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 * *
“꼬맹이는 들어가서 먼저 자라. 나 이민아랑 따로 이야기 좀 하고 올 테니까.”
“내가 왜 꼬맹이인데?”
나, 이민아, 그리고 유나.
이렇게 셋이서 저녁을 다 먹은 직후였다.
유나가 맛있는 것들을 많이 사 온 덕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둘이서 나 빼고 뭔 얘기 하려는 건데?”
“그냥 헌터 대전 이야기 좀 하고 오는 거야, 인마.”
나는 식기들을 정리하며 대꾸했다.
“먼저 자고 있어. 이민아랑 밖에서 이야기만 좀 하다 들어올 거니까.”
“알겠어, 오빠. 그리고 나 지금 안 자. 아직 10시도 안 됐는데, 지금 왜 자는데?”
“일찍 자야 키 큰다. 얼른 자.”
“아니, 내가 애도 아니고 뭔…….”
“중학생이면 아직 애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찍 자. 나중에 키 안 커서 후회하지 말고.”
“어차피 키 클 사람들은 늦게 자든 일찍 자든 커. 게다가 오빠도 맨날 새벽에 잤으면서 키는 알아서 컸잖아.”
“일찍 잤으면 180은 넘었겠지.”
“응? 오빠 180 아니었어?”
“176인가 77이다. 뭐, 아무튼 알아서 해라.”
나는 이민아와 같이 현관으로 향했다.
“쉬고 있어. 이민아랑 이야기 좀 하다가 얘 바래다주고 올 거니까.”
“둘이 수상해? 맨날 나만 빼고 둘이 붙어다니고? 오빠, 내게 뭐 숨기는 거면 나 많이 실망…….”
“쉬고 있어, 이 녀석아.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자, 이민아. 가자.”
“응! 유나야, 다음에 보자!”
나는 이민아와 같이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이민아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래서 나랑 뭔 이야기를 한다고?”
“헌터 대전 마지막 날에 어떻게 할지 최종 점검이나 하자는 거지.”
“어차피 그거 금요일이잖아. 내일 목요일인데, 아직 시간 있는 거 아니야?”
“시간 많지. 맞아.”
“그치? 그럼 우리 그냥 내일 아침에 만나서…….”
“그것도 방법이기는 한데, 으음. 에휴. 뭐, 사실 헌터 대전 관련 이야기한다는 건 핑계다.”
“으응?”
내 말에 이민아는 고개를 갸웃했고, 나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너, 술 은근히 좋아했지?”
“어? 뭐, 안 좋아하는 건 아닌데…….”
“알고 있어. 됐고, 너 아직 조금 더 먹을 수 있지?”
“응? 더 먹을 수는 있다만…….”
“그렇겠지. 너 늑대인간이라 칼로리 소모 엄청나잖아.”
나는 앞장서며 말했고, 이민아는 그런 나를 바로 따라왔다.
“야, 그래서 우리 뭐 하러 가는 건데?”
“뭐 하기는 뭐 해. 2차나 하러 가야지.”
* * *
“으흐! 와! 야, 이거 X나 맛있다!”
“그렇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너 단맛 나는 맥주 엄청 좋아하잖아. 이 집이 그런 술을 잘 내주거든.”
“오, 맞아, 맞아. 이 집 맥주 엄청 맛있네.”
나와 이민아는 근처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중이었다.
맥주 마신 지 조금 된 것 같았지만, 우리 둘은 아직까지 생생했다.
“야, 근데 박유진. 너 내가 이런 맥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냐? 내가 전에 말해 준 적 있어?”
“응, 전에 훈련할 때 나한테 말했잖아.”
“…그랬나?”
“어, 그랬어.”
물론 아니었다.
회귀 후의 이민아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한 적이 없었다.
‘회귀 전에 이 녀석과 술을 자주 마셔서 아는 거지.’
솔직히 이 녀석의 취향은 어지간해서 내가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너 맥주만 마시지 말고 안주도 같이 먹어라. 이거 너 때문에 시킨 건데, 네가 먹어야지.”
“어? 뭐야? 육회 언제 시켰어?”
“아까 너 화장실 갔을 때 시켜 놨다.”
나는 육회를 이민아 쪽으로 밀었고, 이에 이민아는 바로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얘는 지금도 술은 잘 마시네.’
헌터들은 신체 능력이 좋아, 쉽게 취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민아는 그런 헌터들과 급이 달랐다.
