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 * *
나는 하세리를 데리고 계단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은 상당히 길게 이어졌다.
“박유진 씨. 이 계단은 얼마나 긴 거죠?”
“아마 3층 정도의 높이일 거예요.”
“그럼 박유진 씨가 말한 고모의 연구소가 지하 3층에 있는 건가요?”
“아니요. 지하 3층에 있지 않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윤경 씨는 고작 지하 3층에 자기 연구소를 만들 위인이 아니거든요.”
“고작 지하 3층이요?”
“따라오세요. 이건 직접 보는 편이 나을 테니까.”
나는 하세리를 데리고 계단을 계속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뒤, 계단이 끝났다.
‘여기도 기억과 똑같네.’
나와 하세리 앞에 나타난 건 엘리베이터였다.
평범하게 생긴 엘리베이터 말이다.
“거기 누구냐?!”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 앞을 두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총을 든 채, 무장한 경비 두 명이었다.
“여기 사람 아닌 거 같은데, 누구냐?!”
“정지해라! 정지하고 신원을 밝혀라! 그러지 않으면 발포를…….”
“잠시 눈 좀 붙이고 계시죠.”
나는 두 경비를 향해 손을 뻗어, 그들에게 전류를 발사했다.
“크악?!”
“커컥!”
감전된 두 사람은 순식간에 기절했다.
‘대충 D급 헌터인 거 같네.’
헌터라 몸은 튼튼해 보였지만, 내 전류도 최근 꽤 강해진 터였다.
이제 D급 헌터들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준이 되었다.
“가시죠, 하세리 헌터님. 이쪽이에요.”
“…경비까지 있고… 여기는 대체 뭐 하는 곳이죠?”
“하윤경 씨의 모든 비밀이 담긴 곳이죠.”
나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며 말했다.
“그리고 하세리 헌터님이 아셔야만 하는 비밀도 이곳에 있어요.”
“제 고모에 대한 비밀 말인가요?”
“…그뿐만이 아니죠.”
하세리를 엘리베이터에 들인 뒤, 나는 B25라고 적힌 버튼을 눌렀다.
“B25가 지하 25층이죠? 어? 잠깐만… 박유진 씨. B40이라고 적힌 건…….”
“말했잖아요. 하윤경 씨는 고작 지하 3층에 비밀을 안 숨긴다고요.”
B15부터 B40.
그러니까 지하 40층까지 이어지는 엘리베이터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지하 15층부터 지하 24층까지가 일반 연구실 및 실험실. 지하 25층부터가 광기의 실험실들이지.’
광기의 실험실, 그러니까 하윤경의 주요 만행들이 지하 25층부터 있었다.
하세리에게 보여 줄 건, 지하 25층부터의 광경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하세리의 부모님에 관한 것들이 25층에 있었지.’
하윤경의 만행들을 하세리에게 알려 주는 게 먼저였다.
그래야만 하세리가 하윤경을 잡는 데 나를 도와줄 터였다.
실제로 회귀 전의 하세리가 그랬었다.
‘분노하면서 이 지하 실험실을 전부 불태웠지. 물론, 그걸로 하윤경을 못 잡았지만.’
회귀 전, 나는 오늘처럼 하세리를 데리고 하윤경의 이 실험실을 습격했다.
하지만 하윤경을 잡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하윤경은 재정비할 시간을 얻었고, 그로 인해 하윤경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당시에 서울의 절반 가까이가 무너졌지.’
만약 오늘 하윤경을 못 잡으면, 그때의 일이 또 일어날지 몰랐다.
나는 절대 그 일을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가족 잃은 사람들의 울음을 또 듣고 싶지 않았다.
‘하윤경이 여기서 도망 못 치게만 하면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엘리베이터의 벽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은 채 집중했다.
파지직. 파직.
전류 몇 줄기를 엘리베이터에 흘려보낸 후, 나는 다시금 눈을 떴다.
방금의 내 행위에 하세리는 고개를 갸웃하는 중이었다.
“별것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설명하기 귀찮았기에 대충 넘어갔다.
‘일단 이걸로 회귀 전처럼 도망은 못 치겠지.’
