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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20화 (120/240)

120화

“야, 박유진. 괜찮아?”

“응? 어, 괜찮다.”

“진짜로?”

내 옆의 이민아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너 표정 방금 되게 안 좋았던 거 알아?”

“신경 쓰지 마. 별것 아니니까.”

사실 별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하세리 옆에 앉아 있는 하윤경을 슬쩍 바라봤다.

‘저 아줌마가 나타나면 열에 아홉은 사고가 터지니까.’

게다가 이번에는 특히 느낌이 안 좋았다.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꾸며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으음, 아닌 거 같은데?”

“…나중에 말해 줄게. 그보다 너 말이야.”

나는 말이나 돌릴 겸, 미소를 지으며 이민아에게 말했다.

“오늘 개인전 준비는 잘 했냐? 협업이 전혀 필요 없는 거라 어제 그냥 안 불렀는데, 잘할 자신 있지?”

“나 혼자서도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쓸어 버릴 수 있… 아, 물론 너 빼고. 나는 아직도 널 이길 자신이 없다.”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지금의 이민아면 여기 학생들을 전부 찍어 누르는 게 가능했다.

‘나는… 힘들겠지.’

나는 이민아처럼 힘으로 승부 보는 게 아닌, 변수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었다.

물론 여기 학생들을 전부 상대하라면 할 수야 있겠다만, 이민아처럼 수월히 상대하기는 힘들 듯했다.

“아무튼, 마지막까지 잘해 보자. 여기서만 잘하면, 우리가 우승하는 거니까.”

“나도 알아. 첫날과 둘째 날 다 1등 하고, 여기서 못 해서 우승 놓치면 아깝잖아?”

“2등만큼 아깝다는 게 없더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음껏 날뛰도록 해. 네 스스로를 믿고 여기 사람들 다 날려 버려.”

“…그래도 되겠지? 근데 내가 또 본능에…….”

“내가 있잖아. 네가 이상한 짓 할 거 같으면 내가 막을 거니까, 편하게 싸우도록 해.”

“알겠어.”

이민아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네 말대로, 우리 마지막까지 잘해 보자.”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미소 지으며 대꾸한 후, 다시금 하세리와 하윤경 쪽을 바라봤다.

‘사람 이렇게 많은 곳에서 사고를 치지 않…지 않겠구나.’

회귀 전에도 사람 수에 상관없이 일을 벌인 아줌마였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듯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 중에 내가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건…….

‘조원선. 저 인간이지.’

아침부터 조원선의 상태가 무언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하윤경이 스타디움에 나타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얼굴. 아마 하윤경이 또 이상한 약을 준 거 같네.’

힘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이 만든 약을 줘, 그 약의 효과를 확인한다.

이게 하윤경이 매우 자주 쓰는 수법이었다.

‘게다가 저 아줌마는 뭔 이상한 최면 도구 써서, 그 약을 무조건 받아 가게 했었지.’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그저 내 감이 조원선이 위험하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감을 믿기로 했다.

‘…그냥 지금 기절시켜서, 경기를 강제로 기권하게 만들까?’

현재 헌터 대전에 참가한 모든 학생들이 경기장 중앙에 모여 있었다.

조원선은 내게서 약 5m 떨어져 있었다.

만약 내가 몰래 조원선에게 다가가, 그를 전류로 단번에 기절시킨다면… 그렇다면 추가적인 피해를 처음부터 막을 수…….

“헌터 대전의 마지막 날! 참가자들 전원 한곳에 모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이번 경기의 룰을 설명하자면…….”

너무 고민을 오래 했다.

아무래도 바로 움직여 조원선을…….

“…에라이.”

한발 늦었다.

이미 조원선은 대회 관계자의 안내를 따라 경기장의 반대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박유진 씨, 맞으시죠?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네.”

관계자가 나를 지정된 위치로 안내하기 위해 나타났다.

마음 같아서는 관계자를 뿌리치고 조원선에게 달려가 그를 기절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조원선이 놀라서 뭔 짓을 할지 몰라.’

아무래도 조원선을 기절시키는 건, 경기를 진행하면서 노려야 할 듯했다.

아니, 그냥 경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조원선을 노릴 생각이었다.

“박유진, 파이팅! 잘해 보자!”

“…그래. 너도 파이팅이다.”

