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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31화 (131/240)

131화

* * *

순식간에 눈앞의 풍경이 달라졌다.

방금까지 컴퓨터 한 대가 있는 작은 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거대한 방으로 이동된 것이었다.

어둡고, 커다란 문이 총 여섯 개가 있는 방이었다.

“…너무 안일했어.”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하윤경이 만든 이 지하 연구소.

이 연구소를 구상한 게 하윤경이었다.

그리고 하윤경은 이 연구소를 구상할 때, 별 기능들을 다 만들어 놨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원하는 인간을 순간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사람 한 명을 지하 연구소의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킨다.’

하윤경은 과학자이기 이전에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것도 꽤 실력이 있는 마법사였다.

나도 일대일에서의 승부를 장담 못 할 정도였다.

“이거에 또 당하네.”

하윤경이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이 수법에 안 당하려고 했었다.

지금 상황에서 하세리와 떨어지면, 내 계획이 많이 꼬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건 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

이 강제 순간이동은 대처하기 힘들었다.

그냥 하윤경의 눈앞에 있으면 당하는 거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 미리 쓰게 했으니, 당분간은 또 쓸 일이 없겠지.’

내 기억에 맞는다면, 이 강제 이동을 한 번 쓰면 이후로 몇 시간은 못 썼다.

아무래도 순간이동, 그것도 강제로 이동시키는 마법은 상당한 마력을 소모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하윤경의 비장의 수를 소모시킨 것, 그러니까 전투 외의 상황에서 이것에 당한 것.

이건 분명 나쁜 수확이 아니었다.

아니었는데…….

“뭔가 느낌이 쎄하네.”

하윤경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강제 이동이라는 좋은 수를 함부로 쓸 리가 없었다.

분명 쓸 가치가 있었기에 나를 이곳으로 이동시켰을 것이었다.

‘근데 여기는 또 어디야?’

나는 주위를 살폈다.

이 정육면체 모양의 방, 그것도 빛이 약간밖에 안 들어와 꽤 어두웠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런 크기와 이런 형태의 방은 분명…….

“지하 30층. 제27 실험장.”

실험체들을 거대한 공간에 밀어 넣고, 그들의 행동을 살피는 장소.

방의 크기를 봤을 때 그곳인 게 확실했다.

그나저나 왜 하윤경이 나를 이 방으로…….

- 생체 반응 확인. 생체 반응 확인.

“음?”

고민하던 중, 갑자기 기계음이 들려왔다.

- 예약 시스템 가동. 실험체 3체, 투입.

여섯 개의 문들 중 세 개가 열렸다.

그리고 각각의 문들로부터 몬스터가 한 마리씩, 그러니까 총 세 마리의 몬스터들이…….

“…아.”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전부 내가 아는 자들이었다.

“으아우으으으, 카으아으윽.”

“오랜만이네요, 정수민 씨.”

인간과 장수풍뎅이를, 아니.

인간과 캅테리온을 반반씩 섞은 듯한 외형.

인간 때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지만, 목소리와 생긴 것만 봐도 대충 알 수 있었다.

“캅테리온의 유전자를 잘 발현시켰나 보네요. 게다가 하윤경이 몸에 손을 댄 흔적도 있고.”

“끄아으아아, 크으윽아!”

“…이제 진짜 말도 못 하시나 보네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후, 고개를 돌려 다른 쪽 문을 바라봤다.

“죽을 거야, 죽일 거야. 죽이겠어. 박유진, 너만큼은…….”

“이지현 씨는 뭐… 하윤경이 건든 것 치고는 멀쩡하네요.”

이지현은 인간의 형태 자체는 유지했다.

다만 그녀의 몸 곳곳에, 깨진 유리 조각과도 같은 칼날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박유진! 너는! 너 때문에! 내가! 내가…….”

완전히 맛이 간 듯했다.

아무래도 나에 대한 증오 하나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제가 뭘 그리 잘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도 이지현은 심하게 당한 건 아니었다.

나중에 잘만 하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도 있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마지막 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문에서 여러모로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조원선 씨.”