‘전에 이민아와 술로 내기했다가, 내가 먼저 뻗었지.’
역시 늑대인간 신체는 무시할 게 안 됐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됐고, 이민아. 마실만큼 마셨지?”
“응? 어, 왜?”
“우리 이제 좀 진지한 이야기 좀 하자. 모레에 헌터 대전 마지막 날이잖아.”
“아, 그치. 그거 이야기하자고?”
“어, 해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를 마셨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날, 그러니까 개인전의 규칙이 정확히 어떻게 된다고?”
“간단해. 마지막 날은 모든 인원 참가, 거기서 각 학생의 활약에 따라 점수를 줘.”
“100점 만점이었지?”
“응, 100점 만점.”
이민아는 육회를 너무나도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그리고 개인전 끝나고, 각자 점수를 받았을 거 아니야? 그걸 팀원들과 합산해서 평균을 내, 그걸로 개인전 점수를 낸다더라.”
“맞아, 그랬었지.”
그러니까 쉽게 말해, 나와 이민아의 점수를 합산해 평균을 낼 것이다.
그리고 그 평균 점수가 나와 이민아의 최종 점수에 포함될 예정이었다.
“근데 이거, 개인전의 탈을 쓴 팀전 아니냐?”
“음?”
“그렇잖아. 결국 중요한 건 최종 점수고, 개인전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팀원 모두가 잘해야지. 그럴 거면 그냥 팀끼리 뭉쳐 다니면…….”
“이 대회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 새끼야.”
이민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점수를 내는 사람들, 경기 진짜 꼼꼼하게 봐. 누가 누구랑 어떻게 싸웠고, 협력했다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점수를 까거든.”
“아, 그래?”
“실제로 작년인가 재작년에 개인전에서 최후의 2인으로 남은 사람 있거든? 근데 자기 팀원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그 사람 점수 엄청 까였어.”
“개인전은 점수를 깐깐하게 주나 보네.”
나는 턱을 매만졌다.
“그러니까 너랑 내가 무언가 협력했다는 기미가 보이면, 점수가 까일 수 있다는 거지?”
“꼭 나랑만이 아니야. 다른 팀의 누군가와 협력해도 마찬가지야.”
“그건 뭔 소리냐?”
“이건 말 그대로 개인전이야. 아예 혼자 싸우는 경기. 누군가와 협력하는 게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감점이야.”
“흐음, 그러냐?”
솔직히 예상외였다.
나는 당연히 개인전의 탈을 쓴 팀전인 줄 알았는데, 규칙이 생각보다 깐깐한 듯했다.
“그럼 오히려 우리 각자 알아서 싸우는 게 점수 따기 더 쉽겠네?”
“응, 그렇지.”
“…개인전은 알아서 하자.”
“원래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었어?”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했거든.”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민아와 개인전을 대비해 이런저런 전술이나 구상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안 하는 편이 이득이었다.
‘뭐, 그래도 이왕 이민아 데리고 술집에 왔으니까.’
나는 컵에 남아 있던 맥주를 전부 들이켰다.
“이민아.”
“응?”
“오늘 팀전 1등 한 거, 고생했다. 네 잘 따라와 준 덕에 할 수 있었어.”
“에이, 뭘 또 새삼스럽게 그러냐?”
이민아는 내 빈 잔에 맥주를 가득 따르며 웃었다.
“게다가 고생은 네가 더 많이 했잖아. 나 같은 년 여기까지 키우느라 힘들었을 텐데.”
“힘들기는 뭐가 힘들어. 오히려 재밌었는데.”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이미 이민아의 성장을 한 차례 봤던 나였다.
그렇다 보니, 이민아를 이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건 전혀 힘든 문제가 아니었다.
“재밌었다고? 나를 굴리는 게 재밌었나 봐?”
“뭐, 솔직히 볼만은 했다. 특히 네가 그만하자고 나한테 매달리는 게 특히…….”
“으, 진짜. 너 은근히 사디스트인 거 알아?”
“너에게만 이러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는 안 그래.”
“오호.”
이민아는 맥주 한 컵을 그대로 입에 부은 뒤, 나를 바라봤다.
그것도 살짝 취기가 올라온 듯한 눈빛이었다.
“나에게만 이러는 건, 내가 특별해서냐?”
“…너 정도면 특별하지.”
그냥 특별한 것도 아닌, 내 인생에서 꽤 큰 의미를 지닌 녀석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또 친해졌네.’
