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 실행 】
“그러니까 조원선이 죽지 않았다는 건가요?”
“네. 들어 보니까 목숨은 건졌다고 하네요.”
고연대 근처에 위치한, 고연대학교 병원.
조원선은 이곳에서 현재 수술을 받고 있었다.
“팔다리 전부 절단해야 하고, 아, 거기다 폐도 다쳐서 다량의 생명 유지 장치를 붙여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남았네요.”
“그쵸. 익스트리머들이 폭발 후 거의 무조건 죽는 걸 생각하면, 조원선은 운이 좋았던 거죠.”
내 옆에 있던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와 하세리는 현재 고연대학교 병원 안, 정확히 말해 조원선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원선의 가족은 곧 온다고 했죠?”
“네. 연락했고, 곧 이쪽으로 온다고 했어요. 그보다…….”
하세리는 수술실 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그리고 조원선, 그 사람은 왜 익스트리머의 유전자를 갖고 있던 걸까요?”
“…대충 짚이는 게 하나 있기는 해요.”
“있어요? 진짜로요?”
“네, 있죠.”
짚이는 게 아니라 확실했다.
애초에 이런 짓을 저지를 사람은 하윤경 외에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좀 그래서, 내일 따로 말씀드릴게요. 혹시 내일 오전에 시간 있을까요?”
“내일 아침에 협회로 오세요. 제 사무실에서 이야기하면 되니까요. 근데 이번 시간에 대해 진짜 아시는 게 있다고요?”
“자세한 건 내일 말씀드릴게요. 일단 당장은 오늘 있던 일들부터 마무리하죠.”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하윤경, 그 아줌마를 찾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일에는 순서가 있었고, 급하게 일을 처리하려 했다가 오히려 망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하윤경이야. 회귀 전에, 진짜 혼자 힘으로 국가를 뒤집으려 했던 사람.’
준비를 확실히 하고 가는 편이 나았다.
하윤경을 한 번에 잡는 데 실패하면, 일이 얼마나 커질지 몰랐으니 말이다.
“오늘 일부터 마무리하자, 네. 맞는 말씀이네요. 그리고 이야기 나온 김에, 헌터 대전 있잖아요.”
“아, 맞다. 네, 그거 어떻게 됐죠. 뭐, 나중에 재경기라도 하나요?”
“아니요. 재경기는 안 한다고 들었어요. 지난번에 박유진 씨가 독에 당한 것도 그렇고, 이번에 조원선을 이용한 테러까지 일어날 뻔했잖아요?”
“네, 그랬죠.”
“그 두 사건에 대한 소문이 벌써 퍼져서, 재경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그냥 적당히 점수를 취합해서 끝내기로 했어요.”
“그렇군요.”
뭐, 이 정도는 대충 예상했다.
사실상 테러가 일어날 뻔했는데, 재경기를 하는 건 눈치가 없는 거니까.
근데 만약 이대로 헌터 대전을 마무리하는 거면…….
“하세리 헌터님. 이렇게 되면 우승은…….”
“아마 박유진 씨와 이민아 양의 것이 되겠죠. 첫 번째와 두 번째 경기에서 전부 1등 했으니까요.”
“마지막의 개인전은 점수에 포함 안 되는 건가요?”
“희나 언니에게 물어보니까 참고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래요. 하지만 뭐, 개인전에서 누가 봐도 박유진과 이민아 씨가 제일 잘했잖아요. 우승 확정이죠.”
“우승이라…….”
우승할 거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오늘의 사고 때문에 성취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원래 계획은 이민아가 이만큼이나 강하다, 라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이걸로 이민아의 자신감도 키우고, 이진성에게 내가 맞았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근데 이번 일로 이게 다 묻히는 건…….
“뭔가 아쉽다는 표정이네요.”
“네? 아, 뭐… 아무래도 우승했는데, 우승보다 사람들이 이번 사고에 관심을…….”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지금 박유진 씨 엄청 유명해진 거 알아요?”