“…….”

조원선은 못 알아볼 정도로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조원선이 맞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많이 안 좋아 보이시네요.”

“…….”

조원선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말을 못 하는 것이었다.

입 위로 기계들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제대로 개조를 해 놨네.’

익스트리머의 유전자를 받아 자폭한 후.

조원선은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신체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팔과 다리를 전부 절단해야 했고, 폐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관들이 손상, 게다가 전신에 심각한 화상까지.’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 살려 둔다고 해도 얼마 못 가 죽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하윤경이 어찌어찌 살려 놨나 보네.’

하윤경은 미쳤지만, 그래도 뛰어난 과학자인 건 맞았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조원선을 살리는 건 일도 아니었을 터였다.

‘근데 저렇게 해 놓을 줄은 몰랐는데.’

나는 조원선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조원선은 현재 기계로 된 팔과 다리를 달고 있었다.

거기다 상체에는 다량의 기계 장치들이 꽂혀 있었다.

‘생명 유지 장치들인가 보네.’

즉, 조원선은 지금 저 기계들 덕에 겨우 움직이는 것이었다.

‘어지간히 심하게 다치기는 했나 보네.’

내가 아는 하윤경은 실험체에게 저런 생명 유지 장치들을 쓰지 않았다.

그 하윤경이 저걸 쓸 정도였으면, 조원선은 겨우 숨만 쉴 수 있던 게 분명하다.

근데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기 계신 모두. 저와 싸울 생각인가요?”

“크으윽아, 끄아아!”

“죽일 거야, 죽이겠어. 박유진, 너 때문에 내가 이 꼴이!”

정수민과 이지현은 살기를 내뿜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래도 내게 쌓인 게 꽤 있는 듯했다.

‘아니, 근데 내가 저 두 사람에게 뭘 했다고.’

두 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뿐, 그 외의 잘못은 없었다.

그래서 참 할 말이 많았지만, 지금 저 두 인간에게 말을 해 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조원선은…….

“…….”

조원선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증오가 가득한 눈빛을 내게 보였다.

“조원선 씨. 잘 생각하세요. 저는 조원선 씨에게 잘못한 거 없어요. 하윤경, 그 미친 여자가 조원선 씨의 머릿속을 갖고 장난을…….”

“시…끄…러…워…….”

조원선의 입은 기계들에 의해 막혀 있었다.

하지만 조원선의 목소리가 그 기계들을 뚫고 넘어왔다.

“너… 죽인…다.”

조원선은 손에 있던 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그 창에서 푸른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윤경이 좋은 창을 주었나 보네요.”

나는 한숨을 쉬며 자바니아를 꺼내 들었다.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네.”

이곳은 지하 30층이었다.

그리고 하세리는 25층에 하윤경과 같이 있을 터였다.

‘빨리 돌아가야지.’

하윤경이 생각 이상의 강자라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하윤경의 세뇌.

하윤경은 이상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가스라이팅했다.

만약 지금 이 상황에서 하세리가 그것에 당하면, 일이 많이 꼬일 것이 분명했다.

‘뭐, 하세리가 그거에 당한다 해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귀찮아지겠지.’

아무튼 빨리 하세리 곁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았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끄우우아아으으!”

키가 이제 2m를 훌쩍 넘게 된 정수민.

그는 거대한 뿔을 앞세우며 내게 돌진해 왔다.

나는 그의 돌진을 피한 후, 그의 목을 향해 자바니아를 휘둘렀다.

챙―!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내 공격은 막혔다.

두꺼운 껍질이 정수민의 온몸을 지켜 줬기 때문이다.

“박유진! 너! 너 때문에!”

그러던 와중, 이지현은 메이스를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나는 별 어려움 없이 공격을 피했으나.

“윽.”

이지현의 온몸에 돋아나 있던, 유리 조각과도 같은 칼날들.

그 칼날에 내 얼굴이 베였다.

“너만 아니었… 케엑?!”

“귀찮게 하네.”

