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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28화 (128/240)

128화

* * *

하세리와 함께 출발하기 전.

“이민아. 너네 길드, 그러니까 용혈에 숙소 같은 거 있지?”

“숙소? 있지. 식당도 있고 샤워실도 다 있는데, 왜?”

“유나 데리고 용혈 본사로 가. 그리고 내일 저녁까지 유나와 같이 있어 줘. 절대 유나를 혼자 두지 마, 알겠지?”

“…알겠어.”

이민아는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이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리고 유나야. 너는 이민아와 떨어지지 마. 불편하겠지만, 내일 저녁까지 어디 가지 말고 얌전히 있도록 해.”

“이번 일 끝나면 뭔 일인지 꼭 다 말해 주는 거다?”

“그럴 거니까 안전하게만 있어라.”

나는 내 여동생에게 말한 뒤, 다시금 이민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유나, 너네 길드에서 자고 가도 되는 거 맞지? 너네 아버지가 싫어할 가능성은 없냐?”

“아마 관심 없으실 거야. 나랑 붙어만 다니면, 크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겠지.”

“알겠다. 그럼 부탁할게.”

이민아와 유나에게 간단히 인사한 후.

두 사람은 협회 건물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하세리가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출발할 준비는 되셨나요?”

“네, 저는 언제 가도 상관없죠. 근데…….”

하세리는 무언가 마음에 걸린다는 표정이었다.

“제 고모의 회사 건물에 몰래 들어가자는 거, 맞죠?”

“네, 그렇죠.”

몇 분 전, 나는 하세리에게 내 계획을 말했다.

그 계획은 다름이 아닌, 바로 하윤경이 운영한다는 제약 회사에 몰래 침입하는 것이었다.

“박유진 씨. 아무리 생각해도 고모의 건물에 몰래 들어가는 건…….”

“범죄죠. 그리고 하세리 헌터님이 절대 좋아할 짓이 아니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옳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하세리 헌터님. 저를 딱 한 번만 믿고 따라와 주세요.”

“…왜 저를 데려가려고 하는 건지 물어도 될까요?”

“이유를 묻는다면 별것 아니에요. 하세리 헌터님에게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서거든요.”

“진실이요? 무슨 진실을 말씀하시는 거죠?”

“말로 설명하기보다 직접 보는 편이 나을 거예요.”

나는 차분히 하세리에게 말했다.

“저를 따라오세요. 그럼 하세리 헌터님이 알아야만 하는 진실을 보여 드리도록 할게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안 따라갔을 거예요.”

잠시 고민을 하던 하세리는 이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박유진 씨니까 한 번 믿어 볼게요. 박유진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요.”

“제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요?”

“맞잖아요? 어제 조원선이 폭발하려고 하자, 박유진 씨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폭발을 막으려 했어요.”

“헌터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헌터로서의 그 의무를 지킨 것 자체가 박유진 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예요. 그 의무를 저버리는 헌터들도 꽤 있거든요.”

하세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박유진 씨를 한 번 믿어 볼게요. 하지만 혹시라도 박유진 씨가 나쁜 의도로 무슨 일을 벌이는 거면, 나중을 각오하셔야 될 거예요.”

“걱정 마세요. 그럴 의도 전혀 없으니까.”

물론 진실 자체는 하세리에게 가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실을 알리는 내 행위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야기가 다 된 거 같으니 따라오세요. 바로 가도록 하죠.”

이렇게 말하며, 나는 내 소지품들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자바니아. 실키의 가면. 코트는 상태가 멀쩡하고, 엔드리온의 조각도 있고…….’

항상 들고 다니는 물건들부터 시작해, 하윤경을 잡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조금씩 준비한 장비들까지.

일단 챙길 만한 물건들은 전부 챙겨 왔다.

‘준비 자체는 충분해. 그렇다면 남은 건, 계획대로 일이 풀리냐는 거지.’

어젯밤부터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리고 회귀 전, 나는 실제로 하윤경을 잡은 적이 있었다.

이러한 내 경험을 바탕으로 일을 진행하면, 하윤경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변수가 하나 있었다.

‘바로 하세리지.’

나는 내 옆의 붉은 머리 여자를 슬쩍 바라봤다.

이번 계획에 있어, 하세리는 상당한 변수였다.

