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 * *
‘이거 곤란하네.’
나는 와이어를 타고 근처 건물 위로 피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조원선에게 반격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조원선은 현재 익스트리머의 유전자를 갖고 있어.’
일정 이상의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조원선은 폭발할 거다.
조원선 본인은 죽고, 이 스타디움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을 터였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막는 것이 내 목표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지.’
최대한 공격을 안 하며 시간을 끌기.
말이 쉽지, 실제로 하려니까 상당히 어려웠다.
“으아아아! 박유진!”
“에라이.”
조원선이 내게 창을 던졌다.
이에 나는 그 창을 피하며 건물 아래로 떨어졌다.
“박유진!”
“저 귀 안 먹었어요.”
내게 주먹을 휘두르는 조원선을 피한 뒤, 그의 어깨를 발판 삼아 위로 도약했다.
그렇게 나는 근처에 있던 가로등 위로 올라갔다.
이에 조원선은 또다시 포효하며, 자신의 창을 다시금 들어 올렸다.
“나는! 나는 너를! 크아아아!”
“제발 좀 진정하면 안 될까요?”
조원선이 가로등을 무너뜨리려고 하자, 나는 재빨리 내려왔다.
그런 후, 자바니아로 조원선의 창을 막았다.
“본능에 먹혔다고 해도, 이성이 어딘가 남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 제발 정신 좀 차려 봐요.”
“나는! 너를! 죽이겠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조원선을 뒤로 밀어냈다.
“저에게 진 게 그렇게 분했나요?”
“너를 이겨야! 이겨야만 해!”
조원선은 내게 창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하지만 본능에만 의존한 그런 공격은 내게 닿지 않았다.
“너를 이겨야 한다고! 으아아아!”
“…왜 저를 이겨야만 하는 거죠?”
조원선의 창을 자바니아로 막은 채, 나는 나지막이 물었다.
“왜 저를 이기는 데 그렇게 집착하는 건가요?”
익스트리머 또한 난폭하기로 유명한 몬스터였다.
하지만 난폭하기만 할 뿐, 나름대로의 지능을 가졌다.
아마 조원선도 지금 본능이 강해지고 난폭해진 것뿐.
그의 안에는 분명 이성이 아직 남아 있을 터였다.
“저를 이긴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나는 그 점을 노리고 있었다.
그것만 노리면, 조원선을 진정시키는 것도 가능성이 0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내 가설을 증명하듯, 조원선은 이내 내 말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가족을! 가족을! 살려야 해!”
“…가족이요?”
“너를 이기고 성공해야만! 크아아아! 아아아! 가족을! 으아아아!”
“그런 거였냐?”
대충 상황이 이해되었다.
일단 조원선은 승부욕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했다.
그래서 나에게 팀전에서 패배한 게 분했을 터였다.
아마 나를 이기기 위해 더 강해지고 싶었을 것이었다.
‘게다가 먹여 살려야 될 가족까지 있나 보네.’
가족을 위해 성공하고픈 욕망.
그러기 위해 이 헌터 대전에서 이겨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밟고 올라가야 했다.
하윤경은 아마 조원선의 이런 면을 파고들었을 것이었다.
‘사람의 욕망을 파악하고, 그걸 토대로 설득하는 것. 하윤경, 그 아줌마가 잘하는 짓이지.’
하윤경이 가진 그 악마의 재능.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윤경의 약을 스스로의 의지로 먹었다.
‘뭐,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거면, 나도 나름 일가견이 있지.’
조원선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그걸 이용해 그를 진정시킬 생각이었다.
“조원선 씨의 가족이 이런 걸 원할까요?”
“…으응?”
“지금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해 보세요. 조원선 씨의 가족이 이런 모습을 원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민아가 본능에 먹히면 이성 자체를 완전히 잃었다.
하지만 조원선은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의 안에는 이성의 파편들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다.
나는 그걸 이용하고자 했다.