나는 이지현의 배를 걷어찼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오던 정수민과 거리를 벌리려고…….

“…에라이.”

어느새 내게 접근한 조원선이 내게 창을 내리찍었다.

피할 틈이 없었기에 나는 팔로 그의 창을 막았다.

“아으으. 힘이 더 세졌네.”

창을 맞고 뒤로 밀려난 나는 재빨리 다시 자세를 잡았다.

코트 덕분에 크게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많이 뜨겁네.”

조원선이 들고 있는 저 불타는 창.

저 창에서 나오는 열기가 상당했다.

‘자, 생각해 보자.’

정수민은 캅테리온의 유전자를 받아, 엄청난 힘과 방어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지현의 전반적인 신체 능력이 좋아졌고, 몸에 칼날들이 생겼고, 거기다 무엇보다 그녀의 근본은 힐러였다.

방금 눈치챈 거지만, 그녀는 내게 당한 상처를 스스로 치료했다.

‘조원선은 상처를 입을수록 강해지던 탱커였지.’

하윤경이 익스트리머의 특성은 제거한 듯했다.

대신 조원선의 기본 능력을 더 극대화시켰다.

‘게다가 숨 쉬는 거 자체가 고통스러워 보이네.’

조원선은 고통에 몸을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 때문에 능력이 더 극대화되었다.

“…그냥 나 하나 잡겠다고 이렇게 만든 거구나.”

이 셋의 증오는 전부 내게 향하고 있었다.

하윤경은 나에 대한 대비책으로 이 셋을 잡아서 개조시킨 듯했다.

‘하지만 상관없어.’

적이 누가 와도 쓰러뜨린다.

그리고 하세리와 함께 오늘 하윤경을 잡는다.

간단한 계획이었으니,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었다.

“…해 보자.”

나는 와이어까지 꺼내 들며,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한편 같은 시각.

“고모. 박유진을 어디로 보낸 거죠?”

“걱정 마. 아직 이 건물 안에 있으니까.”

“살아 있는 거죠?”

“살아 있지. 아직은.”

“아직은? 아직은 살아 있다?”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정 많은 사람이었니?”

하윤경은 웃으며 컴퓨터 쪽을 향해 다가갔다.

“아무튼, 내 비밀을 전부 봤구나. 본 소감은 어때?”

“소감이요? 고모는 제 부모님을 죽이고, 이딴 끔찍한 짓거리들을…….”

“알아. 너무 화내지 마. 우리 집안의 핏줄들은 이러는 게 정상이거든.”

“이게 뭐가 정상인데요?”

하세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사람들을 잡아서 실험하는 게 뭐가 정상이냐고요?”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지식에 대한 욕구. 우리 집안은 원래부터 그 욕구가 많이 강했거든.”

“욕구든 뭐든 이건 아니에요. 고모, 저는 사람을 지키기로 맹세한 헌터예요. 그리고 이 광경을 본 이상, 저는 고모를 잡을 수밖에 없어요.”

하세리는 이 말과 함께 주위로 불길을 불러냈다.

이에 하윤경은 미소를 지었다.

“세리야. 나를 잡겠다는 건, 네 할아버지, 삼촌, 사촌. 우리 집안을 전부 적으로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너는 너의 가족을 전부 버릴 수 있어? 너를 지금까지 키워 온 가족들을?”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건 아니에요.”

하세리 주위의 불길이 더욱 세졌다.

“고모를 포함해서…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잡아넣겠어요. 그리고 이 시설을 어떻게든 폐쇄시킬…….”

“역시 설득은 안 되네. 어쩔 수 없나.”

하세리는 하윤경을 차갑게 바라봤으나, 하윤경은 그저 귀찮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런 후, 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막대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막대기의 끝에 있던 버튼을 누르자, 그 막대기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고모? 뭔…….”

“자, 이 빛을 잘 보렴, 내 조카야.”

“으, 으읏?”

“오늘 알게 된 사실, 너무 충격적이었지? 그거 전부 잊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게 해 줄게.”

하윤경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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