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19화 (119/240)

119화

* * *

시간이 흘러 어느새 헌터 대전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마지막 경기인 개인전의 날이 다가왔다.

나는 일찍 일어나 고연대의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원래는 여유 있게 갈 생각이었는데, 나를 보자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지현은 아직도 못 찾은 건가요?”

“경찰들이 어제 하루 종일 찾았다고 하지만, 못 찾았다네요.”

하세리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라고요. CCTV에 찍힌 모습도 없고, 본 사람도 없대요. 그냥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사라진 거죠.”

“…이상하네요.”

하루아침에 너무나도 깔끔하게 사라진 이지현.

상당히 이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진짜 하윤경이 개입한 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CCTV에 찍히지도 않았고, 목격자도 없다.

내게 있어 익숙한 상황이었다.

‘다른 가능성도 있겠지만, 하윤경이 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그러나 이 일을 진짜로 하윤경이 벌인 거면, 그건 그것대로 의문이 생겼다.

하윤경이 대체 왜 이지현을 데려갔는지, 이것에 대한 설명이 안 되었다.

‘진짜 뭐지?’

회귀 전, 내가 하윤경을 제압한 후.

나는 하윤경이 납치한 사람들을 전부 구해 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이지현을 본 기억이 없었다.

‘내가 회귀해서 상황이 달라진 건가? 근데 그렇다 쳐도, 하윤경이 왜 하필 이지현을 납치한 거지?’

하나의 의문이 생길 때마다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이런저런 가설들이 생각났지만, 전부 가설에 불과할 뿐.

확실한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박유진 씨? 괜찮으세요?”

“음? 아, 네. 잠시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하세리의 말에 나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이지현은 경찰이 계속 찾는다고요?”

“네. 그리고 박유진 씨는 조심하세요. 이지현이 언제 또 박유진 씨 앞에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걱정 마세요. 어차피 이지현은 저를 못 이기니까요.”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죠.”

“뭐,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말끝을 흐리며 하세리를 바라봤다.

만약 이지현이 진짜 하윤경에게 납치된 거면, 이지현이 내 앞에 나타날 가능성은 낮았다.

아니, 내 앞에 나타나기는커녕, 그녀는 지상에 다시 나오기 힘들 거다.

하윤경의 손에 들어가면, 대체로 그런 결말을 맞이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걸 하세리에게 말해야 하나?’

이지현이 하윤경에게 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 사실을 하세리에게 말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생각을 지웠다.

‘지금 말해 봤자 의미가 없겠지.’

하세리는 자신의 고모가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고 못 믿을 테니 말이다.

나중에, 확실한 증거와 함께 이 사실을 말하는 편이 더 나았다.

‘…헌터 대전 끝나는 대로 바로 작업을 시작해야겠네.’

천천히 준비를 할 생각이었는데, 이제 그럴 여유를 부리면 안 될 듯했다.

직감일뿐이었지만, 하윤경이 슬슬 민간인 납치에 시동을 건 것 같았다.

만약 진짜라면, 하윤경, 그 미친 아줌마가 대형 사고를 분명 올해 겨울에 칠 거다.

그 전에 그녀를 반드시 막아야 했다.

그래, 그래야 했다.

하지만 당장은…….

“아무튼,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매번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 갖고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내 말에 하세리는 미소를 지었다.

“내년부터 저랑 함께 일하시게 되면, 제게 훨씬 더 많은 걸 받게 될 테니까요.”

“그런 건가요?”

“저는 저의 사람에게는 엄청 잘해 주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하세리는 의미심장한 눈빛과 함께 나를 바라봤다.

“제가 박유진 씨를 많이 아끼게 될 거 같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해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럼 잘해 주시는 만큼,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회귀 전과는 많이 다른 관계였다.

지금은 상사와 부하 관계 비슷한 것이었지만, 회귀 전에는 그냥 친한 친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 지금의 이 관계도 나쁘지는 않을 듯했다.