솔직히 말해, 혼자 가서 싸우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하세리는 진실을 알 권리가 있고, 나는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야 되겠지.’

회귀 전, 나는 하세리에게 여러 번 빚을 졌었다.

그리고 동시에, 하세리는 내 얼마 안 되는 친구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는 내 친구에게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생각이었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서 강력한 화력이 또 필요할 수도 있어. 그걸 고려하면, 하세리를 데려가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겠네.’

하세리의 동행이 어떤 변수를 가져올지 나는 몰랐다.

하지만 데려가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

“이쪽이에요. 어서 오시죠.”

“…박유진 씨, 이쪽 길 맞는 건가요?”

“네, 이쪽 길 맞습니다.”

“아니, 길은 맞는데, 왜 굳이 크게 돌아서…….”

“몰래 건물에 침입하는 거니까요. 몰래 가는 건데, 정문으로 대놓고 들어가면 안 되죠.”

나는 주위를 계속 둘러보며 대꾸했다.

회귀하기 전, 나는 하윤경의 본거지를 공격한 적 있었다.

그 경험 덕에, 그곳까지 어떻게 몰래 가는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몰래 가는 것도 쉽지 않겠지.’

하윤경의 지하 실험장 입구.

그 입구에서부터 반경 약 500m까지.

그 반경 내에 하윤경이 온갖 감시 장비들을 다 설치했었다.

‘일단 그 장비들의 사각지대를 전부 기억하고 있기는 하다만…….’

그 기억력 덕에 하세리를 데리고 목적지까지 조용히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주위를 경계했다.

이 근처에 하윤경의 부하가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지금까지는 안 보이네. 물론 그 투명 능력 지닌 아저씨는 있어도 내가 못 찾겠지만 말이야.’

몸을 완벽히 숨길 수 있는 남자.

그는 아무리 나라도 쉽게 못 찾았다.

그러나 당장은 그 아저씨에 대한 건 배제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하윤경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이다.

‘24시간 내내 하윤경 곁을 지키는 남자니, 이 근처에 있을 리 없겠지.’

물론 하유경을 잡으려면 그 남자를 결국 쓰러뜨려야 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 남자에 대한 대책을 준비했으니 말이다.

‘뭐, 됐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집중해야지.’

나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런 후, 하윤경을 데리고 근처의 기둥 뒤에 숨었다.

“박유진 씨? 무슨 일 있나요?”

“여기서부터는 감시 장비들의 사각지대가 없거든요.”

저 앞쪽에 작은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에 ‘유활제약’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하윤경이 위장용으로 만든 제약 회사였다.

“감시 장비요? 그런 건 안 보이는데요?”

“초소형들이라 안 보일 거예요. 하지만 제 눈에는 다 보여요. 저 가로등 위에 하나, 신호등에 둘, 저 나무 위에 하나, 저 건물에 다섯 개요.”

“…네?”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나는 건물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저희는 정면으로 안 가고, 건물 뒤쪽으로 갈 거예요. 거기에 뒷문이 있으니, 거기로 들어가죠.”

“네, 알겠어요. 알겠는데…….”

하세리는 내 말에 다시금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박유진 씨, 저 건물 안에 제가 자주 갔었는데, 저 안에 이상한 건 없었어요. 연구실 몇 개와 사무실 몇 개가 전부…….”

“저 건물의 지하실에는 가 보셨나요?”

“지하실이요?”

하세리는 뭔 소리 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 건물에는 지하실이 없어요. 제가 저기에 몇 번 가 봤는데, 지하실 같은 건 본 적이 없어요.”

“당연히 못 봤을 거예요. 하윤경 씨가 하세리 헌터님께 그걸 보였을 리가 없으니까요.”

“아니, 제 말은 저 건물에 지하실로 이어지는 길 같은 게 없었어요. 계단도 1층에서 끝나고, 엘리베이터도 지하로 가는 게 없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안 보인 거죠. 그 지하실은 하윤경의 비밀이 담긴 장소니, 당연히 길을 숨겼겠죠.”

“숨긴 거라고요?”

“따라오세요. 직접 보여 드리는 편이 더 나을 테니까요.”

나는 하세리를 데리고, 건물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몸을 숨긴 채, 건물 뒤쪽을 바라봤다.

‘건물 후문으로부터 약 150m. 그 사이에 있는 감시 장비는 총 다섯 개. 위치는 은행 나무 위, 신호등 위, 저 편의점 옆의…….’

