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22화 (122/240)

122화

* * *

너무 늦게 왔다.

아무래도 조원선은 이미 하윤경이 준 약을 먹은 듯했다.

‘저걸 막았어야 했는데.’

나는 이성 잃은 눈빛을 한 조원선을 바라봤다.

그의 피부 위로 혈관과도 같은 붉은 선들이 선명히 나타나고 있었다.

‘저 선들, 그리고 여기까지 느껴지는 열기.’

내가 아는 몬스터들 중, 저런 특징을 가진 몬스터는 딱 하나 있었다.

‘익스트리머인가?’

평소에는 크게 특별한 것 없는, 미노타우로스처럼 생긴 몬스터.

하지만 스트레스를 일정 수준 이상 받으면, 익스트리머의 피부 위로 붉은 선들이 나타난다.

그 선들은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늘려 주고, 동시에 열기를 낸다.

적들에게 심한 화상을 입힐 수 있는 열기를 말이다.

‘하지만 익스트리머는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익스트리머의 가장 큰 특징.

그건 바로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한계 이상의 스트레스나 충격을 받으면, 익스트리머는 폭발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 붉은 선들이 폭발하는 것이지만, 그게 그거지.’

폭발이 일어나면 익스트리머는 죽는다.

그리고 반경 500m 내의 모든 생물들은 그 폭발에 휘말린다.

폭발의 위력이 약하다면 모르겠지만, 익스트리머의 폭발은 강했다.

나조차 전에 그 폭발 때문에 죽을 뻔했으니 말이다.

‘조원선을 쓰러뜨리는 건 문제가 아니야. 진짜 문제는…….’

나는 관객석 쪽을 둘러봤다.

현재 이 스타디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자칫 잘못했다가 저 사람들까지 폭발에 휘말릴지도 몰랐다.

‘미치겠네.’

나는 헌터였다.

그리고 헌터는 몬스터를 죽이는 일만 하는 게 아니었다.

헌터에게는 사람들을 지킬 의무도 있었다.

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지만, 그 기본적인 것 하나만큼은 지켜 왔다.

‘이번에도 지켜야지.’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후, 나는 내 앞의 조원선을 바라봤다.

“바, 바구! 유진! 너는, 너는……. 으아아아아!”

“자, 조원선 씨. 일단 진정하고 제 말을…….”

“크아아아!”

“하아아, X발.”

마음 같아서는 조원선을 진정시켜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크아아아아!”

조원선은 창을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틀어 그의 돌진을 피했다.

원래 같았으면 피한 뒤, 그의 급소를 가격했을 거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익스트리머는 일정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폭발해.’

조원선을 공격하는 건 그 폭발을 앞당길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조원선은 저 붉은 선들 때문에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상태.

내가 때려 봤자 큰 타격을 못 줄 것이었다.

‘일단 조원선을 진정시키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건 쉽지가 않아 보이네.’

나는 자바니아를 들어 조원선의 창을 막았다.

하지만 막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조원선은 지금 평소보다 몇 배는 강해진 상태였다.

‘힘 자체는 이민아와 비슷하겠네.’

나는 조원선이 내리치는 창을 자바니아로 겨우겨우 막았다.

“으아아아!”

“…더럽게 뜨겁네.”

조원선의 몸에 나오는 엄청난 열기.

그 때문에 그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저 몸에 닿았다가는 바로 화상이었으니 말이다.

‘자,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려 몇 가지 수를 생각해 냈다.

조원선을 함부로 공격할 수는 없으니, 지금 내가…….

“꺼져, 개새끼야!”

“크에엑?!”

“음? 이민아?”

“크아아악?!”

조원선과 대치하던 중, 갑자기 이민아가 튀어나와 조원선에게 주먹을 날렸다.

이민아에게 배와 주먹을 한 대씩 맞은 조원선은 그대로 근처 건물을 향해 날아갔다.

“커억!”