물론 이 엘리베이터 외에도 도망 수단은 몇 개 더 있겠지만, 그건 하나하나 또 막으면 됐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하세리 헌터님. 곧 지하 25층에 도착할 거예요.”
“네, 그러네요. 그게 왜요?”
“…미리 마음의 준비하세요.”
“마음의 준비요?”
“보기에 썩 유쾌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온갖 잔인한 짓을 저질렀던 나도 처음 여기 왔을 때 소름 돋았었다.
아마 하세리에게 꽤 자극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잠시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끄아아악!”
“으아악! 그, 그만해!”
고통스러운 비명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하윤경 】
“이건… 무슨…….”
“이쪽으로 오세요, 어서.”
“어엇?”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바로 하세리와 함께 근처 캐비넷 뒤로 숨었다.
“목소리 낮추세요. 여기서 걸리면 안 되거든요.”
“박유진 씨. 여기는 대체…….”
나는 침착하게 말했으나, 내 말이 하세리의 귀에 안 들어가는 듯했다.
그녀는 고개를 캐비닛 밖으로 내밀었다.
“끼아아악!”
“아악! 으악! 내, 내 팔!”
“아프다고! 그만해!”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리고 25층에는 수많은 방들이 있었다.
그 방들에는 문이 없었다.
그 탓에 그 방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부 보였다.
“어떻게 저런 짓을…….”
보기에 상당히 잔인한 광경이었다.
수많은 수술실에서 일어나는 광경이 말이다.
“너무 자세히 보지 마세요. 트라우마 남을 테니까.”
“아니, 어떻게 저런, 사람의 신체를, 마취도 안… 우욱, 욱.”
하세리는 고개를 돌려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소리가 새어 나가 들킬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25층의 사람들은 전부 실험을 진행하는데 바빴다.
“…하세리 헌터님, 괜찮으신가요?”
“우욱, 으으. 네, 괜찮아요. 죄송해요.”
하세리는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충격을 받은 눈빛으로 다시금 그 잔인한 광경을 바라봤다.
“제, 제 고모가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고요?”
“네, 하윤경 씨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죠.”
“마, 말도 안 되는… 제 고모는 그럴 분이…….”
“하세리 헌터님은 하윤경 씨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저는…….”
하세리는 말끝을 흐렸다.
아마 하세리 또한 하윤경에 대해 자세히 몰랐을 터였다.
‘하세리를 열 살까지만 키우고, 그 이후로 아마 거의 방치했겠지.’
하세리는 하윤경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었다.
애초에 하윤경에 대해 알려고 해도, 하윤경이 그녀에게 제대로 가르쳐 줬을 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따라오시죠. 하윤경 씨에 대한 것들을 알려 드릴게요.”
지하 40층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연구소.
회귀 전, 나는 하윤경 하나를 잡기 위해 이 거대한 건축물의 구조를 전부 외웠다.
그리고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덕분에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전부 알았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리고 조용히 오세요. 들키면 일이 많이 귀찮아질 테니까요.”
근처 기구들에 몸을 숨기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하세리도 나를 조심스럽게 따라왔다.
그렇게 한창 실험이 진행되는 방들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 덕에, 나와 하세리는 실험의 현장을 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으으…….”
“비위 안 좋으면 보지 마세요.”
“고모가 진짜로 이런 짓을 시킨 거라고…….”
하세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그 끔찍한 광경을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안 믿긴다는 표정이었다.
“이쪽이에요. 그리고 이번에도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왜요? 이것보다 더 끔찍한 게 있나요?”
“저 광경들보다는 끔찍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 유쾌하지도 않겠죠.”
실험들이 무분별하게 진행되던 곳을 지나, 복도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자 잠시 뒤,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넓은 공간 안에 수많은 우리들이 있었다.
카으으으…….
그르르…….
그 우리들 안에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갇혀 있었다.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었다.
몬스터만 있는 거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이곳에는 몬스터만 갇힌 게 아니었다.
“아으윽, 꺼, 꺼내 줘…….”
“목말라… 물을…….”
그 작은 우리 안에 사람들까지 갇혀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참혹한 몰골로 갇힌 사람들 말이다.
나야 이 광경을 회귀 전에 봤었지만, 하세리는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왜 여기에…….”