“오늘 헌터 대전 마지막 날이니,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당연히 좋은 결과가 있을 수밖에 없겠네요.”

하세리는 붉은 머리를 목 뒤로 넘기며 말했다.

“첫날과 둘째 날에서 전부 1등 했고, 오늘 개인전에서도 당연히 1등 할 테니. 보나 마나 우승은 박유진 씨의 것이겠죠.”

“맞는 말씀이기는 한데, 이럴수록 방심하면 안 되겠죠.”

“좋은 자세네요. 그럼 박유진 씨, 사람들에게 끝까지 박유진 씨의 강함을 보여 주도록 하세요.”

“말씀 안 하셔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 * *

‘그나저나 이거 진짜 하윤경의 짓인가?’

하세리와 헤어진 후.

스타디움의 선수 대기실에서 나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근거는 없지만, 내 감이 맞다고 하고 있어.’

하지만 이상했다.

하윤경이 본격적으로 야망을 드러내는 건 몇 년 뒤의 일이었다.

지금부터 사람들을 납치해서 실험하는 짓은, 내가 회귀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빨리 죽이는 게 답이려나?’

하윤경이 세력을 불리기 전에 처리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회귀 전에는 너무 늦게 잡아 고생했었으니 말이다.

근데 그건 그렇다 치고…….

‘왜 하필 이지현이 납치된 거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우연이라 치부하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그도 그럴 게, 이지현은 내게 독을 먹인 여자였다.

즉, 나와 관련이 있었다.

‘하윤경이 내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건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는 편이 좋았다.

하윤경, 이 아줌마는 진짜 어디로 튈지 몰랐기 때문이다.

‘방학 끝나기 전까지 유나도 안전한 곳에 보내 놔야겠네. 만약 하윤경이 진짜 내게 눈독을 들이는 거면, 유나가 분명 노려질 거야. 그러니까 이진성이나 헌터 협회 쪽에…….’

속으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던 중, 선수 대기실에 사람 한 명이 더 들어왔다.

덩치가 크고, 지난번에 한 번 봤던 사람이었다.

‘…조원선이네.’

이틀 전, 팀전의 4강에서 내가 홀로 쓰러뜨린 남자였다.

오늘 하는 개인전은 참가자 전원이 참가하는 거니, 조원선도 온 듯했다.

근데 조원선, 저 인간 어째…….

‘왜 저렇게 떨고 있는 거지?’

천천히 걸어, 나와 반대쪽으로 가 의자에 앉은 조원선.

그는 눈에 보일 정도로 떨고 있었다.

‘긴장, 그리고 무언가 고민하는 표정.’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원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확실했다.

“…으흠.”

나랑 눈을 마주치자, 조원선은 재빨리 내 시선을 피했다.

일단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확실했으나,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이지현과는 달리 조원선은 내게 패배한 후에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관심 가질 건 아니었다.

‘근데 왜 또 불안한 걸까?’

이지현도 그렇고, 조원선도 그렇고.

내게 패배한 인간들이 사고를 칠 것만 같은, 이유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 * *

“후우, 후우, 후.”

조원선은 숨을 내쉬며 박유진을 슬쩍 바라봤다.

그는 조금의 긴장도 없는,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내가 나만의 힘으로 저 새끼를 이길 수 있을까?’

조원선은 이틀 전, 팀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적은 박유진, 단 한 명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팀원들 모두, 박유진 한 명에 의해 패배했다.

한 명씩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당했었다.

‘게다가 나는… 정면승부에서 졌어.’

이상하게 생긴 단검 하나를 든 남자에게 졌다.

가장 별 볼 일 없던 놈에게 졌다.

조원선은 그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박유진은 강해. 저건 절대 D급 헌터가 아니야.’

조원선은 마음 같아서 오늘 그에게 설욕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박유진과 직접 싸워 본 그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지고 싶지 않아. 여기서 이겨야지만, 나중에 길드에 취업을…….’

조원선은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고, 이번 헌터 대전이 원래 그 시작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자기보다 어린 박유진에게 그 기회를 뺏길 처지였다.