회귀 전의 기억들을 되짚으며, 나는 감시 장비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파지직―

그런 후, 나는 손에 전류를 불러내, 그걸 그대로 감시 장비들을 향해 날렸다.

“자, 갑시다. 지금 감시 장비들을 멈춰 놓았어요.”

“네? 아아, 네.”

“30초 지나면 다시 작동할 거예요. 빨리 따라오시죠.”

이 말을 끝으로, 나는 건물의 후문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순식간에 문 앞에 도착하고, 나는 문을 빠르게 살폈다.

문은 어떠한 장치에 의해 굳게 잠겨 있었다.

하지만 이런 건 이미 예상했었다.

파지직―

회귀 전에도 이 문으로 들어갔었다.

그래서 이 문을 어떻게 열지 알고 있었다.

내 전류를 이용해 문을 연 후, 나는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를 따라오던 하세리도 같이 들어왔다.

“…근처에 아무도 없네요.”

문을 다시금 잠근 후 바로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어, 나는 숨을 돌리며 하세리 쪽을 바라봤다.

“잘 따라오셨네요. 괜찮…….”

“허억, 허억, 으으, 허억.”

“…지 않은 거 같은데, 혹시…….”

“괜찮, 후우,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전혀 그렇게 안 보였다.

거친 숨을 내쉬고, 깔끔했던 머리가 산발이 된 건 여러모로…….

“오랜만에 달려서 그런 거예요.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아, 그런가요? 근데 하세리 헌터님은 A급 헌터라 당연히 체력이 좋을 줄…….”

“저는 박유진 씨처럼 육체파가 아니라고요! 게다가 힐을 신고 뛰는 게 쉬운 줄 알아요?”

“아, 알겠어요. 들키겠어요. 목소리 좀 낮춰요.”

억울하다는 듯이 외치는 하세리.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뭔가 회귀 전의 하세리.

그러니까 회귀 전, 서로 볼꼴 못 볼 꼴 다 본 뒤의 우리 사이 같았다.

‘평소에는 여유로운 척 다 하고 다니지만, 은근히 허당기가 있는 누나였지.’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모습에 옛날 생각들이 났지만, 나는 빨리 그 생각을 떨쳐 냈다.

지금은 향수에 젖을 타이밍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숨 다 돌렸으면, 다시 출발하죠. 근처에 CCTV들이 있지만…….”

파직―

나는 앞의 복도를 향해 전류를 날렸다.

그러자 천장에 붙어 있던 카메라들이 작동을 멈추었다.

“방금 중지시켰습니다. 아마 다시 작동하는 데 1분 정도 걸리겠죠.”

“알겠어요. 근데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아시는 건가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지금까지 저는 지하실로 가는 길을 본 적이 없어요.”

“제대로 알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이 말과 함께 나는 하세리를 데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가다가 사람들 몇 명이 지나갔지만, 그럴 때마다 빠르게 몸을 숨겨 안 들킬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하세리와 함께 건물의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분명 이쯤이었던 거 같은데…….”

“여기에 뭐가 있는 건가요?”

“네, 무언가가 있죠.”

나는 벽을 더듬으며 대꾸했다.

하윤경을 잡기 위해, 회귀하기 전의 나는 많은 조사를 했었다.

그리고 고생 끝에 꽤 많은 성과를 얻었다.

예를 들자면…….

위잉―

내가 벽을 몇 번 건들자, 기계음과 함께 벽이 뒤로 밀렸다.

그리고 벽 뒤에 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이건…….”

“말했잖아요. 지하가 있다고.”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계단.

나는 놀란 하세리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따라오세요. 제가 말한 그 진실을 보여 드릴 테니까요.”

* * *

같은 시각.

아주 깊숙한 지하에 위치한 기관.

“그러니까 아까 카메라들이 먹통이 됐다고?”

“예. 지금은 복구가 됐습니다만, 그래도 이건 보고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잘했어. 이런 건 보고해야지.”

하윤경은 부하에게 대꾸한 후, 벽에 설치된 모니터들을 바라봤다.

“후문 쪽 카메라들이 일시적으로 먹통이 됐다라…….”

하윤경은 턱을 만지며 작게 중얼거렸다.

“…설마, 진짜 온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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