“이런 식으로 힘을 얻고, 이런 꼴이 되는 거. 그거 절대 조원선 씨의 가족이 바라지 않을 거예요.”
“가족… 내 가족이…….”
“진정하시고, 제 말 들어요. 아직 되돌리기에 늦지 않았으니까.”
조원선의 피부 위에 나타났던 붉은색 선들.
그 선들이 약간씩이지만 옅어지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조원선이 조금씩 진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경기가 중단되고, 사람들이 대피할 때까지만 시간을 끌자.’
아마 지금쯤 이민아는 대회 측 사람과 닿았을 거다.
그렇다면 앞으로 몇 분만 더 시간을 끌면 될 터였다.
그래, 몇 분만 더 하면 다치는 사람 없이 끝낼 수 있었다.
‘저 아줌마가 또 지랄만 안 한다면 말이지.’
나는 관객석 쪽을 향해 고개를 슬쩍 돌렸다.
하세리와 같이 있던 하윤경은 재밌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근데 저 아줌마가 지랄을 안 할 리가 없지.’
회귀 전에 저 아줌마와 몇 번 싸워 봤기에 아주 잘 알았다.
* * *
“…암만 봐도 뭔가 이상해.”
하세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에는 조원선의 상태가 암만 봐도 이상했다.
특히 조원선의 피부 위에 나타난 혈관과도 같은 붉은 선들.
‘무슨 몬스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떤 몬스터의 특징인 건 확실해.’
일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하세리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지금 박유진이 조원선과 싸우고 있었다.
최근 가장 아끼게 된 사람 중 하나였기에, 하세리는 박유진이 잘못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일단 대회 측 사람들에게 말을 하자. 이 경기를 잠시 중단시키고 조원선의 상태를…….’
하세리는 바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목을 하윤경이 붙잡았다.
“어디 가는 거니?”
“고모. 지금 박유진과 싸우는 저 조원선이라는 사람… 뭔가 이상해요. 아무래도 내가 확인을…….”
“이상하다니? 내 눈에는 전혀 안 이상한데.”
“저 붉은색 선들은 분명…….”
“저거 조원선이 원래 가지고 있다는 능력이라는데?”
“…네?”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보자.”
하윤경은 하세리를 자기 옆에 다시금 앉히며 말했다.
“나는 아직 이상한 거 못 느꼈거든. 그러니까 조금만 더 지켜보고,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하지만… 박유진이…….”
“조금만 더 지켜보자, 알겠지?”
하윤경의 단호한 말에 하세리는 뭐라 말을 못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키워 준 사람이라, 하세리는 하윤경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하세리의 모습에 하윤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후, 하윤경은 다시금 경기장 쪽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이러면 재미없게 끝난단 말이지. 조원선을 진정시킬 생각을 하다니. 보통이 아니야.’
조원선을 조금씩 진정시키는 박유진.
익스트리머의 난폭함을 생각하면, 상당히 리스크가 큰 방법이었다.
하지만 박유진은 그걸 실제로 행하고 있었고, 효과가 있었다.
‘대단하기는 한데, 이런 결말은 영 아니지.’
하윤경은 박유진의 이런 면모만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윤경은 하세리 몰래 마법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 야, 내 말 들리냐?
- 네, 잘 들립니다.
하윤경이 속으로 말하자, 이내 머릿속에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 지시한 것을 실행합니까?
- 응, 진행해.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하자마자 바로 자리 뜨는 거 잊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하윤경은 마법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다시금 경기장의 박유진에게 집중했다.
“…고모, 아무리 생각해도 저 붉은 선들은 인간이 가질만한 힘이 아니에요. 제가 직접 가서 확인을…….”
“세리야, 기다려 보라니까. 이제 곧 재밌어질 거 같은데.”
* * *
“자, 조원선 씨. 진정하시고 창을 내려놓죠.”