‘…진짜 먹어야 하나?’

조원선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약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 안에는 검은 알약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이것만 먹으면 박유진을 이길 수 있다고?’

조원선은 하루아침에 강해질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꾸준한 노력만이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 믿었는데, 어제 아침.

붉은색 머리의 여자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걸 먹으면 몇 배나 강해지는 거면…….’

원래 같았으면 그냥 미친 여자의 헛소리로 치부했을 거다.

하지만 조원선은 어제, 홀린 듯 하윤경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마치 천천히 세뇌당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어느새, 조원선은 이 약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지경까지 갔다.

‘먹는 순간 강해지고, 단순히 박유진을 이기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더더욱 높은 곳을 노릴 수도 있다.’

조원선은 어제 하윤경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지만, 조원선은 어째서인지 점점 그 말을 믿기 시작했다.

아니, 믿고 싶어졌다.

그래서 조원선은 약봉지를 뜯으려고 했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일단은 다시 싸워 보자. 이 약이 뭔지 알고.’

조원선은 다시 약 봉투를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그는 차마 그 약들을 버릴 수 없었다.

* * *

몇 시간 뒤.

헌터 대전의 마지막 경기인 개인전이 곧 시작을 알릴 예정이었다.

지난 경기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고, 하세리 또한 그곳에 있었다.

“흐음.”

고연대학교에서 마련해 준 VIP석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는 하세리.

그녀는 오늘도 박유진이 어떤 모습을 자신에게 보여 줄지 기대하고 있었다.

“뭔가 박유진에게 점점 더 많은 걸 기대하게 되네.”

처음에는 박유진이 보인 다재다능한 면에 만족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세리는 박유진에게 다른 것들까지 바라게 되었다.

그에게서 일상에서의 무언가도 함께 기대를…….

“어머, 세리야. 너도 왔구나?”

“고모?”

조용히 경기장을 지켜보던 중, 하세리 곁에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났다.

“고모가 왜 여기에…….”

“심심해서 와 봤단다.”

“그, 그래요? 근데 여기 VIP석인…….”

“고연대에 인맥이 있는 건 너만이 아니란다.”

하윤경은 미소를 지으며, 하세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오전부터 맥주니? 저번에 술 줄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이거 마신다고 저 안 죽어요. 그보다 고모가 여기를 심심해서 왔다고요?”

“심심해서 왔다는 건 그냥 해 본 말이고, 내가 오늘 경기에서 보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러니까 고모가 눈독 들인 학생이 있다는 거예요?”

“너도 박유진이라는 친구에게 관심을 가졌잖니? 똑같은 거란다.”

하윤경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 나온 김에, 너 요즘 박유진과 자주 어울려 다니는 거 같던데, 맞니?”

“고모, 그건…….”

“네가 어떤 남자를 물어오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너보다 한참 연하인 남자는 뭔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하세리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후, 그녀는 다시금 경기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기 곧 시작하나 보네요.”

“그러네. 근데 참가한 학생들이 진짜 많구나. 그리고 박유진은… 으응, 저기 있네. 이 한여름에 검은 코트는 찾기 쉽다니까.”

“네, 그러네요.”

하세리는 경기장에 나타난 박유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본인도 모르게, 박유진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은 그녀였다.

그러나 미소를 지은 건 하세리만이 아니었다.

“으음, 저기 있네.”

하세리와 다른, 상당히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은 채, 하윤경은 경기장에 나타난 조원선을 바라봤다.

‘아직 약은 안 먹었나 보네. 근데 뭐, 곧 먹게 되겠지.’

하윤경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힘을 갈구하는 놈들의 끝은 다 똑같으니까.’

* * *

‘저 아줌마. 또 뭐 노리고 있나 보네.’

경기장에 들어선 후, 나는 관객석에 앉아 있는 하세리, 그리고 하윤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윤경을 보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또 사고 하나 터지겠네.’

아무래도 그 사고를 막는 데 집중해야 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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