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26화 (126/240)

126화

“말은 정확히 해야죠, 박유진 씨?”

하윤경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랑 대화하고 싶은 게 아니라, 제게 묻고 싶은 게 많은 것 아닌가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 추측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네요.”

“…제가 평소에는 남에게 이렇게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 아니에요.”

하윤경이 잠시 속으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히 박유진 씨의 장단에 어울려 드리죠.”

“그러시는 이유가 있나요? 하윤경 씨는 남에게 쉽게 호의를 안 베풀 사람으로 보였는데 말이에요.”

“말에 뼈가 있네요. 뭐, 굳이 알려 드리자면 박유진 씨 덕분에 오늘 재밌는 구경을 했거든요.”

“재밌는 구경이라면…….”

“오늘 저의 계획을 막는 거 잘 봤어요. 익스트리머의 폭발에 그렇게 대응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

“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이에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게다가 하세리 헌터님이 아니었으면, 아마 못 막았겠죠.”

“흐음, 저는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제 조카가 아니었어도.”

하윤경은 내 허리의 자바니아를 슬쩍 바라봤다.

“박유진 씨는 어떻게든 폭발을 막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까 보니까, 저 단검으로 뭘 하려던 거 아니었나요?”

“…최후의 발악을 해 보려고 했죠. 그건 그렇고, 조원선에게 저 짓을 한 건, 역시 하윤경 씨였군요.”

“알고 있던 것 아니었나요?”

“확인한 것뿐이에요. 그리고 조원선에게 저주탄을 쐈던 그 사람은…….”

“네, 제가 시킨 거죠.”

하윤경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광기가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미소였다.

“박유진 씨는 조원선을 진정시키려고 했고, 심지어 진정시키는 데 성공할 뻔했죠. 저는 그런…….”

“재미없고 시시한 엔딩은 싫다. 맞죠?”

“…저를 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 어떻게 제가 하려던 말을 정확히 예상한 거죠?”

“다 알 방법이 있죠.”

회귀 전, 하윤경은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몇 안 되던 적이었다.

덕분에 하윤경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굳이 알고 싶지 않던 정보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됐고, 하나만 더 묻죠. 이지현이 사라진 것도 하윤경 씨 짓이죠?”

“내 질문에는 답 안 하고, 본인 질문만 하겠다는 건가요? 재밌네요. 그보다, 왜 저라고 생각한 거죠? 이지현이 자기 스스로 도망쳤을 수도…….”

“이지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정도로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인물은, 제가 아는 한 하윤경 씨밖에 없죠.”

나는 이 말과 함께 근처의 CCTV를 가리켰다.

“저 CCTV가 맛 간 것도 하윤경 씨 때문이죠?”

“제 부하 중에 이런 쪽으로 전문인 아이가 있어서요. 덕분에 CCTV에 걸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죠.”

“그렇겠죠. 그리고 이 가스는 환각제죠. 이걸 들이켜면 사람들은 하윤경 씨를 인식 못 하고…….”

“거기다 주변의 무언가가 사라져도 인식 못 하죠. 사라졌다는 걸 아예 보지를 못하는 거죠.”

예를 들어, 라고 말하며 하윤경은 수술실 쪽을 바라봤다.

“조원선이 사라져도 저 안의 의사들은 눈치 못 챌 거예요. 조원선이 사라져도 그들의 눈에는 조원선이 그 자리에 여전히 있다는 걸로 보일 테니까요.”

“거기다 이 가스는 감각 쪽에도 영향을 미치죠. 손을 허공에 휘저어도, 저 안의 의사들은 조원선이 그 자리에 있다고 착각을 하죠.”

“제 뒷조사라도 했나요? 왜 이렇게 잘 아는 거죠?”

“그딴 거 안 했어요. 애초에 했다고 해도 의미가 없었겠죠.”

“하긴. 저에 대한 뒷조사 따위로 이렇게 자세히 알아내진 못할 테니까요.”

이렇게 말하며, 하윤경은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근데 박유진 씨를 본 적이 몇 번 없고,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사실상 처음인데, 왜 오랜 친구처럼 대화하는 걸까요?”

“말했듯이, 다 알 방법이 있어요. 됐고, 역시 조원선을 데려갈 건가요?”

“데려가야죠. 죽었으면 모르겠는데, 살아 있잖아요. 살아 있으면 데려가서 실험에 써먹어 줘야죠.”

“실험에 쓴다는 걸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박유진 씨는 인체 실험을 부정적으로 보시는 거 같은데, 이건 다 인류의 발전을 위한 거예요.”

하윤경은 전혀 죄책감 없다는 느낌으로 말했다.

“지난 20년간, 저는 수많은 지식을 쌓았어요. 그리고 장담하는데, 제가 쌓은 이 지식들은 인류를 바꿀 거예요. 인류를 보다 한 단계 더 진화시킬 거라고요.”