“제가요?”
“전기로 철근을 뜯어낸 일렉트로 마스터는 박유진 씨가 최초 아닐까요?”
“아.”
잠시 잊고 있었다.
조원선이 일으킬 폭발을 막기 위해, 나는 스타디움에 있던 철들을 있는 대로 끌어모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 앞에서 내 힘을 선보였다.
내 힘, 그러니까 전류로 보일 수 있는 극한의 활용을 말이다.
‘원래는 이 능력을 조금씩 보일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오늘의 사태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이 능력을 한 번에 선보였다.
아마 이번 일로 내게 꽤 많은 관심을 쏟아질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런 식으로 전류를 활용한 건…….
‘지구에서 내가 최초였지.’
당분간 다양한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러고 보니, 철근들을 뜯어내면서 제가 스타디움을 박살 냈는데, 학교 측에서 그것 갖고 제게…….”
“그와 관련된 배상은 전부 협회에서 할 거니, 걱정 마세요.”
하세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박유진 씨는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던 사건을 막은 거예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죠.”
“그래서 협회에서 대신 배상을 해 주는 건가요?”
“그렇죠. 보통 몬스터로 인한 피해는 협회에서 다 배상해 주는 편이에요. 그리고 이번 일은… 익스트리머도 몬스터니까, 협회 쪽과 아예 관련이 없는 건 아니죠.”
게다가 원한다면, 이라고 하세리는 계속 말했다.
“협회에서 표창장을 준비해 줄 수 있어요. 이번의 사건의 영웅은 누가 봐도 박유진 씨였으니까요.”
“그런 건 필요 없어요. 돈을 주는 거면 모르겠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번 사건 뉴스에도 다 퍼졌겠죠?”
“네, 이미 다 보도되는 중이죠.”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난번에 박유진 씨가 독에 당한 건 그렇게 큰 관심을 못 받았는데, 이번 건 규모가 워낙 커서요. 박유진 씨 아니었으면, 아마 스타디움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폭발에 휘말렸을 거예요.”
“과한 관심은 사양이지만, 어쩔 수 없겠네요.”
각오한 일이었다.
내가 그때 안 나섰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다쳤을 거다.
당분간 귀찮겠지만,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예요. 능력 있는 헌터들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거든요.”
“솔직히 D급 헌터가 능력이 좋아 봤자…….”
“말이 D급이지, 제 눈에 박유진 씨는 이미 C, 아니, B급 헌터에 가까운 분이에요.”
피식 웃으며 말한 뒤, 하세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박유진 씨는 이제 슬슬 집에 들어가세요. 긴 하루였는데, 슬슬 쉬셔야죠.”
“이번 일과 관련해서 경찰이 찾아올 텐데, 그냥 이따가…….”
“경찰들에게는 제가 미리 말해 놨어요. 그러니 내일까지 경찰들이 와서 뭐 물어보지는 않을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뭘요. 집에 가서 쉬시고, 내일 아침에 저를 보러 온다고 했죠?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하세리 헌터님은요?”
“저는…….”
하세리는 붉은색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협회에 슬슬 복귀해야 하거든요. 물론 일 처리만 하고 조원선의 상태를 보러 다시 여기 와야겠지만요.”
“…알겠습니다.”
하세리는 아마 조원선을 두 번 다시 못 볼 터였지만, 나는 굳이 그걸 언급하지 않았다.
언급한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내일 협회를 찾아갈 테니, 그때 뵙도록 하죠.”
“네, 이번 일에 대해 아는 걸 그때 말씀해 주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이 말과 함께, 하세리는 내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출구로 향했다.
그리고 하세리가 가는 걸 확인한 후,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 복도의 끝쪽을 향해 걸어갔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아니, 괜찮아, 오빠.”
의자에 앉아 있던 유나는 별 상관없다는 듯 대꾸했고.