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이민아에게 대꾸했다.

그런 후, 대회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경기장의 지정된 위치로 갔다.

‘웃으면서 경기를 끝냈으면 좋겠네.’

그래, 그러면 매우 좋을 거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고, 내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 결승전 】

“이번에는 필드 마법으로… 으음, 런던 시내가 선택됐네.”

“고지대가 많은 필드네요.”

하세리는 하윤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필드라면, 아마 박유진에게 유리하겠죠.”

“그렇겠지. 나도 인터넷에서 박유진 싸우는 거 봤는데, 고지대를 선점해 변칙적으로 싸우는 스타일이더라.”

“네. 단순히 화력이나 힘으로 몰아붙이는 게 요즘 헌터들 스타일인데……. 박유진은 흔치 않은 인재죠.”

“그치. 흔하지 않지.”

하윤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경기장을 바라봤다.

하세리가 박유진을 바라보고 있다면, 하윤경은 조원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저 친구는 결국 내 약을 먹게 되겠지. 박유진을 향한 열등감, 그리고 힘을 향한 열망. 그 두 가지 때문에 먹을 수밖에 없을 거야. 그렇게 되면…….’

하윤경은 고개를 돌려, 하세리와 같이 박유진을 바라봤다.

‘박유진. 너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 거냐?’

하윤경은 최근 박유진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계획에 있어, 어떠한 변수로 작용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 기회에, 박유진이 진짜로 자신에게 위험한지 확인하고자 했다.

‘별것 없는 놈이면 여기서 죽겠지. 하지만 만약에 살아남으면… 더 재밌는 걸 준비해 줘야지.’

하윤경은 미소를 유지한 채, 옆자리의 하세리를 슬쩍 바라봤다.

‘그리고 이 아이도… 조금 더 쓸 만하게 바꿀 필요가 있겠어.’

모든 게 순조로웠다.

박유진이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그는 하윤경에게 있어 말 그대로 변수였을 뿐.

하윤경은 박유진을 위험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틀린 사실이라는 걸, 하윤경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 *

‘런던의 거리. 뭐, 여기도 나쁘지는 않지.’

5층 이하의 건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고지대가 많다는 것만 해도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런 도심에는 골목들이 많아, 내가 더더욱 활약하기 좋았다.

원래 같았으면 나름 재미를 느끼며 이 경기를 진행했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조원선부터 찾자.’

시간이 지날수록, 조원선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뭔가 이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대형 사고를 일으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근처의 가장 높은 건물로 올라가서, 조원선부터 찾자.’

나는 와이어를 근처에 보이는 5층 건물 옥상에 던져, 그 위로 빠르게 올라갔다.

‘조원선의 기동성은 그렇게 좋지 않아. 그렇다면 분명…….’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조원선의 성격이나 전투 스타일을 고려해 봤을 때, 그가 향할 방향은 뻔한…….

“…음?”

순간, 이유 모를 소름이 느껴졌다.

그래서 몸을 옆으로 틀었고.

“와, 이걸 피하냐?”

“…또 보네요, 김혜성 씨.”

이틀 전, 팀전의 결승 당시.

상대 팀, 그러니까 5팀에 있던 김혜성이 나를 향해 도검을 내리치려 했었다.

물론 내 훌륭한 직감 덕에 그의 공격을 피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틀 전에, 제가 3, 4위전 경기를 못 봐서 그런데, 몇 등 했나요?”

“네 덕에 3등 했다, 왜?”

“3등이면 잘했네요. 물론, 1등 한 제가 훨씬 잘한 거지만요.”

“이 개새끼가.”

김혜성은 내게 검을 휘두르며 돌진했으나, 나는 자바니아로 그 공격을 손쉽게 막았다.

“하나만 묻죠. 김혜성 씨는 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지난번에 싸울 만했어. 그렇다면 지금도……. 커억?!”

“지난번에는 제가 독에 당해서 그 꼴이었죠.”

나는 김혜성의 복부에 무릎을 날리며 말했다.

“오늘은 저 멀쩡하다고요.”

“크악?!”

나는 자바니아의 손잡이로 김혜성의 관자놀이를 친 후, 전류를 불러내 그를 감전시켰다.

“으, 으아어억…….”

