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 * *
하윤경은 조원선을 데리고 병원을 나갔다.
그 외의 짓은 벌이지 않았다.
나를 공격하거나, 병원의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조원선만 데리고 병원을 떠났다.
그리고 조원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의료진들이 약 두 시간 뒤에 알아차렸다.
‘납치 하나만큼은 일품이라니까.’
조원선의 실종에 난리 난 의료진들을 바라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후, 나는 집으로 향했다.
병원에 남아 봤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조원선은 이번 주말 내로 구해 내야지.’
하윤경은 결국 제거해야 될 위험인물이었다.
원래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무너뜨릴 생각이었지만, 계획이 많이 바뀌었다.
그 결과, 나는 하윤경을 이번 기회에 잡을 생각이었다.
‘일단 집에 돌아가자.’
오늘은 금요일.
본격적인 건 내일부터 시작해, 일요일 저녁에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만약 내게 지킬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 당장 움직일까 고민했겠지만.
‘유나부터 확인하자.’
지금의 나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하윤경, 그 인간 말종은 남의 가족을 매우 쉽게 건드는 편이었다.
그걸 잘 알았기에, 나는 바로 집으로 향했다.
일단 유나 옆에 이민아를 붙여 놓기는 했지만, 혹시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내 걱정이 무색하게, 집에 도착하자 유나와 이민아가 나를 맞이했다.
“우리 집 찾아오는 인간은 없었냐?”
“아무도 없었는데? 그래서 나랑 유나는 너 올 때까지 밥이나 먹고 있었어.”
“흐음, 그러냐?”
나는 거실에 앉아, 내 옆으로 다가온 이민아와 유나를 바라봤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일 거 같았다.
“이민아. 내일 아침 9시까지 헌터 협회로 와 줄 수 있어?”
“협회에? 왜?”
“네가 계속 유나를 좀 봐줬으면 하거든.”
이렇게 대꾸한 후, 나는 유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넌 지금 방학이라 학교 안 가도 문제없지?”
“어, 그렇기는 한데, 왜?”
“당분간은 나, 아니면 이민아와 붙어 다니도록 해. 적어도 이번 주말이 끝나기 전까지는 혼자 다니지 마.”
“…오빠, 무슨 일 있는 거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떤 위험한 인간이 나를 노릴 수도 있거든. 나야 괜찮은데, 문제는 너지. 네가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이러는 거야.”
내 말에 유나와 이민아, 두 사람 모두 놀란 눈치였다.
“그 위험한 사람이 누군데? 박유진, 대체 누구길래…….”
“하윤경이라는 사람 기억해?”
“하윤경이라면… 하세리 헌터님의…….”
“응, 그분의 고모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그 사람이 주말 동안 나 아니면 유나를 노릴 수도 있어. 그러니까 이민아, 네가 유나를 지켜 줬으면 좋겠어.”
“야, 차라리 지킬 시간에 우리가 먼저 그 여자를 공격하면…….”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거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일이라면 모르겠는데, 이번 일만큼은 네가 안 끼어드는 편이 좋을 거야.”
“그렇지만…….”
“게다가 유나를 맡길 사람은 너밖에 없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안심하고 유나를 맡길 사람은 이민아가 현재 유일했다.
“그러니까 이민아, 부탁할게. 유나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줘. 알겠지?”
“…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거면 약속해야지.”
이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나랑 이런저런 일들을 다 겪은 이민아는 이런 상황이 이제 익숙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나는 아니었다.
“오빠? 지금 이게 뭔데? 누가 오빠를 죽이려는 거야? 그런 거면 그냥 차라리 경찰에…….”
“경찰로는 그 아줌마 못 막아. 그 아줌마는… 어떻게 보면 법 위의 존재거든.”
정확히 말하자면, 하윤경에게 있어 법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법에 걸리는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법이니 공권력이니, 그녀는 그걸 전부 피해 갔다.
“아무튼, 내일 아침에 헌터 협회에 갈 거니까, 유나. 너는 내일 일찍 일어나고, 이민아. 너도 가능하면 와 주고. 아, 그리고. 오늘 있었던 헌터 대전 있잖아.”
“그건 왜? 오늘 조원선이 일으킨 사고 때문에 그거 무효…….”
“아마 재경기는 없을 거고, 우리를 우승 처리할 거 같다고 한다.”
“…우승이라고? 우리가?”
“응, 그러니까 우승 확정되면 우리 다음 주에 간단하게 파티나…….”
“으음, 우승이라…….”
이민아는 이 사실에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복잡하다는 표정이었다.
그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았다.
“우승했는데, 우승한 것 같지가 않지?”
“으, 응. 솔직히 개인전에서 깔끔하게 우리가 이기고, 스타디움에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나도 아쉽기는 하다.”
개인적으로 이민아를 우승의 자리에 세워 관객들에게, 특히 이진성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하윤경, 그 망할 아줌마 때문에 이런 계획은 무산이 되었다.
뭐,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왜나하면…….
“그런 의미에서, 다음 헌터 대전도 같이 나갈까?”
“다음 헌터 대전?”
“이거 매 방학마다 한다면서. 그럼 겨울방학 때도 하는 거 아니야?”
“그, 그렇기는 한데…….”
“게다가 한 번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잖아. 그럼 다음에도…….”
“다음에도, 우리 둘이서만 팀을 짜서…….”
“왜? 싫냐?”
“아니! 좋아! 하자! 꼭 하자! 너랑 둘이서만 하는 거면 뭐든 할 테니까!”
이민아는 기분 좋다는 표정으로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에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갈색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래, 네가 좋다면 나도 좋다.”