“오래 기다렸지. 하지만 괜찮아. 네가 나 놔두고 하세리 헌터님과 사이 좋게,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건 이미 익숙…….”
유나와 같이 있던 이민아는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에 나는 피식 웃으며, 이민아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아앗?! 아, 또 왜 때리는데?”
“네 행동이나 한번 돌아봐. 뭐, 됐고. 이민아, 유나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 줘. 그리고 내가 집에 가기 전까지 유나와 같이 있어 줘.”
“음? 갑자기 왜?”
“그런 게 있거든. 부탁할게. 그리고 잠깐 이리 와 봐.”
나는 이민아의 손을 붙잡고, 그녀와 함께 유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에서, 이민아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문 절대 열지 말고, 누가 강제로 열고 들어오면 네가 유나 지켜 줘. 알겠지?”
“…무슨 일 있어?”
내 진지한 말에 이민아 또한 진지하게 내게 되물었다.
이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조원선과 관련된 인간이 한 명 있어. 그리고 그 인간이… 아마 나를 노릴 수도 있거든.”
“야, 그렇다면…….”
“걱정 마. 나는 괜찮아. 하지만 나 때문에 유나가 위험해질 수 있어. 그러니까 유나를 너에게 부탁할게.”
“하지만…….”
“부탁할게, 이민아.”
“…알겠어.”
내 부탁에 이민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유나에게 가, 유나를 데리고 병원의 출구로 향했다.
이에 유나는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내가 진지하게 부탁하자, 유나 또한 내 말을 들어줬다.
그렇게 하세리와 더불어, 이민아와 유나까지 병원 밖으로 나갔다.
“…좋아. 충분히 멀어졌네.”
창가에서 이민아와 유나가 버스 타고 가는 걸 확인한 후.
나는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정확히 말해, 조원선의 수술이 한창 진행 중인 수술실 앞에 가 앉았다.
‘하세리가 갔으니까… 아마 곧 오겠지.’
그 아줌마는 자기 조카에게만큼은 본모습을 안 드러내려 했다.
하지만 지금 하세리는 이곳에 없었다.
게다가 조원선, 그러니까 하윤경이 택한 실험 대상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리고 하윤경은… 살아남은 실험체를 그냥 놔두는 성격이 절대 아니었다.
“후우우.”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숨을 내쉬며, 실키의 가면을 꺼내 얼굴을 씌었다.
그 후, 나는 말없이 기다렸다.
복도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걸 구경하며, 계속 기다렸다.
그렇게 약 15분이 지난 후.
“…왔네.”
근처에 있던 CCTV.
겉으로 봤을 때 큰 이상은 없었으나, 내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저 CCTV가 현재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거기다 이 근처의 사람들.
겉으로는 전부 평범하게 갈 길을 가고,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들의 눈의 초점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이 가스를 유용하게 쓰시는구먼.’
공기 중에 보이는 초록색 연기.
매우 옅어서 잘 안 보였지만, 나는 자주 봤기에 눈에 잘 들어왔다.
만약 실키의 가면의 정화 기능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쯤 이 가스를 들이켰을 거다.
“으흠, 박유진 씨? 박유진 씨는 제 가스에 안 당하셨나 보네요?”
“제가 쓰고 있는 이 가면에 방독 기능이 있거든요.”
“그걸 미리 쓰고 있었다는 건, 제가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인가요?”
“알고 있었죠.”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내 앞에 붉은 머리의 여성이 나타나 있었다.
눈빛에 광기가 가득한 여성이 말이다.
“하윤경 씨라면 반드시 조원선을 회수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내가 쓰는 이 가스에 대해서도 알고, 내 성격에 대해서도 안다? 음, 궁금해지네. 괜찮다면 이 아줌마와 이야기 좀 나눌까?”
“잘됐네요. 저도 하윤경 씨와 이야기 좀 나누고 싶었거든요.”
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