건물 벽에 부딪혀 쓰러진 조원선.

그는 몸을 바로 움직였지만,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로 못 일어났다.

“박유진, 괜찮아?”

“어, 나는 괜찮아. 근데 조원선… 저 새끼를 공격하면 안 되는데.”

“에? 뭔 소리야?”

“으음, 아니다. 잘했어.”

설명하려면 길었기에, 나는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면서 나는 이민아의 손을 슬쩍 바라봤다.

“손에 화상 입었네. 괜찮냐?”

“아, 이거? 따갑기는 하지만 네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너도 고생이 많다.”

나는 이민아의 상처에 손을 가져갔다.

갈색 털로 뒤덮인 늑대인간의 손.

그 손은 화상 때문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좀만 더 버텨라. 이거 빨리 끝내 줄 테니까.”

“어? 어어, 그, 그래. 어? 잠깐. 그보다 이거 개인전이었지? 지금 우리 협력하는 걸로 보이면 점수가…….”

“그건 이제 의미가 없다.”

“…뭐?”

“지금 헌터 대전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

나는 다시금 조원선을 바라봤다.

그는 본능에 먹힌 눈빛을 한 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일단 사람들을 여기서 벗어나게 해야지.’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원형 장치를 꺼냈다.

이에 이민아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박유진? 저거 경기 중단 요청할 때 쓰라고 준…….”

“맞아. 비상시에 경기 중단을 요청하라고 준 거지.”

지금까지의 했던 모든 경기들.

그 경기들 시작 전에, 대회 운영 측에서 학생들에게 이 작은 장치를 줬다.

위급할 때 이 장치의 버튼을 누르면 경기 중단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비상 상황이지.”

물론 이걸 쓰면 자동으로 경기 패배 처리가 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우승을 놓치게 되면 아깝겠지만, 당장은 사람들이 다치는 걸 막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버튼을 눌렀는데.

“…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몇 번 더 눌렀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이에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민아. 너도 이거 갖고 있지?”

“어? 어, 여기 있기는 있는데…….”

“눌러 봐.”

“하지만 이거 누르면 우리 여기서 질 수도…….”

“어서.”

“…응.”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이민아는 나와 똑같은 장치를 꺼내 눌렀다.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이민아의 것도 반응이 없었다.

‘뭐지?’

이 장치는 마법으로 작동했다.

어지간해서 고장이 안 날 물건이었는데, 어째서 나와 이민아의 것이 안 되는…….

“…아, 잠깐만.”

나는 관객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말해, 관객석에 있는 하세리와 하윤경.

자세히 보니, 하윤경은 경기 시작 전부터 손가락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씩 움직이는 거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상함을 못 느낄 터였다.

나 또한 지금까지 이상함을 못 느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보니, 저 움직임의 의미를 깨달았다.

‘저 아줌마도 마법사였지.’

전투 계열이 아닌, 기술적인 계열의 마법.

그 분야에서의 하윤경은 최고였다.

멀리서 이런 기계를 조작하는 것쯤이야, 하윤경에게 별것 아닌 일이었다.

‘아예 작정하고 여기를 왔나 보네.’

하윤경은 어지간해서 직접 마법을 쓰는 편이 아니었다.

저렇게 직접 움직인다는 건, 하윤경 또한 무언가 제대로 노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윤경은 조원선에게 익스트리머의 유전자를 집어넣었어. 그리고 익스트리머의 유전자를 넣었다는 건…….’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윤경은 이 스타디움에 폭발을, 그러니까 테러를 일으킬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윤경처럼 합리적인 사람이 이 타이밍에 테러를 일으켜 봤자 얻는 것이…….

“으아아! 크아아! 박유진!”

“…알겠어요. 그쪽부터 먼저 처리해 드리죠.”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조원선.

아까 이민아에게 맞은 일격 때문에 휘청거렸지만, 싸우는 데 지장은 없어 보였다.