“응! 좋아! 어, 그, 그리고 내 머리 쓰다듬지 말라니까, 새꺄! 나 개 아니라고 몇 번을…….”
“좋으면서.”
“아니, 그, 으으으, 시, 싫은 건 아니지만…….”
나는 피식 웃었고, 이민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고 놀던 중, 옆에서 유나의 한숨이 들려왔다.
“X발, 나는 연애 언제 해 보냐.”
“음? 유나야,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오빠. 어쨌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응, 협회에 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마음 같아서는 편히 놀고 싶었다.
헌터 대전을 좋은 결과로 끝냈으니, 원래 같았으면 이민아와 즐겁게 놀았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세상은 내가 편히 지내는 꼴을 못 보는 듯했다.
“알겠어. 근데 오빠, 협회에는 갑자기 왜 가는 거야? 일단 무슨 위험한 사람이 우리를 노리는 건 알겠는데, 협회는 왜…….”
“만나야 할 사람이 있거든.”
* * *
“…박유진 씨? 방금 말씀을 다시 해 주실 수 있나요?”
“네. 다시 해 드리자면, 어제 일의 원흉은 하윤경 씨, 그러니까 하세리 헌터님의 고모분입니다.”
“…네?”
다음 날 아침.
나는 하세리를 만나기 위해 헌터 협회 본사로 향했다.
그리고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하세리를 만나러 갔다.
하세리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고, 우리는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제, 조원선의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말이다.
이때 하세리는 어제 일의 원흉에 대해 물었고, 나는 이에 대답했다.
“하윤경 씨가 조원선에게 익스트리머의 유전자를 부여한 거죠.”
“…박유진 씨. 그러니까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시죠?”
하세리는 나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꽤 떨리고 있었다.
“저희 고모가 그런 짓을 했다고요? 그러니까 조원선 씨를 그렇게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조원선이 병원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은 들으셨죠?”
“…네. 지금 경찰 측에서 실종에 대해 조사한다고 들었는데…….”
“아마 조원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죠. CCTV에 영상도 안 남았고, 목격자도 없이.”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죠? 경찰들이 박유진 씨께 따로 연락을 했을 것 같지 않은데요.”
“네, 연락 같은 건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어요.”
하윤경을 혼자 잡으러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하세리에게 진실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이 누나와 트러블이 좀 많았지만, 그래도 오랜 친구지.’
그간의 정을 생각하면, 비효율적이라도 이게 맞았다.
적어도 나는 친구에게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윤경이 조원선을 데려가는 걸 제가 직접 봤거든요.”
“직접 봤다고요? 그게 무슨…….”
나의 계속된 말에 하세리는 더욱 당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말을 계속했다.
“얼마 전에 이지현이 실종된 거 기억하시죠?”
“이지현의 이야기는 갑자기 왜 하시는 거죠?”
“이지현도 흔적 없이 사라졌죠. 어젯밤에 사라진 조원선처럼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씀이, 이지현과 조원선이 같은 인물에 의해 납치됐다는 건가요?”
“그렇죠.”
“그리고 그걸 저지른 게 제 고모고요?”
“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하세리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확신 못 하는 표정이었다.
“박유진 씨, 저희 고모는 그러실 분이 아니에요. 저를 어렸을 때부터 키우신 분인데…….”
“어제 경기 도중, 하세리 헌터님은 조원선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셨죠?”
“네, 그랬는데…….”
“그리고 나서려고 했는데, 하윤경 씨가 막았다면서요.”
“저를 막지는 않… 그게 그러니까,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을…….”
“그게 막은 거죠.”
나는 하세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세리 헌터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윤경 씨에 대한 이상한 점을 못 느꼈나요?”
“저는…….”
하세리는 말끝을 흐렸다.
마치 본인도 헷갈린다는 듯이 말이다.
“하세리 헌터님은 어렸을 때부터 하윤경 씨 아래서 자랐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매우 풍족하게 자라시지 않았나요?”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는데, 그 이야기를 지금 왜 꺼내시는 거죠?”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하윤경 씨는 작은 제약 회사 하나를 운영하고 있어요. 근데 그 회사에서 그만큼의 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박유진 씨. 아무리 박유진 씨라도 제 가족을 그런 식으로…….”
“하세리 헌터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 않나요?”
“으음…….”
하세리는 내 말에 대답을 못 했다.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아마 그녀의 감정은 내 말을 부정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윤경은 그래도 그녀의 가족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성은 내 말에 흔들리고 있겠지.’
하세리는 살면서 하윤경의 수상한 모습들을 몇 번 보기는 했을 거다.
다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수상한 점들을 애써 무시했던 것.
하지만 지금, 내가 그 사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하세리의 부모님에 대한 건……. 지금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지금 말했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지 몰랐다.
그녀의 부모님이 하윤경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확실한 증거와 함께 말하는 편이 나았다.
뭐, 아무튼.
지금 하세리가 내 말에 흔들리고 있으니, 쐐기를 박아야 했다.
“하세리 헌터님, 그럼 저를 따라와 주실 수 있을까요?”
“따라오라니요?”
“하윤경 씨에 대한 진실을 보여 드리도록 할게요. 물론 알기 싫으시면 안 따라오셔도 상관없고요.”
“…….”
하세리는 내 말에 잠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하세리를 잘 알았다.
그녀라면 분명 나를 따라올 터였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안 믿었겠지만, 박유진 씨니까 딱 한 번. 딱 한 번 속는 셈 치고 어울려 드릴게요.”
내 예상이 적중했다.
‘좋아. 그럼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워 넣었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그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나와 하윤경.
둘 중 한 명이 몰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