회귀한 후, 나는 이민아의 멘탈이 무너지지만 않게끔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은 후, 나와 이 녀석은 엄청 친해져 있었다.
어쩌면 회귀 전보다 더 친해진 것일지도 몰랐다.
“히힛. 그럼 내가 더 특별해, 아니면 유나가 더 특별해.”
“…당연히 유나지.”
나는 나도 모르게 한 박자 늦게 말했다.
이에 나는 당황했다.
유나가 내게 가장 특별한 존재인 건 당연한 사실이었는데, 왜 순간적으로 망설인…….
“너 방금 망설였지? 그치?”
“아니, 이건…….”
“걱정 마, 유나에게 안 말할게. 히힛.”
이민아는 기분 좋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일단 지금 이민아의 상태를 보니까, 슬슬 취하는 게 확실했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술을 그만 마시게…….
“나 앞으로 잘하면……. 너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겠지?”
“…너 하기 나름이겠지.”
“가능성이 0만 아니면 됐어.”
방금 가득 채운 잔을 바로 또 비운 이민아.
그녀는 크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유진아. 우리 앞으로도 잘 지내는 거다?”
“…당연한 걸 물어.”
“히, 그치? 자! 아무튼 마시자! 이왕 왔는데 마셔야지!”
이민아는 이 말과 함께 내 잔과 자기 잔에 맥주를 가득 부었다.
“야, 이민아. 진정해. 너 취했어. 게다가 술 좀 그만 마셔라. 우리 이러다가 술값만…….”
“아이, 됐어! 그냥 마셔! 내가 다 낼 테니까!”
…아무래도 이때의 이민아는 술에 약한 듯했다.
* * *
“아으, 에으으으, 헤헤헷…….”
“그러니까 좀 적당히 좀 마시지.”
술에 취해 식탁에 엎어진 이민아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자정을 지나서까지 술을 마신 결과, 이민아는 완전히 뻗게 되었다.
“…잠든 모습은 참 예쁘다니까.”
평소에 날뛰기만 해서 그렇지, 얌전히 있으면 이 녀석도 꽤 예쁜 편이었다.
뭐, 그건 그렇고.
“나는 왜 안 취하는 거냐?”
아까부터 든 의문이었다.
이민아와 거의 비슷한 양의 술을 마셨음에도, 이민아는 취하고 나는 안 취했다.
“뭐지?”
나는 혹시나 싶어 소주를 병째로 마셨다.
하지만 취하는 느낌은커녕 어지러움조차 없었다.
내가 암만 헌터라지만, 술에 절대 안 취하는 몸은 아닐 텐데 왜…….
우웅―
“…이거 때문이었나?”
왼손에서 느껴진 미세한 진동.
확인해 보니, 검은 보석의 반지가 미약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설마 알코올을 다 분해해 버리는 건가?’
우웅―
반지는 대답 없이 진동만 했다.
하지만 프로기의 피를 알아서 해독한 반지였다.
‘그냥 내 몸에 해로운 건 다 해독하는가 보네.’
그렇다는 건 내가 암만 술을 마셔도, 이 반지 덕에 취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좀 아쉽네.”
가끔씩 취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근데 그 문제는 그렇다 치고.
“이거의 정체는 정확히 뭘까?”
나는 내 반지를 유심히 살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반지에 엄청난 힘이 담겨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뭔지 모르고, 어떻게 이끌어 내는지도 모르지.’
솔직히 이 반지에 담긴 힘이 궁금하기는 했다.
프로기의 피를 해독한 반지인 걸 보니, 일단 어중간한 물건은 확실히 아니었다.
“으음…….”
나는 내 기억을 되짚어 봤다.
이 반지를 지키던 그 정체불명의 남자는 거미줄을 날리고, 거미줄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나도 뭐, 손가락에서 거미줄이라도 날리는 건가?”
그 남자, 그러니까 스타페리아는 손가락 끝에서 거미줄을 뽑아냈다.
그럼 이제 이 반지, 그러니까 그 힘이 내 거니, 나도 가능한 건가?
“흠.”
나는 별생각 없이, 손가락에서 거미줄을 불러내는 상상을 했다.
근데 그 순간.
휘릭.
내 왼손 검지 끝에서 하얀 실이 한 가닥이 나왔다.
내가 지난번 그 특이한 게이트에서 봤던 거미줄과 유사했다.
“…이게 된다고?”
여러모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