‘이 장치로 경기 중단하는 계획은 실패. 저 아줌마가 있는 한 불가능하겠지.’

나는 대회 측에서 준 장치를 버린 뒤, 이민아 쪽을 바라봤다.

“이민아. 경기장 밖으로 가서 대회 측에게 경기 중단하라고 전해 줘. 그리고 관객석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라고도.”

“대피시키라니? 너 아까부터 뭔…….”

“간단히 말하자면, 조원선이 폭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그렇게 되면, 다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야.”

“…뭐?! 폭발?! 아니,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게다가 폭발이라면 대체 어느 정도 규모로…….”

“상당히 큰 규모가 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얼른 가서 알려. 조원선은 내가 붙잡고 있을… 하아, 에라이.”

이민아에게 말하던 중, 갑자기 옆에서 몇 명의 학생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딱 봐도 나와 이민아를 노리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대충 그들에게 자바니아와 전류 몇 줄기를 날려 줬다.

“키아아악?!”

“아아악?!”

“귀찮게 하네. 이민아, 가는 길에 아직 움직이는 애들 보이면 기절시켜. 그리고 쓰러진 놈들은 경기장 밖으로 던져 버리고.”

“박유진, 하지만 너 혼자서 조원선을…….”

“어서 가, 시간 없어. 그리고 나 믿어. 나는 지는 싸움은 절대 안 하니까.”

“…알겠어.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이 말과 함께 이민아는 내가 방금 쓰러뜨린 학생들을 등에 업고, 그대로 경기장 바깥쪽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나와 조원선, 이렇게 단둘이 경기장 중앙에 남게 되었다.

“조원선 씨. 대체 어쩌다가 하윤경, 그 아줌마의 말에 넘어간 건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힘을 원한 거면…….”

“바, 박! 유! 진!”

“에휴, 사람 귀찮게 하네.”

나는 자바니아와 와이어를 준비했다.

일단 경기가 중단되고 사람들이 대피하기 전까지, 나는 이 인간을 붙잡아 둬야만 했다.

* * *

“흐음, 재밌네. 안 그래, 세리야?”

“네, 뭐…….”

“그나저나 박유진. 저 친구 대단하네. 혼자서 3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을 잡고. 게다가 저 친구 D급 아니었니? 방금 그건…….”

“네, D급이 지닐 만한 위력의 전기가 아니었죠.”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한 뒤, 다시금 경기장을 바라봤다.

경기장에서 크고 작은 전투들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전투는 하나.

바로 박유진과 조원선의 싸움이었다.

“오오, 쟤 뭐야?”

“와이어 저거 쓰는 거 볼 때마다 놀랍네. 어떻게 저렇게 쓰는 거지?”

“근데 박유진도 박유진이지만, 저 창 든 사람 있잖아. 저 사람도…….”

“맞아! 아까 보니까 땅에 구멍 내고 건물 무너뜨리고 있잖아!”

관객들 대부분 또한 그 두 사람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다.

민첩하게 움직이는 박유진과 힘으로 몰아붙이는 조원선의 싸움이 실로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하세리 또한 그 둘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조원선에게 나타난 저 붉은 선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게다가 조원선이 저런 능력을 갖고 있었나? 지난번 팀전 때는 못 본 거 같은데.’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하세리는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윤경은 그런 하세리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 박유진. 한 번 너의 실력을 보여 보거라.’

손가락을 움직이며 마법을 유지한 채, 하윤경은 곤란한 표정의 박유진을 바라봤다.

‘내 계획을 못 막으면 너는 죽고, 그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막으면…….’

하윤경은 지금까지 알아본 박유진에 대한 것들을 떠올렸다.

그녀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박유진은 전혀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만약 내 계획을 막고, 여기의 사람들까지 구하면……. 내가 상당히 조심해야 할 인간이라는 뜻이겠지.’

하윤경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원대한 계획에 조금의 방해도 허용할 생각이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