“무고한 사람들의 피로 만들어진 진화가 좋은 건지 모르겠네요.”

“인류의 발전에는 희생이 필수죠.”

“타의에 의한 희생 따위는…….”

“마치 누군가를 한 번도 죽인 적 없다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이 말과 함께 하윤경은 내 눈을 바라봤다.

“박유진 씨, 저는 사람의 눈만 봐도 그 사람이 살인자인지 아닌지 알아요. 그리고 제 눈에 보이는 박유진 씨는…….”

“…….”

“상당한 살인 전적을 가지고 있어요. 한두 명 따위가 아닌, 저와 비슷한 수준으로 사람을 죽인 거 같은데, 제 말이 맞나요?”

“사람을 많이 죽이기는 했죠.”

회귀 전, 나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을 죽였다.

그랬지만…….

“하지만 저는 그걸 후회하지 않아요. 전부 죽어 마땅했던 인간들이었으니까요. 하윤경 씨처럼 무고한 사람을 건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크큭, 크크큭.”

작게 웃는 하윤경.

“크하하하하! 크크큭!”

그러다가 그녀는 이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마치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웃었다.

게다가 그 웃음소리에서 역시 하윤경 특유의 광기가 느껴졌다.

“크큭, 역시 박유진 씨는 재밌네요. 그보다 그거 알아요? 살인자는 살인자. 똑같은 살인자들끼리 급을 따져 봤자 뭐하나요? 저나 박유진 씨나 다를 거 없어요.”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뭐죠?”

“후후. 저 박유진 씨가 마음에 들었어요. 아니, 원래 마음에 들었는데, 더 마음에 드네요. 그러니까 박유진 씨, 앞으로 저와 함께하는 거 어떨까요?”

“함께하자고요?”

나는 놀란 듯이 되물었지만, 사실 전혀 놀라지 않았다.

회귀 전에도 이 제안을 들었으니 말이다.

“실험을 위해 사람들을 납치해 오고, 절 방해하는 인간들을 죽일 전문 암살자가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박유진 씨는 그에 너무 적합한 거 같네요.”

“저보고 하윤경 씨의 부하 노릇이나 하라는 건가요?”

“나쁘지 않을 수 있어요. 아니, 오히려 좋을걸요. 왜냐하면 저의 편이 되면, 원하는 걸 말 그대로 전부 얻을 수 있거든요.”

하윤경은 살며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돈, 명예, 사랑. 원하는 걸 전부 말해 봐요. 제 힘이라면 뭐든 가능하니까요.”

“그쵸. 하윤경 씨라면 가능하겠죠.”

하윤경의 방금 그 제안은 허풍 따위가 아니었다.

하윤경이 지닌 영향력을 생각하면,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건 불가능도 아니었다.

‘하윤경은 죽이기에 가지고 있는 기술력이 너무 아까워.’

광기에 가득 찬 사이코패스였지만,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확인하고자 했다.

‘이거 하나만 확실하게 물어보자.’

내가 이 자리에서 하윤경을 기다린 건, 이 질문 하나를 묻기 위해서였다.

이 질문의 대답에 따라, 내가 하윤경을 어떻게 할지가 정해지는 것이었다.

“하윤경 씨,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

“무엇이죠?”

“하윤경 씨는 신이 되고 싶나요?”

“신… 말인가요?”

내 질문에 하윤경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보니까 제 목표가 신이 되는 것과 비슷하네요.”

“인류를 보다 진화시키고… 나아가 신이 정해 놓은 이 세상의 법칙을 깨뜨리는 것. 인류 따위가 신을 넘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네요. 결과적으로 제가 그 신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에요.”

“그렇군요.”

하윤경의 이 대답으로 정해졌다.

‘죽이자.’

회귀 전에도, 하윤경은 인간을 뛰어넘어 신이 되고자 했었다.

그 목표에 광적으로 집착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이때나 그때나 똑같았네.’

하윤경이 신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기 전이었다면, 나는 하윤경을 죽이지 않았을 거다.

어떻게든 그녀의 그 사상을 뜯어고쳤을 터였다.

말했듯, 하윤경은 죽이기에 너무 아까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그 신념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죽이는 편이 낫겠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럼 저는 하윤경 씨를 따르지 않겠습니다.”

“흐음, 원하시는 걸 전부 얻을 수 있어도요?”

“저는 제 신념에 반하는 짓은 안 하거든요.”

“박유진 씨, 다시 생각해 보시죠.”

하세리는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부, 명예, 사랑. 원한다면 전부 얻을 수 있어요. 이걸 걷어차고 신념 따위에…….”

“네, 그 신념 따위에 그걸 전부 버릴 수 있어요.”

