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전격계 헌터-133화 (133/240)

133화

* * *

하세리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파악을 못 했다.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몰랐다.

‘분명 내 몸인데, 왜 내 몸 같지가 않지.’

정신이 멍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다.

‘그냥…그냥 이대로… 조용히…….’

머리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하세리는 더 이상 자기 의지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누군가에게 몸을 맡겼다.

- 자, 세리야. 따라와. 움직여. 내 말 잘 들어야지?

어딘가에서 들려온 목소리.

누구의 목소리인지 파악이 안 됐다.

하지만 하세리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네.”

하세리는 목소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앞이 안개가 낀 것처럼 잘 안 보였다.

하지만 빛나는 막대기, 그것 하나만큼은 잘 보였다.

‘저 빛을 따라가야 해.’

하세리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저 빛, 그리고 저 빛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을 따랐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내가 뭘 하고 있던 거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하세리는 그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중요하지 않아.’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왜 이러고 있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저 빛과 목소리.

하세리에게 그게 전부였다.

- 세리야. 네가 해 줘야만 하는 일이 있어.

“…네.”

하세리는 계속 빛을 따라갔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의지 없이 말이다.

그리고 잠시 뒤.

- 박유진을 쓰러뜨려, 어서.

또다시 들려온 목소리.

이에 하세리는 앞을 바라봤다.

‘…박유진?’

여전히 안개가 낀 듯, 눈앞이 안 보였다.

하지만 그 안개 사이로,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누군지 안 보였다.

그러나 저 사람이 박유진이라고, 그녀의 본능이 말해 줬다.

‘박유진을… 쓰러뜨린다.’

하세리는 자기 주위로 불길을 불러냈다.

그녀가 할 것은 하나, 바로 목소리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바로 박유진을 공격하려고 했는데.

‘잠깐, 박유진? 박유진이라면…….’

머릿속에 든 의문.

박유진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생각이 안 났다.

‘누구더라? 박유진이라면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인데? 아니, 잠깐. 나는 왜 여기서 이러는…….’

의문이 꼬리를 물어, 더 많은 의문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하세리는 이내, 이 상황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하세리의 눈앞에 있던 안개들.

그 안개들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저건?’

이내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 남자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표정이 안 보였다.

하지만 그 남자의 눈은 웃고 있었다.

마치 엄청난 발견을 한 것처럼 말이다.

‘뭐지?’

그 남자는 들고 있던 단검을 집어넣었다.

이에 하세리는 또다시 의문을…….

- 세리 누나. 내 말 들려?

“…어?”

- 세리 누나. 진짜 내 말 안 들려?

남자의 말에, 하세리는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게, 그녀를 누나라고 부른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아.”

아니, 한 명 있었다.

그녀를 최근 누나라고 부른 사람이 단 한 명 있었다.

최근에 하세리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은 분명…….

“박유진…….”

그 순간, 눈앞의 안개들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박유진…….”

내 이름을 부른 순간, 하세리의 눈에 생기가 완전히 돌아왔다.

이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게 되네.’

설마 싶었지만, 이 방법으로 세뇌를 깨뜨렸다.

뭐, 하세리를 누나라고 부른 사람이 나 외에 없었을 테니 어쩌면…….

“뭔… 아니, 세뇌를 저딴 방법으로 깬다고?”

하윤경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 세뇌가 깨질 거라고, 전혀 예상을 못 한 듯했다.

“세리야! 이쪽이야! 자, 내 쪽으로 눈을…….”

“어딜.”

하윤경이 빛나는 막대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막대기를 향해 자바니아를 던졌다.

“크윽?!”

“두 번은 안 통해요.”

“이게 감히…….”

자바니아는 막대기에 명중했다.

그로 인해, 막대기는 두 동강 났다.

막대기는 빛을 잃으며 바닥에 떨어졌다.

“바, 박유진 씨? 저 방금… 그보다 제가 왜 여기에…….”

“간단히 설명하자면, 하세리 헌터님은 하윤경에게 세뇌를 당했었죠.”

“세뇌요?”

