 으음, 일단 초점은 어느 정도 돌아온 거 같고,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적어도 정신은…….”
“네, 지금은 멀쩡해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아까 이상한 소리들을 많이 했죠?”
“이상한 소리라기보다는 이해가 안 되는 말씀들을 좀 하셨죠.”
“그게 그거죠, 뭐.”
아무래도 내 상태가 많이 안 좋기는 했던 듯했다.
그나저나 내 상태라면…….
“주하나 씨. 아직 해독제 못 구했죠.”
“네, 시간이 걸릴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박유진 씨를 병원에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해독제를 구하는 동안 박유진 씨가 최대한 안정을 취하는 게 좋아 보였거든요.”
“그렇군요.”
나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독에 너무 쉽게 당한 내 자신이 여러모로 한심해 보였다.
‘게다가 하필 프로기의 피에 당하네.’
가장 대처하기 까다로운 독이었다.
이것에 당한 탓에 일이 여러모로 꼬였다.
‘오늘 팀전에서 우승했지만, 아직 마지막 날이 남았어.’
마지막 날, 그러니까 개인전.
그 경기는 이틀 뒤에 열릴 예정이었다.
솔직히 이틀 내에 해독제를 구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이 상태로 또 싸워야 되는 거냐?’
물론 못 할 거는 없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또 병원 신세를 질 확률이…….
우웅― 우웅―
“음?”
내 왼손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왼손을 들어 보니, 검은색 보석의 반지가 진동하고 있던 것이었다.
“또 뭐냐?”
나는 진동하는 반지를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반지 주위로 검은색의 기운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꿈에서 이 반지에 집중하라고 하지 않았었나?’
어두운 공간에서 만났던 인외의 존재.
그 존재와 만나는 꿈을 꿨던 거 같다.
그리고 그 존재는 나 보고 반지에 집중하라는 말을 했었다.
‘…밑져야 본전이겠지.’
나는 내 손의 반지에 신경을 집중했다.
진짜 말 그대로, 별생각 없이 한 것이었다.
그러자 반지에서 검은 기운들이 더 나오더니.
“어?”
잠시 뒤, 내 몸에 있던 통증들이 전부 사라졌다.
“…어?”
뭔가 싶어서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 어떠한 통증도 없었다.
마치 평소처럼, 그러니까 독에 당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간 거 같았다.
“뭐지?”
나는 아예 침대에서 빠져나와, 두 다리로 일어섰다.
분명 아까 팀전 결승 때까지만 해도, 걷는 것도 고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째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몸이 가벼웠다.
“박유진 씨? 괘, 괜찮은 거예요? 지금 움직이면 엄청 아프실 텐데?”
“네, 그래야 되는데……. 안 아프네요.”
나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하지만 그 어떠한 통증도 안 느껴졌다.
‘…이 반지 덕인가?’
근거는 없었지만, 이 반지가 프로기의 피를 해결한 듯했다.
원리는 몰랐지만, 그런 것만 같았다.
‘이 반지의 힘인가? 독을 해독해 주거나, 그 효과를 감소시켜 주는 종류?’
아무래도 따로 또 실험들을 해 보는 편이 좋을 거 같았다.
하지만 일단, 프로기의 피가 내 몸에서 완전히 해독됐는지, 그것부터 우선적으로 확인을…….
“들었어? 지금 공대 건물 앞에서 이민아가 다른 여학생을 죽일 듯이 패고 있다는데?”
“이민아? 그 늑대인간? 걔는 또 왜 그런데?”
“내가 어떻게 알아? 근데 보니까 진짜 살벌하게 사람을 패더라.”
검은색 보석의 반지를 보던 중, 의료실 근처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걸 들은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일이 뭔가 잘못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의료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고 몇 분 뒤.
“자, 자. 괜찮아. 나 진짜 괜찮으니까, 이제 진정해.”
“지, 진짜 괜찮은 거야? 도, 독은…….”
“응. 어떻게든 해결했으니까, 진정하도록 해.”
피투성이의 이지현은 옆에 둔 채, 나는 이민아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이민아가 더한 사고를 치기 전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