“인신매매로 끌려온 사람들, 납치된 사람들, 길에서 주워 온 사람들 등등이죠.”
“아니, 왜… 그보다 이 사람들의 상태가…….”
“먹을 걸 제대로 안 줬으니까요. 게다가 여기 갇힌 사람들 대부분이 실험을 당하다가 온 것일 거예요. 이상한 실험을 당했으니, 멀쩡할 리가 없죠.”
“무슨… 대체 왜 이런…….”
하세리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마치 이런 끔찍한 광경은 처음 본다는 듯이.
뭐, 산전수전 다 겪은 내게 있어서도, 이 광경은 상당히 끔찍했었다.
“이걸 진짜… 전부 제 고모가 시켜서 한 일이라는 거예요?”
“안 믿기겠지만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 고모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믿기 싫어도 곧 믿게 될 거예요. 그리고 이 일에 하윤경 씨만 연루된 건 아니에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죠?”
“하세리 헌터님에게 할머니나 할아버지, 삼촌과 사촌 등이 계시죠?”
“그게 왜… 잠깐. 설마 하려는 말씀이 그 사람들도 이 일에…….”
하세리는 떨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그건 아닐 거예요. 저는 제 친척들을 자주 본 건 아니지만, 그 사람들은 절대 그런 일을…….”
“직접 보고 판단하시죠.”
나는 다시금 앞장서며 말했다.
“이쪽이에요. 거의 다 왔어요.”
계속된 충격적인 사실에 하세리는 넋이 나간 듯했다.
잠시 그녀에게 숨 돌릴 틈을 주고 싶었지만, 당장 그럴 시간이 없었다.
여기는 하윤경의 홈그라운드였다.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나는 하세리를 이끌고, 수많은 우리들을 지나갔다.
“박유진 씨, 이 사람들은 그래도 구하는 게…….”
“나중에 구하도록 하죠. 당장은 이게 먼저거든요.”
우리들이 있는 넓은 공간을 지나자, 이내 좁은 복도가 다시 나타났다.
그 복도를 몇 분 걷자, 이내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나타났다.
도어락 같은 장치로 잠겨 있는 문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잠겨 있든 잠겨 있지 않든 상관없었다.
파직―
내가 전류를 몇 번 날리자, 그 도어락은 바로 열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작은 방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방 안에는 책상과 그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한 대가 있었다.
“박유진 씨, 이건 무엇인가요?”
“이 미친 연구소의 모든 것이 담긴 물건이죠.”
나는 컴퓨터의 전원을 켜며 말했다.
그러고는 하세리를 그 컴퓨터 앞에 앉혔다.
“비밀번호는 487320348이에요. 그걸 입력하고,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들을 하나씩 확인해 보세요.”
하세리는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충격적인 광경들을 보고 온 터라, 하세리의 멘탈이 꽤 흔들렸던 터였다.
하지만 하세리는 어떻게든 다시 정신 줄을 붙잡고,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다시금 풍겼다.
그렇게 그녀는 컴퓨터에 담긴 파일들을 확인했고, 이내 그 여유로움은 다시 사라졌다.
“…뭐죠? 설마 제 고모가 이런 짓들을 해 왔다는 건가요?”
“하윤경 씨만 그 짓을 한 게 아니죠. 다른 이름들 잘 찾아보세요. 익숙한 이름들 몇 개 보일 겁니다.”
“…이건 삼촌 이름이고, 이건 할아버지의… 게다가 이 정부 주관의 프로젝트, 이건 극비 프로젝트였는데…….”
“하세리 헌터님이 몇 달 전에 하윤경 씨에게 전화로 말씀하신 거죠?”
“…….”
컴퓨터에 담긴 파일들을 확인할수록, 하세리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참고로 저 컴퓨터는 지난 몇십 년 동안의 일들.
그러니까 하윤경과 그녀의 가족들이 저지른 일들이 모두 기록된 컴퓨터였다.
‘정확히는 실험의 일지 기록이지만, 그게 그거지.’
아마 저걸 확인한 하세리는, 내가 하윤경을 잡는 데 협조할 것이 분명…….
“박유진 씨.”
“네?”
“여기에… 대체 왜 저의 부모님 이름이 있는 거죠?”
“아.”
결국 올 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