“네, 세뇌요. 하지만 하세리 헌터님은 그걸 잘 깨고 나오셨어요.”

나는 가면을 벗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가면을 하세리의 얼굴에 씌었다.

“이거 쓰고 계세요. 그럼 세뇌 같은 거에 또 당하지 않을 거예요.”

“네? 아아, 네. 하지만 그럼 박유진 씨는…….”

“저는 세뇌 같은 거에 안 당하니, 걱정 마세요.”

나는 웃으며 대꾸해 준 뒤, 하윤경 쪽을 바라봤다.

하윤경은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은 표정이었다.

“박유진 씨는 저를 놀라게 하는 재능이 있네요.”

“제가 변수 하나는 잘 만드는 편이죠. 돌아와라.”

내 말에 자바니아는 내 손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에 하윤경은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채민. 저 둘 제압해.”

이채민이라는 사람에게 명령을 내린 하윤경.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눈을 감았다.

나는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여기다.’

나는 내 왼쪽을 향해 발을 날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허공에 발을 날린 거였지만.

“크억!”

나는 무언가를 확실하게 걷어찼다.

그리고 이내, 명치를 부여잡는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너, 어떻게…….”

“이채민 씨는 모습을 감추는 거지, 소리까지는 못 감추죠.”

나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소리에 집중하면, 어디에 있는지 대충 가늠할 수 있어요.”

나는 병의 뚜껑을 열어, 그 안에 담긴 검은색 액체를 이채민에게 뿌렸다.

검은 액체는 이채민의 얼굴에 묻었다.

이채민은 소매로 그 액체를 닦아 내려고 했지만.

“이건 무슨…….”

“마법으로 가공된 페인트예요. 한 번 뿌려지면, 최소 세 시간은 절대 안 지워지죠.”

“…세 시간?”

“세 시간 뒤면 닦아질 테니 걱정 마세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거죠. 앞으로 세 시간 동안, 이채민 씨가 투명화를 해도…….”

“위치가 전부 드러나겠죠.”

하윤경은 한숨을 쉬며 끼어들었다.

“생각보다 준비를 잘 하고 오셨네요, 박유진 씨. 대충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대충 갖고는 안 되겠어요.”

“그럼 지금부터 진심으로 한다는 건가요?”

“그래야죠. 방심하면 안 될 것 같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라고 하윤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하고 와야겠네요. 박유진 씨가 이렇게 준비를 했는데, 저도 최소한의 준비를 하는 게 예의죠.”

“제가 그걸 하게 둘 거 같나요?”

나는 바로 하윤경에게 돌진하려고 했으나.

“이채민. 그리고 너희 셋. 저 둘을 최대한 붙잡아 놓도록 해.”

하윤경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채민, 그리고 정수민, 이지현, 조원선.

이 네 명이 달려와 내 앞을 막았다.

“귀찮게 하네.”

하윤경은 내가 오늘 침입할 거라고 예상을 못 했을 거다.

즉, 공격에 대한 대비가 완벽하지 않을 터였다.

‘기회라면 지금이야.’

하윤경에게 틈을 줘서는 안 됐다.

지금 바로 하윤경을 쫓아가, 이번 기회에 끝내야 했다.

‘이 넷은…….’

정수민, 이지현, 조원선.

그리고 이제 이채민까지.

‘하세리에게 맡기고 가자.’

하세리라면 이 넷쯤은 별 것 아닐 터였다.

그러니 지금 바로…….

“박유진 씨.”

“네?”

“이 가면을 쓰고 있으면, 세뇌에 또 안 당하는 거죠?”

“네. 정신 이상 공격을 거의 대부분 막으니까요.”

“…그럼.”

하윤경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가서 하윤경을 붙잡을게요. 박유진 씨는 이 넷을 막아 주세요.”

“네? 하지만…….”

“부탁할게요.”

하세리는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제게 기회를 주세요. 하윤경, 제 고모와 단둘이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거든요.”

“…괜찮겠어요? 하윤경 씨, 아니. 하윤경, 저 인간은 저래도 하세리 헌터님의 가족이에요. 가족을 직접 잡는…….”