제대로 된 공격 하나 해 보지 못한 채, 김혜성은 그 자리에 쓰러져 기절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조원선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이 경기를 즐기는 건, 그 후의 문제였다.

“…저기 있다.”

내 위치에서 2시 방향, 약 300m.

조원선은 창을 든 채 골목길을 홀로 배회하고 있었다.

“가자.”

나는 와이어를 옆 건물에 던져, 빠르게 조원선 쪽으로 가고자 했다.

하지만 옥상 밖으로 몸을 날리려던 순간.

“으아아아아!”

“엇?”

근처에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건물 옥상에 올라온 김현지가 내게 돌진해 오고 있었다.

김현지, 그러니까 아까 김헤성과 같은 팀이었던, 그 팀의 팀장이었다.

“도망치지 마!”

“윽?”

순간적으로 당황한 탓에 발을 헛디뎠고, 김현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옆 건물로 도약하려던 내 다리를 붙잡아, 그녀는 나와 함께 지상 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야, 높은 곳에서 자주 떨어져 봤기에 별 어려움 없이 착지했고.

콰쾅―!

그런 경험이 적은 듯했던 김현지는 머리부터 떨어졌다.

5층 건물에서 떨어진 거라, 김현지의 상태가 걱정됐지만.

“너 잘 잡혔다. 이번에는 내가 이긴다.”

탱커는 탱커였는지, 김현지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이에 나는 한숨을 쉬며 자바니아를 꺼내 들었다.

“빨리 끝내죠. 저 이럴 시간 없으니까.”

김현지 한 명쯤은 순식간에 끝낼 수 있었다.

그러니 빨리 전투를 마무리하고 조원선 쪽으로 달려가는 편이…….

휙!

“음?”

내 뺨을 스쳐 지나간 화살.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불덩이 하나가 추가로 날아왔다.

“…많이도 왔네.”

불덩이를 피한 후, 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봤다.

확인한 결과, 김현지를 포함한 총 열세 명이 내게 접근하고 있었다.

“김현지 씨? 제 기억이 맞는다면, 이 개인전에서는 일체의 협력도 하면 안 되는 걸로 아는데,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사전에 협력을 약속하거나 하지 않았어.”

방금 내게 활을 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다 같이 암묵적으로… 너부터 조지기로 합의한 거야.”

“…그건 또 뭔 소리죠?”

“말 그대로야.”

아까 내게 불덩이를 날린 여자가 이번에 말했다.

“어제 학교 커뮤에서 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 거 알아?”

“처음 듣는데요? 제가 커뮤니티? 그런 걸 잘 안 봐서요.”

“사람들이 전부 너의 원맨쇼가 될 거 같다더라. 너, 아니면 이민아. 그래서 너희 둘부터 잡는 편이 더 이득이지 않냐,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

“뭐야? 그럼 결국 협력하기로 한 거네요.”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고, 이에 김현지는 피식 웃었다.

“더러운 방식인 거 알아.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협력했다는 이유로 점수 조금 깎이는 거와, 너에게 줘 터져서 점수 크게 깎이는 거. 너라면 뭘 선택했겠냐?”

“그렇게 들으니 나름 합리적이네요.”

나 또한 피식 웃으며 싸울 준비를 했다.

“됐고, 한 번에 덤비세요. 시간 없으니까, 빨리 끝내 드리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빨리 끝내야 했다.

조원선이 뭘 하기 전에 말이다.

그나저나 조원선… 그 인간 뭐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겠지?

* * *

같은 시각.

“야, 조원선! 너 잘 만났다! 너 그때 이상한 수작 쓴 거, 나 아직도 다 기억하고 있다?!”

“…으윽.”

조원선은 자기 앞에 나타난 늑대인간, 그러니까 이민아를 바라보며 살짝 떨었다.

박유진과 이민아.

조원선은 그 둘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약을 진짜 먹어야 하나?’

조원선은 창을 들어 올리며, 자기 주머니에 있을 약들을 슬쩍 바라봤다.

그 약을 먹으면 몇십 배는 강해질 수 있다는, 하윤경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더 강한 힘에 대한 욕심이 조원선을 유혹하는…….

“크르르르!”

“으억?!”

이민아는 고민을 하던 조원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원선은 더 생각할 틈도 없이, 그녀의 공격을 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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