나는 하윤경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저는 헌터예요. 그리고 헌터는 사람들을 지킬 의무를 가지고 있어요. 저는 그 의무를 저버릴 생각 없어요.”

회귀 전, 유나를 잃었을 당시.

나는 속으로 결심했다.

유나를 죽인 개새끼를 죽이자고.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말이다.

나의 그 결심은 지금까지 유효했다.

“그렇군요. 그렇게 완고하다면 제가 할 말이 없죠. 근데 박유진 씨. 지금 풍기는 분위기가… 저를 죽이고 싶어 하는 분위기시네요?”

“마음 같아서는 죽이고 싶죠. 하지만…….”

나는 자바니아를 꺼내 들어 하윤경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막혔다.

무언가 안 보이는 칼날에 의해 막힌 것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었다.

“거기 있는 거 아니까, 모습 드러내시죠.”

“알고 있던 건가?”

내 말에 하윤경의 옆에 중년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단검으로 내 자바니아를 막고 있었다.

“내 투명화가 걸릴 리가 없을 텐데?”

“암살자의 감으로 생각하세요.”

나는 자바니아를 거두며 말했다.

하윤경의 옆을 지키는 남자.

투명화가 능력인 남자로, 하윤경 곁을 항상 지켰다.

그리고 아마 저 남자만 이 근처에 있지 않을 것이었다.

“저분만 계시는 건 아니겠죠? 아마 조원선을 몰래 데려가기 위해, 이런저런 부하들을 데리고 왔을 거 같으신데.”

“잘 아시네요.”

하윤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건물 밖에 대기 중인 애들이 있죠. 제가 신호만 보내면 바로 들어올걸요.”

“알고 있어요. 그것도 매우 잘 알고 있죠.”

하윤경의 부하들.

회귀 전에 몇 번 상대해 봤다.

물론 지금 상대하라면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일이 매우 귀찮아질 터였다.

‘어쩔 수 없나.’

마음 같아서는 조원선을 못 데려가게 하고 싶었다.

조원선, 이 인간은 승부욕이 과해 경기를 열정적으로 했을 뿐.

그 외에 나에게 딱히 끼친 피해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냥 운이 안 좋은 피해자였다.

‘하지만 하윤경이 데려가는 걸… 당장은 안 막는 편이 좋겠지.’

막을 시도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말했듯, 그러면 일이 매우 귀찮아질 것이었다.

“그럼 박유진 씨. 조원선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저와 제 부하들을 상대로 싸울 건가요?”

“…저는 지는 싸움은 안 하거든요.”

나는 자바니아를 다시금 단검집 안에 넣었다.

“데려가세요. 막지 않을 테니까요.”

“…의외네요. 당연히 막을 줄 알았는데.”

“방금 말했잖아요. 질 것 같은 싸움은 안 한다고.”

그림을 크게 봐야 했다.

다음에 제대로 준비한 뒤, 나는 조원선을 구하러 갈 생각이었다.

무고한 사람을 지키는 거야말로, 내 의무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애초에 하윤경과 싸우기 위해 여기서 기다린 게 아니니까.’

내가 여기서 하윤경을 기다린 건 그녀에게 묻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신이 되고 싶냐는 그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질문을 했으니, 일단 내 목적은 달성한 것이었다.

“…싸울 생각이 없는 거면 저도 굳이 싸울 필요가 없죠.”

내 말이 진실임을 파악했는지, 하윤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후, 그녀는 옆의 중년 쪽을 바라봤다.

“애들 들이고, 조원선을 데려가세요. 이번에도 최대한 들키지 말고요.”

“예, 알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중년은 빠르게, 그리고 조용히 수술실 안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와 하윤경, 단둘이 남게 되었다.

“아, 그리고 제 제안은 아직 유효해요, 박유진 씨. 제 편이 될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박유진 씨 같은 살인자는, 제가 언제든 받아 줄 수 있으니까요.”

“제 신념이 꺾이면 생각해 보죠.”

“신념, 재밌네요. 크큭……. 아, 맞다. 마지막으로.”

하윤경은 갑자기 미소를 지우며, 나를 차갑게 바라봤다.

“제 편이 안 되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저를 방해하는 건 상관이 있죠. 그러니까 명심하세요. 제 길을 막으면, 그때는 아무리 박유진 씨라도 봐주지 않을 테니까요.”

“뭐, 명심하도록 하죠.”

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방금 하윤경이 한 저 말은 거짓말일 거다.

내가 아는 하윤경이라면,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먼저 나를 공격할 것이다.

내가 하윤경의 눈에 든 시점에서 이미 확정된 미래였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내가 먼저 쳐야지.’

원래는 좀 시간을 들이려고 했는데, 이제 그럴 여유가 없었다.

당장 이번 주말에 하윤경의 실험실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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