“제 가족은 맞지만,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어요. 저는 헌터로서… 제 할 일을 하겠어요.”

“그런가요?”

“네,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하윤경의 말에 넘어가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확고한 눈빛으로 말하는 하세리.

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세리는 이상한 인간이었지만, 정의로웠다.

최대한 옳은 길을 가려는 인간이었다.

“알겠어요. 그럼 저는 이 넷을 잡고 따라…….”

“크어갸다으아라!”

“…이 넷을 잡고 따라갈게요. 그러니 가세요. 어서.”

나는 내게 달려든 정수민을 쳐 내며 외쳤다.

이에 하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하윤경이 나간 문을 향해 달려갔다.

“고마워요!”

“어서 가요!”

나는 이지현의 관자놀이에 주먹을 날리며 외쳤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나는 내 할 일을 할 생각이었다.

“하세리! 너는 못 지나간… 으억?!”

“비키시죠, 아저씨.”

이채민이 하세리의 앞을 막아섰지만, 나는 바로 달려가 그를 옆으로 쳐 냈다.

“가족 문제는 가족끼리 해결하게 놔두자고요.”

나는 문 쪽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하세리는 문을 지나, 하윤경이 갔던 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상하군. 이곳은 하세리에게 맡기고, 자네가 하윤경 님을 잡으러 갈 줄 알았는데.”

“방금 말했잖아요. 가족 문제는 가족끼리 해결하게 놔둬야죠.”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하윤경 님이라면 세뇌 같은 거 없어도, 말만으로도 하세리를 자기 편으로…….”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나는 자바니아를 들어 올리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하세리 헌터님은 그쪽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의롭거든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장 옳은 일을 선택할 거예요.”

“하세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이 정도면 과소평가죠.”

나는 대꾸한 뒤, 다가오고 있던 조원선을 향해 자바니아를 던졌다.

자바니아가 어깨에 꽂히자, 조원선은 고통스럽다는 듯 몸을 떨었다.

“동시에 덤비세요. 빨리 끝내고 도우러 가야 되거든요.”

“웃기는군. 끝나는 건 너다.”

이채민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정수민, 이지현, 조원선이 그를 따랐다.

* * *

“백업 파일들을 만들어 놔야겠어.”

하윤경은 지하 30층에 위치한 자신의 연구실에 들어갔다.

“최악의 경우까지 대비해야지.”

하윤경은 연구실 안에 있던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그녀는 빠르게 그 안에 있던 파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세리라면 이곳을 전부 불태워 버릴 수도 있어.’

수년간 모아 온 사람들, 실험체들, 몬스터들, 자산들 등.

그 모든 게 오늘 불타 없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하윤경에게 그 정도는 상관없었다.

‘그런 건 다시 모으면 그만이야. 하지만 내가 쌓아 온 이 지식들, 이 연구 결과들은 다시 못 모아.’

하윤경은 인류를 한 단계 더 진화시키고자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그럴 의무가 있다고, 하윤경은 스스로 생각했다.

‘내 의무를 고작 이딴 애들이 방해하게 둘 수 없어.’

하윤경은 파일들을 외부 시설의 컴퓨터로 보내기 시작했다.

이 파일들만 있으면, 그녀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 단계까지 왔어. 마지막이라고. 이것만 하면 인류를 진화시키고, 나는 더 높은 곳으로…….”

하윤경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이곳 외에도 그녀의 연구실이 있었다.

이곳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았지만, 그녀의 계획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이제 그녀는 혼자서도…….

화르륵―!

“…어?”

컴퓨터로 작업하던 중, 근처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윤경이 그 불길을 눈치채자마자.

콰쾅―!

컴퓨터가 폭발했다.

“으윽? 이건…….”

“고모.”

“…세리구나.”

하윤경이 고개를 돌리자, 연구실에 막 들어온 하세리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박유진이 길을 내줬거든요. 그러니 고모.”

하세리는 차갑게 말하며, 그녀 주위로 더 많은 불길을 불러냈다.

“저희 오랜만에 이야기 좀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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