“으으, 너, 너는 내가…내가 이기고… 나는 성공을…….”
“그 꼴로는 뭘 해도 성공 못 할 테니, 제 말부터 들어 보세요.”
나는 자바니아를 집어넣으며, 조원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조원선 씨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러니까 천천히 저를 따라 주세요.”
“크으으, 으으으으.”
조원선의 몸 위에 있던 붉은 선들이 많이 옅어진 채였다.
게다가 조원선의 눈은 어느새 조금씩 이성의 빛을 다시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이 사태를 끝낼 수 있을지 몰랐다.
그래, 이대로만 간다면 말이다.
‘뭔가 불안하단 말이지.’
하윤경이 일을 이렇게 쉽게 끝낼 리가 없었다.
저 아줌마는 분명 무언가 일을 더…….
탕! 탕!
갑자기 들려온 총소리.
순간 뭔 일인가 싶었는데.
“크아악? 아아악!”
“음?”
내 앞에 있던 조원선이 갑자기 다리를 붙잡았다.
자세히 보니, 그의 다리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
‘총알?’
나는 재빨리 관객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 아까 총소리가 났던 곳을 살폈다.
척 보기에는 관객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별일을 다 겪은 내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저 남자인가?’
관객들을 지나쳐 도망치는 남자.
품 안에 총을 넣으며, 그는 재빨리 스타디움의 안쪽으로 향했다.
모자와 마스크, 게다가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어 얼굴이 안 보였다.
“에라이.”
지금 저 남자를 쫓아가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다시금 조원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원선 씨. 괜찮은…….”
“크아아악! 크아아아!”
“…미치겠네.”
말했듯, 일정 이상의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익스트리머는 폭발한다.
그리고 총상은 충격과 스트레스, 그 둘 모두에 해당한다.
‘아니야.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을 거야.’
조원선은 기본적으로 탱커였다.
게다가 익스트리머의 유전자로 신체가 배로 강해졌으니, 총상 하나쯤은 큰 문제가…….
“아악! 크아악! 아파! 아프다고! 크아아악!”
…아니, 뭔가 심상치 않았다.
총상에 저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다니, 무언가 이상했다.
이번에는 또 뭔 일인가 싶었는데…….
“음? 저 총알은…….”
조원선 근처에 떨어져 있던 총알.
아까 쏜 두 발 중 빗나간 한 발로 보였다.
하지만 총알의 모양이 조금 이상했다.
구체형의 탄알이었는데 크기가 탁구공과 비슷했다.
게다가 마치 썩은 듯, 검은 구체의 곳곳에 주름이…….
“아니, 잠깐, X발. 저거 저주탄이잖아.”
저주탄.
나도 써 본 물건이라 안다.
저게 몸에 박히는 순간, 빼기 전까지 극한의 고통을 선사해 주는 물건이었다.
극한의 고통, 그러니까 프로기의 피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고통이었다.
그리고 저 총알이 지금 조원선의 다리에 박혔다는 건…….
“크아아악! 아악! 으아악!”
“X됐네.”
익스트리머는 일정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발한다.
그리고 저 저주탄은 그 ‘일정 이상의 스트레스’를 전부 주고도 남았다.
그걸 증명하듯, 점차 사라지고 있던 붉은 선들이 조원선의 피부 위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매우 빠른 속도로 붉어졌고, 아까보다 더 강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에라이.”
나는 바로 계획을 변경했다.
보나 마나 아마 30초 내로 조원선은 폭발할 것으로 보였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파지직―
나는 재빨리 내 주위로 전류들을 불러냈다.
폭발을 막지 못한다면, 폭발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이 방법밖에 없나?’
순간, 나는 망설였다.
지금 이 힘을,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쓰는 것.
그랬다가는 내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전부 보이는…….
‘…됐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전에도 말했지만, 헌터는 기본적으로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헌터는 사람들을 지킬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그 의무를 저버린 적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